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프로듀서
이 닭고기는 너무 덜 익어서 마치 수비드로 조리한 것... 수비드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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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5-28, 2017 22:20에 작성됨.
(비주얼은 이래도 맛은 좋음. ㄹㅇ임.)
오랬만에 야매 수비드로 닭 요리를 해 봤습니다. 아, 수비드가 뭐냐고요?
수비드란 봉지 안에 재료를 집어넣고 밀폐한 다음 뜨신 물에 집어넣는 요리법입니다. 자세한 건 링크의 꺼라위키를 키세요.
1년 전에 일본에서 유학하던 당시, 집에 통짜 닭가슴살밖에 없어서 한 번 수비드를 시도해 본 이후 마음에 든 조리법입니다. 닭가슴살 같은 걸 수비드로 처리하면 이게 그 퍽퍽한 가슴살이 맞나 싶을 정도로 부드러워집니다. 육즙도 잘 살아있고요. 닭가슴살인지 아닌지 의심이 갈 정도로 부드러운 가슴살을 씹으면, 닭가슴살 같지 않은 부드러운 맛이 이에 찢겨나가면서 농후한 육즙이 터져나옵니다. 질겅거리는 느낌 없이, 닭가슴살 특유의 담백함을 즐기며 씹고 남은 부분을 보면, 선홍색 미오글로빈의 빛깔이 '헤헤헤... 드디어 날 봐줬구나'라고 말하는 미오의 붉어진 얼굴처럼 모습을 드러내죠.
다만 인덕션의 온도유지기능이 없으면 집에서 하기엔 여러모로 번거로워서 한국에 온 뒤로는 안 하고 있었는데, 일본 가기 전에 딱 해보게 되는군요. 그것도 닭 한마리를 통째로. 예상대로 온도 조절이 꽤나 번거로웠습니다. 약불로 틀면 괜찮다고는 해도 물이 끓어오를까 봐 불안해서 말이죠..... 사실 조금 오버쿡된 감은 있음.
원래 수비드 자체가 전용 기구가 없으면 어려운 방법인데, 이런 식으로 하면 냄비랑 지퍼백 만으로도 수비드를 할 수 있습니다. 밥통 수비드도 있긴 한데 그건 밥통을 통째로 써야 해서 논외.
아무튼, 이렇게 조금 수고를 한 만큼 부드럽고 맛있는 닭고기가 나와서 만족했습니다. 수비드로 처리하니 닭가슴살은 부드러워지고 다른 부위는 더 부드러워지고. 마지막으로 뜨겁게 달군 팬에 양면을 살짝 지져서 구운 맛을 내면 더 좋죠. 그리고 이 사진에는 안 나왔는데, 버터와 잘게 썬 양파를 굴소스랑 센 불에 볶다가 조금 나온 닭기름과 함께 졸인 소스 비슷한 것도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프로파간다 타임.
여러분 요리는 어렵지 않습니다. 부디 여러분도 도전해보세요!! 라고 말하기엔 수비드는 조금 어렵군요. 인덕션을 쓸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면 더욱이나. 그래도 오븐 대용으로 쓸 수 있으면서도 오븐과는 또 다른 맛이 있습니다. 음, 역시 한 번 도전해 보세요! 타오르는 등짝과 설거지의 무덤을 헤쳐나가야 볼 수 있는 경지도 있는 법입니다!
p.s 혹시나 관심 있으신 분들을 위한 야매 레시피
1. 닭고기를 소금, 후추, 마늘 등등과 버무린다. 정확한 양? 이 정도는 감으로 적절하게 처리하자. 요리 좀 하다보면 감각이 생긴다. 정 불안하면 싱겁게 해서 먹자. 싱거우면 나중에 더 뿌리면 그만이니. 소스로 보충하거나.
2. 버무린 닭고기를 지퍼백에 넣고, 그 안에 버터를 손톱만큼 잘라서 붙여넣자. 아, 두께는 손가락 정도. 너무 많이 넣으면 느끼하다. 참고로 버터 자를 땐 칼보단 가위를 이용하면 편하다. 우리 엄마는 버터를 칼로 잘라써서 야채볶음을 만들어버렸고, 그것은 야채볶음이 아니라 버터볶음이였다. 요리 못하는 사람이 아닌데 왜 그런 실수를 한 거야. 역시 내가 엄마보다 더 요리를 잘한다니까(엣헴)
3. 공기를 쫙 빼고 밀봉한다. 중요함. 공기가 남아서 빈 공간이 생기면, 물이 새어나와 삶아져버린다. 최대한 없애자. 팁을 주자면, 빨때로 쭉 빨면 공기 빼기가 쉽다. 폐활량을 기르자. 폐활량을 기르는 건 뭐다? 운동이다!
4. 뜨신 물을 담은 냄비에 투하한다. 끓는 물 아니다. 뜨신 물이다. 끓는 물에 하면 퍽퍽한 닭가슴살을 먹게 된다. 싫어하는 놈들에게 던져줄 거 아니면 절대로 끓는 물 쓰지 마라. 적정 온도는...... 수돗물 가장 뜨겁게 틀었을 때 수준인가? 이 부분은 가장 어렵고, 경험과 감에 의존하는 부분이 많다. 난 야매란 말이다. 전문적인 설명은 전문가한테 가.
5. 20~40분정도 뜨신 물에 둔다. 온도관리 잘 하면서, 중간중간 어느 정도 익었는지 체크해주자.
6. 다 익었다 싶으면 꺼내서 먹는다. 아직 붉은 기운이 남은 닭가슴살이 당신을 반겨준다면 축하한다. 성공이다. 맛있게 먹고 운동하자.
하얀색인데다가 평소에 보는 맛없는 닭가슴살이랑 같다? 싫어하는 사람에게 던져주자. 부모한테 주면 넌 후레데리카자식.
7. 사족 비슷한 거지만, 뜨겁게 달군 팬에 버터나 기름을 두른 후 겉에만 살짝 익혀주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지퍼백 안에 조금 고인 국물도 소스 등으로 활용 가능하니 버리지 말고 활용하자. 그거 닭육수라고. 맛있는 건데 버리면 아깝잖아.
27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사실 이전에 물 채운 그릇으로 밥통수비드를 시도한 적이 있는데 그 땐 실패했습니다.
물 온도를 계속 맞춰줘야한다는 거가 (아무런 도구도 없는 상황에서는)좀 귀찮은 일이긴 하지만 잘만 된다면 맛있고 담백한 요리를 즐길 수 있지요.
물 온도 맞추는 건 상당히 번거롭습니다. 가능하면 온도계를 쓰거나, 인덕션 등에 있는 온도 유지 기능을 사용하는 걸 추천합니다. 저도 가스불에 온도계도 없이 하면서 조금 고생했습니다.
요점은, 외부 접촉이 차단된 상태에서 물이 끓지 않는 수준의 중고온에 노출되는 거죠. 열이 강하면 밀폐 상태에서라도 안의 육즙이 상하지만, 열이 은은하면 육즙은 크게 상하지 않고, 혹은 천천히 상하면서 결과적으로는 육즙과 육질을 보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 물에 닿으면 육즙이고 육질이고 상관없이 그냥 삶은 것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밀폐환경이 요구되는 이유죠.
처음에는 어려운 거 한다던지, 무조건 이거 꼭 한다!! 라던지 하는 것 보단 좋아하는 것 위주로 하시면 조금 접근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비싸군요. 역시 인덕션이랑 온도계 조합이 편해보입니다.
문장을 보고 충격받은건 오랜만인데요... 저는 그만 무릎을 탁! 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