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말할 수 있다] 사실 새삼스럽지는 않았던 이야기 + 성우님의 아스카에 대한 애정과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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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3-07, 2020 04:13에 작성됨.

성우님의 커밍아웃 건에 관하여, 유튜브 영상 내용을 제가 다시 한 번 요약할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영상에 자막 달러 갔더니 이미 1명이 작업중이라는 메시지가 뜨는 걸로 봐서 머지 않은 때에 한국어 자막도 달릴 것 같고요.


…제가 오사카 라이브 준비 영상에 자막 달아서 제출한 게 나흘 전인데 아직도 업데이트가 안 되는 걸로 봐서 조금 더 시간이 걸릴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두 가지 정도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하나는 '이게 갑작스럽게 공개된 사실이냐 + 팬들에게 충격적인 사실이냐'에 관하여, 다른 하나는 '성우님의 아스카에 대한 애정과 걱정'에 관하여.


1.

사실 아오키 시키 성우님의 팬들이나, 제 주변 아스카P들 기준으로는 새삼스러울 게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아스카 성우가 발표났던 순간부터 성우님 관련 정보가 워낙 화제가 됐어야 말이죠. 오늘 유튜브 영상으로 공인된 게 FtM 범성애자라는 건데, FtM임을 커밍아웃 한 게 처음인 거지 일단 성우님의 성정체성이 여성이 아니라는 거야 사무소쪽 정보나 개인 트위터 등으로 많이 알려져있었기도 했고(사무소는 홈페이지 상에는 여성 성우로 기재하되, 방송 등에서 X젠더-특정 성별이라는 입장을 취하지 않음-로 공개했었습니다), 범성애 성향도 잡지 칼럼이나 이런저런 자리에서 많이 피력이 됐었거든요. 개인방송이나 좀 편한 자리에서도 1인칭이 항상 '보쿠'와 '오레' 사이에서 오락가락 하기도 했고요. 그러니 오늘 방송은 엄밀히 말하면 성우 본인의 성정체성이 X에서 M으로 정정되었다 정도의 의미를 가집니다.


'이게 갑자기 공개된 사실이냐'라는 것에 관해서, 성우님께서 직접 공개를 하신 김에 밝혀두고 싶은 이야기. 사실 이 성우님에게 관심이 있다 하는 사람들은 이분이 FtM이고, 조만간 이 사실이 공개될 것이라는 사실은 어느 정도 감을 잡고 있었습니다. 이게 구체화된 것이 언제였는지를 따져보자면, 지난 1월 중순의 어느날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오키 시키 성우님은 2017년 3월 8일 이래 3년간, 매주 목요일 오후 8시~10시에, 그 시간에 업무가 있거나 라이브 직전이 아닌 한 한 번도 빠짐없이 트위치 게임방송을 진행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가끔씩 비정기 방송이 켜지기도 하죠. 올해 1월 중순의 어느날이 그 비정기 방송이 켜진 날이었습니다. 저는 아침에 학원을 나가는 중에 방송 알림을 받고 방송을 켰습니다.


아마 아침 7시경이었던가요. 평소와는 달리 상당히 축 처진 목소리로 방송이 시작되었는데, 다른 게 아니라 성우 본인을 향한 악성 메시지에 제대로 멘탈이 깨진 상황이었습니다.


앞뒤 사정을 설명하자면, 이 성우님은 지명도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괴롭힘에 자주 시달리는 편인데, 당장 17년 7월 경에 '외설 방송을 한다'라는 루머와 사진이 돌아서, 방송에서 문제의 방송 사진을 들이대며 '나한테 그런 가슴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고'라고 일축한 바 있었고(실제로 그 방송 한 방으로 루머가 정리됨), 트위터 계정 주소도 빼앗긴 적이 있고(현재 주소는 그로 인해 변경된 것), 나중에는 형제를 사칭하는 사람까지 등장해서 분노의 트윗을 날린 바도 있습니다. 이번에 나온 이야기는, 다시 돌아온 외설 방송 루머였습니다.


평범한 악플이나 루머 정도는 대미지 없이 넘기는 멘탈인데, 문제는 이번엔 그 악성 메시지가 문제의 역린을 제대로 건드려버린 것이었습니다. 17년에는 막 방송을 시작했을 무렵이었고, 농담이 다소 섞인 위의 일갈로 이야기가 정리됐었는데, 하필 이번에는 성별 문제로 한창 고민을 하고 있던 와중에 소식이 들어오는 바람에 멘탈이 제대로 깨진 거였죠. 그렇지 않아도 살아오는 내내 자신의 성별에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고, FtM 임을 공개할지 고민하고 있던 와중에, "여성의 '性'을 무기로 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이 상황을 설명하는 내내 울먹이는 목소리였습니다.


상황 설명과 정리를 마치고, 본인의 고민을 털어놓으면서 나온 말이, '사무소측에서도 이제 서른 살도 되었고, 분명하게 FtM임을 공개하자는 이야기가 되고 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성우가 방송 켜고 울었다는 이야기가 알음알음 퍼져나가면서, '우리 성우의 성정체성은 남성이고 조만간 공개가 될 것이다'라는 이야기도 아오키 시키 팬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 됐습니다. 다만 빈말로라도 성우님 지명도가 높다고는 하기 힘든 편이고, 이걸 누가 먼저 동네방네 떠드는 것도 아웃팅이 될 것이기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만 이야기가 돌았을 뿐이죠.


이미 1월 중순 시점에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었으며, 방송에서는 이 이야기가 가능하도록 허락이 나와있었음에도 3월이 된 지금 제대로 이야기가 나온 걸로 미루어보면, 실질적인 논의 자체는 훨씬 길게 이어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기간이 최소 두 달 이상으로 굉장히 길었던 점이나, 그 사이에 유튜브 업로드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등의 변화가 있었던 걸로 봐서는, 아마 업계쪽과도 어느 정도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결국 '평소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에게는 그렇게까지 갑작스러웠던 이야기도 아니고, 그렇게까지 새삼스러웠던 이야기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대외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이 FtM임을 못박았다는(그나마도 영상 28:27에 따르면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정도이고, '이것'이라고 딱 잘라 말할 의사는 없다는) 정도의 의의가 있는 것인데, 이번의 경우 유튜브로 완전히 공개가 되었으니 그에 따른 파장을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하겠습니다.


(20. 03. 07. 16:00 추가) 물론 유튜브로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고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의 무게 차이는 크기 때문에, 그동안 계속된 성우님의 고민과 그 용기가 폄하될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만 어디까지나 평소에 지켜보던 입장에서는 새삼스러울 것이 없었다는 정도의 이야기입니다.


2.

이번 공개와 관해서, 전후사정이나 본인의 언급으로 볼 때 가장 걱정했던 것이 캐릭터에게 갈 영향, 특히 그 중에서도 아스카가 받을 영향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아스카라는 캐릭터가 성우님이 가장 애정이 깊은 캐릭터임은 분명한 것이, 당장 성우를 그만두냐 마느냐 하던 와중에 매니저의 '아오키랑 딱 맞네'라는 말에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오디션을 보고 '아 이번에도 망했네' 하고 있던 와중에 붙으면서 커리어를 펴준 캐릭터이기도 하고, 라이브 전에 아스카에게 맞춰 붙임머리를 붙이고 네일을 받고, 스스로 라이브에 맞춰 굿즈도 준비해갈 정도로 열성적으로 참여하니 말이지요. 이번 데레7th 나고야돔 공연에서는 「바벨」 공연 준비를 하며 아이하라 코토미 성우님(이치노세 시키 役)과 커플 액세서리를 맞춘 바 있고, 오사카돔 공연에서는 「쌍익의 아리아」 무대를 위해 칠흑/백은 컨셉 네일아트와 귀걸이를 하고 나오기도 했습니다.


잠깐 잡설을 붙이자면, 아이하라 코토미 성우님의 경우 워낙 친하다보니 무난하게 커플 액세서리를 준비했는데, 오사카돔의 경우 아오키 시키 성우님이 워낙 붙임성이 없고 낯을 가리는 편이다 보니 우치다 마아야 성우님(칸자키 란코 役)에게 차마 '커플 액세서리 맞춰요'라는 말을 못해서 혼자 양쪽을 다 하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치다 마아야 본인은 '그... 우리도... 다른 유닛(문맥상 D-3)처럼 액세서리...'라고 회장에서 한 번, 라디오에서 한 번 언급하면서 커플 액세서리 착용 욕구를 강하게 드러내는 바람에 '중학생 커플이냐'라는 말을 듣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렇게 아스카에 대한 애정이 깊은 성우님입니다만, 유독 분명하게 선을 긋는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아스카는 여자아이'라는 점입니다.


"아스카의 1인칭이 왜 '보쿠'인지는 진심으로 궁금한 부분.

나 같은 경우, 어려서부터 자신의 성별에 위화감이 있어서 여성스러움을 강요당하는 것이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보쿠(僕)'라든지, '오레(俺)'라든지, '지분(自分)'이라든지, 여성스럽지 않은 1인칭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지만, 아스카는 언뜻 중성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완벽하게 귀여운 여자아이이고, 자신의 성별에 위화감을 가지거나 한 것도 아니니까(._.) 치마도 많이 입고! 궁금해!"*

(2016. 6. 22. 아오키 시키 성우님의 트윗)


* 역주 : 실제로 2020년 3월 7일 현재까지 아스카 카드 일러가 각전/각후 포함 47장(수영복 의상인 '로코 걸'은 하나로 계산)인데, 치마가 37장, 여성용 수영복이 2장, 상반신 가린 온천 수건이 1장, 바지가 7장으로 치마의 비율이 굉장히 높습니다. 심지어 저 '바지 7장'도 사파리 의상, 핫팬츠, 슈코랑 아리스가 같이 입고 나온 트레이닝복 등을 전부 포함한 겁니다)


"있어, 일적인 부분도. 폐를 끼치게 될 분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진짜, 예를 들면, 내가 자기 성별에 위화감을 가진 사람이라는 점 때문에, 예를 들자면, 굳이 들자면 그렇다는 건데, 아스카라든지 말이야, 1인칭이 '보쿠(ボク)'잖아. 예를 들자면 그렇다는 건데, 그런 쪽에 영향이 가는 게 싫은 거야. 중성적인 분위기도 있으니까, 아스카는. 아스카는 어디까지나 평범한 여자아이잖아. 보통의, 진짜로 순수한 여자아이인데, 거기까지 영향이 가버리는 건 정말 싫으니까…"

(2020년 1월 중순 개인방송)


아스카와 성우님의 이미지에서 적잖은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 중 하나가 1인칭이 남성형인 '보쿠'라는 점입니다. 사실 아이마스 바닥에서 이 1인칭으로 태클 걸자고 하면 마코토(보쿠), 히비키(지분), 사치코(카와이이 보쿠), 하루(오레), 스바루(오레), 아키라(지분), 리아무(보쿠) 등등 여럿에게 태클이 걸리고, 서브컬쳐에서 여성 캐릭터가 남성형 1인칭을 사용하는 거야 종종 있는 일입니다만, 아무래도 현실에서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는데다 하필이면 아이돌과 성우의 1인칭이 겹쳤다보니, 다른 요소들과 시너지를 이루어 성캐일치의 의미부여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당장 제가 하필이면 저 방송 전날 자기 직전에 일본 트위터에서 아스카 X젠더 연성을 봤던지라 저게 단순한 가정으로 들리지 않았기도 했고요.


그리고 이런저런 발언에서도 드러나듯이, 바로 그런 부분을, 성우님은 계속 걱정하신 것 같습니다.


만나게 된 것을 말 그대로 '기적'으로 칭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기적적으로 만났으며, 아오키 시키라는 인간을 성장시켰고(성우 본인 칼럼 참고. 원문, 번역), 매 공연마다 사비를 들여 최대한 닮도록 꾸미고 액세서리를 준비할 정도로 애정이 깊은 캐릭터. 그런데 나와 동일시 되고, 바로 그것 때문에 다른 이미지가 덧씌워지거나 풍평피해를 입는다면?


그래서 계속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마지막에 이르러서까지 캐릭터들 걱정을 한 것이겠죠. 그 고민은 너무도 길어졌고요.


이제는 앞으로의 상황이 어떻게 펼쳐지느냐에 달렸지만, 그 걱정이 한낱 기우에 지나지 않았기를 감히 바라봅니다.


마치며.

'그래서 네 입장은 무엇이냐'라고 물으시면… 글쎄요? 저에겐 갑작스러웠던 일도 아니고 새삼스러웠던 일도 아닌데, 뭐라 입장을 말할 것조차 없지 않을까요.


다만 내가 왜 이 성우님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그때를 돌이켜보는 기회는 되었습니다.


제가 아이마스에서 담당하는 아이돌 중 가장 소중한 셋을 꼽으라면 치하야, 카에데 씨, 아스카를 꼽습니다. 누구를 가장 좋아하느냐고 할 때 우열을 가리기는 힘듭니다만, 아스카는 치하야나 카에데 씨와는 다른 특별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때부터 좋아했고, 그 성장과정을 계속 함께 한 아이돌이라는 점이죠.


아스카의 목소리를 처음 들은 날, 담당 아이돌의 말이 '노이즈'가 아니라 분명한 '목소리'가 되었던 그날의 감동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그리고 노래 하나하나가 발매될 때의 기쁨, 라이브 뷰잉이 확정됐을 때의 즐거움, 라이브 현장 티켓에 당첨됐을 때의 환희, 오사카돔에서 쌍익의 아리아를 내 귀로 들을 때의 희열. 그 하나하나의 감정이 아직도 가슴에 살아 숨쉽니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에는, 마지막이라 생각한 순간에 받게 된 역할에 감사하며 열과 성을 다하는 한 사람의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바뀐 것이 아무 것도 없으니 제 마음 또한 바뀔 것이 없고, 그저 새삼스럽지만 인사만 전하고 싶습니다.


아스카와 만나주어서, 그 목소리가 되어주어서 너무나 감사하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요.


==========


ps. 글 쓰는 데 4시간 정도 걸렸는데, 그 사이 새벽 2시 쯤에 코이치 마코토 성우님(유우키 하루 役) 트윗이 하나 올라왔네요.


"모든 이야기를 울면서 들었지만, 성별은 그라데이션이라고 말해준 부분에서 펑펑 울었다. 자신의 성별이나 성적 지향에 관하여 고민하는 분, 꼭 아오키 시키의 이 영상을 보셨으면 해요.


그리고 바 개업해줘-!! 주 5일 갈 테니까!!"


ps2. 고민은 배송만 늦출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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