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기 안드로이드는 태몽을 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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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9-12, 2019 12:49에 작성됨.

안녕하세요 프로듀서님. Weissmann 입니다. 프로듀서님 모두 즐거운 추석 연휴 보내고 계신지요. 근무를 하신다면 빠른 퇴근을, 휴가를 가셨다면 귀성길 혹은 귀경길 모두 안전하게 다녀오시길 바라겠습니다.


 추석을 맞아 특선 영화로 드니 빌뇌브 감독의 '블레이드러너2049'가 무료 상영하고 있길래 감상하게 되었는데, 결론적으로 원작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나 고전 영화 '블레이드러너 1982'의 문제의식을 진지하게 계승하면서도 사뭇 결이 다른 느낌의 속편이라 무척 신선한 느낌이었습니다.


1. 영상미와 배경


 마음에 드는 색감과 구도가 정말 많았답니다. 이전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정교한 컴퓨터 그래픽 기술과 80년대와는 또다른 미래적인 디자인이 1982년 영화보다 더 먼 미래라는 느낌을 잘 전해 주었으며, 황량하고 디스토피아적 느낌의 작중 배경 로스앤젤레스를 원작 소설의 느낌처럼 고독하고 쓸쓸하게 그려낸 점이 좋았습니다.


2. 등장 인물


 '케이'(라이언 고슬링)라는 원작에는 없던 오리지널 캐릭터가 주인공이 되어 새로운 인물과 빌런들이 다수 등장하여 흥미로웠습니다. 감정적이고 매사 고뇌하던 전작의 주인공 데커드(해리슨 포드)와 달리 레플리컨트인 케이는 처음엔 순종적이고 무감정한 모습을 보이지만, 그 역시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점차 인간화 되어가는 점이 입체적이라 좋았습니다. 다만 조금 어이없을 정도로 너무나 허망하게 죽어나간 엑스트라들( 기업 총수의 비서 한 명에게 죄다 죽어나가는 미래 LAPD 수뇌부...)은 좀 아쉽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작품의 플롯이 보다 주인공에게 집중되고 선명해졌지만 빌런측이 너무나 먼치킨스럽게 느껴지기도 했군요.


3. 주제 의식


이 작품의 메세지는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전작처럼 '생명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철학적 주제들을 계속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불임으로 설계된 인조인간이 인간과 사랑에 빠져 후손을 낳은 '기적'을 둘러싸고, '생식' 가능한 인조 인간의 대량 생산을 통해 우주 정복을 꿈꾸는 이들과 기적의 아이를 지키고 인조인간 해방군을 조직하려는 이들 사이에서 어느 쪽도 아닌 자신만의 결정을 내리는 케이. 그에게 있어 인간다움이란 거대한 야망을 꿈꾸거나 이념의 신봉자가이 아니라 단지 사랑하는 이들을 돌보고 지키는 자 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조인간이 해방과 번식을 꿈꾼다는 점은 초창기 SF 소설의 명작, 카렐 차펙의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의 줄거리를 떠올리게 했군요. (소설 속 로봇들이 피조물의 지위를 벗어나 스스로를 자유케하고 자손을 낳는 창조자의 위치에 서면서 인간은 몰락하지요.)


 갓 태어난 신타입 여성 레플리컨트가 불임이라는 이유로. 가차없이 배를 갈라 죽여버리는 모습이나 데커드를 유혹하는데 실패하여 쓸모 없어진 인조인간을 무표정하게 쏘아 제거하는 모습에서 흔히 말하는 '호모 사케르'의 모습을 섬뜩하게 그린 것도 작품의 주제의식을 부각시켜 주는 장치들 같았답니다.


4. 가상을 사랑할 수 있는가


 블레이드러너 2049는 인간, 인조 인간의 두 진영 사이 갈등이 주가 되던 전작에 이어 하나의 진영을 더 추가합니다. 0과 1로 만들어진 홀로그램 연인 '조이(아나 데 아르미스)' 입니다. 마치 선풍적인 인기를 끈 러브플러스 시리즈처럼 곁에 두고 함께 살아가는 가상의 여자친구인 그녀는 작중에서 유일하게 항상 케이만을 생각하고 그를 보살피는 존재입니다. 비록 피와 살은 없지만 언제 어디서나 저장 장치에서 재생만 하면 튀어나와 마치 진짜 사람처럼 실시간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그녀는 말 그대로 '포터블 러버(휴대용 연인)'라 부를 수 있겠군요. 


 케이를 맹목적으로 사랑하도록 설계된 탓도 있지만, 스스로도 프로그램이라는 자각을 가지고 있기에 그 한계를 넘고자 타인의 몸을 빌어 케이와 성관계를 할 정도로 적극적인 면은 꽤나 놀라웠습니다. (육체가 없으면 빌리면 된다!)


 물론 후반부에 가면 그러한 조이의 행동들 역시 모두 계산된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돌발적인 행동(시스템 에러)였는지 모호해지는 부분이 오지만, 빌런에 의해 조이가 삭제당해 사망한 후 극대노한 케이가 결국 조이의 복수를 위해 몸을 내던지는 모습에서 사랑의 광범위한 정의를 다시금 느끼게 되었습니다. (최애캐를 짓밟힌 오타쿠, 통한의 복수극!)


 5. 마치며


 높은 완성도에도 처참한 흥행성적과 무관심 속에 사라졌다, 재조명되어 극찬을 받았기에 저주받은 걸작이라 불리는 블레이드러너. 워낙 명작 영화라 속편에 대한 우려가 많았지만 개봉당시 높은 평가와 신선하다는 평이 많아서 꼭 한 번 보고싶던 영화였는데 무척 흥미롭게 잘 보았답니다. 

 너무나 거대한 적들과 초라한 주인공. 고도의 화려한 과학 기술과 한없이 삭막하고 피폐한 사람들의 삶. 우리의 시간으로는 훨씬 진보된 문명의 그쪽이 미래이겠지만, 인간다운 삶을 갈망하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과거인 지금이 그들의 미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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