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복에 보면 더 재밌는) 그동안 쓴 먹방씬을 모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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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07, 2017 16:22에 작성됨.

토스트

개장하기전 이미 준비해두었던 반죽은 빵 틀 안에서 곱게 발효되어 몽글몽글 솟아올라 둥근 형태가 되어있었다. 오븐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 뜨끈한 공기가 밀려나온다. 고운 반죽을 담은 빵틀이 오븐 속으로 밀려들어가고서 히이라기는 평소답지 않게 제빵실에서 나왔다.
식빵을 기다리며 달궈둔 팬에 식용유를 조금 붓고 양파를 볶기 시작했다. 양파를 볶아 갈색 빛이 서서히 올라오기 시작하자, 불을 끄고 식빵을 꺼내어 잘라본다. 식빵을 자르자 갈색겉면 속에 가려졌던 흰색 빵이 순수한 처녀의 살결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손으로 속을 잡아보자 반대편의 손가락이 서로 맞닿을 정도로 부드럽게 들어갔다가 손을 떼니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금 되돌아온다. 식빵을 찢어보자 말랑말랑한 속살이 결을 드러내며 주욱 찢어진다. 오늘도 좋은 식빵이다.
양파를 식빵위에 얹고 그 위에 저염 치즈와 햄을 살짝 얹어 다시 오븐에 넣는다. 조금씩 치즈가 녹아가며 빵에 녹아들어가고 양파와 햄이 그 위에서 향을 더해 풍성한 느낌을 주고있다.
한편, 히이라기는 팬을 한 번 말끔히 닦아내고 다시 깨끗한 식용유를 조금 붓는다. 손에 쥔 달걀을 가볍게 싱크대에 부딪치자 톡톡, 경쾌한 소리를 내며 갈라진다. 팬 위에 투명한 흰자 위에 노른자가 흐트러지지않고 노오란 색으로 봉긋 솟아올라 자리잡자마자 소리를 내며 흰자가 하얗게 익어간다. 한 번 뒤집어 마저 익히고나서 아직 노른자가 채 익지않고 진한 노란 액체 상태인 프라이를 오븐에서 꺼낸 빵 위에 얹는다. 평소라면 미리 잘라두겠지만 오늘은 노른자를 머금은 반숙 프라이가 있으니 먹기 직전에 자르는 것이 좋다.
빵을 보자마자 기운이 솟는 듯 칼을 집어 빵을 자르는 미치루. 히이라기는 어느새 미치루의 뒤로 돌아가 머리를 다듬고 있다. 칼이 계란을 자르고 빵을 잘라내자 노른자가 새어나와 흰색 빵을 배경으로 유난히 도드라져 보인다. 그리고 바닥에 닿기도 전해 이미 흰색 빵 속으로 흡수되는 노른자. 그렇게 조금 젖어가는 빵을 감상한 미치루는 조심스럽게 토핑을 흘리지않으며 한 입 넣어본다.

 

크림빵

살짝 찬 기운이 도는 빵이 입술을 만나자 서늘한 감촉과 함께 찰기가 느껴진다. 이빨로 물자 빵이 눌려 잘리고 동시에 안에 한 가득 머금은 크림이 입 안으로 밀려나와 혀를 감싸안는다. 차가움이 혀끝에서 시작해 전체로 퍼진다. 적당한 무게감이 느껴지지만 뻑뻑하지 않은 부드러움이 혀 전체를 감싸며 동시에 은은한 달콤함이 느껴진다. 그 크림에서 오는 우유향이 입안을 가득채워 풍성한 기분을 더해주고 있다. 혀로는 크림을 느끼며 동시에 이로 빵으로 씹자, 찰기넘치는 반죽이 씹는 맛을 더하고 이미 입 안에 든 크림과 부딪쳐 섞이고 있다. 크림이 이제 녹아 흐르기 시작하고 빵이 조각나 크림을 한껏 머금었을 때, 목 뒤로 크림과 빵을 삼켜본다. 빵이 목 뒤로 넘어가며 크림의 달콤함으로 가볍게 시작해서 이내 입 안을 가득 감싼 크림이 일시에 빨려들어가 목구멍 전부를 간질이며 이내 전부 사라진다.

 

팬케이크

약불에 서서히 익으면서 반죽은 서서히 달콤한 카라멜 향이 묘하게 살짝 섞인 고소한 냄새를 만들어갔다. 급하게 두지않고 느긋하게 팬 위에 자리하던 반죽이 조금씩 끓듯 반죽이 구멍을 만들며 더운 공기를 밖으로 내놓기 시작한다. 그제서야 히이라기는 팬케이크를 다시 뒤집었다. 그 순간, 팬과 케이크 사이에서 갇혀있던 공기가 풀려나 위로 올라왔다. 이때까지 스멀스멀 피어오르기만 했던 케이크의 냄새가 확하고 풀려나 히이라기와 미치루의 얼굴을 덮쳤다.
히이라기가 건넨 칼로 케이크를 살며시 자르는 순간, 칼이 빨려들어가듯 케이크 속으로 파고들었다. 마치 벌꿀 속으로 빠진 것처럼 아무런 저항없이 칼이 케이크 속으로 파고들어 잘랐다. 다만 케이크의 푹시한 감각이 미세하게 칼을 통해 전해졌다. 한 조각을 잘라내고 칼을 떼어내자 케이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처음부터 그 모양이었던 것처럼 눌린 자국없이 되돌아와있었다. 그 단면에는 벌꿀색과 대조되는 샛노란 색이 자리하고있었다.

설탕 시럽을 묻혀 미치루가 그 것을 입안에 넣자 설탕의 달콤함이 혀를 자극하고 침을 불렀다. 그리고 그것을 씹자 스폰지같은 케이크 속에 숨어있던 시럽이 밀려나왔다. 그러나 다르다. 케이크가 씹히면서 그 고소함을 같이 내놓은 것이다. 마냥 단 것이 아니라 그 안의 무게함 있는 고소함이 균형을 잡아주고있었다. 그럼에도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한 가지 화룡정점이 있었다. 그것은 식감! 그 케이크를 씹으면서 느껴지는 그 푹신한 식감은 마치 부드러운 흙길을 고운 맨발로 사뿐사뿐 걸어다니는 그런 기분이었다.

깃털이라든가 솜이라든가 사람들이 흔히 푹신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먹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런 것들을 입에 넣고 씹으며 즐기는 기분이란! 반죽의 고소함과 설탕의 달콤함, 그리고 말할 수 없이 푹신한 식감이 그 둘을 절묘하게 한데 엮으면서 입 안에는 경쾌한 하모니가 울리고 있었다

 


카스테라

일단, 노른자와 흰자를 분리하고 그것의 거품을 낸다. 말이야 쉽지만 기계로 해도 최고강도로 오랜 시간 돌려야하는 과정. 그런 그것을 히이라기는 수동으로 내고 있다. 당장이라도 윈심분리가 일어날 것같은 패기의 소용돌이와 제빵에 집중하는 히이라기는 그가 평소에 마냥 부드럽기만한 휠체어 위의 남자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거품이 풍성해지면 설탕을 넣고 그대로 계속 거품을 낸다. 그렇게 거품이 단단해지면, 즉 머랭이 완성되면 이제 어느 정도 완성된 것이다.

 

“후우...”

 

숨을 한 번 고르고 히이라기는 박력분을 체에 걸러 노른자 위에 붓는다. 그리고는 주걱으로 몇 번 저어가며 섞다가 흰자로 만든 머랭을 넣고 다시 섞어간다. 마지막에서 청주를 조금 섞어 반죽을 서서히 완성시킨다. 버터는 넣지 않는다. 과도한 지방 등의 이유로 품질이 떨어질 우려가 높다. 때문에 달걀을 많이 넣고 부드러움을 살린다.
보통이라면 유선지를 깔고 틀에 붓는다면 끝이지만, 히이라기는 한 가지 더 추가한다. 유선지 위에 설탕 결정을 놓고 그 위에 반죽을 둔다.
오븐에 들어가 고운 노란색에서 갈색으로 탈바꿈해가는 카스테라를 보며 히이라기는 팔을 자꾸만 만졌다. 머랭을 수동으로 만들어 낸 탓인지 팔이 저릿저릿했다.
한숨을 내쉬다가 침묵하다가 팔을 만지던 히이라기는 오븐이 울리자 언제 그랬냐는 듯 빠르게 빵을 꺼내어 잘랐다. 그리고는 다시 냉장고에 둔다. 카스테라는 본래 보관성이 높아 뱃사람의 식량이었고 지금은 빵보다는 과자에 가까운 위치라 뜨거울 때 먹기보다는 차가운 상태에서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스펀지처럼 푹 눌려 부드럽게 들어가면서도 그 끝에서는 그 무게감을 잃지 않으면서 끊어진다. 물때는 부드럽지만 그 무게감을 잃지않고 끊는 순간에는 마치 떡을 조금 연상시키는 쫄깃함이 들어있다. 순간, 입 안의 혀에 닿자 우유와 달걀이 부드럽게 얽힌 빵 냄새 위에서 달달한 꿀 향이 퍼진다. 갓 구운 빵의 바삭함이나 고소함은 느껴지지 않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 좋다. 방금전 촉감으로 느꼈던 식감이 그대로 후각으로 이어지는 듯한 느낌. 그대로 미각 그러나 방금전 카스테라를 베어물었을 때 느껴졌던 세박자의 식감을 기억나서 이가 간질거린다. 그 유혹을 참지못하고 본격적으로 입을 움직이며 카스테라를 씹자 그 안에서는 여전히 그 부드러움과 쫄깃함이 공존하는 카스테라의 식감이 느껴진다. 그렇게 잘게 부서진 카스테라는 입 안에서 가득 퍼져 돌아다니며 입 안을 간질인다. 부드러운 촉감의 빵이 입을 간질일 때마다 은은하게 꿀 향에 어울리는 단맛이 입안에 서서히 퍼져나가 가득해진다. 그러나, 한 가지 또다른 식감이 수줍게 드러내어 그 존재감을 과시한다. 차갑고 달다. 바삭하다기 보다는 아삭한 느낌.


“어머?”

 

미치루를 제외한 다른 아이돌들이 자신의 손에 들린 카스테라를 유심히 보며 그 새로운 식감에 집중하자 그제서야 보였다. 설탕. 카스테라의 맨 마지막 바닥에 설탕을 한 겹 놓고 구운 것이다. 자칫하면 밋밋할지도 모르는 카스테라 안에서 전혀 색다른 자극적인 식감을 더하고 있다.
설탕이 전부 녹아 카스테라 조각들 사이로 흡수되었을 때 쯤, 이미 빵은 뒤로 넘어가기 시작한다. 여태까지는 그 씹는 식감과 은은하게 퍼지는 꿀의 향과 맛을 즐겼다면 그것을 넘기는 순간은 다르다. 이미 퍼질 대로 퍼진 부드러운 꿀향이 목 뒤로 퍼지고 코에도 그 향이 가득하다. 한층 더 풍성하게 퍼진 향에 이어 설탕을 머금은 카스테라들이 넘어가는 순간, 달걀과 우유에 퍼진 듯한 부드러운 꿀향이 폭발하듯 올라온다. 마냥 맛이 강하지도 않고 달기만 한 것도 아니고 은은하게 퍼지기만했던 그 꿀향이 전혀 부담없는 상태로 느껴지지만 그 강렬함은 마치 여태까지 솔솔 흘리던 맛이 이제서야 일시에 폭발해버린 듯 하다. 그리고 넘어가는 카스테라는 이미 설탕물에 촉촉하게 젖어 기존의 무게감이나 묵직함없이 부드러움만이 남았다. 그리고 카스테라의 맛이 조금 내려앉고 입 안에서 사라지려는 순간, 그 부드러운 빵은 목구멍의 양쪽 끝 가장 연하고 민감한 곳을 훝으며 내려간다. 마치 고운 손가락 하나가 옅게 훝어주는 듯한 느낌! 맛과 향은 금새 가시지만 그 촉감은 오랜 여운으로 남는다.

 

“우웃....”

 

그 여운을 음미하며 아가씨들이 우아하게 손을 가지런히 두지만, 이미 히이라기는 알고 있다. 지금쯤 입 안이 간질간질하다는 걸.
음식을 먹을 때, 정말로 좋은 식감의 음식은 그 향과 맛이 강렬하지 않아도 좋다. 아니 그래야 한다. 왜냐? 그 식감을 자칫 해칠 수 있다. 단순히 씹는 다는 것 자체로 행복하고 기분 좋은 음식은 삼키고 나면 이와 잇몸, 그리고 목의 살결이 간지럽고 떨리는 기분을 준다. 촉감으로 직접 느낀 감각이 기억에 맴돌고, 다시 한 번 느끼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런 욕구가 채워지지 못하면 입 안은 때때로 간지러움을 느낀다.

 

박하차

아직 조금 살아있는 새벽의 시원한 향. 이슬이 맺히기 시작하고 어둠이 떠오르는 해에 밀려 조금 가신 시간의 푸른 풀이 내뿜는 상쾌한 향.

박하다.

뜨뜻하지만 김을 올라오지 않는 온도의 물에 박하 찻잎을 우려내고서 그것을 조금 마셨다. 상쾌했다.

박하차는 순간의 맛이 일품이다. 입술에 처음 맞닿는 순간, 뜨뜻하고 점점 뜨거워진다. 그러나 코는 전혀 그렇지 않다. 막힌 것이 바람에 밀려 시원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밀려나는 기분. 박하의 상쾌한 향은 막힌 것을 열어주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입으로 들어가면, 혀와 입 앞에서는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박하차는 목 뒤 쪽에서 느낀다. 그 상쾌함은 목 뒤에서 크게 느껴지는데 마치 눈동자가 놀라서 커지듯 목이 열리는 기분이다. 그리고 그것을 삼키고 나면 그 따뜻한 물이 가슴이 데워주면서도 물을 따라 퍼지는 향은 가슴부터 입 안까지 가득 남아 시원했다.

따뜻하지만 시원한 차. 그것이 박하차였다.

한 모금 한 모금을 그냥 삼키기 아까워, 호흡을 깊고 안정적으로 가다듬었다. 향을 더 진하게, 깊이 느끼기 위해서. 그러다보면 한 잔이 다 비워졌을 때, 그 호흡에 따라 마음이 진정된다.

 


소보로
입에 넣고 씹었을때, 처음은 뻑뻑하고 맛이 없다. 빵도 조금은 말라있고 겉은 물기없이 조금 질기다. 그러나 천천히 곱씹으며 기다리면 서서히 드러난다. 그 겉면이 눌리고 잘리면 우유와 계란이 섞이고 그 공기방울이 촘촘하게 나있는 부드러운, 그리고 묵직한 우유빵이 드러난다. 그때부터는 입의 움직임과 식감이 편안해진다. 포송포송한 기분. 그리고 또 다른 것. 소보로의 상징. 위에 놓인 소보로가 바스라져 빵에서 떨어진다. 가루가 되고 침에 섞여 퍼진다. 입안에 가득하다. 물엿으로 만들어진 단 맛에 땅콩과 아몬드의 고소한 풍미가 더해져 침샘을 자극한다. 입천장에서만 느껴지던 고소한 달콤함이 바스러진다. 가루가 부서지면서 단 맛이 오르고 땅콩이 씹히면서 아삭한 식감과 고소한 땅콩의 향이 올라온다. 그리고 가루에 섞여있던 버터. 그 것이 부서지고 씹히면 입 안에서는 땅콩버터의 그 맛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것은 이제 침에 섞여 밑으로 내려온다. 충분히 씹혀서, 마치 충분히 다져서 부드러워지듯, 빵은 이미 씹혀서 부드러워졌다. 소보루가 내려와 빵을 휘감고 이제는 하나가 된다. 한 번 씹을 때마다 일단 소보로의 땅콩맛이 느껴지고 이빨에 눌려 빵속의 우유향이 나온다. 자칫 과도하게 달아버릴지도 모를 맛을 우유가 절묘하게 밸런스를 잡아준다.
두툼한 우유빵과 땅콩으로 빚어낸 달콤한 소보루 그것을 이제 삼키면, 깊은 맛이나 목구멍에서의 맛은 없다. 하지만, 든든하다. 입 안에서는 달콤하고 고소한 기분이다가 그 속에서는 빈 속을 든든하게 잡아준다.
두 번째에서는 박하차를 마셔본다. 박하차가 들어오자 빵은 푹 젖는다. 아무리 빵을 씹어도 적신 것보다는못하지. 차를 흠뻑 먹고 풀어진다. 그리고 아무 맛이 없다. 박하차는 본래 그 목넘기에서 나오는 향이 진가니까. 입 안에서 머무는 동안은 별 맛이랄게 없다.
그러나 그리고 차를 삼키면, 그때는 한층다르다. 뭐랄까. 그 땅콩의 단맛이 일시에 분출하듯 나온다. 마치 차 속에서 숨을 참았다는 듯 나와서 입 안을 가득 에워싸고 있다. 가슴과 입 안은 박하차가 상쾌하게 쓸고 나가 텅 빈 상태인데도 아직 소보로빵은 건재하다. 오히려 빵이 젖어 전에 느껴지던 미묘한 질긴 식감도 없다.
박하차로 속을 상쾌하게 씻어내고 그 뒤에 몰려오는 젖은 빵의 식감과 폭발하듯 몰려오는 땅콩의 단 맛. 그것은 그냥 먹어서는 느낄 수 없는 또다른 소보로빵이다.

 


크루와상
크루와상을 꺼내어 손으로 잡아 찢어본다. 다른 빵은 힘을 따라 덩이 채 떨어져나가지만 크루와상은 껍질이 벗겨지듯 겉면이 돌아가면서 찢어진다. 그 안에는 얕은 막들이 서로 아슬아슬하게 붙어 내부는 마치 꿀벌집마냥 여러 구멍이 만들어져있다.

입안에서 처음 들어가면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크루와상은 토핑의 화려한 맛으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제빵사가 수십번의 반죽 속에서 겹치고 겹쳐서 만들어낸 결. 그 결에서 오는 식감과 씹으면 씹을 수록 배어나오는 빵 그 자체의 맛에 있다.

입 안에서도 그 결들은 제각각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서로 분리되지않는다. 처음에는 그 결의 층들과 그 사이를 채운 빈 공란이 혀와 이에서 느껴지다가 씹어갈수록 그 결들은 오히려 하나로 뭉쳐서 점점 빵을 이루어간다. 처음에는 단순히 밀가루 피막처럼 느껴질 지라도 씹을수록 하나의 빵 덩어리로 만들어지면서 빵의 맛이 깊어진다.

마치 ‘손님이 먹음’으로서 완성되는 듯 한 빵.

그리고 마지막에는 점점 부드러운 버터빵이 완성된다. 달콤하게 달아올라 빵 속에 녹아내린 노란색 버터의 단 맛과 미세한 향이 점점 피어오른다.

크루와상의 맛은 부드러움 그 자체, 명확한 단계를 표현할 바 없이 자연스럽게 입 안에서 생겨나고 그 맛이 입 전체를 지배하지 않는다. 과하지 않게 고소함 속에 달달한 밀가루와 버터맛이 입에 있다가도 목구멍 너머로 사라지면 동시에 그 맛도 사라진다. 깔끔하게 입 안에 남은 것이 없어 다음을 먹기에도 부담이 없다.

다시금 입 안에 크루와상을 두고 스프를 한 입 마셔본다. 조금 짭조름 할 지도 모르는 스프는 크루와상의 삼삼한 맛에 흡수되어 마냥 부드럽게 넘어간다. 그리고 결과 결 사이로 스프를 한 껏 받아들인 크루와상은 그 진가가 발휘된다.

스프의 간을 맞추고 그 맛을 내보이면서도 빵 본연이 흐트러지 않는다. 식빵은 스프를 만나면 입 안에서 흐물흐물하게 퍼지는 경향이 있다. 크루와상은 스프를 한 껏 머금어 한 번 한 번 씹힐 때마다 스프를 내뿜는다. 그럼에도 전혀 퍼지거나 흐물거리지않는다. 오히려 그 스프를 모두 내놓고서 크루와상의 맛은 한층 깊어진다. 식감을 유지하면서도 밀가루와 버터가 하나로 얽힌 고소하고도 달달한 맛이 깊게 우러나와 더 진하게 느껴진다.

깊이 넘기지 말고 서서히 씹어가면서 느끼고 다른 음식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본연의 자세를 흐트리지 않는 빵. 마치 어떤 상황에서도 흐트러지않고 존재감을 발휘하는 귀족과도 같았다.

베이글

테이블에 쟁반을 내려놓고 히이라기는 베이글을 잘랐다. 베이글은 마치 곱게 포장된 느낌이다. 균열이나 흐트러짐 하나없이 하나의 가죽과 같아보이기까지한다. 베이글을 잡고서 손가락에 힘을 주어도 쉽사리 형태가 흐트러지지않는다. 조금 더 힘을 주자 그제서야 매끈한 표면에 균열이 일어나고 약간 회백색이 느껴지는 속살이 드러난다.

부스러기 하나 떨어지지않고 속살마저도 서로 찢어지지않기위해 늘어나고 있다. 매끄러운 베이글을 조금 잘라내어 히이라기는 사에에게 먼저 권했다.

아무런 첨가물이나 토핑, 양념이 느껴지지않는 순수한 밀가루의 향. 오븐에서 구워져 고소해진 빵냄새만이 진하게 풍긴다. 마치 흙으로 빚어져 불길이 눈에 선하게 보이는 뜨거운 화덕이 연상되는 투박함이기도하다.
크루와상은 부드러움과 결들이 살아있는 식감. 그리고 버터와 우유가 진하게 느껴지는 달달함이 매력이다. 결들이 아슬아슬하게 서로 붙어 그 텅 빈 공간을 이루어 부드러움을 만들지만 베이글은 다르다. 일단 부드럽지않다. 곁면은 조금 질겨 완고하다는 표면이 어울리고 속살은 부스러기 하나 없을 정도로 찰기가 있다. 그 속은 구멍이 없다. 촘촘하게 치밀한 구성이라 빵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백설기를 연상케하는 모습이다. 그 식감도 입 안에 가득한 풍성함과 크루와상은 주지못한 묵직함이 특징이다.

때문에 씹어도 덩어리가 잘리지않는다. 겉면에서는 구운 빵 겉면에서 느껴지는 고소함. 불이 속에 채 닿기 전에 속살의 보호하고 자신은 갈변함으로서 보리나 밀가루를 그대로 씹는 듯한 고소함이 느껴진다.

조금지나 겉면이 허물어지고 속살이 밖으로 나왔을 때 쯤이면, 속살이 이에 사알짝 달라붙는 느낌의 쫄깃한 식감과 동시에 중후한 느낌의 단 맛을 내놓는다.

겉면이 씹히면서 속살이 안 씹힐리는 없다. 그저 그 맛이 처음에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겉면이 다 사라질 때 쯤에는 속살을 입 안에서 충분히 씹히고 녹말은 분해되어 단 맛이 묘하게 섞인 고소함을 내놓기 시작할 때 쯤이다.

입 안을 괴롭게 하는 단 맛이 아니라 빵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고소한 맛이다. 씹는 행위에 맞춰 맛의 농담이 달라진다. 몸의 리듬에 맞춰 움직는 듯한 맛이다.
크림치즈를 조금 자르듯이 떠내어 베이글에 넣어둔다. 크림치즈는 크림이라는 이름과 다르게도 베인 단면만이 조금 녹아내렸을 뿐 베이글 속에서도 무너지지않고 있다.
크림치즈의 발효된 맛, 약간 시큼한 맛이 상대적으로 심심한 베이글 위에 얹어져 혀에 자극을 가한다. 약간의 수분이 베이글 속으로 들어가 약간의 부드러움이 더해져 입이 조금은 편해진다. 크림치즈가 목 뒤로 한 발 빨리 넘어가 목을 매끄럽게 칠하고 시큼한 맛이 다하고 나면 이미 고소한 단맛을 내놓기시작한 속살이 있다. 속살에도 이미 스며들어 부드러움와 우유의 단 맛을 더하여준다.

 

도지마 롤
냉장고에서 예쁘게 손질된 나무가 연상되는 갈색 롤이 그 자태를 드러내었다. 그 위에는 수줍게 피어오른 눈꽃처럼 슈가파우더가 올라가있었고 단면으로 보이는 것은 벌꿀색 카스테라가 솜털같이 연약해보이는 크림을 에워싸고 있는 모습이었다.
칼로 지그시 누르자 롤이 맥없이 잘려나가고 크림은 그 잠깐의 스침으로 녹아내리고있었다. 그럼에도 이상하지만 크림의 찰기는 줄어들지않고서 칼에 붙어 약간 늘어나고서야 칼에 한껏 크림을 묻힌 채 떨어져나갔다.
입에 넣은 순간, 확신했다. 지금까지 먹어왔던 크림은 거짓이다. 서늘한 감촉이 혀에 붙는 순간, 그 미열을 견디지 못하고 크림이 녹아내린다. 그렇게 녹아내려 입안으로 퍼진다. 아슬아슬하게 형체가 유지되던 것이 그대로 입에서 퍼져 온 안을 덮어버린다. 이것이 ‘크림’ 우유가 수줍게 모여 앉은 ‘부드러움’의 상징. 꿈에 그리던 천사의 깃털이라든가, 여인의 살결이라든가 하는 것이 무의미하다. 혀로 살짝 만나는 이것만으로도 섬세함과 부드러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입을 느리게 움직이며 맛을 음미하려고 해도 입 안에서 속절없이 녹아내리는 크림이 안타까워, 조금이라도 더 느끼려고 입을 재촉하게 되고 만다.
입을 조금씩 오물거리면서 빵을 씹어보려고 하면, 그 미세한 움직임에도 크림은 요동을 친다. 요동치면서 더,더, 퍼지고 녹아간다. 끝내는 그 혀가 크림 속에서 헤엄치는 기분. 빵을 이미 흠뻑 젖었다. 이로 씹을 것도 없이 지그시 눌러주면 빵은 힘없이 풀어지는 리본처럼 무너져내린다. 그리고 그때쯤, 목 뒤에서 ‘스르륵’이라는 소리가 소리없이 고요하게 울려퍼지면서 크림이 저너머로 흘러가고 작별인사처럼 단맛이 조금 풍긴다.
남은 빵은 크림의 향을 머금고 촉촉하게 입에서 굴러다니기 시작한다. 크림에서 느끼지못한 무게함이 느껴지는 식감이 이에서 살그머니 느껴지다가 크림의 느끼함이 올라오기 전, 빵은 그 달콤한 카스테라의 촉촉한 달콤함을 흘리며 같이 사라진다.

입 안에서는 여리디 여린 섬세한 식감으로 입과 혀를 춤추게 만들면서 마지막의 마지막에서는 달콤하지만 전혀 다른 달콤함을 흘리고만다.

이 생크림롤의 가장 훌륭하고 가장 나쁜 점은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하다. 입 안에는 그 어떤 자국도 남아있지않다. 크림에 젖고 잘게 씹힌 그 빵은 그 부스러기 조차 남지 않았다.
목 안 쪽 뒤가 간지럽다. 살짝 두근대는 것도 같다. 목 뒤에서만 살그머니 느낄 수 있던 단맛이 감촉이 아직도 아른거린다. 애처롭게 마지막에 나누었던 애인의 작별인사처럼 그 롤의 맛이 계속 아른거리지만 그럼에도 채워지지않은 아쉬움이 끝없이 남아 한숨을 내쉬게한다.

 

코코아
천천히 움직이는 적갈색 표면은 마치 아스카를 최면에 빠트리려는 유혹과도 같았다. 히이라기가 한 모금, 한 모금 코코아를 마실때마다 떠오른다. 그 코코아의 맛이! 따뜻하게 데워져 묘한 단맛도 내놓는 우유가 입안을 가득채우고 그 부드러운 풍미는 분명 가진 자의 여유와도 같은 기분을 줄 것이다. 그리고 우유의 풍미 속에서 흘러나오는 초콜릿의 향. 설탕을 마구 넣은 것 같은 단맛이 아니다. 우유의 풍미를 해치지않고 그 위에 살며시 얹어진 듯한 초콜릿 향은 먹는 이의 마음을 고양시킬 것이고 넘어가면서 느껴지는 약간의 씁쓸함은 입 안을 깔끔하게 정리할 것이다....!

 

슈크림

비록 코코아는 아니었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나을지도 모르는 히이라기의 슈크림. 그것을 먹을 기회에 기뻐하는 마음을 숨기고 아스카는 남들과는 다른 속도로 슈크림을 앞에 두고 천천히 손에 쥐어 올렸다. 슈크림의 빵에서는 짙거나 깊은 냄새가 나지 않고 바삭하게 구워져 미묘하게 단내가 섞인 고소한 냄새가 올라온다.
주먹보다도 큰 슈, 손에 부스러기가 조금 묻는다.
바위같이 단단해 보이지만 손에 힘을 조금 주니 그대로 약간 찌그러지려는 듯 눌린다. 윗부분 소보루 장식이 없는 부분에 칼을 넣으니 아무런 저항도 없이 그대로 들어간다. 마치 천주머니를 바늘로 찌르는 듯한 감촉을 느끼며 조심조심 칼을 움직여 반으로 쪼갠다. 황색이 도는 슈크림이 치즈라도 되는 양 양 옆으로 길게 늘어져 끊어질 기세도 없이 늘어난다. 한 입 베어물자, 이빨에서는 바삭한 쿠키의 식감이 느껴지고 혀 끝에서는 부드러운 크림이 느껴진다. 입으로 들어가자 크림의 바닐라 향이 입을 채워 코로 들어온다. 입을 움직이자 크림은 거세게 요동치며 마치 파도를 일으키는 것 같다. 그 요동에 크림은 혀와 입천장을 모두 만나 자극하고 약간 거친 빵에도 크림이 녹아들어간다. 순식간에 크림으로 뒤덮혀 바닐라 향과 부드러운 달콤함이 입 안을 한 가득 채운다. 그리고는 씹어볼 새도 없이 크림은 어느새 목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간다. 마치 따스하게 뎁힌 우유에 설탕을 조금 타먹는 듯한 목넘김이다. 우유가 들어간 홍차 한 잔이 연상되는 달달함과 부드러움을 느끼고 입 안에는 바닐라 향이 아직도 남아 크림의 여운을 전하고 크림에 녹아 버리기에는 조금 두껍고 바삭했던 쿠키가 씹힌다. 얕은 밀가루빵이 크림을 절묘하게 머금고 기분좋은 쫄깃함과 바닐라 향을 선사한다. 그 뒤에 바사삭-바사삭- 소리가 입에서 볼을 타고 올라가 귓가에 맴돌고, 고소한 쿠키가 느껴진다. 크림빵에서 느껴질 그런 것과는 전혀 다른, 아몬드나 땅콩이 조금 들어간 듯한 고소함과 바삭함이다. 귓가에서 들리는 소리와 씹을 수록 배어나오는 아몬드와 땅콩의 달콤함이 점점 씹는 즐거움을 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씹을 때마다 시나브로 목에는 전혀 부담이 없이 넘어가버리고 만다. 텅 빈 입 안에는 한창 자극된 목과 혀가 침을 내놓고, 달달한 바닐라 향이 슬그머니 올라는 듯하다. 입술에 남은 크림을 혀로 슬며시 닦아내며 아쉬움을 달래본다.

 

에그타르트
약간 연보라빛을 띠는 창백한 피부의 손가락이 노락색을 담은 파이를 들어올린다. 고운 연갈색 파이가 그릇처럼 갈색을 머금은 노란색을 담고있다. 윤기가 흐르는 노란색 타르트를 집어올리자 파이의 밀가루 향과 달걀의 달달한 향이 묘하게 섞여 맡는 이의 하모니를 이루고있다. 한 입 베어물자 그 속에 숨겨져 있던 카스타드 크림이 나타난다. 수줍지도 않다. 당당하게 타르트의 속을 한가득 채우고있다. 입 안에서는 타르트의 겉부분을 씹자, 크림과 온기를 머금어 약간 촉촉해졌으나 본연의 바삭함을 잃지 않고있다. 씹을 때 마다, 파이가 으깨질 때마다 나는 소리가 양 뺨을 자극하면서 귓가까지 올라간다. 어디 그뿐인가, 약간 탱글탱글하다고 느껴지는 윗면의 달걀과 그 위에 살며시 얹어진 시럽이 자극을 더한다. 커스타드 크림이 마저 입 안에서 섞이면 달걀향이 살며시 배가되어 입 안을 넘어 코로 들이닥치고 부드럽게 일렁이는 듯한 달콤함이 입 안 전체로 퍼진다. 파이가 아직도 바삭하게 씹히는 와중에, 크림은 너무 흐물거리지도 않은 채로 푹신한 느낌을 주고있다. 파이의 식감과 카스터드의 맛을 깊이 느끼려고 입을 재촉하다보면 어느새 넘어가버린 것을 깨닫고 만다. 순식간에 목 뒤로 넘어가버린다. 목 뒤 부근에서 따뜻하면서도 풍부하기 그지없는 크림이 넘어간다. 마치 날달걀이 미끌어지는 것처럼, 쏘옥-하고 목 뒤로 넘어가버린 크림. 입 안에 남은 파이의 잔재를 씹어가며 아쉬움을 달래보지만, 커스터드 크림이 빠진 파이의 조각들에서 에그타르트 본연의 즐거움을 찾을 수는 없다. 결국에는 손을 뻗어 또 다음 것을 찾고만다.

 

메이플치즈케이크

고운 노란색 카스테라 케이크, 맨 위 층은 한가을을 연상케하는 밤색 시트가 얕게 올라가 있고 그 위로는 눈꽃같은 슈가파우더가 은은히 놓여있다.
포크에 놓인, 아니 달라붙은 케이크를 입에 넣고 포크를 서서히 잡아빼자 케이크가 천천히 늘어나며 떨어져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마치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밀가루반죽처럼 약간 흐물거리는 듯한 기분이 들지만, 쫀득하다. 분명히 그런 감각. 힘을 가하면 다시 돌아오는 탄력은 없지만 그렇다고 서로 분리되버리는 것은 아니다. 이빨로 지긋이 눌러야 그제서야 떨어져나간다. 명백히 흐물거리는 것처럼 부드럽지만 씹는 맛을 잃지않은 시트를 천천히 입에서 굴리며 조곤조곤 씹으면 카스테라 속에 스며든 달달한 치즈케이크가 느껴진다. 마치 녹아내린 치즈와 같은 식감을 더듬어 가며 즐기다보면 호박의 달달함과 묵직함이 순간, 혓바닥 위로 주르륵 쏟아져 내린다. 그제서야 입 안에 가득하게 살살 퍼져있던 향이 무엇이었나 명백히 느껴진다. 메이플시럽. 호박을 베이스로 한 단 맛 위에서메이플시럽 특유의 약간 비릿하면서도 달달한 향이 느껴진다. 케이크의 시트와는 명확히 구분되는 무게감있는 단 맛. 크림이라기는 조금 끈적해서 시럽에 더 가까운 느낌. 그럼에도 시트와 분리되는 일 없이 오히려 입 안에서 시트와 엉켜 하나가 되어만 간다. 마치 새옹심이 잘 들어간 단호박죽을 입에 넣은 느낌. 그러나 케익 특유의 찬 감촉과 푹신한 카스테라 시트의 기분이 호박죽과는 명백히 다르다는 걸 주장한다. 처음 시럽을 느낄 때, 그 안의 결정이 시나브로 느껴지기 까지해서 누군가는 조금 과한 단맛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이윽고 시트와 엉켜 그 안으로 시럽이 스며들어버리면 그런 생각은 없어지고 입 전체를 오물거리며 이 케이크를 더 넓고 깊게 느껴버리고 싶은 원초적 본능이 남는다.

 

치즈타르트

마치 고운 콘스프를 담고있는 그릇이 연상되는 자태에 경탄했다. 살며시 칼을 가져다대자 노란색 위에 얹어져있는 투명한 젤라틴층이 파르르-흔들리는 것이 보인다. 어린 시절, 자고 일어나니 함박눈이 펑펑 내려 밖에 나갔을 때 아무도 밟지않은 순수하고 두터운 그 흰 색 눈길을 제일 처음으로 밟는 느낌. 묘한 죄책감과 쾌감이 뒤섞인 감정이 타르트 하나를 통해 다시금 치솟아오르고 있었다.
칼을 밀어넣자, 주위는 단 한치도 무너지지않고 칼만은 마치 먹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이윽고 칼이 타르트 속으로 전부 들어가고나면, 타르트 위에는 한 줄기 선 만이 그어져있다. 아마 화가가 와서 붓으로 살며시 긋는다고해도 이렇게 흐트러짐없는 선은 나오지않을 것이다.
그리고 조각을 잘라내어 들어보자 그 안에 든 것은 치즈. 구멍이 자잘하게 났지만, ‘구멍’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실함은 느낄 수도 없었다. 그 깊고 널따란 파이그릇을 한가득 채우고있었다. 겉에서보면 투박한 파이에 둘러싸여 광택을 발하는 노란색이 보이지만 칼이 밀어넣고 꺼내보면 광할하기 그지없는 양의 황백색 치즈가 자태를 드러내고있는것이다. 기대와 전혀다른 색의 대비가 시각적인 탄성을 자아내고있었다.
곱게 구워진 달달한 밀가루 향을 느끼면서 입으로 살며시 타르트를 물어보면, 자그마한 거품들이 터져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입을 움직이면 치즈는 금세 허물어져 혀 아래로 밀려내려가고, 깊고 광할한 크림 밑에 살며시 깔린 파이가 씹힌다. 처음 볼때는 크림에 비하면 너무 얕지않은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파이는 절대 부족하지않다. 얉은 막이 겹치고 겹치고 쌓여서 만들어진 파이는 오히려 풍부한 기분을 가져다준다. 치즈만 먹었다면 느끼하다고 느끼거나 입 안에서 충분히 굴려보기전에 목 뒤로 넘겼을 것이다. 그러나 파이가 있다면 다르다. 파이를 씹을 수록, 입 안의 움직임을 타고 치즈는 서서히 입 안으로 퍼지고 그 맛을 내놓는다. 이윽고 아이스크림이 녹아 사라질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치즈가 녹아내리면 그제서야 한 가지 맛이 슬그머니 올라온다. 치즈 특유의 시큼함이 마치 탄산음료의 탄산이 톡-토톡-톡-하며 올라와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것 처럼 느껴진다. 이것이 치즈타르트라는 것을 잃어버리지 않게 해주지만, 더 놀라운 것은 절대로 기존의 맛을 해치지않는다는 것이다. 입 안이 이제 조금 심심해지려는 찰나에 정확히 올라와 풍미를 더하여, 마지막 순간까지 즐거움을 잃지않게끔하면, 이제 치즈크림이 사라져있다. 불 앞에 힘없이 녹아내려 흘러버린 양초처럼 스르륵-하고 내려가버렸다.
그리고 입 안에 남아있던 파이가 파이 본래의 달달한 빵냄새에 더해 치즈크림을 조금 머금은 채 입 안에 남아있다. 몇 초간 그것을 씹고나서 넘기면, 입 안은 공허하다. 많은 밀가루를 겹쳐 만든 파이이거늘, 입 안에는 단 한 치의 부스러기도 남아있지 않다. 본래 오오하라가 명문 귀족가를 상대하는 명인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식사의 마지막을 미련없이 정리해주기까지 하는 배려와 그 놀라운 솜씨가 엿보인다. 그러나 이걸 먹은 이들은 이미 기억하고 있다. 이 타르트를 입에 넣었을 때의 풍부함과 부드러움을. 그렇기에 지금, 단 한 치의 무언가도 남아있지않은 깔끔한 입은 상대적으로 공허하다고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한 숟갈 더 입에 넣는다.

 

치아바타/허브치아바타

다른 향은 없이, 밀가루 본연에 가까운 냄새가 느껴진다. 바삭하게 잘 구워진 파이의 향도 아닌 밀가루 본연의 향이다. 손으로 잡자 공기가 들어찬 주머니처럼 푸욱-하고 눌렸다가 어느 순간에 꽉 차 있는 듯한 저항감이 느껴진다. 다시 손을 떼자 바람이 들어오는 풍선처럼 빠르게 제 모습을 정돈한다. 하나의 가죽주머니와도 같은 모양새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동근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알수없는 안정감과 포만감을 준다. 칼을 밀어넣자, 찢어지지않으려는 가죽처럼 저항하다가 이내 잘리고만다. 벌어진 속은 하얗고 구멍이 송송 뚫려있다.

미치루가 힘을 주어 병을 열자, 살짝 어두운 빨간색 액체가 한가득 담겨있다. 설탕의 단 내에 딸기향이 살며시 섞여서 병 안으로 흘러나와 코를 간질인다. 코 끝을 콕콕찌르는 단 내에 아직도 어깨에 달라붙어있던 잠이 조금 달아나고 침샘이 활발하게 움직이기시작했다. 딸기잼을 새하얀 치아바타 위에 얹자 도화지 위에 홀로 끼얹어진 빨간색처럼 잼이 선명하게 두드러져 보인다.

버터마저 올리고 치아바타를 입에 넣어 깨문다. 겉은 조금 질겨, 송곳니를 조금 내밀어 힘을 준다. 이에 살짝 붙었다가 떨어지는 감촉, 여러번 씹어도 조금 눌렸다가 다시 되돌아올뿐 좀체 잘리지 않는 쫄깃함. 입 속을 한 가득 채우고 있는 묵직함. 마치 잘 만들어진 떡과 같은 식감. 이것이 올리브유를 머금은 치아바타만이 줄 수 있는 식감. 언제 먹어도 즐겁기만한 그런 식감을 쫓아 입을 한껏 우물거리다보면 혀가 잠깐 찌릿-하더니 이내 코로 기분좋은 향이 밀려온다. 치아바타의 단조로운 밀가루 향을 가리는 딸기향이다. 빵 안의 딸기잼과 버터는 식감을 해치지않고 아주 약간의 신선함을 더하는 단계에서만 머문다. 잼이 입 안을 장악해 그 맛이 너무 과해지고 딸기향은 가시기 전에 버터의 고소함이 그 안에서 묻혀있다가 잼의 뒷순서에서 서서히 올라와 입 안을 깔끔하게 덜어준다.

치아바타처럼 둥글게 부풀어오른 미치루의 뺨을 양 손바닥으로 잡고 매만지면서, 히이라기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한 번 지었다. 히이라기는 미치루가 잡은 하얀 빵 옆의 다른 것을 잡고서 미치루의 바로 앞에 위치했다.

어딘가 조그만, 그렇지만 푸르름이 가득한 밭이 떠오르는 향이다. 아, 그래. 가끔 찻잎주머니에 코를 가져다대었을 때의 기분이다. 머리가 조금 아프려고까지 하는 그런 짙은 향이 느껴진다. 조금은 거칠고 딱딱한 얕은 막에 둘러싸인 겉표면을 칼로 찔러본다. 바삭하는 소리가 잠깐 들리더니 묵직한 저항감이 칼날을 짓누르는 것이 느껴진다.
그 속살을 한번 손가락으로 눌러보자, 거친 겉과는 달리 아기의 손바닥처럼 부드럽게 푸-욱-들어갔다가 다시 돌아온다. 손가락이 오히려 조금 간지러운 느낌도 나는 것 같다.

치아바타와 같은 식감이지만, 맛은 다르다. ‘맛’, 혀끝에서만 느껴지는 맛. 치아바타의 ‘맛’은 빵보다는 잼으로 시작하는 단 맛과 버터의 고소함으로 끝나는 깔끔함이라면, 허브빵은 그 위에 하나 더 있다. 입 안에서 느껴지는 모든 맛의 단계 위에서 그걸 모두 감싸고 있는 하나의 맛이자 향. 빵 속에 들어간 허브가 입과 코를 한꺼번에 열어놓는 듯한 시원함을 주고있다. 잼의 단 향은 오히려 가끔 괴로울 수도 있다. ‘달다’라는 감각은 늘 옅으면 아쉽지만 강하면 괴롭다. 하지만 허브가 들어간 이상, 그럴 일은 없다.

 


라우겐 크루와상

도자기처럼 생긴 매끈한 표면과 진한 갈색이 특징이 빵이었다. 디저트가 아니라 밀가루와 빵, 소금으로만 빵을 만드는 그런 곳이 떠오른다. 기교도 장식도 없는 모습과 깊게 구워진 빵의 향에서 그런 투박하지만 솔직한 느낌의 빵집이 떠오른다. 더운 공기가 가득한 빵집의 문을 열었을때 그 공기가 몸을 덮치는 그때의 기분이 떠오르기까지 한다. 빵 위에 올려진 소금이 주는 약간의 짠내가 코 끝에 자극을 더한다. 손 끝에서 크루와상의 겉표면이 빠드득-소리를 내며 한 방향으로 풀린다. 마치 귀여운 강아지를 한껏 쓰다듬어줄때가 떠오르는 보드라움이 느껴진다. 소금의 짭조름함에 배가되는 고소함과 오븐의 열에 바로 노출되어 바삭해진 겉표면은 크루와상치고는 좀 자극적이며 격동적이기까지하다. 오래동안 씹기에는 조금 거친 부분이지만, 소금의 짠맛에 몰려오는 침들이 그런 난점을 해소한다. 그뿐인가. 짠맛과 고소한 맛이 만나면 느껴지는 맛은 마치 팍팍 터지는 불꽃놀이같은 기분이다. 짜니까 조심하라는 말도 듣지못하고 크루와상을 야금야금 뜯어먹다보면, 어느새 하얗게 벗겨진 크루와상이 눈 앞에 있다. 얕은 빵들이 베이컨말이처럼 돌돌 여러번 말린 크루와상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그러내는 모습이다. 촉촉하게 우유를 머금은 빵을 생각하며 야금야금 먹고있는 슈코를 보며 히이라기가 천천히 다가왔다.

 

마들렌

이빨로 지그시 눌러 소리없이 뚝-하고 부러트려본다. 깊은 꿀색 겉표면과 달리 화창한 햇살같이 맑은 노란색 속살이 드러나자 서로 틈도 내주지않고 오밀조밀 모여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입안에서 굴려보아도 전혀 젖거나 바스러지는 기색도 없는 빵을 씹어보자 뻑뻑한가 싶다가도 저항없이 짓눌린다. 위아래의 이빨이 서로 맞닿을 때마다 그 사이의 빵에서 미세하게 ‘지익-’하는 소리가 아주 미세하게 들린다. 스펀지를 누를 때 물이 빠져나오는 것 처럼 씹어갈수록 빵 속에서 알듯말듯한 달달한 느낌이 느껴진다. 그러나 살살 간지럽히는 것 같은 수준일뿐 ‘이렇다’할 맛이 명확하게 떠오르지않는다. 다만, 슬며시 느껴지는 맛이 또 나쁘지않다. 그 치밀하다 못해 튼튼하게 느껴졌던, 마들렌이 입안에서 씹히고 젖어 퍼져버리자, 그제서야 입 안에 가득, 바닐라가 떠오르는 달콤한 맛이 퍼져나간다. 그렇게 강하지는 않아 아무런 부담은 느껴지지않지만 깊어져만 가는 기분의 세밀한 달콤함. 맑은 차 한 잔이 잘 어울리는 달달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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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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