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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코미디 마스터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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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26, 2012 13:26에 작성됨.

페어리의 데뷔방송은 그 주의 주말, 그것도 소위 골든타임에 방송이 되었다. 오토나시 씨가 말하길 반응이 상당히 좋았다고 하는데, 나 역시 그걸 실감할 수 있었던 게 그 이후로 페어리를 섭외하려는 곳이 꽤 있었다. 물론 나도 일거리를 얻기 위해 중구난방으로 뛰어다니긴 했다만, 그리고 비록 아직까진 소소한 일들뿐이었지만, 저쪽에서 먼저 섭외를 하기 위해 연락이 왔다는 건 꽤나 고무적인 일이었다.

페스티벌까지 앞으로 일주일. 그때까지 조금이라도 더 인지도를 쌓아나가야 한다. 물론 지금까지 지나온 일들로 인해 ‘오버 마스터’라면 충분히 어필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지만.
뭐. 어쨌든, 방송이 나간 이후로 페어리의 세 사람은 약간 분주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이때를 대비해서 미리 연습을 빡빡하게 해뒀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한다.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좋은 아침!”

“안녕하세요.”

오늘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치하야와 함께 사무소로 출근. 먼저 왔던 녀석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던 와중에, 사장님께서 나와 리츠코를 사장실로 호출하셨다.

“무슨 일이십니까?”

“엇흠. 사실은 말일세. 이번에 내가 획기적인 기획안을 생각해봤는데, 들어보겠나?”

대뜸 이런 말을 하셨다. 기획안이라… 그것도 그냥 기획안이 아닌 ‘획기적인’ 기획안이다.

“페어리를 전제로 한 기획안입니까? 아니면 전부?”

“물론 우리 765프로의 모든 아이돌 제군에게 해당되는 기획안이지.”

“뭔지 궁금해지는군요.”

나는 물론이고 리츠코 역시 흥미를 가진 것 같았다. 그런 나와 리츠코의 반응에 사장님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시며,

“이제 슬슬 여름도 막바지. 더위가 한참 기승을 부릴 시기네.”

“그렇죠.”

“여름하면 역시 납량특집이 아니겠는가. 요즘 예능계도 그런 쪽의 기획이 히트를 하고 있으니 말일세.”

“그럼 애들을 대상으로 담력시험이라도 한다는 겁니까?”

“음… 그러고는 싶지만 그러기엔 시간과 예산이 부족하단 말이지. 그래서. 이걸 생각해봤다네. 아이돌 제군들을 한 명씩 방 안에서 공포영화를 보게 한 다음, 그 반응을 촬영하는 거지. 어떤가?”

대충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보았다. 재미는 충분히 보장할 것 같긴 한데. 잘못하다간 단체로 사무소 나가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인데.

“물론 이쪽에서도 너무 심하게는 하지 않을 테니, 아이돌 제군과 함께 자네도 같이 들어가는 거네.”

사장님이 하신 발언의 후폭풍은 꽤나 뒤늦게 찾아왔다.

“저, 저, 저도 같이 보는 겁니까? 그렇게 되면 대체 무슨 의미가?”

“물론. 아무리 기획이라도 어떻게 소녀에게 혼자 컴컴한 방안에서 공포영화를 보게 하겠는가?”

“하지만 말이죠… 왜 하필 제가…”

“그야 행여나 돌발상황이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대처할 수 있을 테니 당연한 게 아닌가. 옆에 든든한 사람이 함께 있다는 것이 안심이 되기도 하고. 자네. 설마 그런 걸 무서워한다든가 하는 겐가?”

“그으으으럴리가요!”

“음. 그럼 오늘 바로 실행하도록 하지. 영화는 내가 손수 준비해 두었다네.”

차마 말할 수는 없었다. 무서운 걸 좋아하긴 하지만, 그거랑 아예 겁이 없는 거랑은 다른 건데 말이다.
애초에 이거 너무 얼토당토않은 기획 아닌가? 우리 프로덕션의 유일한 양심 리츠코가 당연히 반대하는 걸 기대했지만, 놀랍게도 리츠코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날 더 당황하게 했다. 어떻게 된 거냐. 네녀석! 너만 아니면 된다는 거냐?

“그럼. 자네는 방을 세팅해놓게나. 영화와 캠코더는 모두 방 안에 있네. 그리고 리츠코 군은 오십음도 순으로 첫 번째인 아마미 군을 불러주게.”

그렇게 소동은 시작되었다.


Case 1. 아마미 하루카

나 혼자 어두운 방 안에서 오만생각을 다 하고 있는데, 하루카가 아무런 근심걱정 없는 표정으로 방 안으로 들어왔다.

“어라. 왜 방이 어두컴컴한가요?”

“분위기 조성.”

“그런가요… 역시 영화관은 어두워야겠죠!”

이 녀석 분위기가 왜 이리 밝지? 의외로 겁이 없는 건가. 라고 생각했다. 보통 영화라면 못해도 러닝 타임이 1시간 반 이상이므로, 시간상 오늘 여섯 명, 내일 여섯 명으로 각각의 반응을 모두 촬영(이라고 쓰고 도촬이라고 읽는다.)하는 것이다.
짓궂게도 딱 2인용 소파라서 어쩔 수 없이 하루카와 같이 앉게 되었다.

“자. 그럼 시작한다. 각오하라고.”

“각오…요?”

하루카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눈을 깜박였지만,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타이틀은 호러영화 마니아라면 한 번쯤은 보았을 그 영화. 호러영화의 바이블이라고까지 칭해지는 ‘엑소시스트’였다.
이봐요. 사장님. 이거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 아닙니까?

“헤에… 꽤 오래된 영화인가보네요!”

하루카의 밝은 표정은 영화가 계속 진행될수록 의아함에서, 놀라움으로 바뀌더니, 드디어 소녀의 얼굴이 흉측하게 변하는 장면에서 폭발하고 말았다.

“뭐, 뭐뭐뭐뭐뭐에요, 이거어어어어---!!!!”

“뭐긴. 공포영화지.”

“말도 안 돼! 분명 리츠코 씨가 멜로영화라고 말했단 말이에요!!”

리츠코!! 속였구나!! 이 순진한 애를! 아니. 그것도 다 사장님이 사주한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그 이후로는 아는 사람은 알다시피 명장면의 연속. 하루카는 그때마다 비명을 지르며 내 팔을 붙들고 늘어졌다. 나는 다행히 본 적이 있던 영화였기에, 그다지 무섭진 않았지만 하루카가 비명을 지를 때마다 움찔하는 건 불가항력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그렇고 하루카가 내 팔을 끌어안을 때마다 뭔가 기분 좋은 감각이 느껴지는데, 역시나 하루카는 80 이상이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필살의 계단 거꾸로 기어서 내려오기. 하루카는 눈물까지 흘리며 눈을 꼭 감고 내 팔에 얼굴을 파묻었다.

“지, 지나갔어요…?”

아직도 부들부들 떨며 물어보는 하루카. 왠지 장난기가 발동해 아직 장면이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났다고 말해버렸다. 그러자 그녀는 안심했다는 듯 한숨을 채 쉬기도 전에 뭔가 이상한 비명을 질렀다.

“휴우으아아아앗-----!!!!! 아직 나오잖아요! 이 바보! 멍청이! 날 속였어! 흐아앙…”

하루카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줄이야. 역시 사람은 극한까지 몰리면 뭔가 어두운 것에 눈을 뜨는 건가.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닌 것 같다. 하루카가 거의 통곡 수준으로 울어버리기 시작했다.

영화가 끝나고, 아직도 훌쩍이는(결말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해하리라.) 하루카를 달래느라 진땀을 빼야만 했다.

“훌쩍… 너무해요오… 프로듀서 씨… 으흑.”

“날 원망하지 마라. 원망하려면 사장님을 원망해. 이거 사장님 기획이야.”

나는 애써 다른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Case 2. 가나하 히비키

“프로듀서! 수고한다구!”

하루카가 나가면 바로 다른 녀석들에게 들킬 것 같았지만, 리츠코와 오토나시 씨의 화려한 콤비 플레이로 하루카를 빼돌려 다른 녀석들은 아직 이것이 ‘남자와 멜로 영화를 보는 상황’을 기획하는 걸로 착각하는 모양이었다. 물론 그 생각은 지금 막 방에 들어온 히비키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헤에… 외국 영화네? 그것도 꽤 오래 묵은 영화 같잖아.”

그 장면이 터지기 직전까지도 모르고 있던 하루카와는 달리, 히비키는 초반부 집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릴 때부터 감을 잡았다.

“프, 프로듀서. 이거 뭔가 다르지 않아?”

나는 침묵을 유지했다. 아니. 애초에 첫 장면에서 이상한 유물을 발견했을 때부터 의심하란 말이다, 이것들아. 척 보면 감이 안 오나?
하긴. 멜로영화라고 믿고 들어왔을 테니 상황변화를 알아채는 것이 늦을지도.

그리고 첫 번째 위기가 왔다. 히비키는 그 자리에서 앉은 채로 30cm는 뛰어 올랐다. 역시 건강계는 다르구나.

“우갸앗---!! 이거 멜로영화 아니었어?”

“응. 아냐. 너 속은 거야.”

“말도 안 돼! 난 여기서 나갈 거야!”

네. 문은 당연히 니가 여기 들어온 순간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밖에서 잠기게 되어 있습니다. 리츠코가 있거든요.

“이리 와서 봐. 사실은 너희들 놀라는 걸 찍는 게 기획이니까.”

“악취미!!”

“사장님 안건이야.”

“이, 이렇게 된 이상 절대로 놀라지 않을 거라구! 재미없게 만들어버리고 말 거야!”

라고 선언한 다음 다시 내 옆자리에 앉았지만, 그 선언은 대략 10분도 가지 않아 무너질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앉은 채로 빳빳하게 굳어서는, 입으로는 연신 뭔 말인지도 모를 오키나와 사투리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대충 ‘농담이지?’인 것 같다만.

그리고 하이라이트.
히비키는 괴성을 지르며 내 목을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이건 감촉이고 뭐고 느낄 새도 없이 목이 졸려 죽을 것 같다!

“야… 너… 날… 죽일… 컥! 떨어져!”

“아아아… 미안.”

댄스로 다져진 팔의 힘은 한순간 정신이 나가 버릴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이 녀석 기절하는 거 보기 전에 내가 먼저 기절할 뻔했다고.
결국 영화가 끝날 때엔 두 사람 모두 녹초가 되어 있었다. 한 사람은 너무 놀라서, 다른 한 사람은 그때마다 서브미션기술을 당해야 했기 때문에.

“후아… 프로듀서. 나. 진짜 놀랐다구…”

“필요 없으니까… 빨리… 빨리 나가버려.”

히비키가 팔을 좀비처럼 늘어뜨리며 나간 다음, 나도 소파에 누워서 조금 안정을 취할 시간을 가졌다. 망할 녀석.


Case 3. 키쿠치 마코토

마코토가 볼 영화는 엑소시스트가 아닌 다른 공포영화였다. 다행히 이것도 본 적 있는 영화다. 이거, 깜짝깜짝 놀라는 재미가 쏠쏠한 영화인데.

“아. 프로듀서.”

“왔구나.”

마코토 역시 멜로영화로 알고 들어온 탓인지, 벌써부터 히죽거리는 게, 나중에 쇼크가 상당하겠구만.

“저 말이죠. 영화관도 아니고, 상대가 프로듀서라고는 하지만 남자분과 함께 영화를 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 뭔가 그 동안의 꿈이 실현되었다고 할까… 기분 좋네요. 헤헷.”

“상대가 프로듀서라고는 하지만. 이라는 발언이 신경 쓰여.”

“아, 아니… 별다른 뜻은 아니고요! 딱히 프로듀서가 싫다는 말은 아닌데… 아니. 지금 내가 무슨 말을!”

얼굴을 붉히며 횡설수설하는 마코토가 귀여워서 차마 재생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다. 그래도 기획이니 해야겠지.

“자. 시작한다.”

“네!”

이 영화는 초반부가 정말 무난하게 흘러가는 영화니까. 정말 멜로영화로 착각할 정도로 말이다. 연인이 죽기 전까지는.
마코토는 ‘연인이 죽었다.’라는 것을 여주인공의 비련의 시작으로 보는 듯 약간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급작스러운 호러전개 시작. 마코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며 나를 바라보았다.

“뭐, 뭔가요. 이거. 어째 분위기가…”

그리고 무서운 장면 등장에 맞춰, 나는 일부러 화면을 가리켜 마코토의 시선을 다시 화면으로 돌리게 하며 말했다.

“호러영화.”

“@(@$)!)_$@($(*!)!!!!!”

마코토는 차마 언어라고 할 수 없는 비명을 질렀다. 아. 그랬지. 이 녀석 의외로 겁 많았지. 저번에 바다에서도 괴담에 엄청나게 끝내주는 반응 보였었고.

“이, 이런 게 어딨어요!! 분명 멜로영화라고!!”

“그거 뻥이야. 기획이야.”

“너무해!!!”

“이미 하루카와 히비키가 내게 했던 말이었지. 그리고 난 그 둘에게 똑같은 대답을 들려줬어. 이거 사장님 기획이야.”

“어째서? 어째서요??”

“…어째서냐고 내게 물어봤자.”

“전 안 볼 거에요! 안 볼 거라구요!”

마코토는 자신의 손으로 눈을 가려버렸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아시는지. 시각이 차단된 상태에서의 청각적 자극은 공포를 몇 배로 가중시키는 법이다.
결국 참다못했는지, 마코토는 눈을 가렸던 손을 슬쩍 치웠고, 타이밍 좋게 유령이 팍하고!

“우와아앗---!!”

팍하고, 마코토의 주먹이 내 안면을 정통으로 강타했다.

------------------------촬영 중지-------------------------

“………”

“………죄송해요.”

리츠코에게 전화를 한 다음, 문을 열고 일단 밖으로 나갔다. 왜냐면 그 방에는 휴지가 없었으니까.
곧 영문을 모르고 있는 녀석들은 물론, 알고 있는 하루카와 히비키까지 내 꼬락서니를 보고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응~후~후. 오빠. 그 영화. 야한 거야?”

“뭔 소리를 하는 거냐. 아미 너는.”

“그렇지 않으면 오빠가 그렇게 코피를 흘리면서 나올 리가 없잖아?”

“…차라리 그래서 흘린 거였으면 좋겠다.”

이 나이에 여고생에게 맞고 코피나 흘리다니. 진짜 눈물이 난다, 눈물이.
사장님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기획을 생각해 내신 건지. 명목상으로는 아이돌들이 놀라는 모습을 담고 싶으시다고 하셨지만, 사실 괴롭힘의 주체가 내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충 코피도 멎었고, 다음 타자는… 그 녀석인가.


Case 4. 키사라기 치하야

치하야는 평소의 무뚝뚝한 표정을 유지하며 들어왔다.

“정말… 갑자기 멜로영화 시청이라니 무슨 기획인지 모르겠네요.”

“뭐. 어쩌겠어.”

역시나 치하야의 무표정 속에는 어쩔 수 없이 하지만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이 들어있었다. 과연 저 표정이 어떻게 바뀔지, 조금 기대가 된다.

마코토와는 다르게 영화 시작부터 줄곧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치하야에게 드디어 첫 번째 장면이 시작되었다.

“뭐…죠? 이거 분명 멜로영화라고.”

“아니, 아니. 공포영화.”

“어…째서?”
“그게 기획이니까.”

“그… 그래서 다들 말은 하지 않았지만 표정이 안 좋았던 거야. 악취미군요. 이렇게 놀라는 모습을 촬영하는 것이 뭐가 도움이 되죠?”

이런 상황에서도 역시나 신랄하구나, 치하야. 하지만 나는 들었단다. 네 목소리가 살짝 떨리기 시작한 것을.
상대가 다른 누구도 아닌 치하야니까. 왠지 모르게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치하야의 침 삼키는 횟수가 많아지고, 눈도 살짝 떨리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여기서 내가 칼을 뽑아들면…

“아. 잠깐 나가봐야 할 일이 생긴 것 같네. 혼자 보고 있어.”

속으로 웃음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는데 뭔가 팔을 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슬쩍 봤더니 치하야의 손이 내 옷소매를 잡고 있었다.

“치하야. 나 가야 한다니까.”

“죄송해요. 하지만… 그다지 바쁜 일이 아니라면…”

“아니라면.”

“가, 같이 있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역시 무서워하는구나. 입가가 벌어지는 것을 초인적인 힘으로 억누른 후, 정말 어쩔 수 없다는 듯 자리에 앉았다.

“잠시만이니까.”

“감사합니다…”

그 이후 영화가 끝날 때까지 치하야는 내 소매를 놓지 않았다. 가끔씩 작은 소리로 ‘힉’이라든지 ‘큿’이라든지 작게 비명을 지르는 게 너무 귀여워서 나중에는 일부러 치하야 쪽을 보지 않도록 노력했을 정도다.

좋은 반응이다. 나도 이거 슬슬 재미있어지기 시작했어.


Case 5. 시죠 타카네

다시 영화가 바뀌었지만, 역시 본 것이었다. 나도 참 공포영화 매니아였구만. 이것도 앞의 두 영화만큼 무섭긴 하지만.
혼자 소파에 앉아 봤던 영화 계속 보는 것도 곤욕이구나. 같은 걸 생각하고 있을 때 타카네가 조용하게 방으로 들어왔다.

“수고하십니다. 프로듀서님. 잘 부탁드립니다.”

“뭘 같이 영화 보는 건데 잘 부탁드릴 것까지야.”

“후훗… 남성분과 영화는 처음입니다. 기대가 되는군요.”

그래. 나도 기대가 된다. 과연 타카네 특유의 페이스가 공포영화를 보면서도 유지될 것인지.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타카네의 이미지라면 이런 걸 무서워하지도 않을 것 같은데. 겁이라는 감정이 아예 없을 것 같단 말이지. 무서운 장면이 나와도 ‘후훗…’하고 웃어넘길 것 같다.

…라는 내 생각은 영화 시작 30분 만에 성대하게 박살나고 말았다.
타카네. 눈에 보일 정도로 떨고 있어.

“이, 이게 어찌 된 영문입니까. 프로듀서님? 저, 저는 분명히…”

지금까지 봤던 타카네의 모습 중에 가장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아니. 언급했다시피 그녀가 겁에 질린 모습 자체를 처음 봤다.

“사실은 이거. 공포영화야. 귀신이 나오는.”

“그… 그런! 저는… 안 됩니다. 귀신에는… 약해서…”

타카네에게 이런 면이 있었을 줄이야! 새로운 발견이다! 항상 조용하지만 당당했던 타카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떨리는 목소리로 기어들어갈 듯이 이야기하는 겁에 질린 소녀가 있을 뿐이었다.

“아. 그래. 나 좀 있으면 나가봐야 하니까. 너는 물론 끝까지 봐야해.”

“가, 가신단 말씀이십니까?”

“응. 사장님이랑 리츠코랑 회의할 게 있어.”

“그, 그럼 저도 함께.”

“아니, 아니. 너는 끝까지 봐야지. 그게 기획이기도 하고.”

“………”

타카네는 아무 말 없이 나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무서운 소리가 들릴 때마다 몸을 움찔거렸다.
그런 상황에서의 타카네가 무언가를 느낄 리가 없으므로, 나는 오지도 않은 메일이 온 척 하며 휴대폰을 열었다.

“아. 리츠코가 지금 오라는데. 그럼 잘 보고 있어.”

“아, 아니 됩니다!”

타카네는 그녀답지 않은 큰 소리를 내며 나를 불러 세웠다. 타카네가 이렇게 크게 소리치는 건 또 처음이었기에 놀라서 그녀를 본 나는 이내 더 크게 놀라고야 말았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것을 보고 만 것이다.

“타, 타카네…?”

“억지인 건 압니다. 이 영화가 끝날 때까지만… 아니. 적어도 저 귀신이 사라질 때까지만…”

타카네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치하야보다 몇 배는 더 극적인 반응이었다. 갑자기 내가 천하의 나쁜 놈이 된 느낌까지 들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타카네를 울려버리고 만 것이다. 물론 울기까지 하리라고는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테지만.

“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끝날 때까지 있을 테니까 그만 울라고.”

“가, 감사합니다. 프로듀서님.”

타카네는 심호흡을 하고 내가 건넨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의외네. 이런 말 하면 실례일지는 모르겠지만 타카네 너는 무서워하는 것이 없을 줄 알았어.”

“웬만한 일은 두렵지 않습니다만. 부끄럽게도 유령이라든가 귀신에는 약해서… 윽!”

아. 또 놀랐다. 장면이 바뀔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 것이 귀엽다. 타카네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되었군. 이건 수확이라면 수확인가.

영화가 끝나고, 타카네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깊게 쉬었다.

“저런 공포스러운 것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미안. 아무리 사장님 기획이었다지만, 중간부터는 나도 타카네 반응이 재미있어서 장난치기도 했고… 그렇게 놀랄 줄은 몰랐거든.”

내 양심선언에 타카네는 약간 토라진 표정을 지었다.

“프로듀서님은 짓궂으십니다.”

“아니. 근데 진짜 예상 외의 반응이었다고.”

“…다른 분들에겐 이야기하지 말아주시길.”

그래봤자 이미 캠코더 안에 다 담겨져 있지만… 지금은 말하지 않는 편이 좋겠지.

그렇게 타카네까지 끝나고. 이제 오늘의 마지막인 타카츠키. 야요이의 차례인가. 야요이도 꽤나 겁 많았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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