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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하야가 전쟁에 휘말리는 꿈을 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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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3-12, 2021 15:01에 작성됨.
치하야가 아이돌이 되지 않고 어느 학교 비스무리한 곳에 몸을 의탁해서 음악 가르쳐주며 애들을 돌봐주고 선생님들한테 돌봄도 받아요.
그중에서 치하야를 특히 잘 돌봐주면서 음악적 소양이 뛰어나던 장발 여자선생님이 자기는 군인이 원래 꿈이었다면서 치하야한테 선물을 주고 돌아오면 훨씬 근사한걸 준다면서 약속을 해요.
그러다가 갑자기 전쟁이 일어나요.
가장 먼저 들려온 소식은 여자선생님의 부고였고 치하야가 거기서 1차 멘붕을 하는데 그러다가 전쟁의 여파가 학교까지 옵니다.
남은 선생님들 모두가 애들을 대피시키고 총격전으로 농성을 하다가 죽고 남은 애들은 치하야 누나가 가장 어른이니까 우리가 믿을사람은 치하야 누나뿐이야 그러니 우리가 지켜야해 하다 죽고 학교 건물은 약탈당하고 폐허가 됩니다.
그런데 치하야는 안 죽어가지고 선생님들은 어떻게든 빈 공간을 빌려서 수습해주지만 아이들을 본 순간 멘붕이 씨게 와서 애들을 다시 교실 책상 위에 올려두고 노래를 가르쳐주려고 해요.
백골을 보고 노래를 부르며 잘 듣고 있어주는 거구나 따라불러줘서 고마워 하면서 굶어죽기 직전까지 멘탈이 쎄게 나간 채로 회복을 못하다가 현실을 자각하고 이대론 죽을 수 없어 하면서 그 폐허 안에서 생활기반을 차리고 살아가요.
그러다가 미군이랑 미군 옷을 입은 우즈키랑 린이 치하야도 구해주고 치하야네 건물에있던 사람들도 수습해주고 치하야는 그곳에서 비로소 나가게 되고 영혼들도 구원을 얻는다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치하야는 뭔가 꿈에 나올때마다 험한 꼴을 보네요. 예전엔 꿈속에서 남자가 되질 않나...
6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라 말하였지요.
전쟁과 음악하면 생각나는 고전 명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도
전쟁광 시대를 음악과 춤으로 극복하는 모습으로 다소 위트있고 낭만적으로 그려졌지만
근본적으로 전쟁을 끝낸 건, 춤도 노래도 아닌
'원자력의 힘'에 의해서였다는 것을 역사가 말해줍니다.
그렇다면 폭력적인 눈 앞의 현실 속에서,
나약한 예술이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이 있는지
우리는 종종 의문에 빠지곤 합니다.
특히 온 세상을 피와 재로 만든 어느 오스트리아 사람이
한때는 예술인을 꿈꾼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때론 혼란스럽기도하지요.
예술은 정말 아무런 도움도 안되는 탁상공론에 불과한 것일까요?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9132057015&utm_source=livere&utm_medium=social_share
하지만 과거 2003년 UN 본부에서 게르니카 그림을 두고 일어난 한 해프닝을 보면, 예술은 말보다 주먹이 더 가까운 무자비한 세계에, 말로는 전할 수 없는 일말의 양심을 일깨워주는 도구가 될수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웃나라에선 소설 '암막의 게르니카'가 이 사건을 소재로 쓰여졌군요.)
예술이 세상을 구할 수 있는 힘은 없을지라도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할 수는 있지 않을까요.
터무니없이 낙관적인 전망이라 여겨질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피비린내나는 절망의 세상 속에서 이런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어야하지 않을까...
프로듀서님의 무서운 꿈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을 살게 만드는 것은 의식주지만, 그 의식주를 결정하는 것은 곧 교양과 문화고, 교양과 문화의 저변에는 예술이 깊게 깔려있죠. 총칼 앞에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당장 맞서서 할 수 있는건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이후에 BTS의 노래가 미국에서 울려퍼지고 기생충이 오스카를 싹쓸이한 것은 그 분들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길은 정말 멀고도 힘든 길이죠. 그렇기에 그런 길을 가는 사람은 정말로 대단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