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한 한국 첩보 영화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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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8-13, 2018 22:11에 작성됨.

 며칠 전 스파이 테마의 유닛 LIPPS 앨범 아트를 그리는 내내 '꼭 보러가야지.'라고 생각하던 영화를 오늘 보고 왔습니다.


 그동안 총격전과 베드신이 난무하는 판타스틱한 스파이물들에 식상해져있던 제게 단비같은 메마르고 차가운 첩보 스릴러 영화였습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오랜만에 정말 괜찮은 영화를 만난 것 같아 기쁘군요. 영화에 대한 자세한 정보나 배우들의 연기, 실제 역사 관련 비사나 사실들은 이미 여러 매체에 공개되었으니 주관적인 감상평으로 갈음하도록 하겠습니다. 영화 스토리 누설이나 스포일러는 거의 없는 방향으로 작성하였습니다.


1. 시대상 묘사와 배경 연출 

 공산권이 하나 둘씩 붕괴되어가던 90년대라는 특수한 시대상과 당시 두 진영 간을 관통하던 무거운 분위기를 잘 살려냈다는 생각이드네요. 장소의 변화에 따른 배경의 세세한 연출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여러 의미들을 하나 하나 생각해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대사로는 전달되지 않는 인물들의 심리나 처한 환경에 대한 정보를 효과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배경 이미지의 힘이겠죠.   


2. 말과 말이 싸우는 맛

 체호프의 권총이라는 이론처럼 극중에 권총이 등장하면 언젠가 그 총이 어떻게든 쓰여야(발사되어야) 개연성이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첩보원인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이 다루는 권총이나 (자살용) 독침, 도청장치, 녹음기 등을 비롯한 여러 첩보 장치들이 등장하지만, 가장 위력적이고 기억에 남는 무기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이 다루는 가장 날렵한 무기는 '말'입니다. 총보다 더 무서운 게 '세치 혀'라는 걸 잘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되네요. 화려한 액션과 볼거리는 없지만 탁구처럼 오가는 두 진영간의 언쟁과 기싸움이 긴장감을 잘 살려주었습니다.

    

3. 유의할 점은....중간에 장르가 변한다는 점. 

 본 영화는 두 가지 장르가 복합되어 있었습니다. 다루고 있는 소재의 특성 탓인지  시작은 첩보물이지만 결말은 정치 스릴러로 변모하는 변신을 보여주는데요, 이 때문에 영화의 흐름과 온도가 다소 바뀌는 지점이 있습니다. 시작은 차갑고 건조하지만 끝은 뜨겁고 따뜻하다랄까요. 마치 차가운 전채 요리에서 점점 뜨거운 메인 요리로 바뀌다가 마지막에는 달콤하고 은은한 디저트를 내어주는 그런 기분입니다. 한마디로 잘 짜인 코스 요리같은 스타일의 영화였습니다. 코스 요리 같은 영화를 좋아하시다면 괜찮으시겠지만, 처음과 끝의 맛이 똑같은 한상 차림 같은 선이 굵은 영화를 선호하신다면 당혹스러우실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오랜만에 한국 첩보 영화에서 신선한 시도를 본 것 같아 즐거웠습니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차갑지도 않고, '007 시리즈'처럼 시작과 끝이 아주 스파이시한 것도 아닌 둘을 오가는 색다른 매력의 첩보물, 정치 스릴러 영화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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