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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내가 생각하는만큼 아이돌들은 날 좋아해주지 않았다」-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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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0-08, 2017 01:07에 작성됨.

1.

-치익,칙!

 

P 「후우우--제기랄,어젠 왜 그랬지...」

 

옥상,길게 내뱉는 한숨에 따라 뭉게뭉게 흩어지는 담배연기를 멍하니 쳐다보며 어젯밤을 떠올린다.

'어제는' 혹은 '그땐 왜 그랬을까'라는 한심한 후회는 말려 줄 사람도 없이 혼자 진탕 들이붓고 머리가 깨질듯한 두통속에서 눈을 뜨던 

학창시절부터 늘,항상 해오던 짓거리였지만

 

오늘만큼,차라리 자해라도 하고 싶을정도의 자괴감이 드는건 그리 짧지않은 내 음주가무 역사에서도 처음이었다.

 

무슨 주정뱅이 노숙자도 아니고 열살 가까이 어린애들,그것도 담당아이돌에게 고함을 치는것도 모잘라서 욕을 지껄여?

 

P 「이런 새끼가 무슨 프로듀서라고...옘병...」

 

눈 앞을 흐리게하는 연기속에 아이들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그에따라 가슴을 쿡쿡찌르는듯한 통증이 숙취와 겹쳐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갈곳 잃은 미아처럼 그렁그렁한 눈동자를 하고 있던  우즈키에,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입술만 깨물고 있던 린.

카렌,나오,미카...다들 하나같이 놀란 토끼눈을 한채 말 한마디 않고 영혼이 빠져나간것처럼 멍하니 이쪽을 보고 있었지.

 

다 까놓고 솔직히 말하자.

 

어젯밤 내가 아이들에게 했던 짓거리는 단순한 화풀이,술에 취해서 저질렀다고 커버를 쳐주기에도 민망한 주정뱅이의 행태

그 자체였다.온몸에서 스물스물 올라오는 술냄새,거기에 한바탕 쏟아낸 후 특유의 역겨운 냄새까지 풍겼을텐데도 

 

그녀들은 내색도 하지않고 웃어주며 날 맞이해주고 걱정해주는 '모습'을 보여줬다.

 

바다건너에 있는 여동생도 그렇겐 안해줬다.'언제까지 그렇게 살래,이 한심한 자식아!'라고 욕만 들어먹었지.

평소같았으면 아이들을 부둥켜안고(물론 그러면 안되겠지만)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 한바탕 노래를 불러도 모자랄 판이다.

어젯밤의'그 이야기들'을 듣기전까지만해도 말이다.

 

하루종일 가속,브레이크 페달을 밟아대며 정체에 시달리고,방송기획이 애들 스케쥴이랑 안 맞아서 관계자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욕을 들어먹고와서 차라리 그대로 중환자실에 드러눕고 싶을정도로 노곤하고 피곤해 죽을 지경인데도

 

웃음이 저절로 번지게 해주는 그녀들의 천진난만한 미소가,그 목소리가,그 호의 어린 눈동자들이 그 순간만큼은 

그 자리에서 뛰쳐 나오고 싶을 정도로 눈에 거슬리면서도....보기 괴로웠다.

 

꼭 그건 내가 아직 교복을 입던 시절,날 자살하기 직전까지 몰아넣었던 그 개같은 연놈들의------

 

P 「아냐,아냐...술이 덜 깼나,내가 점점 미쳐 돌아가나,애들가지고 무슨 엿같은 생각을 다 하고있냐.정신차려 임마!」

 

한동안 잊고 있었던,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려고하는 옛 기억들을  미친사람처럼 머리를 흔들면서 간신히 떨쳐낸다.

새벽내내 잠도 못자고 엑셀과 서류들만 파고 있던 탓일까,사람이 어느 한계까지 피곤해지면 이 정도로 한심해 질수도 있구나 싶다.

 

일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한창때의 아이들에게는 아저씨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정도로 나이는 있는대로 쳐 먹은 주제에

뭘 기대한걸까.

 

단순한 비즈니스가 아닌 오빠동생같은 관계?아주 지랄을 하고 앉아 있었구만 나란 놈은.

 

애들이 좀 살갑게 대해준 걸 가지고 김칫국을 마셔도 아주 항아리로 퍼붓고 있었어.

 

그간 내가 하는 짓들이 얼마나 못나고 주접스러워보였으면 내 뒤에서 그런말들을 하고 있었을까.

 

그 착한애들이,실패가 거듭되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고,서로 위해주면서 웃어주던 그 애들이 말이다.

 

빌어먹을,한참 나이어린 여자애들도 그러고 있는데 군대까지 갔다온 사내자식이 대체 뭐하는 짓일까.

 

술쳐먹고 주정부리고,혼자 궁상이나 떨고 앉아있----

 

P 「우아악,뜨거 뜨거 뜨거!!!이런 썅!」

 

왼손 중지와 검지에 머리털을 쭈뻣서게하는 격통이 전해져온다.

아직 몇 모금 피우지도 않은 담배가 어느새 필터까지 타 들어가서 손가락을 지지고 있었다.

 

당장 던져버리고 재를 털어보니 거죽이 벗겨져서 새빨간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게 눈에 들어온다.

이건,꽤 오래 가겠는데...

 

P 「진짜,자꾸 개같은 일만 겪네...하,일단 들어가야지 제기랄.」

 

-철컥!

 

아직까지 타고 있는것 처럼 화끈거리는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면서,옥상문을 열어젖힌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사무실로 내려가며 생각한다.

 

들어가면 죽어라고 일만하자,꼴값은 그만떨고,애들이 싫어할만한,프로듀서에게 걸맞지 않은 개짓거리는 그만하자.

톱 아이돌,신데렐라 프로젝트...그것만 생각하고 몸이 부서져라 뛰어다니자.

 

그러면 아이돌들도 조금쯤은 날 인정하고 진심으로 대해주지 않을까---- 

 

『프로듀서 말이지...음,그렇지.솔직히 말하자면 처음부터 조금 재수없긴 했어』

 

...아닐수도 있고,빌어먹을.

 

 

2.

 

사무실에 들어가보니,아이돌 애들 몇이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들이 보인다.

란코,치에리,미오라...오늘따라 일찍 왔네.나 아직 냄새 많이 날텐데... 

화장실에 들러 비누로 빡빡씻고 세수까지 하고왔지만 술냄새라는건 그리 쉽게 떨어지는 놈이 아닌지라 신경이 쓰인다.

거기에 오랜만에 피우는 담배냄새까지...애들 싫어하겠네 이거.

 

얼마나 심한가, 와이셔츠 깃에대고 냄새를 맡고 있자니,미오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네온다.

 

미오 「오옷~안녕 프로듀서!오늘도 일찍왔네...가 아니라,이미 와 있었구나?재킷을 벗고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지!

        여~억시 부지런하다니까!그래야 내 프로듀서지!」

 

오늘도 아침부터 텐션이 높네.맞춰주고 싶긴 하지만 아직 피곤이 가시질 않으니 관두자.

 

가볍게 고개만 까닥여서 인사를 받는다.

 

P 「어,그래.너도 일찍 왔네.」

미오 「어라,프로듀서답지 않은데?아침은 제대로 먹은거야?평소의 기합은 다 어디로 갔는지 안 보이는거얼~?」

 

기합은 얼어죽을놈의...아침은 커녕 아직 샤워도 못해서 정신이 혼미해 죽을 지경이다.점심은 거르고 사우나라도 하고 와야지...

 

이상하게 미오 특유의 장난기 섞인 말투가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치에리,란코가 인사를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치에리 「안녕하세요,프로듀서.어제도 늦게까지 일하셨다고 들었는데...괜찮으신가요?커피라도 끓여드릴테니까 조금 드시겠어요?」

란코 「번거로운 태양이구나,허나 밤의 어둠이 아직 그대의 눈동자에 머물러 있노라!안식의 시간에 충분히 만족하지 못했는가?

         (좋은 아침이에요 프로듀서,앗 눈가가 까맣게...잠은 충분히 주무신 건가요?)」

P 「아 그래 좋은 아침.커피는 됐으니까 앉아서 하던 얘기 마저 해.란코,미안한데 오늘은 뭐라는지 모르겠다.」

 

걱정스러운 빛으로 내 얼굴을 훑어보는 치에리를 도로 앉혀놓고,앞을 가로막은 채 오늘도 자신만의 '란코어'로 말을 걸어오는 

란코를 향해 비키라고 손짓을 해 보인다.

 

내가 생각해도 평상시의 아침인사와는 차이가 많은 대화다.아이들도 어안이 벙벙한 얼굴을 한 채 이쪽을 보고 있는게 눈에 들어온다.

 

애들이 바라는게 이런거 아니었을까?비단 어젯밤 있었던 그녀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프로듀서가 귀찮게 쓸데없는 헛소리 안하고 요란떨지 말고 되도록이면 눈에 안 띄는거 말이다.

 

해보니까 별로 어렵지도 않네.앞으론 쭉 이 페이스로 가자.

 

그렇게 생각하며 아이돌들에게 일부러 눈길을 주지않고 내 책상으로 가서 엉덩이를 붙인 후,절전모드로 들어간 PC를 다시 부팅한다.

새벽에 보고 있던 자료들이나 다시 봐야지.워낙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작업을 했던지라 제대로 마무릴 지어놨는지 조금 불안하다.

 

『저기...안녕하세요,프로듀서?저도 이미 와 있었는데...』

 

난데없이 들려온 목소리에 옆으로 고개를 돌려보니,늘 그렇듯 가장먼저 눈에 들어오는 초록색 정장차림.

 

치히로씨다.

 

아침에 오면 늘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내가 먼저 인사를 해서 이렇게 인사를 받을 일은 없었는데...  

 

고개를 들어보니,지난밤 뭔가 좋은일이라도 있었던듯 입가에 미소가 번져있다.

아니,그러고보면 얜 날 보면 항상 웃고 있었지.원래 성격에 구김살이 없어서 그런가?

 

나랑은 다르게 말이다.

 

P 「아,죄송합니다.되게 일찍 출근하셨네요.뭐 할 일이라도 있습니까?」

치히로 「예?아,아뇨.그냥 눈이 일찍 떠져서...그나저나 프로듀서,오늘 기분이 조금 별로신가요?안색이 영 안좋으신데요?」

P 「아뇨 괜찮습니다.근데 제 자리까지는 뭣땜에 오셨습니까?그냥 인사나 하려고 오신것 같진 않은데 말이죠.」

치히로 「아,그게 말이죠...」 

P 「...? 무슨 일입니까?」

 

...왜 이렇게 우물쭈물거려?나 뭐 털릴거라도 있나?

하긴,새벽간에 이번에 들어온 계약들에 관련된 서류를 좀 정리해놓긴 했는데...그것도 최대한 정신 빠릿하게 

챙기고 작업을 해놓는다고 해놨긴한데...지금 생각해보니 걱정이 조금 든다.

파기해야 될 서류가 딸려 들어가서 같이 끼워놨다든가.다른 업체 서류를 착각해서 넣진 않았는지...

 

그렇게 머리를 굴리고 있는 와중에 치히로씨가 다시 웃는 낯으로 돌아와 입을 열었다.

 

치히로 「그...아!어제 그 일에 대해서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린이랑 나오,카렌 그러니까 트라프리가 함께...」

       P 「...린,나오,카렌....」

 

다른 말들은 귀에 안들어오고 애들 이름만 또렷하게 들린다.

 

치히로 「네 프로듀서,어제의 그 일때문에요.저도 나름 생각해본게 있어서 그러는데...」

 

어제 일...아,그렇지.술 취해서 애들한테 주정 부린거...벌써 치히로씨 귀에까지 들어 간건가.

아직 안 온걸로 봐서 직접 얼굴 보고 말 한것 같진 않고...전화로 이야기를 들은걸까.

더이상은 나랑 같이 일 못하겠다는 말이라도 전해 들었을까?이대로 경질 당하는 건가...안되는데,직접 얼굴보고 미안하다고는 해야...

 

머릿속을 죽 끓듯이 헤집는 걱정속에서,치히로씨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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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머릿속도 죽 끓는듯 합니다.부글부글...복잡하네요.역시 음주집필은 힘들어라...어쩔 수 없이 전가의 보도를 써봐야겠군요.

절.단.마.공.점점 프로듀서의 마음속에 싹트는 아이돌들에 대한 불신감과 두려움.그리고 싸가지 밥 말아먹은듯한 태도.

그를 기다리고 있는 녹색 귀신,악마의 선고는 과연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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