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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하라 베이커리-낮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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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28, 2017 15:20에 작성됨.

이전화들

 

오오하라 베이커리의 어딘가....케이크나 파티 의뢰를 위해 히이라기와 1:1로 대면하는 응접실. 더운 김으로 위로 뻗어내며 바닥을 향해 고운 곡선을 그리는 차가 컵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히이라기는 천천히 찻잔을 상대에 밀었다. 화라도 났는지 입을 꾹 닫은 상대는 약간 경직된 움직임으로 찻잔을 집어올렸다. 더운 김 속에서 웅웅-울리는 민트의 상쾌한 향을 몇 번 깊게 들이쉬고, 살짝 소리도 없이 맑은 물을 삼키고 나자 조금은 기분이 풀렸는 지 상대의 흐름이 바뀐다. 그 미세한 차이를 눈치챘는지, 침묵을 유지하던 히이라기가 먼저 입을 열었다.

 

“별 일이군요.”

 

딸각- 텅 빈 찻잔에 묵직한 것이 올려지고서 말이 이어졌다.

 

“이렇게 직접 저한테 할 말이 있으시다니.....”

 

“......”

 

“별로 저와 할 말이 없으신가요?”

 

“........”

 

차로 화를 푼다는 것 미봉책에 불과했는지, 상대의 입을 당최 열릴 줄을 몰랐다.

 

“그럼, 잡담은 그만두고 본론으로 넘어가지요. 코바야카와 아가씨.”

 

휠체어왼팔걸이를 조작해서 홀로모니터를 허공에 띄운 히이라기는 페이지를 넘겨가며 코바야카와 가의 일정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제가 알기로는 별다른 일정이 잡히지않았는데....”

 

“히이라기 님”

 

불쑥-단호하고 짧게 들어오는 말에 의아함을 느낀 히이라기가 손가락으로 모니터들을 옆으로 치우자 일자입과 일자 눈썹을 가진 기묘한 기분의 사에가 있었다.

 

‘누구냐고 물어볼 뻔했네.’

 

그러나 상대는 일본제일의 명인인 오오하라 따위가 함부로 쳐다보지도 못할 교토의 대지주이자 격조높은 귀족님. 자본주의와 노예근성으로 무장한 미소를 살며시, 입꼬리 근처에만 올리며 대답했다.

 

“예, 아가씨.”

 

“저는-”

 

그 순간, 문이 통통-울리더니 어린 목소리가 밝게 울렸다.

 

“디저트 왔습니다~”

 

“음,”

 

문이 살짝 열리더니, 미치루가 총총 걸어와서는 아직도 서늘한 기운이 남아있는 케이크를 탁자에 살며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

 

“미치루.”

 

“핫!”

 

잠시 뭐에 홀리기라도 한 양, 잠시동안 탁자 위에 놓인 쟁반을 멍하니 바라보던 미치루는 오빠가 한 번 부르고나서야 오른손으로 입술 아래의 무언가를 훔치면서 나갈 수 있었다.

 

“파우치입니다.”

 

크레페가 곱게 접히면서 한쪽으로 말려서 꽃을 연상케하는 모습, 갈색이 살짝 곁들여진 고운 노란색 시트의 끝에는 빨간 딸기가 반 조각 올라가있었다.

 

“...........제가 이런 것에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불쾌하시다면 치워드릴까요?”

 

사에는 아무 말도 하지않다가 살며시 포크를 들었다.

 

“일단, 히이라기 님의 호의 정도는 받아드리겠습니다.”

 

“좋으실 만큼 즐겨주시길..”

 

새콤한 향은 마치 봉오리 속에서 나오는 꽃향과 같은 모양새이다.

 

조심스레 포크로 찌르....기도 전에 봉우리가 힘을 못이기고 무너져버린다. 혹시라도 꽃이 부서질까봐 안절부절 하며 조심스레, 몇 번이고 포크를 살살 집어 넣어 간신히 잘라낸다.

 

매끄러운 크림 속에서 탄력있게 씹히는 크레페시트, 크림 속으로 흘러들어가 우유의 달달함에 가벼운 새콤함이 배가되어 상큼한 자극을 더한다. 몇 번을 더 오물거리자, 시트 맨 아래의 시큼한 맛. 치즈케이크가 드러난다. 그러나 그 또한 크림이라도 되는 양 부드럽게 입안으로 흘러내리듯 퍼지고, 고소하고 시큼한 맛을 입 안에 채운다. 은은한지만 확연히 입 안에 닿는 기분은 마치 바이올린 선율이 어떻게 사람을 압도하는 지, 그것을 입으로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입 크림의 부드러움과 달달함을 전주로 하고서 그 위에 딸기의 새콤함과 치즈케이크의 시큼하고 고소한 맛으로 포인트를 주어 톡톡터지는 자극이 입 안에서 계속 이루어진다. 크림이 한 가득이지만 전혀 물리지도 않고 느끼하지도 않다.

 

크림을 감싸고 있던 크레페 시트는 크나큰 맛을 자랑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탄력이 넘친다. 크림 속에 있던, 아득아득 부서지고, 톡톡 씨앗을 터트리며 시원한 물을 내뱉는 딸기. 서로 정반대의 위치에서 일시에 터지고 씹히면서 하나로 맞닿아간다.

 

한 입에서 여러가지 맛을 동시에 느끼지만 이윽고 하나의 울림이 되는 이것은 오케스트라라도 해도 좋으리라. 매끄러운 크림이 딸기향을 속상이며 먼저 흘러넘어가고 뒤이어 느껴지는 딸기의 시원하고 새콤한 식감, 동시에 불쑥 튀어나와 은은하게 입안을 압도하는 치즈케이크. 묵직하게 입안을 꾸욱꾸욱 누르지만 그 식감은 크림 못지않게 부드러워 어느새 미끄러지듯 목 너머 사그러들고만다.

 

마지막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그 탄력과 옅은 맛을 유지하던 크레페 시트가 홀로 마무리한다. 씹기도 전에 오물거리는 사이 크림과 딸기들이 모두 넘어가고 크레페가 조금 남았을 무렵, 계란과 우유가 엉킨 느낌의 맛이다. 약간은 부풀어올라서 거품이 연상되는 부드러운 식감. 잘 구워진 계란이 느껴지는 미세한 달달함.

 

“.......”

 

포크를 입에 물고 살며시 얼굴을 붉힌 사에는 살짝 눈만을 돌렸다. 순간적으로 화는 났지만 히이라기의 케이크는 포기할 수 없는 본능에 먹어버렸다. 한가득 품고왔던 화도 어느새 스스륵 녹아내리는 맛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잠깐, 멈칫했으나 사에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아무튼, 히이라기 님 저는 지금 화났습니다.”

 

“케이크 더 드릴까요?”

 

히이라기는 다만 양 손을 깍지낀 채 빠르게 텅 빈 접시에 대해 물어보았다. 15살 소녀는 아무렇지않다는 능구렁이 심보인가...

 

“.....”

 

그러나 오늘의 사에는 다르다. 중대한 문제로 이곳에 나왔으니까.

 

“히이라기 님, 히이라기 님의 매력은 누구나 인정하는 것입니다. 명인으로서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칭찬, 감사합니다만..”

 

“그래서 히이라기 님이 첩을 들이는 것도 저는 이해합니다.”

 

“네?”

 

“허나!”

 

여태껏 눈을 지그시 감고 무언가를 꾹꾹 누른채 참던 사에는 무언가를 터트리듯이 눈이 부릅뜨고 소리쳤다.

 

“어찌하여, 정실부인인 저를 이렇게 홀대하십니까?!”

 

“............?”

 

별 별 소리를 다 듣고 상대해온 히이라기도 이건 의외였는지, 눈 근처 근육이 꿈틀거리면서 의아한 표정이 드러나고말았다. 이렇다고 뭔 소리냐고 따질 수는 없는 노릇이니 헛기침을 해가며 정신을 가다듬은 다음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기...누가..”

 

“당연히 이 코바야카와 사에가 히이라기 님의....”

 

“식도 도장찍기도 한 기억이 없는데요.”

 

“상관없습니다.”

 

“그보다 사에 아가씨, 나이가...”

 

“상관없습니다.”

 

“미성년자거든요?”

 

“그렇기에 첩을 허용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지금 같은 나라 언어로 대화 중인 거 맞지요?”

 

“제가 조금만 더 일찍 태어났다면, 히이라기 님이 참지못하고 첩을 들일 일도.....”

 

"첩은 들인적도 없고, 뭘 못 참긴 못 참습니까...?"

 

어째 점점 혼자만의 세계에서 고유결계를 작동 중인 듯한 사에의 속사포 중얼거림에 히이라기는 일단 제지하려고했으나, 이미 상대는 귀족 아가씨가 아니라 사랑에 빠진 폭주소녀. 말릴 방법은 없다. 단념하시게.

 

“아무튼!”

 

탁자를 거세게 후려치며 온 몸에 열을 내면서 사에는 얼굴을 바짝 히이라기에게 붙였다.

 

“히이라기 님은 오늘, 소녀와 하루를 보내주셔야겠습니다.”

 

“에?”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히이라기 님께 철저히 맞추어 드릴테니까...”

 

히이라기가 상황을 재고해볼 새도 없이 사에는 품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숨소리와 기묘한 천자락의 소리만이 침묵 속에서 여러번 들리며 옷의 묶음이 서서히 풀어지고서...히이라기 옆에 바짝 붙은 사에는.....

 

“자, 드시지요.”

 

술을 권했다.

 

“......술입니까..”

 

“슬프게도 소녀가 대접할 수 있는 것이...”

 

“충분합니다.”

 

더 이상 말했다가는 무슨 말이 나올지 몰라 무서워진 히이라기는 빠르게 술잔을 비웠다. 그러나 술병은 비워지지않고 계속 술잔을 채울 뿐...히이라기는 본인이 잘못한 듯한 기분이 드는 것 같기도해서 일단은 비워나갔으나 여전히 불안한 마음이었다.

 

“어음....아가씨...?”

 

“......”

 

“사에 양...?”

 

“.......”

 

히이라기는 속으로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느냐며 울먹이다가 이내 큰 결심을 했다.

 

“ㅅ,사,...사, 사에?”

 

“예, 낭군님?”

 

“저기......그러니까...이건...”

 

“소녀의 깊은 마음일 뿐입니다”

 

다시 한 번, 빈 잔을 채우는 사에와 그걸 비우는 히이라기가 반복되었다

 

‘아니, 이거 먹다가 왠지 납치될 것 같아..!’

 

불안감을 억누르고 마시는 취기에 이제 히이라기는 별별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지만 사에는 문득 맑은 미소로 말했다.

 

“히이라기 님이 걱정하시는 일을 없을 것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진짜인가요...?”

 

“그야 이미 저는 히이라기 님 속에 들어가 깊이 느끼고 있으니까요....”

 

물 위로 살며시 떠오르는 붉은 연꽃처럼 사에의 맑은 피부에도 점점 붉은 기운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멈추지 않는 술 권유.....그때, 한 가지 생각이 히이라기의 뇌리를 강하게 찔렀다.

 

‘이거 설마......미인주인가...?!’

 

미인주, 쿠치카미자케라고도 부르는 그것.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양조법 중 하나이지만, 요즘에는 호사가들의 사치품이기도 하다. 왜냐하면.....미인주라는 것은

 

“후훗....”

 

“설마 이거 사에 양이 직접...”

 

“히이라기 님도 참.....소녀에게 그런 것을 직접 말하게 하시다니요...너무 적극적이십니다..”

 

사람의 입으로 직접 곡물을 씹어 만든다..

 

사실을 깨닫자마자, 히이라기의 손이 파르르르 떨렸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일 뿐. 불안감 속에서도 간신히 유지해온 평정심이 붕괴되버리고 그 상태에서 취기가 몰아닥치기 시작했다.

 

“......”

 

술잔을 내려놓고 서서히 몰려드는 취기에 결국 몸이 흐트러져 버린다. 휠체어에 앉아있었기에 몸을 받쳐줄 것이 있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일 것이다.

 

“.....”

 

서서히 정신이 흐려지고 몽롱해진 정신. 아마도 지금은 그 단단한 정신무장도 전부 흐트러졌으리라.

 

“히이라기 님, 편안하십니까?”

 

“........”

 

사에가 술병을 내려두고 뒤로 돌아가 두 손으로 그의 눈을 가렸다.

 

“.......”

 

“이제 조금은 내려놓으셔도 좋습니다. 어차피 이 곳은 아무도 간섭하지 못할 곳이니...”

 

“가진 게 업서.....”

 

조금 서늘했던 사에의 손이 자극이 되어 그를 깨웠는지 왱알거리는 몽롱한 소리로 히이라기가 중얼거렸다.

 

“어릴 적부터 가진게 너무 마낫는데......내 건 하나도 업서....”

 

알아먹지도 못할 기묘한 소리를 해대는 중이었지만, 사에는 그 뜻을 이해했다.

 

“예, 그렇지요. 타고난다는 건.....그러니 부디 여기서라도 잠시 쉬었다시지요.”

 

“........”

 

“늘, 제대로 고백도 못하고 히이라기 님께 억지만 부립니다. 오늘도 편안케해드린다면서 억지를 부리고 히아라기 님의 배려에 기대만 했습니다....히이라기 님, 저는 두렵습니다. 당신이 해야만 하는 말이.....지금도 당신이 제 말을 듣고 있을까 두렵습니다. 당신이 저를 구원해주셨는데 저는 왜 그럴 수 없을까요. 왜, 존재만으로 당신을 힘들게할까요.”

 

사에는 가슴을 한 번 꾸욱-쥐고 말했다.

 

“그래서... 이렇게라도 히이라기님이 지고 계시는 무게를 조금은 덜어드리고자합니다.”

 

히이라기는 휠체어에 널브러져 말이 없었다. 엉망진창이 되어 비틀어진 손. 금새 잠들어버리는 몸. 긴장감으로 쏟아내는 땀. 사에는 소리도 없이 떨어져나왔다.

 

“그럼, 안녕히 주무시길.”

 

아, 그리고. 아주 잠깐이지만 사에의 입술이 히이라기의 얼굴과 겹쳐졌다.

 


===

 

오늘은 파우치라고 크레페같은 시트를 꽃처럼 접어서 위로 모아만든 케이크입니다. 생크림과 커스타드크림치즈케이크가 안에 들어가서 아주 마시쩡!!!!

히이라기가 사에에게 꼼짝못하는 이유는 ‘고객’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제법 큰.... 개기고 싶어도 못 개기죠. 신분차이도 나니까.

참고로 진짜 사에가 만든 미인주입니다. 워후!!

간만에 사에항.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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