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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내가 생각하는만큼 아이돌들은 날 좋아해주지 않았다」-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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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0-15, 2017 23:13에 작성됨.

스태프「자자,리카쨩!표정 좋고,각도 좋고!오케이!그대로만 계속 해주면 돼!잘하고 있어!옆에있는 애는 좀더 밝게 웃고!」
    리카「정말?꺄~!나도 어른스러우면서도 다정한 사람이 취향이야!아,그래도 너무 상냥하기만 한것도 재미 없을지도!」

 

카메라와 촬영세트를 분주하게 오가며 스태프가 지시를 내리고,

리카는 그에따라 과장된 몸짓으로,때로는 다른 아이돌의 시덥지 않은 농담에도 박수까지 치고 웃어주며 보조를 맞춘다.

 

가끔 나서야 될 타이밍에 어긋난 대사를 하거나 표정이 제대로 살지 않아서 스태프에게 지적을 받는 등,약간의 실수는 있었지만   
대체로 일에 지장을 줄 정도로 큰 트러블 같은건 없이 자기 페이스를 순조롭게 유지하며 방송 관계자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워낙 단단히 심통이 난 모습이어서 일에 지장을 주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쓸데없는 기우였던 모양이다.막상 카메라 앞에 서게되니 언제 그랬냐는듯,사람이 바뀌기라도 한것처럼 예능 프로그램에

어울리는 귀엽고 깜찍한 아이돌의 모습을 충실히 연기해내고 있다.

 

이래서 프로는 프로라는건가,아직 어린 나이인데도 공과사는 확실히 분별하는 모습이 대견하고 기특하기짝이없다.
저렇게 열심히 일하는 리카를 보고 있자니 새삼 내 자신이 한심해진다.

 

사실 저 애의 기분을 틀어지게 한건 전적으로,변명의 여지가 없는 내 잘못이다.

 

조수석에 앉아서 이것 저것,오늘의 P군은 이상하다느니 언니나 다른 애들이랑은 왜 싸웠냐느니하고 끝없이 물어보는 리카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진력이 나서 마음에도 없는 쓴 소리를 해 버렸는데...빌어먹을,아무리 그래도 말이 심했다.

 

『글쎄,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라니까 왜 그래?성가시게 자꾸 똑같은 말 하게 하지 말고 어떻게 해야 관계자들 눈에 예쁘게 들 수 있을지나 생각해!』

 

그 말을 끝으로 리카는 여기까지 오는 내내 입을 꾹 다물고 내 쪽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어제부터 나란놈은 도대체가,한두살 먹은 젖먹이나 병신,머저리도 아니고 이게 진짜 뭐하는 짓이냐.

 

다 큰 어른 주제에,그것도 프로듀서씩이나 되는 놈이 새파랗게 어린 아이돌들한테 꼬장이나 피우고 앉아 있다니...

항상 그늘 하나 없이 귀엽고 상큼한 얼굴만 보여주던 리카도 아까의 그 일로 나한테 단단히 실망한 모양이다.

 

지금도 간간히 눈을 마주 칠 때마다 찬바람 소리나게 고개를 돌리며 내 얼굴을 일부러 피하려고 하는게 눈에 똑똑히 들어온다.

 

평소에 촬영을 할 때는 내가 보고 있지 않아도 굳이 이쪽으로 윙크를 하거나 몰래 손을 흔들어 주며 깜찍한 여우짓을 하곤 했는데 말이다.

그런 리카의 매정한 모습에,쓴 한약이라도 들이킨 것처럼 속이 쓰라려온다.나란놈도 참,나이는 뒷구멍으로 다 쳐먹은 모양이다.

 

어린애 앞에서 성질은 있는대로 부려놓고 이제와서 상대 안 해준다고 지 멋대로 서운 해 하기나 하고.

생각을 하면 할수록 점점 리카한테 미안한 마음과 자괴감이 치밀어 오른다.나중에 비싼 가게에서 맛있는거라도 사 주면서 싹싹 빌자.
어른의 자존심이 다 뭐냐,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돌한테 단단히 미움을 사게 생겼는데 그 따위게 대수인가.

정 안되면 리카 앞에서 머리라도 조아릴 생각이다.

 

아아,그러고보면 아침에도  제대로 사과하지 못한 애들이 또 있었지.아예 오늘 날을 잡아서 석고대죄라도 해야겠구만...

 

P「그래,우즈키나 다른 애들도 부를까...회사 근처에 괜찮은 집이 하나 있었는데 어디였더라?」

 

그렇게 생각하며 지도기능을 켜기 위해 스마트폰을 꺼내려고 하니,느닷없이 누군가가 뒤에서 내 어깨를 덥석 붙잡고 말을 걸어온다.

 

『여어,프로듀서.아침에 몹쓸거라도 잡숫고 왔나?정신나간 사람처럼 뭘 그렇게 혼자 중얼중얼거리고 있나?』

 

아...모처럼 기분전환 좀 되나 싶었는데.

 

전에도 한 번 느꼈던 바가 있지만,이십년을 넘게 살아오며 들었던 목소리 중에서도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만큼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다.
꼭 내가 군대에 있던 시절,취사병들이 토치와 식용유로 쥐를 태워 죽이던 순간에 들었던 끔찍하기짝이 없는 그 울음소리를 생각나게한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니나 다를까 보기 싫게 휘어진 입가,그 다음엔 볼펜으로 점만 찍어놓은듯한 두 눈이 보인다.

전체적으로 봐도 호감은 눈곱만치도 안생기고 '나 소인배요'하는 느낌만 갈수록 더 해주는 인상이다. 

그렇지만 이래뵈도 감독,즉 이 프로그램의 총 책임자를 맡고 있는 높으신 양반이다.

고로 이 자리에서는 방송 관계자들 중에서도 내가 가장 잘 보여야 할 대상이라는 말이다.
 
감독「어이,내 말 안들려?지금 뭐 하고 있느냐니깐?대형 프로덕션에서 일하면 사람 좀 무시해도 되는건가?감독 말도 아주 우습게 들리나 보지?」

 

이쯤되면 대놓고 시비 걸고 있는걸로 봐도 되는건가?대낮부터 소주라도 몇병 까고왔나 싶다.

속에서 뭔가가 슬슬 올라오려 하는 걸 간신히 참고,와락 구겨지려는 얼굴을 억지로 활짝 펴고 머리를 숙여보인다.

 

왜냐하면 난 일개 프로듀서고 눈 앞에는 높으신 양반이 서 있으니까.제기랄.

 

P 「아,감독님이셨습니까.죄송합니다.잠깐 다른 생각을 좀 하고 있다보니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무시라뇨,제가 어떻게 감히...」
감독 「젊은 친구가 되먹지못하게 변명부터 앞서면 쓰나,신참이면 신참답게 쓸데없는 짓 말고 일에만 집중하라고,자넨 그런것도 안 배우고 왔나?아 참,일본인이 아니니까 듣는 귀가 조금 다를 수도 있겠구만!」

 

거,늙은이가 방금 전도 그렇고 말을 해도 꼭 사람 성질 긁는 소리만 골라서 해대네,거기서 나 외국인이란 얘기는 대체 왜 나오는데?

 

처음 만났을 때도 어느정도 싹수가 보이긴 했지만,그땐 적어도 다른 회사의 프로듀서를 대하는 태도정도는 갖추고 있었다.
그러던 양반이 지금은 완전히 제 부하직원 대하듯이 입을 놀려대는게 아주 속을 겉잡을 수 없이 뒤집히게 만든다.이쪽이 경력도 달리고 나이도 어리다고 깍듯이 대접해주니까 그게 제 눈에 아주 만만하게 보인 모양이다.차마 꼰대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진상중의 진상이다.

 

빌어먹을,밖이었으면 아예 상종도 하기 싫을 인간군상.하필이면 이런 진상을 비즈니스 관계로 만나게 된 내 재수없음이

한탄스러울 따름이다.먹고 사는게 대체 다 뭔지,346프로덕션에 입사한 이후 처음으로 회사생활에 회의감이 든다.

 

,,,하아,아니,아니다.지금은 일만 생각하자.아이돌들을,리카를 봐서 참는거다.

 

무의식중에 주먹에 불끈 힘이 들어 가려는 걸 억누르고,부글 거리는 뱃속을 타고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라온 욕을 초인적인 의지로 다시 우겨넣는다.

 

P 「예,안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 죄송합니다.감독님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지금부터는 일에만 집중하도록 하겠습니다.」

감독  「그래야지.회사가 자네한테 주는 월급이 아깝지도 않나?도둑놈이라는게 따로 있는게 아냐.자기 할일도 똑바로 못하면서 주는 대로 받아먹기만 하면 그게 도둑이지 암.」

 

어련하시겠습니까,빌어먹을.제발 개소리좀 그만 나불대고 날 부른 용건이나 얼른 얘기하고 꺼져줬으면 싶다.

 

감독「아 참,자네 때문에 그만 잊고 있었구만.잠깐 나 좀 따라와보게.자네쪽,그러니까 346프로덕션과 우리 방송국간의 제휴관계에 관해서 아주 중요한 이야기가 있어서 말이야.」
  P 「그런 중요한 이야기라면...저같은 말단에게는 들려주실 만한 사안이 아닌듯 합니다만」

 

업무라면 어쩔 수 없지만,어지간해서는 이 인간과는 엮이고 싶지 않은 내 심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말이었다.
 그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감독은 답답하다는듯 인상까지 써가며 언성을 높였다.

 

감독 「아,자네 밑바닥인거 누가 모르나?따라오라면 따라오라지 웬 잔말이 그렇게 많아!자네도 그렇고 자네 아이돌...리카쨩이라고 했지?그 친구한테도 상관 있는 이야기니까 얼른 오기나 해!」
P 「아,감독님 잠시만 기다---」 

 

늙은이는 더 볼것도 없다는듯,내 웃옷을 틀어잡고 제 멋대로 어딘가로 끌고가려고 용을 쓰기 시작했다.

 

슬슬 표정 관리 하기가 힘들어진다.이 양복,없는 월급 쪼개서 얼마전에 새로 만춘 신품인데,심지어 그것도 우리 애들이 직접 골라 준 거다.

 

말인즉슨,앞으로 마르고 닳도록 입어야 될 내 보물 1호란 말이다.빌어먹을 영감탱이가 보자보자 하니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내 손은 어느새 감독의 손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P 「알겠습니다.충분히 알아들었으니 옷은 그만 놔 주시죠.제 발로 걸어가겠습니다.」
감독 「진작 그랬으면 얼마나 좋아?자네가 협조만 잘 해주면 금방 끝날 이야기고 잘만 풀리면 자네 인생에도 크게 도움이 될만한 제안이니까 나한테 고마워 하라고,자넨 횡재한거야!」

 

말을 마친 감독이 특유의 귀밑까지 찢어지는 음흉한 웃음을 입가에 띄운다.

첫 만남부터 왠지 알게 모르게 사람 속을 거북하게 만들었던 그 웃음.
차마 눈뜨고 봐 줄수 없는 늙은이의 그 보기싫은 얼굴이 나한테 말해주는듯 하다.

 

『넌 내 말에 무조건 따를 수 밖에 없어,그렇지 않고는 못 배길거다.』라고 말이다.

 

그 꼴을 보고 있자니 괜히 마음이 심난해진다.저 쥐새끼같은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영 불안하다.

다른 감독이 하는 말 같았으면 나도 반색을 하면서 따라갔겠지만,이 프로그램의 감독이란 늙은이가 어떤 인간이지 알게된 지금은 도무지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중요한 이야기...리카와 연관이 있는,그리고 내 인생까지 걸린 제안이라...도대체 뭘까?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갈피를 못 잡겠다.
목에 뭔가 걸린것처럼 불안하고 찝찝하다는 감상만 머릿속을 계속 맴돈다. 

염병할,욕 먹어서 기분 더러운 건 둘째치고 대체 무슨 꿍꿍인지 알길이 없으니 답답하기만하다.

 

감독 「아,빨리 안 따라오고 거기 서서 뭣하고 있는거야!!이래서 한국놈들은 두들겨 패야 말귀를 알아 듣는다는건지 원,」
  
의기양양한 걸음걸이로 앞장서고 있던 감독이 뒤를 돌아보더니,우두커니 서 있는 내 쪽을 향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더러운 말을 내뱉는다.

 

이런 개,씨...후,아니다.

 

속에서 울화통이 터지려는 걸 다시 한번 참아내고 방금 전의 실랑이때문에 흐트러진 옷차림을 다시 정리하며,나는 늙은이의 땅딸막한 등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제기랄,모르겠다.죽이되든 밥이되든 일단 들어나보고 생각하자.

 

어제 오늘사이에 하도 일진이 사나워서 그런가,너무 안 좋은 쪽으로만 마음이 쏠렸다. 방금 생긴 선입견과 형편없었던 첫인상은 지워버리고 업무에만 집중하자.그럴 가능성이야 희박할테지만 아무리 진상이라도 방송관련 해서는 빠릿빠릿 할 수도 있는 노릇이고.
아니,다 떠나서 프로그램 총 책임자가 업무상 볼 일이 있어서 부른다는데 가기 싫어서 안 간다는 게 가당키나한가?

 

혹여나 늙은이...아니, 감독의 기분을 망쳐서 리카에게 불똥이라도 튀게 된다면,이 프로그램의 출연이 파토라도 나게 된다면 난 무슨 낯짝으로 그 애 앞에 서야 할까?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와중에,이윽고 감독의 발이 멈춘다.

 

감독 「자,먼저 들어가게.딱히 어려운 이야기도 아니니까 너무 긴장하지 말라고,흐흐.자넨 그냥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그걸로 오케이야.알겠지?다 자네 아이돌,리카를 위해서,응?」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문구가 유난히 커 보이는,한마디로 대놓고 수상해 보이는 문 앞이다. 

감독은 손수 문까지 열어 주며 내게 눈웃음을 쳤다.

 

물론 전혀 고맙지 않다.도살장에 묶여진 개,돼지 꼴이 된 기분이랄까...

옴싹달싹 못하게 묶인 프로듀서,이 놈을 어떻게 요리할까에 대한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한 감독 늙은이.

 

P 「리카를 위해서라...」

 

영 시원치 않은 마음 속에서도 감독의 말을 가만히 곱씹어보니,난데없이 이 늙은이에게 붙잡히는 바람에

미처 신경 써 주지 못한 리카가 걱정이 된다.

 

촬영세트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내 걱정이 무색하게 주변의 어떤 아이돌보다 밝게 웃으며,그 중에서도 가장 환하게 빛나고 있는 리카의 모습이 눈에 아프게 들어온다.

 

이젠 혼자서도 잘 하는구나,나같은 머저리는 더 이상 필요 없을정도로.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만약 애들이 날 전혀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해도 말이다.

적어도 아직 그녀들의 옆에 있을 수 있는 동안에는,내가 프로듀서로서 일하고 있는 지금만큼은 언제라도 저렇게 웃을 수 있게 해주고 싶다.

 

리카뿐만이 아니다.우즈키나 린,다른 아이돌들역시 마찬가지다.아침에도 애써 무덤덤한 척,시큰둥한 척 했지만,

더 이상 그 애들이 슬퍼하고 화내는 모습따윈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그래,이제야 간신히 생각을 정리 할 수 있었다.

중요한 건 아이돌이지 나 따위가 아니다.내가  찢어진 걸레쪼가리처럼 망가진 신세가 된다고해도,애들만 잘되면 그걸로 된거다.

 

P 「좋은 제안을 들려주신다니 감사합니다.감독님에게 큰 은혜를 입게 되겠군요.」

감독 「옳지,옳지.자네 그 마음가짐 절대 잊으면 안돼?일단 나한테 큰절이라도 한번 올리라고.」

 

여부가 있을까,그래 좋다.아이돌을,애들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겠다.이 역겨운 늙은이의 구두라도 아주 달게 핥겠다.

 

올라가지 않으려는 입꼬리를 억지로 움직여 웃는 낯을 만들고,깊이 허리를 숙여 감독에게 인사를 보낸후,나는 감독이 열어준 문 안쪽으로 발을 들였다.

 

한심한 짓거리는 어젯밤과 오늘 아침으로 족하다.덜 떨어지고 모자란 프로듀서지만,적어도 아이돌들의 발목을 잡는 짓거린 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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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일주일만에 다시 한편을 올리게 되는군요.메모장 파일이 다 날라가는 바람에...원래는 이 다음까지 써 놨는뎅...

또 미뤄야되게 생겼네욤.어차피 다들 예상하고 계시는 전개만 기다리고 있을뿐이겠습니다만 P군의 운수좋은 날이 언제까지,어떻게

계속될지 조금은 기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HappyX2 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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