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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진 이라는 일드를 보면서 사소한 요소에서 씁쓸함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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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26, 2017 15:21에 작성됨.
뭐 대정봉환 같은 자기 집안 일인 막말역사를 뭐라고 하지는 않지만,
아마 1화였나 2화였나에서 타치바나 사키가 진이 말하는 세균 등의 내용을 바로바로 받아적는 부분도 있고 전반적으로 한자를 포함한 글자가 굉장히 널리 쓰이더군요.
속된 말로 하자면 한낱 장사꾼들도 글자 적힌 천을 문 앞에 차양으로 쓰는 것을 보니 확실히 1800년대의 한반도에 비하면 크게 문맹도가 낮았구나...... 하고. 또 남녀귀천 무관하게 가나와 한문이라는 통일된 글자를 쓰는데다 간단한 표음문자라고 할 수 있는 가나는 널리 쓰일 수 있어서 지식 전파 효율이 당대에는 높았죠.
뭐 상업의 경제구조 중요도가 꽤 높은 편이었던 일본 특유의 구조 덕에 문물의 전파와 순환도 빨랐겠고요.
반면 조선 시대의 한국은 문맹이나마 면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 싶죠. 한국말에 맞는 글이라 쉽게 배울 수 있었다던 한글도 암클 취급 받으면서 어떤 왕후조차 입궐하면서 언문이나 간신히 떼었다는 묘사가 있는 것으로 보아 확실히 문자의 전파가 늦고 문자의 통일성도 낮다고 봐야 하는 시점이었고...... 확실히 문자가 통일되지 않고 복잡한 표의문자인 한문에만 의지하는데다 고착성이 강한 농업이 경제구조의 중심을 굉장히 높은 비율로 틀어쥐어서 지식의 전파와 순환을 느리게 하는데 일조하기도 했고......
지식의 전파와 배급 속도가 좀 더 빨랐더라면, 배급 능력이 좀 더 좋았다면. 과연...... 지금의 실제 역사선과는 조금 다르지 않았을까...... 이러니 그런 일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작은 요소였습니다.
13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문자의 통일성이라.....세계 4대 문명에 속하고, 로마 멸망 이후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전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중국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언어였는데, 저는 그게 가나보다 뒤쳐진다고는 생각하기 힘듭니다. 문자 보급률에 관한 것도, 천민들조차 한문으로 글을 쓰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고을에 붙는 방문을 읽는 수준까지는 되었다고 하니까 우리가 생각하는것처럼 낮은 편은 아니었지요.
사실 조선에서 상류층이 한글을 그렇게 귀하게 여기지 않은 것은 조선 자체의 한문학 이해도 수준이 높았던 것이 크다고 보고(이건 이미 고려 이전에도 상당했으니), '경전언어'로서의 당대 한문의 역할을 생각해 볼 때 그렇게까지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은 안 듭니다. 실제로 최하층 향리들도 이두를 익혔던 만큼 문자의 전파가 안 된 큰 이유는 오히려 그들에 크게 필요가 없어서에 가깝다고 보여지네요.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 시대니 말이죠.
애초에 한일간 차이가 벌어진 것은 영토와 인구에서 오는 자연스런 경제력 차이+서양에 대한 접근 및 대응도 차이라고 봐서..
즉, 조선과 일본의 격차가 벌어진 것은 문맹률보다는 다른 요인들에게서 찾는 게 옳겠죠. 특히 DeathKira님 말씀대로 영토와 인구만 봐도 차이가 벌어지는지라...=_=;(특히 그 격차가 나는게 17세기부터였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