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에반게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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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3-08, 2021 12:58에 작성됨.

Maggie Reilly - Everytime we touch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또 다른 끝(또는 시작)에 대해>

 2021년 3월 8일, 일본에서 대망의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다카포(부제:무재원점)'가 개봉되었습니다. 영화 포스터만 수 차례에 걸쳐 수정되고, 그 동안 제작사 및 제작인력이 여러 사정으로 변경 될정도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마침내 수 많은 에반게리온 팬 분들이 고대해오던 '끝(또는 시작)'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네요. 한국에서는 으레 그렇듯 한발 늦게, 이미 일본에서 수많은 스포일러들과 결말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고 한참이 지나서야 개봉이 되겠지만 이제 그런 것은 너무나 익숙해져버린 나머지 아무래도 좋은 것 같습니다.


<세기말 에반게리온=신세기 에반게리온 인가>

 에반게리온은 세기말에 만들어진 세기말적인 작품입니다. 이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타이틀은 '세기말 에반게리온'이 아니라 '신세기 에반게리온'으로 어떻게보면 무척 이질적입니다. 그리고 21세기를 사는 오늘날은 2000년대 이후에 만들어진 새로운 '신극장판'을 통해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실제로 목격하기도 했군요.

   

 사실 에반게리온 TVA판과 구극장판을 '진정한 결말'이라 생각하는 팬으로서 신극장판은 '새로운 이야기'라기보다는 '사족'이라 느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신극장판의 이전에 없던 기이한 복선과 엄청난 양의 맥거핀들은 90년대의 에반게리온을 추억하던 팬들을 당황시키기에 충분했고,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과 기존 캐릭터의 성격에 있어서의 중대한 변화는 놀라움과 색다름을 가져다 주었습니다만 많은 혼란도 가져다 주었으니까요. 무엇보다 세기말 무렵(95년 10월 4일)에 세기말의 분위기를 가득 지닌채 처음 세상에 태어난 '에반게리온'이, 어째서 새시대의 시작에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마저 이어가려는 지...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세기말' 특유의 알 수 없는 기묘한 분위기들과 'Y2K 버그' 등과 같은 '새로운 시대(정보 혁명)'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불안감들이 이미 대부분 소강된 '21세기'에 '세기말 애니메이션'은 대체 무슨 말을 더 하고 싶은 것일까요. 마치 총포와 봉건제의 붕괴 등으로 기존 시스템이 완전히 변해버려서, 구시대의 유물인 '기사(Knight)'가 몰락한 시대에 오히려 전설과 환상이 가득한 '기사도 문학(Roman)'이 더욱 성행하게된 것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실체가 사라진 자리엔 그 무엇을 가져다 놓아도 그것이라 우길 수 있고 얼마든지 과장과 왜곡이 가능하니까요.      

 

 기존의 팬분들 사이에서도 '신극장판'에 대한 갑론을박이 오가는 상태에서 처음엔 기존의 에피소드들을 답습하거나 살짝 변주를 주는 정도인 새로운 에반게리온이 점차 '본 궤도'에 오르면서 더욱 많은 혼란과 난해함을 가중하는 모습을 보면서 에반게리온이 겉으로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결국은 과거의 그 '신비주의' 코드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는 '맥거핀 뷔페'로 회귀하고자 하는 것이라 생각되어 신극장판을 이해하는 것을 그만두고 말았네요. 개인적으로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에반게리온의 팬이라 생각하지만 어디까지나 'TVA 및 EOE(구극장판)'까지가 이해의 마지노선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심리적인 간극을 극복하기엔 여러 장벽들이 있기에 개인적으로 '세기말 에반게리온'과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일종의 별개의 작품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두 작품이 하고자 하는 말이 전혀 다르게 다가오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두 작품을 이어지는 연장선상으로 해석하는 분들도 많으시기에 해석하기 나름이라 생각합니다.

 

<에반게리온이 하려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에반게리온은 로봇 SF물이면서 사이코드라마(심리극)을 표방하는 매우 기묘한 작품입니다. 기존의 로봇 SF물이 완구 판매 및 각종 굿즈 수익을 위해 파일럿보다는 '로봇'이 가지는 특성과 기체의 우수성, 디자인 등등이 더욱 부각되는 성격이 있었다면, 에반게리온은 오히려 '파일럿'이 더욱 강조되는 독특한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파일럿의 가슴 아픈 과거사와 수 많은 대내외적 상처들, 어그러지는 인간관계와 무너져가는 인물들을 보면서 저렇게 거대한 최첨단 과학 병기와 신도시 속에도 스스로의 내적모순과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절망과 자학에 빠져 무기력하고 무의미한 삶을 끝내버리거나 자포자기한듯 살아가는 인간군상들이 무척 안타까우면서도 많은 생각을 들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극이 흘러갈 수록 '로봇물'의 전개보다는 인물들의 내면에 치중하는 것이 두드러집니다. 전체적인 연출 자체도 에반게리온 세계관이 하나의 거대한 '폐쇄병동'과 같았습니다. 알고보면 모두가 환자이기에 진정한 치유도 간호도 없는 구원이랍시곤 '죽음'말고는 없는 암울한 버려진 병동....에반게리온이 묘사한 '인간의 삶'이란 결국 '죽음에 이르는 병(절망)'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개인마다 해석은 무척 다양하겠지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반게리온이 이토록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또 회자된다는 건, '절망' 그 이상의 무언가를 전달해주기 때문이라는 생각됩니다. 지독한 염세주의자이지만 나름의 세계관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바라본 어느 독일 철학자가 오늘날에도 수 많은 사람들에게 삶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생각의 말미를 제공하는 것처럼, '절망적인 삶'을 억지로 '행복하다'라며 애써 위로하고 보듬으며 현상유지를 하기보다는 깨끗하게 그 사실 자체를 인정하고 '그렇다면 이 절망적인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건설적인 고찰을 할 수 있게 해준다랄까요.    


 에반게리온 속의 인물들은 저마다 자신의 행동과 주어진 상황에 따른 결과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릅니다. 현실을 부정하고 맞서 싸우는 사람도 있고, 겸허히 수용하고 포기하는 사람도 있으며, 끝없이 회피하고 도망치면서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대응이 가져오는 변화는 미미합니다. 에반게리온 속의 세계가 지축이 기울어져 '영원한 여름'으로 계절이 고정되어 있는 것처럼 오랫동안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되던 '인류보완계획(=전인류 말살계획)'과 같은 '종말'은 이미 예정된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든 사람은 죽고, 세상은 멸망합니다. 그건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원불멸'이라는 건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일이고 생명도 우주도 언젠가는 '종말'을 맞이합니다. 비록 에반게리온에선 그것이 자연의 섭리가 아닌 '인간'에 의한 의도된 종말이라는 점에서는 다르겠지만요. 그러나 이미 정해진 운명에 대한 등장인물들의 수 많은 대응과 행동들이 모두 무의미하다고 보기엔 어렵습니다. 이미 모든 것이 정해진 상황속에서도 각자 나름의 의도와 생각으로 결국 자기만의 삶을 살다가 떠나는 것이 인생이니까요.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많은 것들은 이미 결정되어 있음을 알게됩니다. 신체의 내구도나 선천적인 질환에 따른 기대 수명만이 아니라 나 자신 주변의 가정환경이나 사회적인 배경 혹은 나의 취향과 흥미, 성격 또는 재능 등등은 이미 유전적으로 어느 정도 정해진 채 살아가게 되니까요. 타고난 운명을 완전히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기에 그런 수많은 '운명'을 지닌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우여곡절이 많은 인생이고 달고 쓰고 떫고도 짠 삶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 역시 나름의 의미가 있을테지요. 그렇기에 어쩌면 에반게리온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어쩌면 과장되고도 극적인 삶에 부분적으로 묘한 공감과 상념을 갖게 되는 것 역시 현실의 삶을 그 속에 투영해도 좋을 정도로 '현실적'인 면이 어느정도 내재되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가해봅니다. 그 포인트 역시 개인마다 다르겠지만요.     

   

 <열광금지 에바로드> 


 2015년 무렵 우연히 알게된 책 '열광금지 에바로드'는 '에반게리온 스탬프 랠리'를 통해 세계 일주를 하면서 전 세계 각지에 흩어진 에반게리온 스탬프를 모은 두 한국인 에반게리온 팬의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입니다. 한국 문학 작품에서 일본의 애니메이션인 '에반게리온'과 '오타쿠 문화'를 소재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무척 이색적이고 독특하다는 주목을 받기도 했었는데, 실제 내용은 '에반게리온'보다는 등장인물의 '삶'에 초점을 맞춰진 것이 그야말로 '에반게리온식 전개'였습니다.

 비록 실존인물과의 인터뷰가 바탕이 되었더라도, 소설이기에 어느정도 허구와 각색이 있을 수 밖에 없지만 등장인물의 사실적인 삶과 묘사를 보면서 '지구가 기울지 않고, 외계인들도 침공하지 않고, 비뚤어진 거대 과학의 산물인 '생체 병기'도 존재하지 않는 세상의 신지'는 어떻게 살고 있을지 생각해보게 되는 작품이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에반게리온'은 주인공이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었고, 젊은 날의 '전부'와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불만족스러운 삶과 불우함이 가득한 유년기를 뒤로한 채, 에반게리온에 대한 치기어린 신념 하나로 무모하고도 긴 순례의 여정을 시작한 그가 수 많은 역경을 헤친 여행의 성공 후 귀로에 이르러서는 에반게리온이 과연 나에게 무엇이었나 하는 회의와 의문에 빠져들면서 창 밖으로 나서게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상처투성이인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마주하면서 마침내 더 이상 '에바라는 껍데기에 타지않고' 자신의 두 발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주인공을 보면서 에반게리온은 결국 그에게 있어 '유년기의 끝'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소년이 신화가 될 수 없는 시대에서, 소년들은 그렇게 어른이 되어갑니다.


<감사와 작별>

  에반게리온은 언제나 '끝'을 이야기하지만 사람들은 그 속에서 '시작'을 발견합니다. 이번 극장판 역시 누군가에겐 '끝'이자 '시작'이 될 수 있겠지요. 이미 일본 사회 곳곳에 수 많은 굿즈와 파생 상품들로 깊게 뿌리내린 '90년대의 망령' 혹은 '불멸의 아이콘' 에반게리온. 

 

 작품이 지닌 의미나 해석을 떠나,  90년대에 태어나, 00년대에 자랐었고, 10년대를 견뎠으며, 20년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앞으로도 어떤 식으로든 잊을 수 없는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제작진 여러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그동안의 모든 '에반게리온'들에게 작별을 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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