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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코미디 마스터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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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24, 2012 15:54에 작성됨.

♬ Day of the future - 호시이 미키


Future star
지금은 아직 미지의 꿈
얼마만큼의 세상이 넓어져


음악과 함께 미키의 목소리가 연습실을 울리기 시작했다. 내 옆에 서서 미키의 퍼포먼스를 보고 있는 두 사람의 표정으로 보아하니 이 둘 역시 미키와 같은 어필방법을 선택할 것 같은데, 여기선 내가 확실히 봐두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타카네는 입가에 미소를, 히비키는 약간 경계심이 어린 눈빛으로 각각 미키를 보고 있었기에, 나 역시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미키의 퍼포먼스에 집중했다. 역시 이 녀석. 제대로 하면 굉장하구나. 그 전에는 몰랐는데, 페어리의 프로듀스를 맡게 된 이후로 꽤 자주 느끼는 생각이다.


Good-bye every day 지금 맑아지는
마음을 비추는 기억들
언제까지나 잊지 않아
당신을

Good-bye lovelorn 목소리를 맞춰
넘어가는 생각들
계속해서 외치고 있는 것은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뭐. 애초에 미키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이 녀석은 나와 같은 케이스. 게으른 천재. 다이아의 원석. 어떻게든 할 생각이 들게만 만든다면 무엇보다 찬란하게 빛날 수 있으리라. 소위 ‘포텐이 폭발’한다는 건가. 가장 큰 문제는 그 포텐을 폭발시키기 위해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부가적인 것들을 상당히 귀찮아한다는 거지만. 그 문제에 있어서는 내가 어떻게든 해야겠지.
아이러니하구만. 나는 결국 재능을 완벽히 폭발시키기 위한 과정이 싫어서 그만두기까지 했던 걸 미키에게 강요해야 한다니. 만약 미키가 정말 내 권유대로 그 과정을 충실히 해낸다면, 내 야구에 대한 애착보다 미키의 빛나고자 하는 마음이 더 강하다는 걸 증명하는 건가. 미키가 포기를 해도, 성공을 해도, 나로서는 내 자신이 초라해지게 되는 거군. 그래도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역시 성공하는 쪽이겠지. 내가 프로듀서를 하게 된 이유가 이 녀석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밝게 빛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니까. 물론 그 중에는 미키도 포함된다. 호시이 미키(星井 美希)라는 이름처럼, 언젠가 별처럼 빛날 수 있게 최선을 다해 도와줘야지.


Good-bye memorie 이 추억
봄바람이 춤추는 양지에서
너와 함께 보냈던 Miracle
넘어서고 있어

Good-bye daylife 언젠가 지나가는
기억의 조각들
계속 달리고 있는 건
계속 강하게 있기 위해서야


미키가 오른손을 높이 들어 올리는 것을 마지막으로, 음악이 끝났다. 나와 히비키와 타카네는 빙긋 웃으며 다가오는 미키를 향해 박수를 쳐주었다.

“미키 대단한데? 나도 기합 팍 들어갔다구!”

“역시나 미키. 훌륭하군요.”

“아핫! 고마운 거야. 자, 프로듀서는 어땠어?”

“내가 오디션 심사위원이었더라도 그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을 거야. 좋은 퍼포먼스였어. 어필이 굉장히 됐다고.”

“그럼 이걸로 미키가 리더 낙점?”

“아직이다. 다른 두 사람을 보고 판단하자.”

“부- 뭐. 좋은 거야. 그럼 다음은 누구?”

미키의 물음에 타카네가 조용히 앞으로 나섰다. 오오. 타카네 역시 기대가 되는군. 타카네보다 약간 늦게 나서려던 히비키는 ‘그래. 주인공은 맨 나중에 나서는 법이라구?’라며 낙천적인 반응을 보이며 다시 내 옆에 섰다.

“저는 미키와 다른 분위기로 프로듀서의 마음을 움직여보도록 하겠습니다.”

미키와는 다른 분위기라면…
자연스럽게 밤바다에서의 ‘달의 왈츠’가 생각났다. 하지만 타카네가 그때의 일을 기억하는 이상 저번에 했던 것을 또 써먹지는 않겠지.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어느새 플레이어에서는 조용한 피아노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상냥한 양손 - 시죠 타카네


차가운 손에 이끌려
흘러가는 시간을 보내며
먼 곳을 바라보는 눈동자에
무엇이 비치고 있는 걸까


미키와는 정반대의 조용한 노래. 하지만 타카네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이것이 정답일지도 몰랐다. 미키가 별이라면 타카네는 달이라는 느낌이니까. 조용하면서도 신비로운, 별과 같은 환한 빛이지만 별빛보다 더 은은한 느낌의 빛. 비록 입을 열면 꽤나 4차원스러운 일면도 보이긴 하지만.

저번에 밤바다에서 그랬던 것처럼, 타카네의 노래에서는 뭔가 마력 같은 것이 느껴진다. 비록 장소가 연습실이고 입고 있는 옷은 트레이닝복이라지만, 그녀의 노랫소리를 듣고 있자면 그런 어색한 것들을 전부 초월해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할까.
옆에 있는 두 사람 역시 나와 같은 기분을 느끼는 건지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것 같은 표정으로 타카네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믿고 싶어 당신이 오는 것을
언젠가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느끼고 싶어 시간이 멈출 때까지
따뜻한 손으로 내게 닿아줘

차가운 손에 이끌려
흘러가는 시간을 보내며
먼 곳을 바라보는 눈동자에
무엇이 비치고 있는 걸까

무엇이 비치고 있는 걸까


노래가 끝났다. 기품 있게 고개를 숙이는 타카네를 향해 세 사람의 박수가 쏟아졌다.

“굉장해-! 역시 타카네라는 느낌?”

“뭐. 타카네라면 이 정도는 해줄 줄 알았다구.”

“감사합니다. 미키, 히비키.”

“원더풀이야! 내가 오디션 심사위원이었더라면 그 자리에서 눈물을 쏟으며 합격을 외쳤을 거다.”

“후훗… 과찬이십니다. 프로듀서님.”

“아니, 아니. 과찬이 아니야. 이거 진짜 정하기 힘들어졌는데… 그럼 마지막으로 히비키의 어필을 보도록 할까.”

“흐흥. 기다렸지? 프로듀서. 드디어 주인공의 등장이라구!”

“…히비키가 주인공이라니. 미키는 인정 못하는 거야.”

“윽. 미키 넌 일단 보고나 있어. 그럼 시작한다구.”

툴툴거리며 플레이어의 재생버튼을 누른 히비키의 표정이 일순 변한 것은 그때였다. 항상 표정변화가 다양했던 히비키였기에, 지금의 진지하다 못해 정색을 한 것 같아 보이는 표정은 나로서는 처음 보는 표정이라 꽤나 놀랐다.


♬ Is this love - 가나하 히비키


애정을 찾는 것보다 친구들과 함께 있고 싶어서
자유라는 울림이 좋았는데
저항할 수 없을 정도의 파도에 휩쓸리고 싶은 건
분명 모순된 거겠지 Crazy for you

멈추지 않는 충동에 좀 더 몸을 맡긴 채
괴로울 정도로 가슴이 아픈 이유를 알고 싶어


그야말로 폭발적인 댄스와 노래였다. 히비키의 솔로는 이걸로 두 번째 들어보지만, 전에 불렀던 곡이 히비키다운 쾌활한 곡이었다면 이 곡은 저번과의 갭이 느껴지는 강렬한 곡이었다. 이 녀석. 이제 보니까 노래도 엄청 잘하잖아? 저번 곡은 노래 특성상 그다지 노래를 잘한다는 인상을 받지는 못했는데. 생각해보면 히비키. 얼굴도 꽤 예쁜 편인데다 건강미 넘치는 구릿빛 피부에, 몸매도 좋으니 비주얼도 꽤 먹고 들어가고. 어떻게 보면 히비키도 미키 못지않은 만능 아이돌로 대성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항상 입버릇같이 ‘완벽하다구!’를 달고 다니는 녀석인데, 조금만 더 성장하면 정말 완벽한 아이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이것만으로 판단해버리기엔 이른 감이 있긴 하지만.


바라봤던 눈동자 속에 마음마저 비쳐질 것 같아서
진실된 기분을 시험받고 있는 거네
흥정 따위에 질 사랑이 아니라는 걸
거짓 없는 이 마음을 전하고 싶어

질려버린 우울한 뉴스보다 알고 싶은 건 당신의 모든 것
지금까지의 추억을 가르쳐줘
서로가 서로의 연약함을 알게 됐다면
지금부터는 두 사람의 꿈을 이야기하자


음악이 끝난 뒤, 타카네도, 미키도, 나도 당분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자 당황한 히비키는 금방 원래의 풍부한 표정으로 돌아와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 다들 왜 아무 말 없는 거야?”

“너희 세 명이 보여준 이번 어필로만 판단한다면, 리더는 정해진 것 같군.”

내 말에 미키는 살짝 새초롬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표정을 풀었다.

“으… 조금 분하긴 하지만, 히비키의 이번 퍼포먼스 대단했어. 히비키를 리더로 인정하는 거야. 하지만 못미더운 모습을 보이면 바로 바꿔달라고 할 테니까.”

“축하합니다. 히비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히비키는 그제야 자신이 이번 어필의 승자가 됐음을 인식한 모양이었다. 우쭐해진 표정으로 가슴을 쭉 펴며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흐흥! 역시! 나는 무엇을 해도 완벽하니까! 두 사람 다 나만 믿고 따라오면 문제없다구!”

“그런 강렬한 노래도 소화 가능했구나. 꽤나 놀랐다고. 이번 오버 마스터도 강렬한 느낌의 노래니까, 히비키의 보컬과 댄스가 기대되는걸. 잘해봐라. 너라면 좋은 리더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당연하지! 앞으로 엄청나게 활약해줄 테니까, 미리 칭찬해줘도 좋다구!”

그래. 히비키가 좋겠지. 사교성도 뛰어나고, 텐션도 항상 높고, 좋은 리더가 될 수 있을 거다. 가끔 막나가는 경향만 좀 자제해준다면야.
아까 미키가 별, 타카네가 달이라고 생각했었지. 그렇다면 히비키는 바로 태양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내리쬐는 햇빛처럼, 바보스러울 정도로 일직선. 항상 건강하고 자신 있게 빛나고 있는 태양이니까. 히비키가 잘 해줄 거라고 믿는다.



“자, 여기서 잠깐 휴식하자고.”

아이돌 페스티벌을 위해, 가깝게는 사흘 후에 있을 첫 데뷔무대를 위해, 페어리의 세 사람은 꽤나 강도 높은 레슨을 받고 있었다. 게다가 아직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라는 것도 한 몫 해서, 세 사람 모두 체력이라면 뒤지지 않는 녀석들이지만, 휴식시간이 되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무너져 내렸다.

“수고했다. 덥지? 아이스크림이야.”

“호오? 언제 사온 거야? 역시 프로듀서. 센스가 있잖아.”

“미키는 이걸로 할래!”

“감사합니다. 프로듀서님.”

내가 잠깐 나갔다 온 동안 엄청나게 연습을 했는지, 녀석들이 자기 몫의 아이스크림을 고르러 다가오는 것만으로도 그녀들에게서 상당한 열기가 느껴졌다.

“다들 고생하는구나. 그래도 조금만 더 노력하자고. 언젠가는 지금 하는 고생으로 인해 빛을 볼 때가 있을 테니까.”

“흐응? 나. 그렇게 고생한다는 생각 들지 않는다구.”

“그래?”

“원래부터 나는 몸을 움직이는 걸 좋아하니까. 댄스의 새로운 동작이라던가, 연습하는 것만으로도 두근두근해져버리는걸.”

“미키도 혼자라면 별로지만, 히비키랑 타카네랑 함께 하는 건 재미있다고 생각해.”

“저 역시. 두 사람과 함께, 그리고 다른 765프로의 동료들과 함께 높은 곳에 서게 되는 걸 생각하면 저절로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거 다행이구만.”

아이스크림을 먹자마자 미키는 앉은 채로 잠이 들어버렸다. 히비키는 연습실 한 가운데 누워 스트레칭을 시작했으므로, 자연스럽게 자리에 남은 사람은 나와 타카네가 되었다.

“미안해. 프로듀서라는 놈이 아직 무능해서 이런 것밖에 못해주는구나.”

“그런… 프로듀서님께서는 이미 저희들에게 많은 힘이 되어주시고 있습니다.”

“아니. 그렇게 말해줘 봤자 내 자신이 납득할 수 없다고 할까. 내가 처음으로 맡게 된 프로젝트 유닛인데 말이야. 리츠코만큼은 아니더라도 열심히 뛴다면 뭔가 너희들에게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해주지 못하는 것 같아.”

“프로듀서님. 부족한 것은 저희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765프로의 첫 프로젝트 유닛. 게다가 저희 세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동료들의 미래 역시 저희의 어깨에 얹혀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프로듀서님의 존재는 진실로, 그 존재만으로도 저희들에게 커다란 도움이 된답니다. 지금의 저희들에게는 설령 다케다 신겐이 이끄는 십만 대군이라 할지라도 프로듀서님께서 뒤에 계신 것만큼 든든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더 부담된다고.”

“후훗. 어깨를 펴주세요. 프로듀서님. 다른 무엇도 아닌, 저희 페어리의 프로듀서가 아니십니까.”

어제 오토나시 씨가 말한 대로였다. 정말 나의 존재만으로도 이 세 사람에게 힘이 되는 걸까. 괘씸한 말이긴 하지만, 난 지금까지 야구하면서 코치가 내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말이지. 이거랑은 다른 케이스인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지. 너희들이 노력하는 만큼.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역시 그것뿐이다. 방송 데뷔를 성공적으로 할 수 있게 서포트하는 것, 그리고 방송 데뷔와 페스티벌의 사이에, 그녀들의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일거리를 구하는 것.
사장님께 부탁해서 미리 여러 곳에 얼굴도장을 찍어놓는 쪽이 좋겠다. 제발 나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없기를.

“아. 전화다.”

아직 휴식시간이긴 했지만 거의 본능적으로 연습실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사장님의 전화였다. 페어리의 준비가 잘 되고 있는지 궁금하셨던 모양이다. 지금까지는 순조롭다고 보고를 드린 후, 휴대폰을 다시 주머니에 쑤셔 넣는 순간 연습실 안에서 미키가 하품을 하며 걸어 나왔다.

“…아후.”

“무슨 일이냐.”

“아. 조금 있으면 다시 레슨 시작할 것 같아서, 잠 좀 깨려고 나온 거야.”

“그런가.”

“우우웅~”

가만히 서있는 나를 보며, 미키는 양손을 쭉 뻗고 기지개를 켰다.

“미키 너에겐 고맙다고 해야 하나.”

“응? 어째서?”

“솔직히 말해도 돼?”

“응. 말하는 거야.”

“솔직히 페어리의 세 사람을 결정하면서 네가 제일 걱정됐으니까.”

“에에?”

미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저 녀석 정말 모르는 건가.

“진심을 보인 적도 별로 없고, 쉽게 싫증을 내니까. 혹시나 금방 귀찮다면서 그만 두겠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됐어. 솔직히 지금도 약간 걱정이라고 할까… 아직 시작한지 3일밖에 안 됐으니. 뭐. 애초에 네가 이렇게 쉽게 승낙할 줄도 몰랐지.”

“너무하네, 프로듀서. 미키. 이번 유닛은 꽤 진심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해.”

“미안.”

“물론 프로듀서의 걱정대로 미키는 뭐든지 적당히 하고 싶지만, 그 ‘적당히 하고 싶은 것’을 아이돌로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언젠가 반짝반짝 빛나는 미키가 되고 싶어서인 거야. 그리고 이번 페스티벌에서 페어리가 좋은 성적을 내면, 미키는 지금보다 훨씬 더 반짝이는 곳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해. 그걸 위해서라면 귀찮은 일도 할 수 있다는 느낌인 거야.”

그런가. 미키는 내가 걱정할 자격이 없는 아이였던 건가. 멋대로 생각한 내가 다 부끄러워지는데.

“그랬구나. 다시 한 번 미안해.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건가.”

“아. 하지만 혹시라도 미키가 레슨이 질려버리게 되면, 그땐 프로듀서가, 미키가 다시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해줘야해?”

“…노력해보마.”

역시나 녀석다운 말에 내가 한숨을 내쉬는 사이, 문이 벌컥 열리고 히비키의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어이, 미키! 너무 늦어! 레슨 시작해버린다구!”

“에에- 히비키. 벌써부터 리더 행세하는 거야?”

“리더 행세가 아니라 리더라구!”

하하. 그럭저럭 잘 하고 있는 건가. 히비키도.



오늘 하루의 일정도 슬슬 끝나가고 있다. 세 사람 모두 열심히, 나도 나름대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일하는 보람이 무엇인지 알아가고 있다.

“그래. 페어리의 리더가 된 첫날은 어땠나. 가나하 히비키 제군.”

“뭐. 문제없다구! 나야 뭘하든 완벽하니까. 그리고 미키도, 타카네도 잘 따라와 주는 걸? 둘 다 워낙 뛰어나니까. 딱히 리더가 없어도 될 것 같을 정도야.”

“하지만 리더라는 건 곧 센터를 의미하니까. 네 책임이 막중하다는 사실을 알아둬.”

“흐흥. 내게 부담을 지우려는 속셈이야? 그 생각이 맞다면 번지수 잘못 찾았다구.”

역시나 자신감이 넘치는구나. 그 자신감을 나에게도 좀 나눠줬으면 싶을 정도다. 물론 내 전(前) 전문분야인 야구에서는 나도 자신감이 넘치지만 말이지.

“어쨌든, 히비키가 리더라서 안심이야. 앞으로도 부탁해.”

“맡겨달라구! 반드시 이번 페스티벌에서 프로젝트 페어리를 대히트시킬 테니까. 앞으로도 더 칭찬해줘!”

내 앞에서 빙긋 웃고 있는 히비키가 마치 주인 앞에서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를 연상시켰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머리를 쓱쓱 쓰다듬자 대번에 얼굴이 빨개져서는,

“지금 뭐하는 거야!”

“칭찬해달라며.”

“무, 물론 그건 기쁘지만, 그게… 에잇! 여자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건 범죄라구!”

“범죄라니. 야요이는 이렇게 해주면 좋아하던데.”

“야요이는 어리잖아!”

“그래봤자 너랑 두 살 차이밖에 더 나냐.”

내 말에 히비키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허둥지둥했다.

“그, 그래도… 그… 저기… 에잇! 변태 프로듀서!”

“머리 한 번 쓰다듬었다고 변태라니! 어떻게 된 거냐, 이 나라의 법은!”

“변태 프로듀서!”

“어이! 미키!!”

“응? 무슨 일이야? 프로듀서.”

타카네와 대화를 하고 있던 미키를 불렀다. 미키는 고개를 갸웃하며 종종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미키가 히비키의 옆에 서자마자, 나는 기습적으로 미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갑자기 부르더니 머리를 쓰다듬는 이유가 뭐야?”

미키는 그저 눈을 깜박이며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걸 보라고 히비키.”

“그… 그래도 변태는 변태야! 미키가 이상한 거야!”

“에에-? 미키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야!”

이내 나는 제쳐두고 두 사람끼리 티격태격하기 시작했다. 나는 틈을 타서 몰래 빠져나오기로 했다.

“앗, 오빠!”

“미키미키! 히비킹! 히메찡! 아직 다 있었구나!”

“웃우-! 모두 열심히 하고 계시군요!”

어라. 아미랑 마미, 야요이까지 무슨 일이지. 사무소에 뭔 일이라도 생겼나.

“아니. 별다른 일은 없지만.”

“그저 열심히 연습하는 거 구경하러 왔을 뿐이야.”

아미와 마미의 말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긴 무슨 일이 났으면 저런 밝은 표정으로 오지 않았겠지. 괜히 걱정했잖아.

페어리의 세 사람 모두 요즘은 사무소에 없는 시간이 더 많으니까, 타카네는 물론 그때까지 아옹다옹하던 미키와 히비키도 응원하러 온 세 사람에게 달라붙어 왁자하게 떠들기 시작했다.

“나. 오늘부로 페어리의 리더라구!”

“에에- 히비킹은 왠지 못미더운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내가 제대로 프로듀서에게 어필해서 얻어낸 자리라구!”

“호오-”

아미와 마미는 이내 내 앞으로 쪼르르 달려오더니,

“히비킹이 어떻게 어필한 거야?”

“음… 그 전의 히비키에게선 느낄 수 없었던 강렬함으로 승부를 했었지. 평상시의 히비키와는 뭔가 갭이 느껴져서 좋았어.”

“그렇군요-”

“강렬함이라면 아미랑 마미도 뒤지지 않지. 안 그런가, 아미 군?”

“물론이지. 마미 군.”

“너희들이? 웃기지 마라.”

“뭣하면 보여줄 수도 있는데?”

“아미와 마미의 강렬한 퍼포먼스.”

“그렇게 말하면 안 시킬 것 같냐? 한 번 해봐.”

““조오치-!””

그렇게 해서 뜬금없이 아미와 마미의 차례.
두 사람은 도구실에서 CD를 가져와 플레이어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빙긋 웃으며 연습실의 중앙에 자리를 잡았다.


♬ 에이전트 밤을 가다 - 후타미 마미, 후타미 아미


이건… 분명히 마코토의 노래지?
마코토 특유의 중성적인 보컬이 상당히 강렬한 곡이다. 가사도 뭔가 에로틱한 것이 여러모로 어른의 노래라는 느낌인데 이걸 저 둘이 부른다니. 조금 기대해 봐도 되려나.


너에게 맡기는 비밀스러운 맹세
열정과 쾌락의 해방을 기다려
그래 흐트러지는 즐거움을


오호. 그럭저럭 잘 소화하는데? 이 녀석들 역시 재능은 있다니까.


더욱 높게 끝없는 마음속까지
너만이 쓸 수 있는 테크닉으로

모쪼리노껴쭈어


…뭐야 방금. 가사가 왜 저래?
내가 의아함을 느끼는 동안 옆에서 히비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푸크크… 두 사람 다. 너무 강하게 발음하려다가 새어버렸다구…”

노래 흐름으로 봐서는 저 가사, ‘모조리 녹여줘.’라고 기억하는데. 대체 어떻게 발음이 새면 저렇게 들리는 거지.
역시 이 녀석들에게 강렬함은 무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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