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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28, 2016 16:54에 작성됨.

프로듀서는 기본적으로 타케P 라는 인상이 제게 있습니다. 

아이돌은 타치바나 아리스입니다. 여기선 16살입니다. 

그냥 떠오르는 대로 쓴 결과 상당히 중구난방입니다. 

제목은 고민하다가 듣고 있던 노래에서 땄습니다. 

그리고 늘 그렇듯 단편입니다. 길게 쓰는 건 무리입니다. 

읽어주신다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

 

어쩌겠어요, 뿌린 대로 거둔 것을. 

인생은 게임하고 달리 세이브와 로드가 없어서, 

항상 무언가를 선택하면 그 결과를 져야만 하죠. 

모든 일이 편하게만 돌아간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이미 한 걸음 내딛은 순간 시간은 흘러 있고, 

그 흘러간 시간은 손에서 떠나가 붙잡을 수 없는 건데. 

어려운 소리를 하자는 것이 아니에요. 

딱히 철학적인 무언가를 말하자는 것도 아니고. 

그저 단지, 처음에 말했던 대로── 

뿌린대로 거두는 거랍니다. 모든 것은. 

 

 

//

고양이가 우는 소리에, 한참을 뒤척이다 눈을 떴다. 

이 녀석을 기르기 시작한 지 얼마다 되었을까──아마 1년전일 것이다──

어느 샌가 아침 8시가 되면 정확히 귓가에서 우는 이 얼룩이가 

내 알람 시계를 대신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핸드폰이나 태블릿으로 알람을 맞추어 두는 건, 

나 나름의 뭐라고 할까, 성격을 드러내는 장치 같은 것이다. 

쓸데없이 진지하고 성실하고, 빈틈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 

자고 일어나서 흐트러진 머리칼을 손으로 대강이나마 어루만지고, 

깜빡여대는 낡아빠진 전등을 이번 주중으로 갈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침대에서 피로로 무거운 몸을 힘겹게나마 일으켜두었다. 

 

"연락, 와 있었네."

──뭐어, 당연할 것이다. 그 사람은 항상 진지하니까. 

부재중 전화가 몇 건, 그리고 메시지가 한 수십 개 정도. 

발신인 전부에 하나 하나 시선을 주지는 않았지만 대강 봐도 

여러 사람이 나를 향해 이런 저런 말들을 보내둔 걸 알 수 있었다. 

그 내용을 구태여 읽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 예상이 가기 때문이다. 

4년이 흘러서 그 옛날로부터 약간은 성장했다고 생각하지만, 

사람이라는 게 그리 쉽게 변하던가. 속은 거의 그대로와 같다. 

초등학생과 고등학생의 차이는 물론 겉으로 보면 큰 차이다. 

하지만 내 경우엔 이미 초등학교 고학년 시점에서 

'나' 라는 자아는 완성되어 있었다고 생각하기에── 

스스로는 아무래도 그렇게 판단하고 있다. 밖으로 보기엔 모르겠다만.

 

"……"

 

수면에서 깨어난 머리는 각성 약 5분 즈음에 이르러, 

잠들기 전의 기억─ 즉, 어제 있었던 일들을 플래시백한다. 

어떻게 잘도 잠들었구나 할 정도로 선명하게 되살아나는 일들에 

진절머리를 내는 대신, 세면대로 가서 얼굴을 세차게 씻었다. 

거울에 비친 몰골은 썩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꽃다운 여고생, 이란 말이 있지만 그건 지금의 내겐 맞지도 않다. 

아이돌로서도 아마 이 상태라면 실격일 것이다. 

다만 우스꽝스럽게도, 어제의 나──타치바나 아리스는 

아이돌로써의 자신을 거의 끊어내고 집에 돌아온 참이다. 

그걸 다시금 되짚어 보는 건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과, 

그 사람에 대한 미안함과, 여러가지를 떠안을 필요가 있다. 

다시 침대로 돌아와 이번엔 눕지 않고 거기에 걸터 앉는다. 

적당히 옷을 갈아입고, 뒹굴거리는 고양이에게 적당히 

한 번 눈치를 준 후에 스마트폰을 집어들었다. 

 

 

//

원래부터 약간 노안이었던 건지 아니면 그게 체질인지, 

4년 전에 처음으로 나를 맡게 되었을 때와 변함없는 얼굴인 그. 

전화를 걸어 그저 단 한 마디, '카페에서 기다리겠다' 를 

말했을 뿐인데 그는 그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고, '네' 라고 했다. 

아이돌이라면 평소에 하지 않을 정말 가벼운 차림으로 

카페테라스에 앉아 한참을 즐겨 먹었던 딸기 파르페를 시켜두고, 

그게 조금 흘러 녹을 때까지 태블릿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 이제는 슬슬 먹기는 해야겠구나 하고 생각한 순간에 

그는 검은색 택시에서 내려, 나를 발견하자마자 가게 안에 들어왔다. 

 

"빨리 오셨네요, 프로듀서 씨."

"타치바나 양."

 

표정이 한참 험악하지만, 그건 나를 향한 게 아니다. 

아마도 나를 말리지 못 한, 혹은 지키지 못한 그 자신에 대한 것. 

그걸 잘 알고 있기에 특별히 무언가를 말하진 않는다. 

나도 조금은 자랐을텐데도 아직 앉은 상태에서조차 

한참을 올려다봐야 하는 그와 시선을 맞추며, 나는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어제 일을 이야기 해야지. 

 

"그러니까, ──성격 문제예요. 제 성격."

"...스폰서와의 트러블은 큰 문제입니다."

"알아요. 알고서 한 거니까요."

 

약간 좀 건방지게 들렸으려나. 하지만 그래도, 

내가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태도다. 

파르페를 약간 숟가락으로 뒤적이며 그의 것도 주문해둘걸, 싶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럼, 그 자리에서 했어야 한다는 건가요?"

"...그것도, 아닙니다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접대다. 

나는 아이돌 활동을 위해 스폰서와 향후 계획을 논하는 

그런 자리를 가졌고, 물론 거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구태여 프로듀서를 부르지 않고 나만을 불렀을 때에, 

어느 정도 눈치를 챘으면 좋았으련만. 놀라울 정도로 

내 주변에는 좋은 어른들이 가득했었기 때문에, 잠깐 

그런 쪽의 생각이 마비되어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적당히 얘기가 끝나고,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16살의 타치바나 아리스는 앞으로도 아무런 일 없이 

아이돌을 계속해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거기서, 그 스폰서가 내게 손을 대지만 않았다면. 

 

"──."

 

프로듀서는 낮은 신음 소리를 흘렸다. 이미 뭐, 

치히로 씨 언저리를 통해서 대강 듣기는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입으로 듣는 것과 남으로부터 전달 받는 건,

그 임팩트부터가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일종의 접대를 요구하는 그 사람의 앞에서, 

머리의 피가 한 번에 차가워지는 듯한 느낌을 느꼈고, 

그 결과 내가 내린 단 하나의 판단은 조용히 순응하는 게 아닌─

있는 힘껏 그 사람의 얼굴에 손바닥을 날리는 것이었다. 

아아, 바보 같은 타치바나. 그걸로 내 아이돌 생명은 끝이 났다. 

 

"상식적으로 먼저 그렇게 하는 게 말이 안 되지 않나요?

저는 정당방위고, 먼저 잘못한 건 그 사람이에요. 

애초에 346 정도의 사무소면 그런 스폰서 따위 없어도──"

"...아뇨,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사람은, 궁지에 몰리면 말이 많아진다고 하던가. 딱, 내가 그 꼴이다. 

알고 있다. 뼈저릴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아이돌이고, 

그 사람은 스폰서다. 지원이 없으면 이 블랙 오션에서 살아남기란

하늘에서 별을 따오는 것 이상으로 무리나 다름 없는 것이다. 

그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텐데, 나는 그걸 단숨에 내던졌다. 

프로듀서의 말에 따르면 스폰서끼리도 커넥션이 있단다.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지원하는 아이돌 중에는 346의 다른 모두도 있는데, 

나로 인해서 그 지원이 끊어져 버리면 대단한 손해라는 이야기다. 

그럼 당연한 수순으로 346의 손해는 내게 청구될 것이고, 

그 피해를 아이돌 자리를 잃은 내가 쉬이 복구하긴 힘들 게 뻔하다. 

 

"...제가, 어떡하길 바라나요?"

"돌아갑시다. 가서, 머리를 숙입시다."

"자존심도, 저 자신도, 모두 내버리란 건가요?"

"그런 게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든 막겠습니다.

일단 사과를 하자는 얘깁니다. ...타치바나 양."

"...그게 됐으면, 할 수 있었으면, 

처음부터 그렇게 했어야죠. ...처음부터..."

 

이 말을 이 사람에게 부딪히는 건, 잘못됐다. 

알고 있으면서도 말하지 않고선 있을 수 없었다. 

잘못한 건 하나도 없는데 혼이 나는 기분일까. 

울음이 섞여 나오려는 걸 억지로 눌러넣었다. 

이 정도 감정의 컨트롤은 익숙해진 지 오래다. 

그렇지 않으면 이 업계에서 해나갈 수 없으니까. 

어떻게든 날 설득하고, 100%는 아니더라도 

80% 까지는 나를 본래 있던 자리로 되돌리려고 

눈 앞의 그는 열심히 준비해 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쓸데없는 고집, 그리고 어린애의 치기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스스로가 더 이상 돌아갈 수 없을 거라 이미 단정지었다. 

 

"...그 동안 말이죠, 열심히 해 왔어요. 

저는 어린애로 보이고 싶지 않았으니까."

"알고 있습니다."

"아리스가 아니라, 타치바나. 

그렇게 불러달라고 했던 것도, 

동화 주인공 같은, 어린애스러운 이름이 싫어서였고요."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제가 여기서 끝나야 하죠? 

나는 아직 한참 더 할 수 있는데, 그럴 수 있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기게 만들어서 내가 끝나야 하는지. 

이해도 할 수 없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그 자리에 나가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아니, 아예 처음부터 이 길에 들어서지 않았었다면.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프로듀서 씨. 

...아이돌 타치바나 아리스는 이걸로 끝이에요."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아뇨, 여기서 제가 사과하고, 

머리를 숙이고 다시 돌아가더라도 또 

같은 일을 반복하게 될 것 같으니까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크게 숙였다. 

사실은 계속할 수 있다면, 좋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더 마음이 약해지기 전에 끝내야 할 것 같았다.

설령 나중에 후회하게 되더라도, 지금 이 자리에선 

스스로 뱉은 말을 주워담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지난 4년간 프로듀스해 준 그에게 더 이상 

이런 얼굴을 보이고 싶지도 않았으니까. 

태블릿을 챙기고, 가방을 챙기고, 그릇을 밀어두고. 

계산은 그가 오기 전에 이미 마쳐둔 상태다. 

 

빠른 걸음으로 내가 사라지는 걸 보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가 나를 아리스라 불렀지만, 

나는 뒤를 돌아볼 마음 따위는 들지 않았다. 

 

 

//

"아리스 쨩, 여기 틀렸어."

"아, 감사합니다."

 

아이돌은 그만두었지만, 음악 관련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기 때문에, 

프로듀서와 카페에서 만났던 그 날로부터 반 년─ 

나는 시내 한 구석에 자리한 학원에서 작곡/작사를 

공부하며 마찬가지로 학업과 병행하고 있었다. 

 

아이돌 생활을 할 때하고는 달리, 

시간적인 면에서 조금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된 건 

크게 와 닿는 장점 중의 하나였다. 뭐라고 할까, 

스스로가 조금 더 안정이 되는 느낌이라고 할지. 

얼마 안 있으면 대학에 갈 준비도 해야 하고, 

그동안 소홀했었던 것들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자 

그건 그 나름대로 충실한 삶으로 바뀌어주었다. 

아이돌 타치바나 아리스는 더 이상 없지만, 

그냥 어디에나 있을 법한 여학생 A 가 된 것이다. 

 

프로듀서와는 그 이후로도 연락하고 있지 않다. 

아이돌 동료였던 사람들과는 지금도 종종, 

가끔 만나서 이야기를 하거나 놀고는 하지만 

프로듀서만큼은 결코, 마주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가 나를 피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확실히 그를 피하고 있었다. 행여나 

다른 이들에게서 그의 이야기가 나올라고 하면 

곧장 이야기 주제를 다른 곳으로 돌려버렸기도 했고. 

 

시곗바늘이 때마침 2시를 가리키자, 나도 쉬기로 했다. 

꽤 큰 돈을 들이며 다니는 학원임에도 불구하고 

수업 시간이 그렇게 긴 게 아니라는 건 나름 불만이다. 

애초에 이런 부류가 다 그렇지 않냐고 하긴 하지만. 

계속 펜을 쥐고 오선지를 바라보고 있었던 탓에 

땀으로 가득 찬 손을 수건으로 몇 번 닦고 나서야, 

나는 가방 속에 있던 태블릿을 꺼내들 수가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내 애용품인 이것도 이제, 

슬슬 은퇴해야 할 시기일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돌아가는 길에, CD라도 사 볼까..."

 

후미카 씨의 신곡이 나왔다고 했던가, 기억은 확실하지 않다. 

만약에 그게 아니더라도 346의 다른 아이돌들 CD가 있다면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의 여유가 되는 한 사가지고 가고 싶다. 

이미 시간이 꽤 흘렀기 때문에 아이돌일 때 내 이름으로 나온

CD가 눈에 띄는 코너에 진열되어 있는 일은 없겠지만, 

그 쪽에 대해서는 그렇게 기대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지도를 열어 근처 CD샵의 위치를 확인하고서야, 

나는 등을 벽에 기대고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

 

해가 질 때 즈음이 되어서야, CD 샵에 도착했다. 

태블릿이 알려준 지도에는 분명히 적혀 있었는데도, 

그 사이에 바뀌었는지 한참 다른 곳에 위치해 있어서 

찾는 것에 조금 고생했다는 건 비밀 아닌 비밀이다. 

누가 신경 써 주는 것도 아닌데, 머리 뒤의 리본을 

두어 번 만지작 거리고서야 나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피부에 닿아, 여태까지

길을 방황하느라 흘린 땀을 식혀주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면 물론 샤워는 하겠지만, 지금 당장은

이것에 감사하고 싶다. 가볍게 감사인사를 했다. 

자, 그럼 346의 CD는 어디에 비치되어 있을까. 

아직도 TV를 틀면 심심치 않게 나오는 이름이니 

분명 가게 한 켠의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겠지. 

당장 떠오르는 이름만 해도 몇 명은 된다.

사기사와 후미카, 시마무라 우즈키, 타카모리 아이코. 

 

"...346의 CD는, 저쪽입니다."

"아, 감사합니... 다?"

 

──익숙한 목소리. 처음엔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놀란 표정을 감출 생각도 못하고 뒤를 돌아보았을 때,

보인 것이 내가 알고 있던 그 얼굴이었던 걸 깨닫고서야 

내가 여태까지 피하고 있었던, 그 사람이 맞단 걸 인정했다. 

그 때와 하나도 다르지 않은 검은색 정장을 입고, 

한 손에는 가방과 나머지 한 손에는 이 가게의 봉투. 

반 년 사이에 그 표정은 왠지 모르게 더 험악해진 듯한 

그 남자는 내 등뒤에, 거목이라도 된 듯 서 있었던 것이다. 

 

"...오랜만입니다."

"오랜만, 이네요."

 

서로 그렇게 어색한 인사를 나눈 것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둘 다 대화하는 것에 그렇게 특출난 편은 아니기 때문에, 

현역 아이돌로 일할 시절에도 그렇게 많은 대화는 하질 않았다. 

이제와서 잡담을 나누라고 해도 무리인 게 사실이다. 

게다가 지금 이 장소는 CD샵, 하물며 카페도 아니다. 

침묵을 잠깐동안 흘려 넘길 수 있는 커피도 없거니와

(14살 이후부터 마실 수 있게 됐다) 파르페도 없다. 

 

"일이 끝나신 건가요?"

"아뇨, ...뭐라고 해야 할까, 

일을 만들고 있는 중입니다."

 

만들고 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일까. 

이해가 안 가는 소리였지만, 그가 헛소리를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상하다고 하거나 대놓고 핀잔을 주지는 않았다. 

우연히 만난 이상은 이 자리만 지나고 나면 

어차피 다시는 거의 마주치지 못할 사람이다. 

지금 사이에 전화번호라도 알아둘까 싶었지만, 

...새삼스럽게 그럴 필요도 없을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

 

아니나 다를까, 왔다. 이 침묵이라는 녀석이. 

서로가 그저 어색해질 뿐인 시간이. 

함께 일을 했었던 그 때에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오래간만에 다시 겪자니 그야 면역이 사라져 있다. 

당초 목적인 346의 CD는 저 멀리에 있어서, 

멋대로 그의 시선 앞을 벗어나는 것도 바라기 힘들었다. 

어떻게든 이 상황은 타개해야지 싶어 말하려는 순간, 

 

"저도, 비슷한 일을 했습니다."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낮고 중후한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본래 이런 곳에서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하고 

시작을 끊고서 그는 담담히, 그리고 무게를 실어 말했다. 

내가 아이돌을 그만둔 이후로, 그는 계속해 프로듀서를 했던 것. 

새로운 아이가 들어오고 나가고, 반복하던 사이에 몇 번인가 

나와 비슷한 일을 겪었던 아이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때마다 프로듀서는 나를 떠올렸다는 것. 

끝내는 그 스스로가 그 일들에 반발해, 스폰서에게 화를 냈다는 것. 

처음부터 왜 그렇게 하지 못했는지에 대해 자책해 왔다는 것.

 

"...그리고 저는, 당신에게 이 말을 해야 했습니다."

"...아뇨, 제가 먼저 해야 했었어요."

 

──죄송합니다, 하고. 

나도 그도 꺼내지 못했던 말을, 이제서야 했다. 

이제와서 해 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을지 모르지만, 

아마도 이건 그 자신에 대한 위로이기도 하고

이미 아이돌이 아닌 내게 보내는 작별인사 같은 것이다. 

그의 표정이 조금, 풀어지는 것이 보였다. 

웃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던 듯 

그래도 아까보다는 어두운 안개 같은 게 걷힌 것 같았다. 

 

"...고마워요, 앞으로 다시 볼 일이 있을진 몰라도.. 

다시 만난다면 그 때는 제가 먼저 인사할게요."

 

나는 있는 힘껏 웃는 얼굴을 만들어 보였다. 

그에게는 어떻게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난 

내가 할 수 있는 한도의 최대로 그에게 웃어보였다. 

CD는 다음에 와서 사도 된다. 그도 나도 더 이상, 

서로의 길에서 교차하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그는 프로듀서로 계속 나아갈 것이고, 

나는 그저── 타치바나 아리스란 이름의 일반인. 

이 음악 쪽 일을 하다보면 언젠가 그와 내가 

다시 만나는 날이 올 지도 모르지만, 그건 그 때 일이다. 

 

"...저, 이걸."

"뭔가요, 아직 할 얘기가─"

 

집에서 고양이가 밥 달라고 울고 있지 않으려나, 

같은 생각을 하며 그의 앞을 지나쳐 가려는 순간 

그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게 내밀고 있었다. 

뭐, 이번에 새로 나온 아이돌의 선전 CD라도 되려나. 

변함없이 성실하기 짝이없는 프로듀서라고 생각하며, 

그 정도는 기꺼이 들어주고 맘에 들면 사 줄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시 한 번 그를 향해 몸을 돌렸더니. 

 

"─아이돌에, 관심 없으십니까."

 

그는 내게, 다시 한 번 그 명함을 내밀고 있었다. 

4년 전, 12살이었을 때 처음 겪었던 그 날 그 때와 같이, 

명함을 내게 내밀며 아이돌이 되기를 권유한다. 

나는 무심코 입을 열어 물어보았다. 

 

"저의 뭘 보고요?"

 

그럼 그의 대답은 뻔하겠지.

 

"미소입니다."

 

내 키가 커졌다고 해도 여전히 큰 그는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고, 두 손을 모아 쥐고 

명함을 내민 자세 그대로 나를 향해 굳어 있다. 

나는 그걸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진지하고 또 진지한 그 눈빛은 전혀, 

날 놀리고 있는 것도 아닐 뿐더러 

내가 아이돌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접지 못했단 걸

꿰뚫고 있는 것만 같은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그런 트러블을 일으켰는데도요?"

"관계없습니다. 제가 어떻게든 합니다."

"또 그런 일이 벌어지면요?"

"그렇게 두지 않습니다. 결코요."

"믿어도 되나요?"

"믿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믿어주십시오, 라고 까지는 말하지 않는다. 

그는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내가 여기서

완곡하게, 또 그리고 단호하게 거절을 하면 

앞으로 다시는 이 얘기를 꺼내오지 않을테지. 

 

따지고 보면 그의 잘못은 하나도 없고, 

그저 내가 뿌린 씨앗이 돌아왔을 뿐인데─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군요."

"……"

"뿌린대로 거둔다는 건, 제게 해야 할 말입니다. 

타치바나 양은 아이돌로서 제가 씨앗을 뿌린 것입니다. 

저는 아직 그 결실을 거두지 못했지 않습니까. 

...도중에 당신을 한 번 놓친 손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십시오."

 

──그가 다시 한 번 크게 고개를 숙일 때에 결국, 

나는 나도 억누를 수 없는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사람들도 있는 CD샵에서, 다 큰 16살이 무슨 꼴불견이람. 

스스로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손수건을 꺼내들었고, 그걸 받아들었지만 

닦아도 닦아도 한참을 계속해서 울 수밖에 없었다. 

타치바나는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지, 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듣고 살아왔던만큼 

내 실수로 떨어져버린 것에 대해서 만큼은 

남에게 의지하지 않으리라, 스스로 이겨내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자기가 한 행동의 결과로 큰일이 나 보니, 

아. 그래도 나는 아직 어린애였구나─. 할 뿐이었던 것이다. 

 

"...저, 다시 아이돌을 해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그는 힘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다시 이 사람과 함께 걸어갈 수 있는 건가. 

눈물로 흐려진 눈가를 손수건으로 닦고

4년 전과 달리 그의 가슴팍까지는 커진 나와 

그 때와 변함없이 아직도 거대한 그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어보였다. 

 

//

 

다시는 설 일이 없을 줄 알았던 

그 건물 앞에 우리는 다시 서 있다. 

 

──타치바나 아리스는 다시 아이돌, 

그는 다시 그녀의 프로듀서란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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