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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카「나 말야, 너를, 만나러 왔어」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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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27, 2017 14:41에 작성됨.

전편 1 2 3 4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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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동료들도, 프로듀서도─ 모든 걸 두려워해. 그런데 그 두려운 것들뿐인 우리 사무소에 자기 발로 찾아왔어」

 

자그마한 플라스틱 포크가 애처로운 악력에 가늘게 몸을 떤다.

 

「누구와도 면식이 없어. 그런데도 누구든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여」

 

늘어진 앞머리 아래의 얼굴은 완전히 창백하게 질렸다. 마치 시체 같다.

 

「나를 보면 겁에 질려. 나를 볼 때마다 괴로워 보여. 그런데도 나 때문에 여기에 왔다고 말해」

 

지난 밤을 떠올렸다. 찢어지는 절규. 눌러담지 못한 고뇌. 이어져 있던 눈물의 흔적.

 

「아마미 씨, 난 당신을 알 수가 없어」

 

눈을 마주치지 않는 상대를, 키사라기 치하야는 올곧게 응시했다.

 

 

「─ 당신은 누구야?」

 

 

하루카의 눈꺼풀이 힘없이 닫혔다.

치하야에게는 하늘이 부서져 쏟아져내리는 소리를 들은 사람의 표정으로 보였다.

 

 

***

 

 

아마미 하루카의 집에 찾아가자.

치하야가 그렇게 결심한 것은 불과 몇 시간 전의 일이었다.

 

제대로 자지 못해 침침한 두 눈을 누르며 출근한 사무소에 하루카의 모습은 없었다. 이상하게 여길 일은 아니었다. 시간은 아직 충분히 여유로웠다. 하지만 하루카는 아마 오지 않을 것이라고, 치하야는 그렇게 직감했다. 그런 모습을 보이고서 태연히 출근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곤란하다. 묻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본인이 오지 않아서는 물을래야 물을 수 없다. 그렇다면 직접 찾아가면 어떨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판단하고서 치하야는 즉각 행동했다.

 

조금 늦게 출근한 프로듀서에게 하루카의 상태를 보러 가고 싶다는 명목으로 주소를 요청했다. 파격적이라고도, 막무가내라고도 할 수 있는 태도에 잠시 황망해하던 프로듀서였지만 하루카가 출근하지 않을 것임은 그 역시 예감하고 있었는지 잠시 스케줄을 확인하는가 싶더니 서스럼없이 승낙해 주었다. 프로듀서에게 감사를 표하고서 치하야는 사무소를 나섰다.

 

가본 적 없는 목적지를 향해, 구태여 관여할 필요가 없는 소녀를 만나고자 전차에 몸을 싣는 기분은 기묘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몸에 익은 동작으로 이어폰을 끼워넣고, 의식을 휘감고 도는 선율과 덜컹대는 전차의 진동에 몸을 맡긴 채 치하야는 자신의 행동의 동기에 관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왜 그 소녀를 만나러 가고 있는 것일까. 묻고 싶은 것이 있어서다.

무엇이 궁금한 건가. 꼽기가 피곤해질 만큼이나 가득하다.

그렇담 왜 그런 것을 신경쓰나. 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무엇을?

 

치하야는 추론을 그만뒀다. 무의미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 외마디만으로 충분하다.

 

─왜 치하야가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적어도 지금까지는, 치하야는 그 정도로 곤혹스러우면서도 듣는 이를 동요하게 하는 물음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나는!!

 

마음을 예리하게 베어내는 듯한 그 외침을, 아직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목소리로 울부짖는 아이를 내버려둘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유라곤 그것이 전부였다.

자신은 언제부터 이렇게 헤픈 감상에 휘둘리는 사람이었을까. 치하야는 스스로에게 위화감을 품었다. 문득 기이한 감각이 치하야를 스쳤다.

치하야가 알고 있는 개념들 가운데 가장 흡사한 것을 고른다면, 그것은 아마 '불안감'에 가깝다고 해야 할 터였다.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인다고 한다.

만약 진실을 알게 된다고 해도, 그것을 수용하는 것이 치하야에게 과연 가능할까.

어쩌면 자신은 손을 대선 안 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만 것일지도 모른다─

 

전차가 덜컹대며 치하야의 몸뚱이를 가볍게 뒤흔들었다.

 

 

***

 

 

그리고 지금, 키사라기 치하야는 또다시 불쾌한 예감에 젖어들고 있었다.

 

맞은편의 소녀─ 아마미 하루카는 처연한 얼굴로 입을 다물고 있다. 처절한 갈등에 시달리고 있음은 짐작할 수 있었지만 거기까지였다. 자기 자신이 짊어지고 있을 비애의 무게와 사투를 벌이는 것만으로 힘에 부친 것처럼 보이는 하루카의 모습은 치하야에게 어정쩡한 추측 이상의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굳게 닫힌 입술이 달싹여 뭔가 의미를 지닌 말을 자아내기를, 치하야는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채근하지는 않았다. 재촉을 통해 몰아낼 수 있는 종류의 침묵이 아님을 알고 있었던 까닭이다.

 

「─거야」

 

치하야는 그것이 인간의 목소리라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할 뻔했다. 그렇다고 하기엔 턱없이 가늘고, 한없이 어두웠으므로.

 

「치하야… 는, … 말해도 이해 못 할 거야」

 

하루카가 더듬더듬 뱉어낸 한 마디를 치하야는 차분하게 곱씹었다. 받아들이기에 따라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겠지만 기분이 상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사정은 있지만,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을 테니 말해도 의미가 없다는 거구나」

「……」

「그러면 어젯밤은 뭐였어? 아마미 씨」

「그건…」

「그 때 아마미 씨가 했던 말도 내가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일 거야.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나한테 말한 건 왜야? 의미가 없는 거 아니었어?」

 

하루카는 대답하지 못했다. 치하야는 쓴웃음을 지었다.

 

「미안해, 괴롭히는 것처럼 말해 버린 것 같네. 책망하고 싶은 건 아냐. 그냥,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걸 말하고 싶었을 뿐」

「……」

「확실히 어제 아마미 씨의 말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어. 당황했다고 해야겠지. 놀라기도 했어. 하지만 불쾌하다거나 기분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다음에 이어질 말이 어쩌면 자의식 과잉에 가까운 뉘앙스로 들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치하야는 강조하듯 힘주어 말했다.

 

「그러니까 아마미 씨, 만약 이상한 말을 했다간 내가 아마미 씨를 싫어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 난」

「그래도 말해줄 수 없는 걸까?」

 

하루카의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가 더욱 짙어졌다. 고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이상 덧붙여도 아마 역효과일 것이라고 생각한 치하야는 잠자코 바라보았다.

시선을 내리자 이불을 움켜쥐고 있는 하루카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힘이 들어가 하얗게 변색되어 있는 손끝을 보고서 치하야는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자신은 이 아이를 괴롭게 만들고 있다.

그런 것쯤, 찾아오기로 정했을 때부터 각오했어야 했다─

 

「…… 치하, 야」

「…? 응, 아마미─」

 

이름을 불려져 엉겁결에 시선을 올린 치하야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 씨?」

 

 

***

 

 

말할 수 있을 턱이 없겠지, 하루카.

 

나는 미친 사람이야.

 

나는 이렇게나 추하고, 이렇게나 불결하고, 이렇게나 자신을 혐오하는 아이야.

 

유치한 인형놀이를 아직도 떼지 못한 겁쟁이야.

 

그렇게 말해 버리면, 분명히,

 

진짜 나조차도 너에게서 떠나가 버릴 거니까.

 

그게 너야.

 

 

소녀의 어깨 너머에서 소녀가 미소지었다.

 

그것을 보고서,

 

깨어진 마음의 파편이,

쨍강, 하는 소리를, 냈다.

 

 

***

 

 

치하야는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기묘한 위화감이었다. 하루카의 눈은 불안하게 흔들리면서도 틀림없이 이 쪽을 향하고 있다. 이 방에는 치하야와 하루카 단 둘뿐이다. 부자연스러울 만한 요소는 무엇 하나 없다.

그런데도, 뭔가가, 이상하다.

 

「그만… 둘게. 아이돌 같은 거, 되지 못한단 걸 알았으니까─ 그만둘 테니까, 그러니… 까」

 

전혀─ 대화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용, 서… 해…」

「… 아마미 씨. 당신, 지금」

 

무슨 말을.

그렇게 물으려던 치하야의 입이 멈칫했다. 멍하니 하루카의 눈을 응시하던 치하야는, 그제서야 아주 조금 위화감의 원인을 알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이 쪽을 향하고 있는 두 눈의 초점은,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만, 그러나 확실하게.

어긋나 있었다.

 

─오싹해졌다.

 

「어디를… 보고」

「……!」

 

하루카의 눈이 크게 뜨였다. 잠시 황망해하던 하루카가 손에 쥐고 있던 포크를 떨어트렸다. 바닥에 떨어진 포크가 볼품없는 소리를 냈다. 하루카는 느릿한 동작으로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텅 비어 있던 그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함과 동시에 하루카는 손 안에 얼굴을 묻었다. 뒤이어 절망에 찬 흐느낌이 새어나왔다.

 

「…… 아아아아……」

 

싸늘한 당혹감이 치하야를 덮쳤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위로하려고 해도 무엇을 어떻게 위로해야 하나. 이 소녀가 무엇을 무서워하는지도 모르고 있지 않은가. 애시당초 치하야는 그것을 알고 싶어서 여기에 온 것이다.

치하야는 깍지를 낀 손을 무릎 위에 강하게 눌렀다. 판단력이 흐려졌는지도 모른다. 기분이 나빠질 정도로 정신을 압박하는 이런 상황에서는 이상한 일도 아닐 것이다. 기묘하다. 불쾌하다. 비상식적이다.

 

상식.

 

치하야의 사고가 터무니없이 불쾌한 지점에서 멈춰섰다.

아마미 하루카. 이 아이가 살아가는 세계는 어쩌면, 우리들과는.

 

─ 아니다.

난 그런 것을 생각하고 싶은 게 아니야.

 

치하야는 왜 자신이 여기에 있는가를 되새겼다. 묻고 싶었기에 찾아왔다. 하지만 도저히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그 외에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다. 스스로를 진정시키고자 혼신의 노력을 경주하며, 치하야는 가늘게 들썩이는 소녀의 어깨를 한참이나 말없이 지켜보았다.

 

아마미 하루카. 아마미 씨. 당신은 굉장히 필사적이다.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까지 몰아세우는 걸까.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걸까.

그렇게까지.

하지만 그렇다면 더더욱 당신은,

 

그래선, 안 돼.

 

「들어줄래, 아마미 씨」

 

어떤 반응도 기대하지 않은 채로, 치하야는 덤덤히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궁금했던 것에 대해서 대답해줄 수 없다면 하지 않아도 돼. 아마미 씨를 괴롭게 만들고 싶지 않아. 이제 와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으니까, 사과하고 싶어」

 

한 차례 숨을 고르고서 치하야는 말을 잇는다.

 

「내가 왜 아마미 씨를 찾아왔는지 계속 생각했어. 첫 번째 이유는 처음에 말했던 대로야. 아마미 씨가 뭘 두려워하는 건지, 그러면서도 왜 그렇게까지 아이돌을 하고 싶어하는지 알고 싶었어. 하지만 잘 생각해 보니 그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아」

 

그것이 과연 진실된 이유인지 치하야는 쉽사리 결론지을 수 없었다. 어쩌면 하루카를 이렇게 몰아넣은 것에 대한 죄의식의 발로를 찾고자 급조해 낸 생각일 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지지 않기로 했다. 좌우지간 그녀에게 손을 뻗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충동이야말로 자신의 또 하나의 욕구를 대변하는 증거이리라고─ 치하야는 그렇게 생각했다.

 

「말해주고 싶었어」

 

키사라기 치하야는, 아마미 하루카를 내버려둘 수 없었던 것이다.

직접 들려주어 깨닫게 해 주고 싶었다.

자기 자신에게조차 의지하지 못하는 소녀가, 누군가에게 듣지 못한다면 아마 평생 동안 눈치채지 못할지도 모르는 사실을.

 

「아마미 씨. 나는 당신을, 지금껏 내가 만난 적이 있는 그 누구보다도」

「아이돌의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이런 아이가 보답을 받지 못하는 세상 따위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으니까.

 

하루카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물자국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 치하야」

 

더 남길 말은 아무것도 없었다.

 

치하야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하루카를 뒤로 했다. 문 손잡이를 잡고 방문을 열 때까지도 치하야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미동조차 하지 않고 치하야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하루카의 귀에, 터무니없을 정도로 태평하게 들리는 한 마디가 전해졌다.

 

「내일 사무소에서 봐, 아마미 씨」

 

방문이 닫혔다.

 

하루카는 고개를 떨구었다. 자기 안으로 틀어박히기 위함이 아닌, 단순히 아래를 바라보기 위함이었다.

크림이 묻은 포크가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하루카는 그것을 주워 들었다. 그제서야 잊고 있었던 것에 생각이 닿았다.

 

케이크 고맙게 잘 먹었다는 말, 하지 못했구나.

 

어쩔 수 없네. 내일, 직접 말해야겠다.

치하야는 사무소에서 기다린다고 말했으니까.

치하야가.

 

눈물 같은 건 이미 말라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은 채, 아마미 하루카는 소리죽여 울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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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월 텀 연재인 주제에 전개조차 느리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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