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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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프로듀서
수확의 시기.
가을 하늘 아래 벼 이삭들은 탐스럽게 익을수록 겸손히 고개를 숙인다는 오래된 거짓말의 시간이 또 다시 다가왔습니다. 실상은 잘 익은 이삭일수록 가장 먼저 목이 잘려나가는데도 말입니다. 소스라치게 차가워진 바람 속에서 무심히 흘러가는 새털구름. 화들짝 놀라 옷깃을 여미다보면 발치엔 이미 바스라진 잎새들이 한가득이네요.
생각해보면 지금의 이 별의 시간대에는 제법 여러가지 이름이 별칭으로 붙는군요. '식욕의 계절'이니 '독서의 계절'이니 하는 오래된 경구와 같은 말들은 이미 고유 명사처럼 느껴집니다. 어째서 이런 말들이 생겨난 것인지 늘 궁금증이 들었지만 뾰족한 해답은 없군요. 단지 다른 시기보다 먹거리가 풍부해지고 보다 책을 읽기에 한층 여유가 생기는 시기라기엔 이치에 맞지 않는 점이 한둘이 아니네요.
계절의 풍물시를 음미하며 지내온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딱히 가을만이 더욱 특별한 순간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봄이면 봄이어서 좋았던 것들이, 여름이면 여름이어서 좋았던 것들이 너무나도 많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만 되면 확실히 짧아진 낮의 길이 탓인지, 더욱 감성에 젖는 순간들이 많아지는 건 사실이군요. 차가 더욱 맛있어지는 시점이기도 하고요.
'독서의 가을'이라기엔, 최근 무언가를 읽어본 것이 희미한 감각만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씁쓸하게 느껴집니다. 언제부턴가 활자가 전해주는 이야기들의 한계와 여러 매체들과 비교했을 때의 진부함에 염증을 느껴서였을까요. 단순히 '시간이 없어서', '게을러서' 독서를 안 한 것이라면 차라리 좋겠습니다만, 책들이 주는 즐거움이 퇴색되어버린 감이 없지 않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글자'들의 감옥 속에서 살고 있는 셈이 아니던가요. 물론 독서는 누군가에겐 여전히 유익하고, 필요한 일이겠지만, 이토록 멋진 가을날에 유독 책상 앞으로 사람들을 붙잡아두는 건 왠지 모를 '음모'와 같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가을날을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독차지 하고 싶어하는 부류들의 음모라거나...말도 안되는 이야기겠지만요.
예전부터 '독서의 주간' 처럼 특정 시간을 강제로 '독서'에 할애해야 한다는 운동은 그다지 정감이가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더욱 공감이 되지 않는군요. 이 별에서의 삶을 읽어나가기도 바빠져서 다른 무언가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서부터 일까요. 머릿 속이 자기만의 시간들로 가득차서 타인의 생각은 받아들일 여유가 충분치 않아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독서만으로 삶의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순진한 생각은 오래전에 버려버렸답니다.
그대신 책상을 물리고 밖으로 나가 세상을 조금 더 가까이서 바라보는 일은 꽤나 유쾌하네요. 거창하게 '여행'이라기엔 조금 어설픈 산책같기도 하지만 그 어디든 '활자'로부터 해방되어 두 눈을 구속하지 않는 곳이라면 절로 두 발을 움직여 걸어보고 싶어집니다.
도시 근교의 공원에서 피처럼 붉은 잎들을 뚝뚝 떨어뜨리는 단풍이 일상 속으로 침략하는 모습도, 피서객들이 모두 떠나버린 해변에서 남겨진 쓰레기들을 혼자 남은 파도가 가지고 노는 모습도, 하루가 다르게 사람들의 복장이 몰라보게 달라져가는 풍경들도 오직 이 시기에만 볼 수 있는 것들일테니까요. 페이지 속에 눈을 가두어 둔 채 방에 갇혀서는 아마 그런 광경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겠죠.
그러고 보면 세상을 하나의 거대한 책으로 비유하는 작품은 제법 많죠. 세상 어딘가엔 진리를 담은 비밀의 문장(文章)이 새겨져 있다거나, 우리는 결국 어느 소설가의 상상 속에서 춤추는 배역들일 뿐이라는 그런 흔한 클리셰들. 어떤 상상이든 그 모습은 각자 다르겠지만 결국 삶이란 거대한 시간을 읽어나가는 과정의 일부라 보는 건 같군요. 그런 점에서 독서라는 것은 비단 '책을 읽는 것'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언제부턴가 듭니다.
모두가 페이지들 틈에서 마음의 양식을 사냥해야 한다고 천편일률로 소리칠 때, 익어가는 활자들을 수확하기 보다는 단지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보고 싶어지는 계절. 글자들이 미처 담지 못한 것들을 주으러 오늘도 책장을 덮고 책상을 물리고 밖으로 나가 봅니다.
애초엔 가을은 그 무엇의 계절도 아닌,
그저 가을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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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우수수 떨어지는 잎새들.
그러고보니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한다는
격언이 떠오르는 시기이기도 하군요.
이렇게 좋은 가을날, 부디 활자의 미궁 속에서
길을 잃지 말고 출구를 찾으시길 바라겠습니다.
그 어떤 별자리도 보이지 않는 밤하늘처럼
그렇게 아무 말 없이 다가오는 계절.
미처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도
이 별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음을 느낍니다.
자연도 사람도
시간 속에선 그 무엇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이 없군요.
두고 두고 조금씩 아껴 읽던 설렘을 느껴본지가
너무나 오래되었군요.
사실 좋은 책이 있다면 굳이 가을이 아닌,
언제 어디서 읽어도 그 맛은 변치 않겠죠.
사람들은 어째서 점차 책으로부터 멀어지는가...
단순히 답할 문제는 아니겠지만
언제부턴가 책만으로는 답을 구할 수 없는 문제들이
너무 많이 생겨버린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문득 드네요.
책상을 벗어나야지만 비로소 답이 보이는 그런 것들...
그러니 일생의 단 한 번뿐인
어느 가을날에는
잠시 책장을 접어두고 싶어질 때가 있군요.
활자 저 너머의 무언가들을 찾아서...
하지만 가을 하늘은 언제나 높고 푸르니, 굳이 방에 틀어박혀서 평소엔 흥미도 없던 책을 억지로 붙드는 자학적인 행위를 탐닉하기보단 뒷산에 도토리라도 주우러 가는 게 인생을 좀 더 무용하게 낭비하는 길이겠죠.
이래저래 중2병 느낌 나게 써봤지만 결국 제가 원하는 건 가을 산에 올라서 자연이 힘들게 맺은 결실을 약간의 수고만 들이고 싹다 강탈하고 싶은 행위 그 자체인 걸지도 모릅니다.
꼬우신가요 자연? 꼬우면 만물의 영장 하던지.
기분 좋은 발견을 자주 하게 되는
즐거운 발걸음이네요.
정말로 무자비한 계절인 '겨울'의 문턱 앞에서
각자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채비를 하는
수 많은 자연의 종들과 달리
아무런 걱정없이 한가로이 책을 읽는 생물은
인간밖에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생존'이라는 일차적인 목적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그 안일한 사고는 어쩌면 이 별을 지배하는 자들의 여유일까요.
책을 읽든 여행을 떠나든 그 모양은 달라도
모두가 가을밤을 지새는 방식일뿐,
결국 남은 건 지나버린 시간들이군요.
눈이 시릴 정도로 파아란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맑아서
녹슨 자전거 체인을 교체하고
바람 빠진 바퀴에 펌프질을 하며
정처없이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심정입니다.
굳이 페루로 가서 죽게 되는
철새들을 생각하며...
페달을 밞아 봅니다.
다가올 계절 속으로.
책이 아니어도 읽을 건 많다, 만 책으로 읽는거 아니면 안 가게 되는 영역도 엄청 많으니까요.
..물론 저도 소위 말하는 책읽기는 년단위로 가끔 읽을까 말까라서 별로 남 이야기는 아닙니다. 요새야 다른 방법도 많지만 E북으로 읽자니..묘하게 진지한 독서 기분이 안 나..
횡설수설했지만 다들 여러모로 고민 많은 시대인거겠지요. 밖에 휘둘리기보단 내 안의 소리에 좀 더 진솔하게 귀를 기울여보는게 필요한 걸지도.
저는 스스로 생각해도 책을 좀 읽어야 할 것 같기는 하지만..()
책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낍니다.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지다보면
다른 누군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
그런 점에서 어쩌면 독서 역시도 꽤나 피로를 유발하는 행위로군요.
한때는 일년 내내 손 끝에서 책을 놓은 적이 없을 정도로
독서에 푹 빠져든 적도 있었습니다만
언제부턴가 책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알 수 없는 허기가 생겼다랄까요.
뭐랄까...활자를 통한 '간접 경험'만으로는
느낄 수 없는 '직접 경험'의 강렬함에 매료되는 나날들입니다.
여행 서적을 여러 권 읽었다고 해서 과연 여행을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생각보다는 행동이 더 필요한 지금이라 느껴지네요.
활자 속 세상에서도 분명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겠지만
페이지 밖의 세상 속에서도
우리는 또 새로운 무언가를 깨닫게 되겠죠.
그렇게 한 해가 지나갑니다.
그대신 모터스포츠 팬들에게 가을은 시즌 끝을 알리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시즌이 가을에 종료되거든요.(12월초에 끝나는 F1이나 12월 중순(?)에 끝나는 WTCR은 논외)
그러고보면 가을 낙엽을 모아 책갈피로 만드는 취미는
또 하나의 가을만의 재미로군요.
도서관에서 빌린 책 속에 누군가 집어넣은 어느 가을날의
단풍잎들을 발견하는 기쁨이란...
흔히 '가을야구'라 불리는 야구의 포스트 시즌은 들어보았지만
모터 스포츠들이 가을에 끝이 난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군요.
이와는 반대로 농구는 겨울부터 시즌이 시작된다니
누군가의 끝은 또 다른 누군가의 시작인 모양입니다.
물론 어찌된 영문인지 가을에 시작해서 여름에 끝나는 대회도 있어요.(FIA WEC나 FIM EWC는 가을 시작 여름 종료입니다.)
눈부시 아침 햇살에
비친 그대의 미소가~
아름다워요~~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노오란 은행잎들이 바람에 날려가고
지나는 사람들 같이 저 멀리 가는 걸 보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 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있는 나무들 같이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 저물도록 몰랐네
날 저물도록 몰랐네
윤도현 밴드 / '가을 우체국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