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프로듀서
죄를 지었습니다⋯
댓글: 8 / 조회: 680 / 추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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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20, 2018 23:46에 작성됨.
보고 말았습니다⋯
참기로 했는데, 보고 말았습니다⋯
치하야는 아니었지만, 보고 말았습니다⋯
우연히 본 게 아닙니다, 찾아서 봤습니다⋯
절대로 그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추악한 눈으로 바라보지 않겠다는 맹세를 깨고 말았습니다⋯
자비로운 하느님, 부처님⋯
부디 저를 용서하지 말아주십시오.
벌을 내려주십시오.
철퇴로 머리를 찍어내리겠다고 하신다면, 기꺼이 저의 목을 내놓겠습니다.
지금 당장 저의 노트북의 전원을 꺼버리겠다고 하신다면, 아무말 없이 처음부터 다시 리포트를 작성하겠습니다.
겨우 그거 가지고 왜 그리 유난을 떠냐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도 모르겠습니다⋯
영문 모를 충동에 휩싸였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영문 모를 죄책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아무 이유 없이 보고 싶어했고, 동시에 누군가는 아무 이유 없이 보기 싫어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보고 싶어하는 자가 이겼습니다.
재가 두려워하는 건 처벌도 비난도 아닙니다.
이러한 일에 익숙해지고, 또 익숙해져서⋯
거기에서밖에 즐거움을 찾을 수 없게 되는 것은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8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본편과 무관한 2차창작이라는 선을 확실히 그어두는걸 추천드립니다 정신적 데미지를 줄이는 방법으로
그 신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치하야가 엄마 때리는거
라고 말 하고 뒤 돌아보지 않고 떠나고 치구사는 맞은 곳을 떨리는 손으로 만지고
그 작가 작품은 보라고 그린 곳 보다 그런 세세한 연출, 시선 이나 주변물 등을 활용하여 많은 의미와 감정을 함축하는 쪽의 능력이 매우 뛰어나요.
그냥 전업 만화가로 전직 해 주셨으면 단행본을 3권 씩 사고 싶을 정도의 사람.
2차 창작의 영역은 넓고 방대하기에 사람마다 가치관과 신념이 서로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중에 어떤 것을 취하고 버릴지 역시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아마도 이는 절대선과 절대악의 문제라기보다는 상대적인 가치차이가 아닐까 합니다.
어떤 선택을 할것인가에 대해서,
문득 체로키 인디언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사람의 내면에는 항상 서로 다른 가치관을 지닌 늑대 두마리가 싸우지만
어떤 늑대가 이기느냐는 결국 그 사람이 먹이를 주는 쪽이라는 말처럼
어떤 사람이 되느냐는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에 달려있겠죠.
프로듀서님의 선택이 프로듀서님께 행복을 가져다주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