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프로듀서
조금 이상한 얘기를 할 건데, 들어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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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03, 2018 20:24에 작성됨.
여러분은, '자신의 삶이 유한하다'는 걸 자각한 적이 있나요? 있다면 언제?
초등학교 2학년 때 만화 '서유기'를 읽었어요.
오공은 언제나처럼 부하들과 즐겁게 놀다가 갑자기 울었어요. 왜 그러냐는 부하들의 질문에 '내 지금은 이랗게 즐겁지만 언젠가는 죽을 거 아니냐'고 대답했죠.
이 장면을 본 순간, 느꼈습니다. '죽는다'는 게 뭔지. 어떻게 그걸 느꼈는지 잘 설명드릴 순 없지만⋯ 느꼈습니다. 끔찍할 정도로 확실하게. 뒤따라오는 공포도 같이요.
그 뒤로 지금까지, 10년도 넘게 공포는 지워지지 않고 완전히 트라우마로 자리잡았습니다. 잠깐 눈을 감는 데에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고, 잠들 수 있는 방법은 인터넷을 하다 지쳐 잠드는 것뿐. 그마저도 영상 같은 걸 틀고 뭐든 소리를 들어야만 잠들 수 있습니다.
중학생 때 의사와 상담해서 약도 처방받았고, 고등학생 때 부모님한테 털어놓고 위로와 격려를 받기도 했지만, 다 오래 가진 못했죠.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대학생이, 즉 성인이 되고 나서는 더 심해졌습니다. 다 이상 저를 보호해주던 '부모님'이라는 울타리에서 조금씩 벗어나야만 한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겠죠. 한편으로는 벗어나기 싫어하면서도.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전 집착이 매우 강합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 잡착하고 있는 건, '삶' 그 자체입니다.
사는 게 너무 좋아요.
지금의 평범하고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이 미치도록 좋다고요. 집에 돌아오면 항상 있는 가족도, 가끔 연락하는 친구도, 1년에 한두 번 보는 친척들도 전부. 기쁜 일도 슬픈 일도 괴로운 일도 보잘것없는 일도 모두 좋아요. 너무나도 당연한 일상이, 너무나도 좋아서 견딜 수 없어요.
하지만 언젠가 그것들이 당연한 게 아니게 되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오겠죠. 큰 이변이 없다면, 아마 부모님부터 제 곁을 떠나실 거예요. 생각하기도 싫지만, 그게 자연의 섭리니까. 그리고 저도 언젠가는 사라져요. 똑같이 자연의 섭리니까.
그게⋯ 너무 싫어요. '어쩔 수가 없다'는 게.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가 저항할 도리 없이 끝을 향하고 있다고 느낄 때마다, 모든 게 꿈 같이 느껴집니다. 잠깐뿐인 허무한 꿈. 즐겁거나 슬프거나 기쁜 것, 괴로운 것도 다 한순간의 꿈이고, 현실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져요.
그럴 때마다 주위를 둘러보면, 외로워요.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처한 현실에 기뻐하거나 슬퍼하고 있는데, 혼자만 진심으로 그렇게 느끼지 못해서. 느끼긴 느끼지만, 어떤 감정이든 오래 가지 못하고 허무함에 삼켜져요.
독일의 어느 철학자가 그랬다죠. '삶이 유한하다는 걸 알기에 인간은 남은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소중히 사용한다'고. 그게, 저는 그렇지 않네요. 벌벌 떨면서 남은 나날을 세고 있을 뿐. '그 책. 그 서유기만 안 봤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텐데"라고 후회하면서.
이상하죠? 군대도 안 간, 건장한 2X세 청년인데 말이죠. 무슨 시한부 같은 소리나 하고 있고⋯ 해가 떠있는 시간이 짧은 계절에는 쉽게 우울해집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잊어버렸지만요.
모두가 즐거운 이야기를 해도 모자랄 이곳 이때에 너무 어두운 이야기를 했네요. ⋯하루만 봐주실래요? 여기에 털어놓고 싶다고 생각한 것만으로 조금은 안심이 되서.
여기서 더 주절대는 건 민폐겠죠.
오늘은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8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저도 죽기 싫어서 전뇌화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50년 안엔 되겠지 뭐...
그리고, 시험 끝나면 창댓 기다립니대
그땐 몰랐는데 의외로 저한테는 맞는 말이었습니다(..)
딱히 대단한건 암것도 없는 삶이지만 살다보니 바빠서 끝을 미리 생각하지 않게 되더군요. 사실 죽음이라는 완벽한 끝보다는 젊음의 끝이 더 두려운 것...
그래서 지금도 빡센데 더 행복에서 멀어진다면 그것만큼 두려운 건 없을지도(..) 적어도 운동이라도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런 불안도 받아들이면 됩니다. 불안한 건 당연한 거예요. 불안에 익숙해지고, 힘들면 남들에게 맡기면 돼요. 다들 그렇게 살아가니까.
책을 읽다보면 문득 마음을 울리는 글귀들이 있습니다.
어떤 문장들은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을 느낌을
문신처럼 마음에 새겨줍니다.
서유기를 통해 느끼신 죽음의 공포에 오랫동안 고통받으셨다니
모쪼록 마음에 평안이 깃드시길 바라겠습니다.
죽음과 삶....인간에게 던져지는 무수한 질문들 중 가장 근원적인 물음이자
수 많은 철학자들이 탐구해온 굉장히 사색적이고 진지한 질문이군요.
그러고보면
아무리 노력해도 이미 정해져서 바꿀 수 없는 것을 흔히 '운명'이라고 하던가요.
유사이래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해갈 수 없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그 '끝'이야말로 완벽한 운명과 다름없겠습니다.
세상의 그 모든 것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근본에는 '시간'이 자리잡고 있군요.
흐르는 시간을 잠시나마 멈출 수 있다면 죽음을 피할 수 있을텐데...
야속하게도 아직 그런 방법을 알 수 없네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과학자들의 말처럼
우주가 본래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생겨난 것을 상기해보면
결국 모든 것은 '끝'에서 시작되어 다시 '끝'으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우주적 관점에서 결국 모든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지만
인간의 시점에서는 받아들 일 수 없기에 허무함과 무상함이 뒤따르는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그리고 이러한 마음을 달래고 극복하기 위해
사람은 보다 가치있고 의미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일지도요...
숱한 죽음들을 바라보고 지나오면서
언제부턴가 죽음도 삶의 일부이고,
삶 역시 죽음의 일부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주적인 관점에서 이 별에서의 물질의 순환과 에너지의 흐름은 너무나 당연하고
삶과 죽음 역시 세상의 수 많은 현상들 중 하나라는 것을 상기해보면
극복할 수 없는 운명을 마주하더라도
조금은 덜 억울한 느낌이 들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어나야할 일이 일어난 것일 뿐이니까요.
깊이있고 철학적인 질문을 던져주셔서 무척 뜻 깊습니다.
부디 편안한 밤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군에서 전역할 때도 저렇게 말하고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