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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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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27, 2016 01:29에 작성됨.

 오늘을 기점으로 제 아이돌 생활의 막을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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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짭조름한 바닷바람이 불었다. 아마미 하루카는 모래사장에 앉아 우두커니 수평선 너머를 바라봤다. 초점 잃은 눈은 생기가 없었다. 트레이드 마크인 활짝 웃는 얼굴도 온데간데 없었다. 그저 아마미 하루카라는 탈을 쓴 죽은 영혼의 모습이었다. 멍하니 앉아 있던 그는 아무 말 없이 일어났다. 흐리멍덩했던 눈에 어느새 생기가 돌아왔다. 그리고 한 발자국씩 앞으로 걸었다.

 

 본디 장작은 화려하게 자신을 태우고 숯이 된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실수로 잘못되면 숯이 되지 못 하고 바스러져 재가 된다. 그런 재를 기억해주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사람은 활활 타오르던 장작의 모습과 숯만을 기억하기에. 그도 그런 장작과 같았다. 처음엔 아이돌로서 온 힘을 다했다. 예전부터 되고 싶었던 꿈이기도 했고, 그 꿈을 이뤘기에 더욱 힘을 냈다. 예쁜 옷을 입고, 관객들에게 자신의 노래를 들려주면 돌아오는 환호성이 좋았다. 팬들에게서 오는 팬레터를 하나씩 읽는 것도 즐거웠고, 가끔씩 선물이라도 받으면 사무소에서 훌쩍이기도 했다.
 그는 그런 자신이 좋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기뻤다. 그래서 불 붙은 장작처럼 화려하게 타올랐다. 아이돌 신인상과 인기상도 탔고, 관객과 직접 대면할 수 있는 연극까지 발을 뻗었다. 하루하루가 즐거웠던 그는 어느 순간 불안해졌다.
 ‘과연 이 행복이, 이 즐거움이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하는 그런 걱정이었다. 처음이야 자신이 너무 걱정한다는 생각에 고개를 휘휘 저었고, 다시 업무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두 번, 세 번 계속 되면 그 불안이 자신을 휘감고 있다는 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틀리면 안 된다.’, ‘실수하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그를 짓눌렀다.
 정신과를 찾아가서 상담을 받고, 항우울제를 처방 받기도 했다. 약의 도움으로 그 순간엔 불안증세를 떨칠 수 있었으나, 시간이 지나 돌이켜 보니 자신이 약이 없으면 버티지 못 할 정도로 무너졌다는 생각이 그를 더욱 좌절케 했다.



 그런 그에게 매몰찬 태풍이 몰아쳤다. 힘겹게 버티던 때에 열린 연극에서였다. 주인공을 맡은 그는 배역에 몰입해 연기를 했다. 공연이 막바지에 이르고 클라이맥스에 도달할 때 대사를 말했다. 그러나 한 순간, 아주 짧은 순간, 쏟아내던 대사가 멈추었다. 그의 머릿속이 갑자기 하얘졌다. 그리고 대사를 잊고 말았다. 1초. 아니, 길어야 5초였던 그 적막 속에서, 그는 침착하게 다시 대사를 말했다. 실수가 있었다. 무대 뒤에서 배우들이 괜찮다고 말했다. 정말 괜찮았을까? 그는 확신을 할 수 없었다.
 커튼 콜을 하기 위해 다시 무대에 섰을 때, 그는 심장이 덜컥했다. 박수를 치는 관객의 눈빛이 마치 비난의 눈초리처럼 보였다.
 ‘네가 그 실수한 사람이구나.’
 그렇게 느껴졌다. 물론 관객은 그런 기색이 없었지만, 그는 달랐다. 자신의 실수가 이 무대를 망쳤다고 생각했다. 박수 소리가 그의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다. 웃음 띤 관객의 얼굴은 점차 일그러져 괴물의 모습이 되어 그를 바라보았다. 밝은 조명이 속을 울렁이게 했다. 막이 내리자마자 그는 무대에서 도망치듯 빠져 나와 화장실로 달렸다. 그리고 메스꺼운 속을 게워냈다.
 뒷정리가 끝나고 무대에서 텅 빈 객석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없는 쓸쓸한 공간이다. 하지만 아까처럼 그런 실수가 또 일어나서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본다면, 그렇게 되면 버틸 수 있을지 어떨지 자신이 없어졌다. 압박감과 자괴감이 그를 좀먹고 있었다.

 

 그 일이 일어난 뒤로 그는 점점 작아졌다. 예쁜 옷이 싫어지고, 관객 앞에 나서기가 두려웠다. 소규모 라이브 하우스에서 노래가 안 나오는 건 부지기수였다. 관객에게 사과하는 일이 많아졌다. 처음엔 괜찮다는 말을 하던 그들도, 그 빈도가 심해지자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 웅성거림이 커질수록 그의 정신은 점점 피폐해졌다. 관객의 응원이 귀는 야유로 받아들이고, 웃는 얼굴을 눈은 냉소로 보았다.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손이 떨리고, 호흡이 가빠졌다. 그리고 어지러움을 느끼며 눈 앞이 하얘졌다. 그 뒤로 그가 라이브를 하는 일은 점점 적어졌다.
 연극도 마찬가지였다. 대본 연습, 무대 연습을 꼬박꼬박 나가도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대사를 까먹는 건 기본이었다. 동선을 외우는 것도 힘들었다. 관계자들과 동료 배우들의 얼굴을 보는 게 부끄러웠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어 사람들의 얼굴을 보았을 때, 괴물이 눈 앞에 서있는 것을 보고 그는 마음이 부서졌다는 걸 깨달았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연극의 대사였다. 그의 대사였다. 아니, 그의 마음이었다. 그는 되뇌었다. 끊임없이 되뇌었다. 감독이 그를 말렸다. 되뇌던 대사는 어느새 울부짖음으로 바뀌었다. 괴물의 울음소리였다. 그 울음소리가 무대 전체를 채우고, 사람들은 그를 쳐다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스스로 괴물이 되었다.’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무대를 떠났다.
 남은 것은 침묵뿐이었다.

 

 그가 사무소를 안 간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사무소는 아마미 하루카가 오랜 피로 누적으로 한동안 쉰다는 입장을 밝혔다. 신문 기자들이나 방송 취재진들이 그의 집 앞을 서성였지만 별 소득 없이 돌아서는 일이 허다했다. 그 역시 밖에 나가는 일은 없었다. 하루 종일 방 안 침대에 누워있는 것밖에는 별 도리가 없었다. 걱정이 되어 방 문을 두드리는 부모님의 목소리에 괜찮다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가끔씩 일어서서 창 밖을 내다보려 용기를 내도 이내 포기하고 돌아서기도 했다. 거울을 들여다 보면 그 속의 자신이 밖의 자신을 비웃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약도 먹었지만 정신을 좀먹는 것보다 효과가 좋지 않았다. 언제까지고 이렇게 누워있을 수는 없었다. 그가 무엇을 해야 했을까? 무엇이 그를 낫게 할 수 있었을까?
 고심 끝에 그는 짤막한 글을 종이에 남기고 서랍에 넣었다.

 

 다음 날, 그는 흰색 원피스를 입었다. 그리고 흰색 리본을 이리 묶어보고, 저리 묶어보다가 결국 매지 않기로 했다. 방 밖을 나서서 신발장에서 흰색 구두를 신고, 현관문으로 걸어나가는 그를 보며 어머니가 말했다.
 “하루카! 어딜 나가는 거니?”
 “응! 친구랑 만나기로 했어!”
 씩씩하게 대답하는 그의 모습에 어머니는 안심하기도 했지만, 불안한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
 “이제 좀 괜찮니?”
 “응. 이제 괜찮아. 다 털어놨어.”
 그렇게 말한 그는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현관을 나섰다. 바깥은 아직 쌀쌀했다. 초봄은 아직 겨울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었다. 거리를 걷는 그의 얼굴엔 아까까지의 활기찬 표정이 없었다. 아니, 말 그대로 표정이 없었다. 터벅터벅 걸어간 곳은 기차역이었다. 표를 구입하고 탄 기차엔 탑승객이 전혀 없었다. 객실 안엔 오직 그 혼자뿐이었다. 긴 시간이 흐르고 도착한 곳은 바닷가가 있는 한적한 시골마을이었다. 그에겐 너무도 익숙한 곳이었다.
 몇 년 전, 더운 여름날에 사무소 식구들과 다 함께 왔던 그 바닷가. 날이 샐 때까지 웃으며 놀았던 그곳이었다. 옛 생각에 그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재미있었던 추억이었어.’
 다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이런 추억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적어도 쓸쓸하지는 않기 때문일 것이다.

 

 구두를 벗고 맨발로 모래사장을 말없이 걸었다. 사각거리는 모래의 느낌이 좋았다. 그 때도 이런 느낌이었다. 밀려드는 파도의 물거품이 발을 적셨다. 차가웠다. 아직은. 그렇게 한참을 거닐다가 바다에서 좀 떨어진 모래밭에 앉았다. 휴대전화를 꺼냈다. 어제까지 사무소 동료들에게 메일이 날아왔다. 걱정이 가득한 메일 내용을 묵묵히 한 글자씩 읽어 내려갔다.
 ‘돌아가도……..’
 돌아가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씁쓸했다. 읽지 않는 메일을 두고 휴대전화를 껐다. 수평선 너머를 바라봤다. 많은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즐거웠고, 힘들었고, 때로는 슬펐던 예전 추억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 대한 기억도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 자기가 하려는 행동에 망설임과 결의가 다투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듯한 그는 일어섰다.
 

 한 발, 한 발 모래사장을 걸었다. 사각거리는 소리는 찰박 하고 바뀌었다. 그는 떠올렸다. 자신이 데뷔했던 그 때를. 열정에, 기쁨에 타올랐던 그 때를.
 ‘처음 뵙겠습니다! 아마미 하루카입니다!’
 “안녕하세요. 아마미 하루카입니다.”
 찰박 소리가 첨벙 하고 바뀌었다.
 ‘오늘이 첫 데뷔 무대인데 정말 떨리네요! 그래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오늘이 마지막 은퇴 무대인데 떨림이 없습니다. 열심히 하는 건 바라지도 않지만요.”
 바닷물이 허벅지까지 차오르고,
 ‘조명이 너무 밝아서 눈부시네요! 그래도 여러분 한 명, 한 명 다 잘 보여요!’
 “조명도 없고, 구름 때문에 어둡네요. 이제 여러분 얼굴도 보이지 않지만요.”
 배까지 닿았을 때,
 ‘여러분! 저도 열심히 노래할 테니, 여러분도 저를 열심히 응원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아마미 하루카였습니다!’
 “여러분. 이제 노래할 기운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더 이상 응원하지 않아도 돼요. 감사했습니다.”
 그는 멈춰서 뒤를 돌아봤다.
 “지금까지 아마미 하루카였습니다.”
 성난 파도가 밀려왔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이 게시물은 님에 의해 2016-07-28 16:21:34 창작판에서 복사 됨] http://idolmaster.co.kr/bbs/board.php?bo_table=create&wr_id=7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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