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나카타의 네 여신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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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01, 2019 23:08에 작성됨.

(일본 신화에 대한 정보 출처는 일본어 위키백과입니다)


일본 창조 신화에는 "무나카타 3여신"이라 불리는 존재가 나옵니다.
아마테라스와 스사노오의 계약을 통해 현현한 것으로 『고사기』랑 『일본사기』에 기록되어 있죠.
이자나기와 이자나미 사이에서 태어난 스사노오는 아버지인 이자나기로부터 우나바라(海原)를 통치할 것을 명받습니다.
(사실 우나바라가 아닌 다른 곳이라는 설도 있다고 하지만, 일단 여기서 중요한 건 아니니 넘어가죠)
하지만 스사노오는 이를 거부하고, 어머니인 이자나미가 기거하는 네노쿠니(根の国, 황천의 나라라 불리기도 한다네요)에 가고싶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댑니다.
이 소리가 얼마나 컸으면 그 영향으로 천지가 거의 박살이 났다고 하는군요.
결국, 이에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은 이자나기는 스사노오를 더 이상 이 나라에 살게 둘 수 없다며 추방해 버립니다.


그리하여 아버지로부터 내쫓긴 스사노오는, 네노쿠니로 들어가기에 앞서 누나인 아마테라스를 한 번 보고 가자는 생각으로 아마테라스가 기거하는 하늘의 타카아마하라(高天原)에 올라갑니다.
하지만, 이 때 산천이 비명을 지르고 국토가 크게 진동하자, 아마테라스는 스사노오가 자신의 땅을 빼앗으러 오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을 품게 되죠.
스사노오는 그런 아마테라스의 의심을 풀기 위해 둘 사이에 계약을 맺게 됩니다.
아마테라스가 스사노오가 지닌 칼을 깨물어 부수고, 스사노오가 아마테라스의 구슬을 깨문 것이 바로 그것이죠.
아마테라스가 칼을 입으로 부순 뒤, 그 날숨으로부터 새로운 존재가 탄생하는데, 이들이 바로 무나카타 3여신입니다.
흠... 이야기를 알고 나니 뭔가 전개가 이상하네요.


아무튼 이들 세 여신은 아마테라스의 뜻에 따라 현계탄(玄界灘, 대한해협의 일본 쪽을 의미한다고 보시면 됩니다)에 자리잡게 되었는데요.
이러한 이들은 미치누시노무치(道主貴, 한자 상 길의 주인... 이라는 어감이 느껴지죠?)라고도 불리며, 그 이름에 걸맞게 세상의 모든 "길"을 관장하는 여신으로 모셔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항해 시의 안전과 교통안전 등을 기원할 때 숭배의 대상이 되는 존재로서 쭈욱 이어지게 되죠.
현재는 몰라도 옛날에는 육로든 해로든 먼 길을 이동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목숨을 걸어야한다고 봐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위험한 일이었으니, 길을 관장하는 이들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로 여겨졌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겠죠?
실제로 이러한 무나카타 3여신을 모시는 "무나카타 신사"가 전국적으로 널리 퍼져 있다고 합니다.


한편, 무나카타 3여신이 아마테라스의 뜻에 따라 강림한 후쿠오카 현 무나카타 시 일대에는 저 수많은 무나카타 신사의 총본산으로서 기능하는 「무나카타 대사(宗像大社)」가 지어졌고, 이는 현재까지도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2017년에는 그 신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신이 기거하는 섬] 무나카타, 오키노시마와 관련 유산군"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죠.
이러한 무나카타 대사는 오키노시마에 위치한 오키츠 궁 (沖津宮), 오오시마에 위치한 나카츠 궁 (中津宮), 그리고 규슈 본토에 위치한 헤츠 궁 (辺津宮) 의 셋으로 나뉘는데, 각각 타기리히메, 타키츠히메, 그리고 이치키시마히메를 모시고 있습니다.
그 중 오키노시마는 오키츠 궁의 영향으로 섬 전체가 신으로서 모셔지고 있다고 하는데요, 이 섬은 여성은 출입할 수 없고, 남성이라 해도 상륙 전에 어떠한 의식을 치러야 하는 모양입니다.
현재에 와서는 남녀차별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여기 기거하는 타기리히메가 여성이 상륙하면 질투심을 느낀다고 하여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군요.



아무튼, 제가 왜 갑자기 일본 신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느냐 하면... 실은 무나카타에 알려지지 않은 또다른 여신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때는 지난 3월. 친구와 부산 여행을 하다 무나카타 대사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저는 후쿠오카 현이니까 부산하고 가깝겠다, 새벽 배를 타고 당일치기(?)로 무나카타 대사 가운데 본궁인 헤츠 궁을 방문하게 됩니다.





부산항에서 배를 타고 오전 7시 반에 하카타 항에 도착한 후, 부랴부랴 버스를 타고 하카타역까지 가서 한 30분 정도 쾌속 열차를 타면 무나카타 시에 소재한 토고역에 도착합니다.
여기서 약 1시간에 1대 있는 버스를 타고 한 10분 정도 있으면 무나카타 대사 앞에 도착하게 되죠.
역 출구에서부터 Munakata Taisha Gate라고 적혀 있군요.



신사 입구에서 맞이한 석제 토리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았다는 표식도 보이네요.



기본적으로 신사는 본전, 제2궁과 제3궁, 그리고 빛에 가려서 잘 안 보이지만 제사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2궁과 제3궁은 멀리 떨어진 섬에 있는 오키츠 궁과 나카츠 궁의 규슈 본토 출장소(?) 개념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 같네요.




또, 제사장에서는 실제로 무당이 와서 제사를 지내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정기 제례는 매월 1일이랑 15일. 그리고 1월 1일과 4월 2일, 10월 3일에 큰 규모의 제사가 있다고 하네요.


참고로 이 신사에 대한 정보는 이런 안내판에 부착된 QR 코드를 통해 한국어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저는 안 봤지만요



본전 입구와 제2, 3궁의 모습.
본전 내부는 왠지 참배하는 사람들로 엄숙한 분위기가 있어서 찍을 엄두가 안 났습니다...


또, 본전 쪽에는 기념품 판매소라든지, 각종 오미쿠지나 단책을 걸 수 있는 공간도 있었습니다.
오미쿠지는 제사장 쪽에도 있었는데, 감시하는 사람 없이 양심만으로 100엔에 받고 판매하는 시스템이더군요.
완전히 양심은 아니고 감시 카메라가 있긴 했지만...



신사 규모는 가볍게 한 1시간 정도 걸으면서 감상할 수 있는 정도의 규모였습니다.
다른 시설들은 모두 옹기종기 모여있고, 그나마 제사장이 거리가 살짝 있는 정도?
그렇게 해서 본전과 제 2~3궁, 그리고 제사장까지 모두 방문을 마친 저는 다시 배를 타고 귀국하기 위해 발걸음을 뒤로 돌렸습니다.
그런데...


이봐, 거기...


뒤에서 누가 저를 부르는 소리가 나더군요.
하지만 고개를 뒤로 돌려봤자 사람이 있을 리 없죠.
제사장은 막다른 곳에 위치해있고, 제사장을 떴을 때 거기엔 저랑 친구 뿐이었으니까요.


이봐, 여기라고, 여기.


그러자 다시 들려오는 목소리. 목소리는, 아마 저기 나무 뒤에서 들려오는 듯했습니다.
사람이 있을 리가 없는데, 하는 의구심을 느끼면서도 왠지 모를 호기심에 목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자...







거기에는 양 옆머리를 당고처럼 둥그렇게 말아올린 한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근데... 굉장히 조그맣네요. 저 위에 서 있어야 겨우 저랑 눈높이가 맞을랑말랑...
제가 못 알아챌 수밖에 없었네요.



아아, 처음이야... 드디어, 날 알아보고 다가와주는 사람이 나타났어...


그런데, 제가 다가오자 왠지 모르게 기쁘게 미소짓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군요.
저 미소짓는 얼굴은 너무나도 귀여워서, 저도 모르게 마음이 누그러지고 함께 입꼬리가 올라가는 듯했습니다.
이제 슬슬 하카타항으로 돌아가 승선 수속을 밟을 준비를 해야 한다는 사실마저도 잊어버릴 정도로요.
아, 집으로 데리고 가서 키울까...


하지만, 그렇게 후와후와와키와키해진 마음은...




좋아. 그럼 어서 내게 공물을 바치도록 해.



.....뒤이은 이 아이의 한마디에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답니다.
응? 공물이라니... 대체 무슨 소리지? 눈앞에 보이는 자그마한 소녀의 당돌한 발언에 놀라 그저 벙쪄 있자...


뭐야? 내 말을 무시할 셈이야? 이 「길의 인도자」라 불리는 아츠미히메를 거역하겠다고?


아까 한 말을 다시 확인시키는 듯 다시 제게 말을 걸어오는 아이.
길의 인도자? 아츠미히메? 대체 얘는 뭐길래 제게 공물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걸까요?
일단 마음을 진정시키고 이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흐흥, 나에 대해 모른다니. 보아하니, 너는 외지인인 모양이군. 좋아, 이 몸에 대해 설명을 해 주도록 하지.

나는 무나카타 4여신의 막내인 아츠미히메라고 해.

육지의 길, 바닷길, 하늘길. 이 모든 길은 우리 무나카타가 관장하고 있지.


그리고는, 이제 나에 대해 좀 알았나? 하며 말을 마친 아츠미히메.
그런데, 잠깐. 무나카타 4여신... 이라고?


"하지만, 무나카타의 여신은 분명 3명일 텐데..."


엣?


무나카타 3여신임을 지적하자 깜짝 놀라는 소녀.
저건 진짜다... 진심으로 놀라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표정이야...



예전부터 언니하고 더부살이만 하면서 신사도 못 받았을 때부터 이상하다 했는데, 설마하니 내 존재 자체가 지워져버린 건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역시 끊임없이 정상을 갈구했던 게 문제였나...?


그리고는 끊임없이 혼잣말을 이어가는 아츠미히메.
무슨 이야긴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심각해 보이긴 하네요. 불쌍해 보이기도 하고...




에라, 모르겠다! 거두절미하고, 어서 공물이나 내놔!


하지만 이내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오고 마는군요.


아무리 존재가 지워졌다고 해도, 나 역시 길을 관장하는 자!

내게 공물을 내놓지 않으면, 너의 돌아가는 길은 결코 무사할 수 없을 것이야!


흐으음... 이렇게까지 나오니 슬슬 곤란해지는군요.
그렇게 말해도 저로서는 공물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데.......
"공물을 내놓으라고 해도... 대체 무엇을 원하는 건데?"
그래서 그렇게 물어보자,



내가 무엇을 원하냐니, 그거야 당연하잖아?

사람을 따뜻하고 두근거리게 해 주는, 부드~럽고 말라~앙말랑한 그것!

설마 그런 것도 없다고 하진 않겠지?


그러면서 왠지 모를 음흉한 웃음을 짓는 아츠미히메.
음, 부드럽고 말랑한 것이라...





그러고보니, 아까 신사에 오기 전에 편의점에서 고기만두를 하나 사 왔는데, 이거라도 한 번 줘 볼까요?







와아! 이거, 정말로 나한테 주는 거야?


이걸 줘 보니까, 아츠미히메는 정말로 깜짝 놀란 것 같네요.
아까는 내놓으라고 큰소리를 치더니, 정작 주니까 왠지 공손해진 것 같은 분위기는, 대체 뭘까요?




후히힛, 좋았어! 정말 고마워. 그럼... 잘 먹겠습니다~~~아!


그렇게 받은 고기만두를 이리저리 만지며 아, 정말 부드러워, 정말 좋아... 하는 말을 반복하는 아츠미히메를 보며 저와 친구는 신사를 떠나 무사히 귀국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이후에도 저와 친구 사이에서 심심할 때마다 이야깃거리가 되고는 하죠.
이 일을 겪은 저와 친구는 이제 알고 있습니다.
무나카타의 여신은 3명이 아니라, 사실 숨겨진 막내, 아츠미히메가 더 있다는 사실을요.
그리고 그 막내 여신은, 정말 심술쟁이에 제멋대로지만, 너무나도 귀엽다는 사실을 말이죠.
그 날의 일은,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을 겁니다.
















물론 만우절 농담입니다. 설마 진짜로 아츠미히메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P.S. 사족으로, 일본 전국에 퍼져있는 무나카타 신사들은 각기 다른 한자 표기를 사용합니다.
그 중에서 아츠밍의 출신지인 아오모리 현의 무나카타 신사의 한자 표기가 꽤 재밌는데요. 다름아닌 胸肩.
풀이해 드리자면, 가슴 흉에 어깨 견입니다.
이거랑 엮어서 생각하면, 아츠밍은 그야말로 어깨의 산등성이 너머에 보이는 가슴의 정상을 노리는 흉견(胸肩)이라 할 만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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