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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걸즈 단편집 001. 코시미즈 사치코 "가인박명"

댓글: 2 / 조회: 828 / 추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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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19, 2015 00:45에 작성됨.

이 단편집 시리즈는 옴니버스 식의 단편집입니다. 단편끼리 서로 이어진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데레마스 SS 스탠다드라고 할 수 있는, 모든 아이돌들이 한 사무소에 있고 P는 한 명뿐이라는 설정을 따릅니다.

'될 수 있으면' 1일 1아이돌 1편을 목표로 합니다. 이 사항은 언제든 바뀔 수 있습니다.

아이돌 순서는 큐쿨패큐쿨패 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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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 큰일이에요!”

 

오랜만에 사무실 책상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오후, 사치코가 평소의 자신만만한 그것이 아닌 그녀답지 않은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달려왔다.

 

“왜, 코우메가 무서운 영화라도 보자고 했어?”

“아니에요.”

“아님 쇼코가 또 버섯에 취해서 날뛰고 있어?”

“그것도 아니에요!”

“아님 유키가 또 사무실에서 야구 배트를 휘둘러?”

“틀려요!”

“아하, 사에한테 골탕 먹었구나.”

“아니라니까요!”

 

그제야 내 시선은 모니터를 떠나 사치코에게 향한다. 연례행사와도 같았던 이 네 가지가 아니라면 정말 무슨 일인지 궁금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시간대에 사치코가 나를 찾아와서 하는 일이라고는 저 네 가지 사항에 대한 불평불만을 토해내는 것 아니면 ‘일하느라 힘드실 텐데 제가 커피라도 타다드릴까요? 이 귀여운 제가 직접 타오는 커피를 마시다니 프로듀서 씨도 참 행복한 사람이시네요!’가 거의 90퍼센트의 확률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좋아, 무슨 이야기인지 들어볼까.”

“보세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치코는 내게 웬 책을 하나 펼쳐들었다. 

 

“뭐야, 이 보기만 해도 불면증이 완치될 것 같은 두꺼운 책은.”

“후미카 씨에게 빌렸습니다. 재미있게 읽고 계시기에 무슨 책인가 해서… 핫,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여길 보세요!”

 

사치코가 가리킨 곳을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읽었다. 

 

“북송 후기의 문인 소식이 지은 책 ‘적벽부’에 등장하는 ‘박명가인’은 어린 승려를 보고 그의 아름다운 모습과 우수에 젖은 듯한 표정을 보고 노래한 시이다. ‘예로부터 아름다운 이 그 운명 기구했으니, 닫힌 문 밖 봄은 다하고 버들꽃 떨어지누나.’ …이게 뭐 어쨌다고?” 

“바로 이거예요!”

“그러니까 뭐가?”

“저는 앞으로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거예요!”

 

이건 또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란 말인가. 겨우 이런 헛소리 하려고 내 업무를 방해한 건가.

 

“전혀 이해가 안 되시는 얼굴이네요.”

“후미카를 데려와도 이해 못 할 거다.”

“정말, 프로듀서는 어쩔 수가 없는 사람이네요. 잘 들으세요. 가인박명, 아름다운 사람은 명이 짧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저 역시 수명이 짧을 거라는 이야기에요!”

 

…….

 

“아, 잘 쉬었다. 일하자.”

“자, 잠깐만요! 프로듀서 씨는 제 수명이 짧다는데 걱정도 안 되세요?”

“말이 되는 소리를 좀 해야 걱정 비슷한 거라도 하지.”

“저는 충분히 걱정되는데요!”

“옛날 얘기를 곧이곧대로 믿냐? 네 말대로라면 우리 사무소는 남자인 나랑 사장님 빼고 다 전멸이야, 전멸! 게다가 알다시피 우리 사무소에는 30대인 레이코 씨나 시노 씨도 있다고. 정말로 가인박명이었으면 우린 지금 그 두 사람의 백골을 프로듀스 하고 있었을 거다! 그리고 나나…”

“부르셨나요?”

“……씨…는….”

 

갑자기 등장한 나나 씨의 시선을 마주할 용기 따윈 내게 없었다.

그리고 그건 사치코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무슨 이야길 그렇게 재미있게 하세요? 두 사람 목소리가 급탕실까지 들렸어요.”

“그게… 그러니까….”

“그리고 방금 제 이름도 나온 것 같은데요?”

“…가인박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가인박명이요? 아, 그거 미인은 오래 못 산다는 이야기죠?”

 

나나 씨는 거기까지 말한 후에 왜 두 사람의 대화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왔는지 깨달아버린 것 같았다. 역시 연륜의 힘은 대단하다.

잠시 어색한 침묵의 시간이 흐른 후, 나나 씨는 목소리를 떨면서 말했다.

 

“시, 시, 싫다아~ 나나는 17세 여고생이라고요? 아직 죽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해요.”

“…딱히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

“정확히 하자면 나나 씨는 미인이지만 저 나이까지 아직 살아있다, 라고 말하려던 참이었습니다.”

“프, 프로듀서도 참, 미인이라니…. 가 아니라! 저 나이라니 어떤 나이인가욧! 나나는 17살이라고욧!!”

 

‘미인’이라는 두 글자에 뒷이야기의 임팩트는 뒤늦게 찾아온 모양이다.

 

“17살.”

“네?”

“사치코는 아직 14살. 3살 차이면 ‘저 나이’라고 표현해도 그다지 무리는 없습니다만. 무언가 잘못된 거라도?”

“아, 아니, 그, 그러니까, 그게….”

 

나나 씨는 경기 시작과 동시에 안면에 스트레이트를 정타로 맞은 복서마냥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솔직히 이러면 안 되는 건 알지만, 나나 씨를 놀리는 것은 중독성이 있다. 이건 나뿐만 아니라 몇몇 동료 아이돌(슈코라던가, 미오라던가)에게 꽤나 인기를 끌고 있는 나름대로의 오락거리이다. 그걸 알면서도 일일이 받아주는 나나 씨는 정말 사무소의 생불이라고 생각한다.

 

“잘 봤냐, 사치코. 이게 바로 궤변의 기본이다.”

“…정말 못되셨네요. 프로듀서 씨는.”

 

나나 씨가 돌아간 후, 손가락으로 브이를 날리는 나에게 사치코의 일침이 떨어졌다. 다른 녀석 같았으면 내가 나나 씨를 궁지로 몰아넣는 동안 옆에서 거들거나 했을 텐데, 이런 곳에서 나서지 않는 게 또 사치코의 착한 점이다.

 

“어흠,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죠.”

“설마 계속 하는 거냐, 그 얘기.”

“당연하죠! 이건 전 세계적으로 치명적인 손실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우리 무슨 얘기 하고 있었더라.”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저의 수명이 짧을 거라는 이야기였죠.”

 

그게 어떻게 하면 전 세계적인 손실이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거랑은 별개로 오늘의 사치코는 뭔가 이상하다. 평상시엔 아무리 귀여워요, 귀여워요, 해도 저 정도로 나사 빠진 이야기는 하지 않는데 말이다.

 

“생각해보면, 가인박명이라는 말은 ‘아름다운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이잖아.”

“그렇죠.”

“사치코는 귀엽잖아.”

“물론이죠!”

“그러면 사치코 너랑은 별로 상관없는 이야기 아닌가?”

“왜 상관이 없죠? 제가 이렇게 귀여운데!”

 

일종의 동문서답 같다는 생각해 불현 듯 들었다. 내가 이때까지 알기로는 아름다움과 귀여움은 분명 다른 맥락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치코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귀여움’의 개념을 알고 싶어졌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항상 입만 열면 ‘저는 귀여우니까요!’라고 말하고 다니는 녀석인데다 그것을 별의별 상황에서 어필하는 녀석이니까. ‘저는 귀여우니까 이 정도는 금방 해낼 수 있어요!’, ‘저는 귀여우니까 괜찮아요!’, ‘저는 귀여우니까 양보해 드릴게요!’ 

대체 사치코에게 있어서 ‘귀여움’의 개념이란 무엇일까. 분명 사전적 의미만은 아닐 것이다.

 

“…듣고 있나요, 프로듀서 씨?”

“아? 응, 그래. 치에리가 다스베이더한테 광선춉을 날리는 부분까지 이야기했지.”

“무슨 소린가요, 그건…. 치에리 씨가 들으면 놀랄 거라고요.”

 

이런 얼토당토않은 농담에서까지 세세하게 남을 생각해주는 점이 사치코의 매력이다.

 

“어쨌든, 귀여운 저를 위해서 어떻게 좀 해보세요, 프로듀서 씨.”

“설령 정말로 네 수명이 짧다고 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잖아. 난 의학 관련 종사자도 아니라고. 정 불안하면 시키나 아키하에게 물어봐, 그 둘도 의학전공은 아니지만.”

“아니요, 프로듀서 씨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예요.”

 

헛소리에 동문서답에 억지까지. 이제 내가 오늘의 사치코는 꼭 평소의 누구를 연상케한다는 걸 깨달았다.

 

“사치코.”

“네, 프로듀서 씨.”

“오늘의 너는 꼭 프레데리카 같아.”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를 프레데리카 씨에 비교하다니 크나큰 실례예요!”

“오호, 말했겠다. 어이, 프레데리카!”

“흥흐흥?”

 

책상 앞의 소파에서 새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답이 괴상한 걸 보니 또 ‘흥흥흐흥 프레데리카~’니 뭐니 하는 걸 중얼거렸던 모양이다. 

곧 소파 위로 불쑥 금발녹안의 머리가 튀어나온 것을 본 사치코의 표정은 사색이 되었다. 그 표정은 ‘설마 있었어?’라는 말을 대신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프로듀서? 아, 사치코 봉쥬르~!”

“아, 안녕하세요, 프레데리카 씨. 언제부터 있었나요?”

“나? 오늘은 일도 없고, 레슨도 늦게 있고 해서 아까부터 계속 있었지~!”

“아까부터… 계속?”

 

사치코의 얼굴은 아예 흙빛이 되었다.

 

“왜애? 무슨 일이라도?”

“나랑 사치코랑 방금 전까지 하던 얘기 들었어?”

“자, 잠깐만요!”

“아니? 나 아까까지 귀에 이어폰 꼽혀 있었어.”

 

지옥 밑바닥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동아줄을 발견한 것 같은 사치코의 표정에 괜히 심술이 생기기 시작했다.

 

“무슨 얘기 하고 있었는지 가르쳐 줄까?”

“프로듀서 씨?”

“응! 궁금해! 무슨 얘기 하고 있었어? 설마 이 프레데리카 이야기?”

“정답이야, 사치코가 있지. 자기랑 너를 비교하는 게 실풉!”

 

사치코의 작은 손이 번쩍하고 튀어나와 내 입을 틀어막았다. 나름대로 필사적이었는지 입을 틀어막은 손의 힘은 꽤 강했다.

 

“프, 프레데리카 씨! 그, 그러니까요! 실….”

“실?”

“시, 실….”

“시일?”

“시, 실부플레!”

“와오~! 실부플레!” 프랑스어 잘 하네, 사치코는. 프레데리카보다 더 잘 할지도!”

 

그 짧은 시간에 생각해낸 것 치고는 합격점을 줄만하군.  

내가 입이 막힌 채로 실소를 머금는 동안, 프레데리카는 평소의 텐션으로 사치코에게 ‘봉쥬르~ 쥬뗌므~ 마카롱바바로아~’ 따위를 시키더니 곧 ‘나중에 또 하자~!’ 라며 돌아가 버렸다. 

내 입이 자유를 되찾은 건 그 직후였다.

 

“푸하…. 그럼 프레데리카랑 같이 프랑스어 공부 열심히 하도록.”

“그게 아니잖아요!”

“…그럼 뭔데?”

“저를 도와주시기로 하셨죠?”

 

이 녀석 머릿속엔 이미 ‘내가 앞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치코를 위해 뭐든지 해준다.’라는 것이 기정사실화 되어있는 모양이다. 사무소의 몇몇 아이돌들에게 본받게까지 하고 싶은 사고방식이다. 안 그래도 이렇게 나올까봐 화제를 돌리려 했던 건데 생각해낸 속도보다 빨리 묵살되었다.

여기선 일단 한 발 물러서볼까.

 

“그래, 내가 뭘 해주면 되는 건데?”

“예전에 저와 같이 갔었던 옷가게 기억하시나요?”

“…그 일은 잊어버릴 수가 없지. 그날 내 직업이 프로듀서였는지 프로짐꾼이었는지 사장님께 전화해서 물어볼 뻔했으니까.”

 

사치코가 데뷔한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을 것이다. 모처럼 휴일을 받은 내게 다가와서 ‘귀여운 저의 성공적인 데뷔기념으로 오늘은 저와 함께 해주세요!’ 라고 말하더니, 그 날 내내 나를 끌고 다니면서 데뷔 방송 개런티를 의류상품권으로 받았나 싶을 정도로 옷을 사들였다. ‘이 옷들은 행복하겠네요! 귀여운 제가 입어주니까 말이에요!’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가득 찬 말은 덤이었다.   

 

“그 가게에 신상이 들어왔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앞으로 살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 조금이라도 더 귀여운 저에게 최고로 어울리는 옷을 찾아야 할 의무가 있어요. 그러니까 프로듀서 씨가 돌아오는 휴일에도 도와주셨으면 하네요.”

 

…이제 알겠다.

 

“요컨대, 그냥 같이 쇼핑해달라는 거잖아. 그 한 마디 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

 

사치코의 얼굴이 이번엔 붉게 변했다. 오늘의 사치코는 프레데리카를 닮은 게 아니었군. 문어나 카멜레온 쪽을 생각했어야 했다. 어쨌든, 저 반응을 보면 정곡을 찌른 게 맞는 것 같군. 이럴 때마다 내가 프로듀서로서 아이돌들을 잘 파악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에 보람을 느끼게 된다.

내가 말하는 거지만 참 이상한 곳에서 보람을 느끼는군.

 

“그, 그게 아니라… 저는 정말 가인박명….”

“네, 네. 알겠으니까, 다음에 휴일 맞춰놓으면 되는 거지?”

“…네.”

 

이런 타이밍에 솔직해지지 못하는 것 역시 사치코의 또 다른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사치코의 장점 중 하나는 이렇게 부족한 자신을 알고 있기에 그런 것들을 스스로 보완해 나가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노력하는 자신을 믿기에, 언젠가는 완벽해지리라 믿기에 그리 당당하게 ‘제가 제일 귀여우니까요!’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치코에게 있어서 ‘귀여움’은 자신이 꿈꾸고 있는 ‘완벽한 코시미즈 사치코’를 표현하는 말이 아닐까, 라고 나는 프로듀서로서 추측해 보겠다.

만약 이것에 대해 직접 묻게 된다면 사치코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그건 차후의 즐거움으로 남겨둬야겠다.

 

 

[이 게시물은 님에 의해 2015-11-24 15:48:31 창작판에서 복사 됨] http://idolmaster.co.kr/bbs/board.php?bo_table=create&wr_id=48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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