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더 가디언지'에 실린 중국 우즈키 프로듀서의 투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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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3-01, 2020 23:57에 작성됨.

https://www.youtube.com/watch?v=5JbO7-_e2DQ / 걸즈 인 더 프론티어


안녕하세요, 아이커뮤의 프로듀서 여러분. Weissmann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많은 분들이 고통받는 가운데,

하루 빨리 시국이 진정되어 평화로운 일상이 다시 찾아오기를 기원합니다. 


어제자 영국 'The Guardian'지(誌)에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와 관련하여

우한 시민 한 분을 인터뷰한 기사 가운데, '신데마스'와 관련된 기사가 있어

흥미로운 마음에 부족한 실력이나마 직접 번역 해보았습니다.


제가 전문적인 번역가가 아닌지라, 여기저기 의역과

군데군데 오역이 다소 있을 수 있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 글은 어떤 정치적 의도도, 금전적 목적도 없습니다.

다만 전세계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의 조속한 진화를 기원할 뿐입니다.

혹여나 문제가 될 시 즉시 삭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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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으로부터의 귀환': 나의 코로나바이러스 3주 투병기


2020년 2월 29일자 더 가디언 게재 / 취재/ 마이클 스탠다트 기자


타이거 예, 1월 중순경 감염 증상을 보인 21살의 한 우한 시민이 말하는 그의 투병기.


 1월 17일, 온 몸의 근육이 쑤셨다. 아마 열도 났었겠지만, 알아채지 못한 것을 보면 그렇게 심한 정도는 아니었나 보다. 그러나 내가 살던 집과 일본어를 공부하러 다니던 어학원이 우한 수산물시장(바이러스의 최초 발원지라 여겨지는 곳)에서 불과 5km 반경 이내였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보면 좀 무섭다.


 온 몸의 근육이 너무나 아파서 감기약을 좀 먹었다. 그땐 그저 단순한 감기 몸살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병의 초기에 항바이러스제 약물을 투여하여 대응했어야 했지만,  난 이때 이미 이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최적기'를 놓쳐버린 것 같다. 


 내가 어떻게 바이러스에 감염이 된 건지 알 길이 없다. 난 항상 내 학교 근처의 홍콩 요리집에서만 식사를 했고, 그 무렵 날씨가 너무나 추워서 그렇게 밖에 돌아다닌 적도 없었다. 게다가 수업을 마치고 나서 집에 돌아오면 엄청 피곤했다. 방학이 시작되면 난 기숙사가 아니라 집에서 부모님과 같이 지냈다.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쓴 것을 보고나서 며칠 뒤, 나도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다.


증상 발현과 자가 격리


 1월 21일에도 난 계속해서 온 몸이 아팠다. 아버지께 말씀드리니, 내가 뭔가 잘못된 것을 느끼시곤 집으로 당장 오라고하셨다. 그날 오후 체온을 쟀을 때, 경미하게 열이 나고있었다. 어머니는 그날 밤까지 열이 떨어지지 않으면 같이 병원에 가보자고 하셨다. 그날 밤 11시까지 열은 떨어지지 않았고, 나는 통지병원으로 갔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난 이미 병원이 환자들로 가득차 있는 것을 보았다. 거기서 나는 '사스'에 관련된 다큐멘터리에서나 보던  방호복을 의사들이 입고 있는 모습을 난생 처음으로 보았다. 뭔가 아주 불길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통지병원은 우한에 있는 최고의 병원 중 하나였으며 항상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었기에, 병원에 몰려든 많은 사람들을 보고 무섭거나 놀랍지는 않았다. 그러나 환자들이 너무 많았기에 나는 통지병원 대신 우한 호흡기병원으로 향했는데, 그것은 옳은 선택이었다.


 그때, 우한 호흡기 병원을 찾아온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거기서 나는 혈액 검사와 간 기능 검사들을 받았고 CT 촬영을 했다. CT 영상은 나의 양쪽 폐 기저부에 병리적인 양상이 나타난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난 처방받은 어떤 약들과 그 병원에서 조제된 '한방약' 캡슐들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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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한시가 봉쇄되기 시작할 무렵, 아버지는 나를 집에 지내면서 자가 격리하게 하셨다. 그때 우린 마치 영화에서 본 것처럼 집안에 음식을 쟁여둬야한다는 생각에 인스턴트 라면을 여러 봉지 샀지만 결국 아무도 먹지 않았다. 슈퍼마켓은 물자들이 충분했다. 그러나 소독제들은 결국 구할 수 없었다.


 나의 아버지는 제약회사의 회사원이셨고 어머니는  약대 출신이셨기에, 부모님께선 나의  증상을 돌보시기에 용이하셨다. 난 1월 22일부터 '자가격리 생활'을 시작했다. 내 방엔 개인 욕실과 화장실이 있었기에 매우 편리했다. 할머니께선 나를 위한 식사를 요리해주셨고 내 방안으로 음식을 넣어주실 땐 마스크를 쓰셨다. 우린 일회용 젓가락과 기타 일회용품들을 사용했고 한 번 쓰고나면 즉시 버렸다.


'최악의 시간'


 1월 25일, 나는 검진을 받았다. 그때 나는 기침이 나고 있었는데, 아주 마른 기침과 조금 노란빛의 가래가 나왔다. 감염은 폐 전체로 확대되어, 나의 증상은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똑같은 경구약들과 함께 내게 수액을 주입해주셨다. 그때 의사 선생님께서 내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의심이 된다고하셨다. 하지만 오직 '전문위원회'만이 '진단 키트'를 누구에게 사용할 지 결정할 수 있었다.   


 1월 26일부터 아침에 일어나기가 너무나 힘들어졌고 오한에 시달리며 떨기 시작했다.  난 심한 열이 나고 있음을 느꼈고, 그때 내 체온은 39도였다. 나중에서야 뉴스 보도들에서 병의 진행이 '중반기'부터 급속도로 이루어진다고 나왔지만, 내가 그 사실을 미처 알기도 전에 발열 증상은 그날 오후가 되니 사라졌다. 마치 지옥에 갔다가 다시 돌아온 느낌이었다. 1월 21일부터 26일까지의 기간은 그야말로 최악의 시간들이었다. 기침을 너무나 심하게 해댔기에 배와 등이 너무나 아팠다. 정말로 그 시기는 내 인생 최악의 시간들  중 하나다.


 그 무렵 나는 내가 뭔가 정신적인 지지를 받지않으면 도저히 견디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에서 등장인물들의 평범하고 즐거운 일상들을 봤다. 처음엔 내가 다시는 그런 일상으로 되돌아가지 못할거라 생각했지만, 애니메이션에서 나는 여주인공이 처음엔 어려운 역경에 부딪혔지만 끝내 그것을 이겨내고 그녀가 성공하는 것을 보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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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나는 2월 중순 경 일본의 유명 성우이자 애니메이션 아티스트인 '오오하시 아야카(신데마스 시마무라 우즈키역의 성우)'의 콘서트에 가기 위해 일본으로 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우한시가 봉쇄되면서 나는 모든 것이 틀렸겠거니 했다. 지난 해 나는 그녀의 솔로 공연에 참가했었고 그녀를 보고 성우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TV 쇼를 보면서 나는 그녀의 다음 콘서트를 살아서 보려면 결국 이 역경을 이겨내야한다고 느꼈다. 이런 마음가짐은 약들과 함께 정말로 내게 큰 위안과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그렇게,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에서 그녀를 만난 후 나는 다시 한 번 꿈을 꿀 수 있었다.


 1월 28일 나는 다시 한 번 검진을 받았다. 내 양쪽 폐는 이전 보다 호전된 양상을 보였다. 의사 선생님들께서 서로 의학적 소견을 의논을 하신 후, 나는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바이러스의 전파


 1월 29일 나의 형도 발열과 기침을 보이기 시작했다.  검사 결과는 마치 형의 폐에 작은 유리 조각들이 음영을 드리운 것 같았다. 그 역시 의심환자로 여겨졌다. 같은 날, 할머니도 열에 시달렸고, 나는 '검사 결과 양성'을 통보받아 공식적으로 '확진자'가 되었다. 병원에서는 무료로 내게 항-HIV(에이즈) 치료제를 5일치 주었고, 내 가족들 역시 처방된 약들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나의 증상이 호전되고 병원에 병상이 부족해지면서 나는 집에서 자가격리하라는 말을 들었고, 그렇게 나는 수액 치료를 중단했다.


 나의 형은 2월 2일 재검에서 양성 판정을 받았고, 나의 할머니는 4일간 고열에 시달리시다 회복되셨다. 할머니는 검진을 받지 않으셨고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셨지만, 그들 모두 약을 먹었다. 내 형도 결국은 완치되어 바이러스 음성 판정을 받았다.


 2월 4일, CT 영상은 내 폐가 계속 호전됨을  보여주었고 기침도 멈췄다. 나는 또 다시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를 받았고 약을 더 처방받았다. 다음날 나는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의사들의 권고에 따라 다시 한 번 검사를 진행했다. 2월 7일, 다시 한  번 음성 판정을 받고서야 나는 완치 선고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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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키양과 우즈키양의 성우분을 통해 힘겨운 자가격리 기간을 이겨낸

어느 우즈키P 우한 시민분의 인터뷰였습니다.


애니메이션과 캐릭터가 지닌 힘은 사람을 꿈꾸게 하고, 살아가게 한다는 걸까요.

분명 지금은 힘겹고 어려운 시기지만 반드시 이겨내리라 믿습니다.


역경에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두 발로 나아가는 많은 '신데렐라'들처럼.

우린 다시 나아갈 것입니다.


여태까지 그래왔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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