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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자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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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3-27, 2016 01:48에 작성됨.

 

스스로 글 쓰는 실력은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갑자기 생각이 나서 써 보았습니다. 

깊은 생각을 가지고 쓴 것도 아니고, 

여러 번의 퇴고를 거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곳 저곳이 이상할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가볍게 읽어주시길.

 

//

 

진정되지 않는 마음에, 손을 쥐락펴락. 

대기실에 앉는 것은 또 얼마만이람. 

다리는 허공을 휘젓고, 심호흡은 아까부터 몇 번을 하는지. 

면접이라도 보러 온 후보생이라도 된 듯, 아까부터 전혀

진정된 기색을 보일 수가 없었다.  

아이돌이 된 지 이제 몇 년이 지났을까. 

딱히 선배가 되었다는 기분을 느끼고 싶진 않아서,

어느 새부턴가 스스로가 몇 년차이니 뭐니 하는 건 

손가락으로라도 세지 않고 있었다. 이제 막 데뷔하는 

신인들의 파릇파릇함이 부러워서가 아니라. 

 

앞으로 나아 온 만큼, 뒤에 버리고 온 것들이 있었다. 

뒤에 버리고 온 만큼, 얻으며 나아간 것들도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어 갈팡질팡 했던 때도 있었다. 

내가 하는 만큼 또 남들도 앞으로 가고 있었고, 

나는 그들을 제치거나 또 뒤쳐지거나 하면서 나아갔다.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길에, 그저 스스로만을 의지해서. 

 

뒤에 남겨진 것은 이미 지나가버린 시절과 

처음 무대에 올랐을 때의 긴장감과, 풋풋했던 자신과, 

영원히 변할 것 같지 않았던 거리의 풍경들과, 

모두 언젠가는 성공할 수 있을 거라며 서로 격려하던 동료들의 모습들,

그리고 이 업계에 발을 들이밀면서 처음 되고자 했던 목표. 

지금에 와선 잘도 그런 무모한 생각을 했구나, 하더라도 

그 때에는 오로지 그렇게 되기만을 바랐다. 

주제 넘다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꿈만은 크게 가지고 싶었다. 

중간에 만족하고 끝내고 싶지 않았으니까.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다. 무얼 틀렸다는 게 아니다. 

확실한 약속이 필요했던 것도ㅡ 무언가 보상이 필요했던 것도. 

그저 가고자 하고 싶은 곳에 가고 싶었고, 이게 진짜로 

내가 가야만 할 길이라고 굳게 믿고 여기까지 왔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에 현혹될 필요는 없었다. 

불확실한 길이라느니, 이제 슬슬 다른 길을 생각해보라느니,

나를 부정하는 말을 도리어 부정하며 걸어왔다. 

 

일이 없어서 한가했던 때도 있었다. 

하루 걸러 일이 있다면 성공일 정도로, 

팔리지 않는 아이돌이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 날은 레슨에 레슨을 반복할 뿐, 

그리고 열심히 뛰어다니며 자기를 어필할 뿐, 

언젠가는 내게도 빛이 들 날이 오겠지, 

언젠가는 나도 톱 아이돌이 될 날이 오겠지, 

그저 막연히 생각하던 나날도 있었다. 

 

바빠서 쉬는 날이 없었던 적도 있었다. 

어느덧 햇수가 쌓이고, 그래도 나름의 

성과를 이루었다고 생각 되었을 때였다. 

하루도 쉬지 않는 강행군을 반복한 결과, 

수입은 늘고 또 팬도 상당수가 늘었지만 

몸과 마음은 지치고 닳아 나가떨어져, 

그게 결국 슬럼프로 이어져 버린 때가 있었다. 

 

나를 격려해 준 사람들이 있었다. 

무너지고 쓰러질 것 같은 때에도 옆에 있으면서 

조각날 것 같은 마음에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것에 보답하고자 힘내고, 노력하고, 도전하고ㅡ 

다시 넘어지고, 실패하고, 슬퍼하고...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를 믿어준 사람들이 있었다. 

찾아온 슬럼프와 후유증으로 재기하지 못할 때도, 

아직 이대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한없이 믿어줬다.

연예계의 법칙만큼은 비껴가지 못하고,

쓸데없는 가십잡지에 휘말려버려  

마냥 좋은 소문만 나는 게 아니었던 때에도, 

내 결백을 믿어주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들을 무의미하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해 

하늘을 보아 부끄럼 없이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나를 시기한 사람들도 있었다. 

스스로 말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나름 아이돌로서 

그래도 성공을 구가했다고 생각한다. 선망하는 사람이

있다면 싫어하는 사람도 그야 생겨나는 법일 테지. 

내가 딱히 그 사람에게 무언가를 한 것도 아닌데도 

어느새 눈치채보면 여러 사람들이 내게 질투를 품었다. 

그러나 그것도 지금 돌이켜보면 하나의 추억이고, 

그들 또한 지금은 어디에선가 나를 바라보고 있겠지. 

 

먼 과거의 기억들은 불현듯 찾아온다. 

지금이라도 눈을 감으면 여태까지의 일들이 

전부 꿈이었고, 아직도 병아리 티를 벗지 못한 자신이 

그리고 달려나가기 시작한 동료들이 옆에 있을 것만 같다. 

다시 말하겠지, 언젠가 다 같이 성공해 보이자고. 

기세 좋게 하이파이브라도 하고, 시원하게 웃고 또 

그 날 해야 할 일로 향했던 그 때의 모습들이 떠오른다. 

 

팬이 생겼다. 잃어도 보았다. 

실패도 했다. 그리고 성공도 했다. 

사랑도 받았고 또 미움도 받았다. 

방송의 사회도, 게스트도 해 봤다. 

연기도 했고 거짓말도 해 보았다. 

처음으로 스스로가 성공한 아이돌이란 걸 

깨달을 정도의 돈을 만질 수 있었을 때, 

생각지 않은 사치 또한 부려 보았다. 

 

뒤에 버리고 온 것들은 후회하지 않는다. 

후회를 하기에는 오히려 너무 멀리 와 버렸다. 

이제와서 후회하기에는 꼴사나울 뿐더러, 

누가 그걸 위로해 주는 것도 아니다. 

여태까지 얻어온 것들만을 안고 앞으로. 

바쁘게 달려온 몇 년간의 여정이 끝이 난다. 

마지막 불꽃을 사르는 촛불이라도 된 것처럼, 

이 날을 위해 스스로의 기억을 더듬어 

처음의 자신을 떠올리기 위해 애썼다. 

 

마이크를 쥐는 손은 처음에도 떨렸었지. 

가사는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던가? 

안무를 헷갈릴까봐 얼마나 리허설을 반복했는지. 

수많은 관객들의 모습들은 지금도 전율하게 돼. 

환호성은 아직도 익숙해지지가 않아. 

스텝 한 걸음 한 걸음에 심장 소리가 겹치고 있어. 

머리 위에는 빛나는 스포트라이트, 

발 아래에는 빛나는 스테이지. 

눈 앞에 펼쳐진 사이리움은 전부 다 나를 찾아온 팬들의 ㅡ 

그리고 여태까지 내가 걸어온 길의 증거. 

무의미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 

 

이제는 조금 작아진 첫 번째 라이브의 의상을,

어떻게든 무리해서 다시 입을 수 있게 만들었다. 

헤어스타일도 메이크업도 아마 그 때와 비슷하게.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조금 더 짙어졌단 것일까. 

나이라는 것은 그래도 먹는 법이니까. 

깊은 감회에 휩싸이는 것을 스스로도 알 수 있었다. 

알고 있기 때문에야말로 아직 제대로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눈가에 눈물이 맺힐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있었다.

울까 보냐, 울지 않을 테야, 그래도 역시 울고 싶어. 

이게 끝나면 그 때 울자. 그렇게 결심했다. 

 

마지막으로 한 발자국을 내딛기 전에, 무대 뒷편을 보았다. 

무대 뒷편은 항상 어두운 공간으로 되어있어서 

이쪽에서는 오히려 아무 것도 보일 리가 없는데, 

그곳에는 무대 위에 오르는 게 무서워, 심호흡하고 있는 

그 당시의 자신의 모습이 스탠바이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괜찮아, 할 수 있어, 힘 내! 하며 

다독이고 있는 프로젝트 동료들의 모습이 있었다. 

이윽고 그 옛날 자신의 모습은 지금 내가 있는 위치로 걸어와ㅡ 

그 라이브는 그리고 그 다음, 어떻게 되었더라. 

그 다음의 기억은 일부러 떠올리지 않기로 했다. 

지금부터 하려는 건 처음 했던 그 라이브에 대한 트리뷰트. 

앞으로 두 번 다시 없을, 마지막 나의 이야기. 

 

"...여러분, 이런 화창한 봄날에 여기까지 모여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그것도 만석, 정말로 기뻐요. 

제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건 다 여러분 덕이에요.."

아, 역시 목소리에 조금 울음이 섞여 있을지도. 

고개를 숙인 채 내가 잠깐 말꼬리를 흐리자 

일부러 여기까지 와 주신 분들 사이에 웅성거림이 들렸다. 

조금만 더ㅡ 용기를 내자. 그 때의 나에게 있었던 

실낱같은 용기보다 아주 조금만, 아주 약간만 더. 

모두가 내게 가르쳐준 마법을 나 스스로에게 걸고, 

목소리를 좀 더 크고 힘차게 하고. 

지금의 저는 분명, 빛나고 있나요? 

 

"지금부터 부르려는 건, 제 첫 번째 싱글 ㅡ "

 

마이크를 입에, 시선을 앞으로. 

눈에는 빛을, 팔에는 힘을. 

그리고 얼굴에는 ㅡ 

한가득한 미소를. 

 

"...S(mile)ING! ,

부디 들어주세요!"

 

ㅡ 아이돌 시마무라 우즈키, 은퇴 라이브에서. 

 

 

//

 

 

 

[이 게시물은 재이맨님에 의해 2016-03-29 21:45:14 창작판에서 복사 됨] http://idolmaster.co.kr/bbs/board.php?bo_table=create&wr_id=56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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