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길을 지나가는데 쥐가 죽어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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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9-28, 2020 23:24에 작성됨.



쥐가 차바퀴에 깔린 것인지 그대로 납작해진채로 죽어있었습니다. 옆에 검은색인 무언가가 있었는데 전 그게 내부 장기라고 생각합니다. 피는 다 공기에 닿아서 응고되고 고무타이어에 점막이 마찰되면서 까만색이 되어버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근처엔 평소엔 별로 본 적이 없던 노란색의 파리가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파리들은 차가 올 땐 도망가면서도 쉬 다시 와서 쥐의 시체를 탐닉했습니다. 전 그 광경을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제가 느낀 감정이 혐오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환희는 더더욱 아니었고요. 전 그 이름모를 쥐를 애도하고 있던 걸까요. 사람들이 그렇게 구제하려 애쓰는 쥐에게 개인적인 감정만으로 연민을 품는 것이 옳은 행위일까요.

그 쥐때문에 아프리카 사람들은 다 병에 걸려서 죽고 있는데. 그 쥐가 다 병충해를 옮기고 다녀서 농가에 해를 끼치는데. 그렇게 이로운 점이라곤 없는 쥐가 죽었으면 하나된 인류로써 나는 마땅히 기뻐해야만 하는 것이 도리일텐데. 어쨰서 전 기뻐하지 못했던 것일까요.

나라는 사람은 도덕을 논하지만 사실 도덕이 아닌 사사로운 감정에만 움직이는 사람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도덕적인 사람이라면 무릇 쥐의 씨를 말려버리고 쥐를 다 죽여버리고 쥐가 죽는 꼴을 볼때마다 응당 기뻐해야 하는데. 그것이 쥐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한 도리인데. 쥐때문에 죽은 사람도 있는데.

그 쥐가 병균을 옮겨서 누군가를 힘들게 할지도 모르는데. 아니면 적어도 해를 입혔을지도 모르는데. 그런데 나는 그 쥐의 죽음을 기뻐하기는 커녕 오히려 앞에 서서 가만히 있었다니. 이래서야 완전히 쥐를 추도해주는 것입니다. 나는 쥐를 추도해줄만큼 삶이 넉넉했던지. 아니, 인류가 쥐를 추도해줄만큼 삶이 넉넉했던지.

나 하나 챙기지도 못하면서 사사로운 감성에 도덕성이라는 허울을 들이밀고 자기만족만 했습니다. 오늘 전. 하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어요. 그 행위로 인하여 제 마음이 편해졌으니까요. 전 결국 그런 사람입니다. 천하의 이기적인 사람. 자기 기분이 편하겠다면 어떤 통념에 반하는 짓이건 서슴없이 저지르는 사람.

제 분수에 걸맞은 일을 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에게 최대한 진실로부터 저를 가릴 수 있는철판을 씌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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