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법이라는 것은 범국가단위 유희왕 게임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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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21, 2019 16:58에 작성됨.

중간고사 준비한다고 민법만 내리 나흘째 보고 있다가 아래에 있는 유희왕 글을 보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법이라 함은, 그야말로 범 국가단위의 유희왕 게임이 아닌가.


이게 웬 헛소리냐고요? 사실 제가 준비하는 중간고사도 그렇고, 기본적으로 이 법정 싸움이라는 게 주장과 항변으로 이뤄지다보니…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이 가상 사례의 당사자들은 보통 甲, 乙 등으로 표시하는데… 귀찮으니 一, 二, 三…으로 하겠습니다.


[주어진 사실]

이치노세(一ノ瀬)는 니노미야(二宮)로부터 니노미야 소유의 에쿠스테를 담보로 미후네(三船) 파이넨싱으로부터 1만엔을 대출하는 행위에 대한 대리권을 수여받았습니다. 이때 니노미야는 이치노세에게 대리권을 주었다는 표시로 자신의 신분증을 에쿠스테와 함께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치노세는 니노미야의 신분증을 이용해 자신이 니노미야에게서 에쿠스테의 매매에 관해 대리권을 받았다고 속여, 그 에쿠스테를 시죠(四条)에게 판매하고 대가로 라멘향 향수 배합법을 받았습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니노미야는 시죠에게 에쿠스테의 반환을 청구하게 됩니다.

(다만, 미성년자의 행위에 대한 취소권은 논하지 않음을 전제합니다. 등장하는 전원은 성년으로 간주합니다.)


그러면 대충 이런 그림이 나옵니다.

원고 : 니노미야 아스카

피고 : 시죠 타카네

청구요지 : 피고 시죠 타카네는 원고 니노미야 아스카에게 에쿠스테를 반환하라.


이 때, 한국 민법을 적용할 때 니노미야와 시죠 사이의 다툼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느냐 하면


~ 주장 ~

니노미야 : 민법 제213조를 오픈.

민법 제213조 [소유물반환청구권] 소유자는 그 소유에 속한 물건을 점유한 자에 대하여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점유자가 그 물건을 점유할 권리가 있는 때에는 반환을 거부할 수 있다.

이 사건 에쿠스테의 소유권은 바로 나, 원고 니노미야 아스카에게 있는 바, 피고는 에쿠스테를 반환해야 할 것이다.


~ 항변 ~

시죠 : 무슨 말씀을. 그 소유권은 이제 저에게 있습니다. 민법 제114조를 오픈.

민법 제114조 [대리행위의 효력] ① 대리인이 그 권한 내에서 본인을 위한 것임을 표시한 의사표시는 직접 본인에 대하여 효력이 생긴다.

이치노세 시키는 분명 당신의 대리인이었지요. 그렇다면 그가 한 행위는 당신에 대하여 직접 효력이 생길 것이고, 판매행위 역시 그러합니다. 그녀를 통하여 에쿠스테를 구입한 이상, 이것은 이제 제 소유물이라 해야 타당하지 않을런지…?


~ 재항변 ~

니노미야 : 이의있다! 민법 제130조를 오픈!

민법 제130조 [무권대리] 대리권 없는 자가 타인의 대리인으로 한 계약은 본인이 이를 추인하지 아니하면 본인에 대하여 효력이 없다.

시키는 애당초 그 에쿠스테를 담보로 1만엔을 대출할 것에 대해서만 대리 권한이 있었어! 나는 매매에 관해서는 대리권을 준 적이 없다고! 그 매매계약은 나에게 효력이 없어!


~ 재재항변 ~

시죠 : 과연 그럴까요? 민법 제126조를 오픈하겠습니다.

민법 제126조 [권한을 넘은 표현대리] 대리인이 그 권한 외의 법률행위를 한 경우에 제3자가 그 권한이 있다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본인은 그 행위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

※ 보충학설 : 이때 '정당한 이유'라 함은 제3자가 '선의(사실을 몰랐음), 무과실'일 것을 요구한다.

그대는 분명, 이치노세에게 에쿠스테와 함께 신분증을 주었습니다. 저는 이치노세가 대출에 대해서만 대리권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없었고(선의), 여기에 저의 잘못은 없지요(무과실). 그렇다면 이는 표현대리로서, 본인인 그대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닐지…?

니노미야 : 표현대리를 주장하는 건가… 그렇다면, 그 행위가 유효하고, 내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로군?

시죠 : 그렇습니다만…?

니노미야 : 실수했어, 시죠 씨.


~ 재재재항변 ~

니노미야 : 민법 제107조 1항 단서를 제물로, 대리권 남용을 주장하겠다.

민법 제107조 [진의 아닌 의사표시] ① … 그러나, 상대방이 표의자의 진의 아님을 알았거나 이를 알 수 있었을 경우에는 무효로 한다.

대리권 남용 이론의 제107조 1항 단서 유추적용설. 그래. 표현대리가 적용된다면 그 대리행위는 유효해. 시키가 나의 이익이 아닌 시키 자신이나 다른 자의 이익을 위해서 행한 대리행위라도, 원칙적으로는 유효하겠지. 하지만, 시키의 그런 배임적 의사를 시죠 씨가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면, 민법 제107조 제1항 단서를 유추 적용해서 나에 대한 대리행위의 효과귀속을 부인할 수 있어. 대체 내가 '라멘향 향수 배합법'을 받아서 어디에 쓰겠느냔 말이야!!! 누가 봐도 수상하잖아!!!

시죠 : 어라? 요즘 하고 다녔던 그 베이지색 에쿠스테는 라멘을 형상화 했던 게 아니었단 말인가요?

니노미야 : 아니야!!!!!


…대충 이런 식으로 싸움이 흘러갑니다. 주장, 항변, 재항변, 재재항변…


결과적으로 저기서 대리권 남용이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져 니노미야의 승소로 끝나더라도 그걸로 모든 게 끝나는 게 아니라, 이치노세가 받은 향수 배합법은 민법 제741조의 '법률상 원인 없는 이득'(부당이득)이 되어 시죠가 반환을 청구할 수 있고… 등등등 소송거리가 줄줄이 생깁니다.


위에서처럼 사실관계가 확정된 경우라면(보통은 사실관계를 놓고도 많이 싸웁니다만), 그 다음은 법조문의 해석 싸움이 되죠. 심지어 '변론주의의 원칙'이란 게 있어서, 아무리 나한테 유리한 관련 조문이 널려있더라도, '내가 주장하거나 항변하지 않으면 그건 염두에 두지 않고 재판'하게 됩니다. (일부 예외는 있습니다만,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항변에 대해서 아스ㅋ…니노미야가 재항변하지 않고 그냥 수긍했다면 무권대리고 뭐고 더 따지지 않고 그대로 타카ㄴ…시죠의 승소, 라는 식이죠.


이거… 아무리 봐도 규모가 엄청 커진 유희왕 배틀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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