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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코미디 마스터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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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22, 2012 22:26에 작성됨.

‘오버 마스터’… 가사를 훑어본 결과 꽤나 강렬한 노래인 것 같았다. 이 곡에 어울리는 이미지를 지닌 세 사람을 내 손으로 뽑아야 한다는 건가.
사장님은 성적에 연연하지 않으시겠다고 했지만, 이렇게 된 이상 낙제점을 받아오는 건 내 선에서 용납이 되지 않는다. 내가 정말 사장님이 생각하시는 대로 이 방면에 재능이 있는 ‘인재’인지. 한 번 시험해보고 말리라.
그렇다면 일단 이 유닛에 포함될 세 명은 나와 상성이 잘 맞으면서도 이 시점의 765프로 아이돌 중에 가장 재능이 있는 녀석이 되어야 할 텐데.

“리츠코. 한 번 해볼래?”

“네? 서포트라면 제가…”

“아니. 유닛으로.”

“노, 농담이죠?”

“쳇. 반은 진심이었는데. 그럼… 너라면 누굴 뽑겠어?”

내 질문에 리츠코는 집게손가락을 턱 밑에 가져다대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일단은… 밸런스가 중요하겠죠?”

“밸런스.”

“네. 물론 프로듀서와 아이돌간의 캐미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팀원들 간의 캐미컬이니까요.”

확실히 그것도 그렇군. 팀원들 간의 융합이 무엇보다 중요하겠구나. 이런 유닛 활동에는.
자. 그렇다면 한 번 생각해보자. 물론 다들 사이좋은 765프로지만. 특별히 더 서로 간에 사이가 좋은 녀석들이라면…
일단 아미와 마미…는 쌍둥이라 한 유닛으로 만들면 별로일 것 같고, 치하야와 하루카는 하루카가 신곡 연습 중이라 안 되겠고, 이오리와 야요이도 마찬가지, 마코토와 유키호…? 는 유키호가 엄청나게 부담감을 가져버릴 것 같아서 좀 그렇고.

타카네와 히비키?

괜찮은데. 타카네는 노래를 잘하고, 히비키는 마코토와 함께 댄스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녀석이다. 서로 꽤 가까워 보이기도 하고, 나와도 스스럼없이 지내니까 모든 요건을 충족한다. 일단은 그 두 사람이다.
나는 유닛 멤버의 이름을 적는 공란에 타카네와 히비키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 이제 남은 건 한 사람. 밸런스를 위해서라면 댄스-보컬이 있으니 여기선 비주얼이 좋겠지. 물론 나머지 두 사람의 비주얼 역시 절대 꿀리지 않지만, 댄스와 보컬을 아우르면서 비주얼에 특화된 녀석을 한 명 집어넣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역시, 그 녀석뿐인가.
사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사장실 밖으로 나와 전화를 걸었다. 다른 둘은 몰라도 이 녀석 성격상 안심하고 마음대로 집어넣었다가 나중에 하기 싫다고 강짜를 써버리면 피곤해지니까 미리 통보를 해놓는 것이 좋겠지.

“여보세요?”

[응? 무슨 일이야, 프로듀서.]

“다름이 아니라… 너 지금 어디냐.”

[집인 거야.]

“그럼 됐군. 사실은 말이지. 한 달 뒤에 있을 아이돌 페스티벌에 우리 765프로도 3인 유닛을 내보내게 됐어. 그리고 그 3인 유닛의 프로듀스를 내가 맡기로 했지.”

[응.]

“사장님이 나보고 그 세 명을 뽑으라고 하시길래, 히비키와 타카네와 너를 뽑기로 했거든.”

[미키를?]

“그래. 그래서 미리 물어보는 거다. 할 생각이 있는지.”

한동안 침묵.
이 녀석이 전화받다 잠이라도 들었나, 생각할 쯤에서야 미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미키를 뽑은 거야?]

“그야 니가 내가 생각하는 조건에 부합했으니까.”

[조건?]

“그래. 댄스-보컬-비주얼이라는 세 가지 분야로 나눠서, 한 가지 분야에 특화되었으면서도 다른 두 가지 항목도 떨어지지 않는 녀석을 한 명씩 뽑았지. 그 중에 댄스가 히비키, 보컬이 타카네, 비주얼이 너야.”

[흐응…]

문제는 이 녀석이 히비키, 타카네와 제대로 한 유닛으로 녹아들 수 있을지 걱정이라는 거지만, 이 녀석은 개성 강한 녀석들로만 모인 765프로 안에서도 워낙 개성이 강하니까. 뭐. 그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은…

[아이돌 패스티벌…인거지.]

이 녀석 또 ‘그럼 미키의 부탁을 하나 들어주는 거야.’라고 나오겠지. 안 봐도 뻔하다. 그렇게 해서라도 이 녀석을 유닛에 넣을 수 있다면 좋겠지.

[미키. 할게.]

“뭐?”

[왜 그렇게 놀라?]

“…솔직히 말하자면, 네가 그렇게 쉽게 승낙할 줄은 몰랐거든. 널 움직이게 하려면 꼭 뭔가 부가적인 것이 필요했으니까.”

[너무하네, 프로듀서. 미키. 아이돌이야. 아이돌이라면 모두 그런 곳에 나가고 싶어 하는 거야. 많은 팬들 앞에서 노래하면 왠지 두근두근할 것 같은 느낌?]

“그럼 시죠 타카네와 가나하 히비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자리엔 네 이름을 써넣겠어.”

[응. 미키도 타카네랑 히비키랑 같이 유닛 짜는 거, 재미있을 것 같아. 기대하고 있는 거야.]

“나중에 딴 소리하지 마.”

[물론인거야.]

좋았어. 이걸로 완성이다. 서류에 호시이 미키를 써넣고 다시 사장실로 들어갔다.

“정했습니다.”

“호오? 의외로 빠르구만. 어디…”

서류를 받아 멤버 세 사람을 확인한 사장님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좋군. 그야말로 현재 자네가 가용할 수 있는 아이돌 제군 중엔 최고의 선택을 한 것 같네만.”

솔직히 아즈사 씨를 넣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한 달 안에 그런 큰 무대에 녀석들을 세우려면 분명 혹독한 레슨이 필요한 게 분명한데, 난 도저히 아즈사 씨에게 고압적으로 나갈 수가 없으니까.

“자. 그럼 유닛의 이름은 어떻게 정할 텐가?”

“…유닛 이름도 제가 정해야 합니까.”

“당연하잖아요. 프로듀서가 키우는 기념비적인 첫 유닛이니까요.”

타카네, 히비키, 미키의 세 사람을 떠올리며 유닛의 이름을 연상해내려 애썼다. 그리고 답은 그다지 오래 생각하지 않고 떠올릴 수 있었다.

“페어리… 프로젝트 페어리.”

“요정이라. 그녀들에게 잘 어울리는 좋은 유닛네임이군. 좋네. 이대로 신청서를 제출할 테니, 내일부터 열심히 해보게나.”

“저도 시간이 되는대로 서포트해드릴 테니까요.”

“…해보죠, 뭐. 이왕 이렇게 된 거.”



다음날.
나와 페어리의 세 사람은 사무소가 아닌 댄스 연습실에 모였다. 물론 세 사람 모두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는 것은 물론 어째서인지 나까지 입게 되었다.

나는 미리 준비해놨던 달력 하나를 꺼내 세 사람 앞에 펼쳐놓았다.

“자. 오늘부터 D-30이다. 힘내서 해보자고.”

“물론! 타카네도, 미키도, 프로듀서도 완벽한 나만 믿으면 만사 OK라구!”

“이렇게 세 사람이 같이 활동하게 되는 건 처음이지만, 다들 미키만 따라오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 아핫!”

“후훗. 비록 일시적인 결성이라지만 이 두 사람과 함께 같은 목표를 향하게 되다니, 진실로, 앞으로 있을 일들이 기대가 되는군요.”

어제 퇴근 후 나머지 두 사람에게도 미리 언질을 해놓았다. 두 사람 모두 갑작스러운 유닛 결성에 놀라는 반응이었지만, 이내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이며 많이 기대하는 눈치였다. 세 녀석 모두 각자 다른 의미로 개성이 강한 녀석들이라지만, 오히려 그게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줄지도 모르지. 나도 꽤 기대를 하고 있다.

“근데 프로듀서는 어째서 트레이닝복 입고 있는 거야? 설마 프로듀서가 같이 춤추면서 우릴 가르치는 거야?”

“그럴 리가 있겠냐. 그냥 기합이다, 기합. 분위기라고 할까.”

“그럼 그 모자 뒤집어 쓴 것도 기합이야?”

“그래.”

“…프로듀서 열혈이네.”

“이래보여도 운동선수라고. 열혈인 게 당연하잖아.”

“하긴 그 때 괴성을 지르면서 뛰어다니던 걸 생각하면…”

“그 얘기는 하지 말자.”

히비키의 말을 끊은 다음, 이번 패스티벌에 대한 정보가 담겨있는 서류를 한 장씩 나누어주었다. 일단 이런 것부터 숙지해두는 게 좋겠지.

“겨우 한 곡으로 끝이야?”

“단판승부가 좋잖아. 그리고 꽤 많은 유닛들이 나온다는데 몇 곡씩 불러재꼈다간 당일로 안 끝난다고.”

“뭐. 나도 그쪽이 시원스럽고 좋지만.”

“너희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지만, 이번 패스티벌에서 우리가 얼마나 활약했는지에 따라 우리가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765프로 전체가 나아갈 길이 뚫릴 수도 있어. 사장님 말대로라면 그 정도로 굉장한 행사라고 하니까 기합 단단히 넣자는 거야.”

“흐흥. 뭐. 그 정도는 돼야 제대로 할 기분이 나지 않겠어?”

“괜찮은 거야, 프로듀서. 히비키도, 타카네도, 무엇보다 미키도 있으니까. 이 정도는 무사통과라는 느낌?”

“저 역시 두 사람의 생각과 일치합니다.”

자신감만 놓고 보면 벌써부터 우승이구만. 뭐. 이렇게 생각하는 나 역시, 이 세 사람이 제대로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해낼 것 같다고 생각하니까.

“대충 훑어봤으면, 이번 결전용 신곡. 들려줄 테니까.”

““호오-””

“헌데, 프로듀서님.”

“응? 무슨 일이야, 타카네.”

“아까 전부터 신경 쓰였습니다만, 아까부터 들려오는 음악소리는 무엇인지요.”

“아. 맞아맞아. 미키도 들리는 거야.”

“나도.”

오늘부터 이틀간, 우리가 평소 써오던 연습실 두 곳이 내부 수리를 위해 폐쇄가 된다. 그래서 우리가 있는 이곳도 그 이틀 동안 쓰기 위해 새로 빌린 곳인데, 문제는…

“방음이 안 돼. 게다가 오면서 너희도 봤듯이 바로 옆에 보컬 연습실이 있단 말이지. 아마 거기서 들리는 소리일 거야.”

“…뭐야, 그게.”

“여기서 댄스 연습하면, 틀림없이 집중이 되지 않는 거야.”

“대체 누가 이런 곳을 빌린 거야?”

나였다.
내가 천천히 손을 들자, 세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숨을 쉬었다.

“앞으로가 걱정이네.”

“시, 시끄러. 누가 이따위일줄 알았냐. 어쨌든, 옆에서 치하야가 연습하고 있다지만 잠시 뿐이고 내일은 아무도 보컬 연습실 안 쓰니까.”

“하필이면 치하야라는 거네.”

“미키. 치하야 씨의 노래에 빠져들어서 집중 안 될지도 몰라. 아니. 틀림없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제발 집중해주라…”

나는 도움을 원하는 눈으로 타카네를 바라보았지만, 타카네는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이것도 하나의 레슨이라고 생각하라고. 어떤 상황에서도 집중할 수 있게 말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한 번 해볼까…”

다행히 납득한 분위기. 나는 세 사람에게 신곡을 듣고 있으라고 한 다음 트레이너 씨를 데리러 밖으로 나갔다.



유닛 결성 후 첫 레슨은 나조차 놀랄 정도로 순조롭게 흘러갔다. 옆에서 치하야의 방해 아닌 방해가 지속되었지만 그다지 크게 구애받지 않는 모습이었다. 역시나 다들 재능 하나는 최고급이니까. 이대로 마지막까지 순항하면 좋으련만.

“쉬는 시간인거네. 이 때 치하야 씨 노래 들어두는 거야.”

무슨 노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조차도 옆 연습실로 가보고 싶어질 만큼 굉장한 노래던데, 다들 잘 집중해줬구나.

“다들 수고했어. 역시나 잘하던데? 예전부터 손발을 맞춰왔던 것 같았어.”

“흐흥. 이 정도야 여유라니까.”

“아직 초반부니까 이렇게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앞으로도 더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아. 미키. 실례지만 제게도 그 물을 주시겠습니까.”

“응. 여기야, 타카네.”

미키가 타카네에게 물병을 내밀고, 서로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옆에서 치하야가 연습을 재개하는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 눈이 마주친 순간 - 키사라기 치하야


눈과 눈이 마주친 순간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어
‘당신은 지금 어떤 기분인 거야?’
되돌릴 수 없는 두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조금만 더 이대로 눈을 돌리지 말아줘


하필이면 저러고 있을 때 저런 가사가 울려 퍼졌기에, 뭔가 요상망측한 분위기가 두 사람에게 흐르기 시작했다. 보는 나뿐만 아니라 당사자인 미키와 타카네도 그걸 느꼈는지, 필요 이상으로 허둥거리며 시선을 피했다.

“뭐, 뭐야…”

“기괴한…”

나로 하여금 뭔가 여러 가지 상상을 하게 만드는군. 유닛 멤버끼리 친한 건 좋지만 저건 아무리 봐도… 가 아니라! 그저 저 타이밍에 저런 노래가 나왔을 뿐인 거지. 타이밍도 참 요상하네.

어쨌든 노래는 참 좋구만. 역시나 치하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폭발적인 가창력이었다. 가사도 방금 전의 그 상황만 아니었더라면 정말 좋았는데.
쉬는 시간 겸 해서 네 사람 모두 자리에 앉아 치하야의 노래를 감상하다가, 노래가 막 끝날 때쯤에 히비키가 비명성을 올렸다.

“우갸-! 햄조가 사라졌어!”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 그 햄스터가 보이지 않았다.

“찾으면 되지 뭐. 어차피 숨어봤자 이 안에 있을 테니까.”

“해, 햄조! 돌아와-!”

결국 네 사람은 연습실 이곳저곳을 뒤지며 햄스터 한 마릴 찾아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찾기 귀찮은데 말이야. 어차피 지가 알아서 돌아올 텐데. 뭘 저리 호들갑을 떠는지.
하지만 히비키라면 분명히 녀석을 찾을 때까지 연습은 뒷전으로 밀어둘 게 뻔하니까 일단은 찾고 보는 게 낫겠지.

“햄조-!”

“어이. 망할 햄스터 놈. 당장 나오는 게 좋을 거다.”

“…프로듀서. 그렇게 말했다간 햄조는 더 꼭꼭 숨어버릴 거라구.”

“뭐 어때. 햄스터가 사람 말 알아듣는 것도 아니고.”

“햄조는 알아듣는다구!”

“…그럼 그게 맹인안내견이지 햄스터냐.”

뾰로통한 표정의 히비키를 보여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 다음, 햄스터만한 크기의 무언가가 숨어들만한 스피커 구석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정말 우연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에 햄조가 있었다. 나는 한동안 멍하니 햄조를 보고 있었고, 햄조 역시 눈을 깜박거리며 내 얼굴을 마주보고 있었다.


눈과 눈이 마주친 순간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어
‘당신은 지금 어떤 기분인 거야?’


두근

“이 아니라-!!! 내가 햄스터 따위한테 두근거릴 리가 있겠냐!! 치하야 저 녀석은 어째서 이 타이밍에 노래를 시작하는 거냐!”

“프로듀서. 햄조와 금단의 사랑을 시작한 거야.”

“웃기고 있네!!”

“…햄조는 남자라구?”

“안 물어봤거든?”

“프로듀서님. 사랑에는 장벽이 없습니다.”

“어이!!!”

다들 나 놀리는데 혈안이 됐구만. 두 녀석은 평소 해오던 게 있으니 그러려니 해도 타카네만은 믿었는데.

“자, 자. 햄조도 찾았으니 다시 연습 들어가자고. 아까 트레이너 씨가 가르쳐준 동작. 다시 한 번씩 해보는 거다.”

막 오디오의 재생버튼을 누르려고 하는데, 연습실의 문이 열렸다.

“어흠. 제군들. 내가 방해하는 건가?”

“아. 사장님.”


눈과 눈이 마주친 순간…


“그만 좀 하라고--!!!!!”

“응? 무슨 일인가. 자네.”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사장님과 뭔가 불순한 것을 보는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 세 사람 사이에서, 나는 내 외침을 들을 리 없는 치하야를 향해 소리쳤다.



“자. 오늘 하루는 이걸로 끝이야. 내일도 힘내는 거다.”

“맡겨두라구. 변태 프로듀서.”

“누가 변태냐.”

“당연히 변태지! …우갸--!! 그런 눈으로 날 쳐다보지 마!”

“도대체 내가 어떤 눈을 했는데!!!”

“눈과 눈이 마주친 순간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어~”

“내 앞에서, 그것도 이런 타이밍에 그 노래 부르지 마라, 미키. 트라우마가 된 것 같으니까.”

“므으… 하지만 미키. 이 노래 마음에 들었는걸. 우리 데뷔곡. 이걸로 바꾸면 안 돼?”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설령 치하야랑 사장님이 찬성한다고 해도 내가 반대야. 절대로 안 돼. 우리에게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어.”

“에에-”

“시끄러. 빨리 해산이나 해. 이대로 사무소에 들르던 바로 집에 가든 그건 너희 자유야. 그리고 내일도 오늘처럼 조금 더 일찍 사무소로 오도록.”

“네-인거야.”

“알겠다구. 변태 프로듀서.”

“한 번만 더 프로듀서 앞에 변태를 붙였다간 진짜 변태가 뭔지 보여주겠다. 각오하고 있어.”

“뭐, 뭐야. 그 위험한 발언! 난 도망갈래!!”

히비키가 사무소 쪽을 향해 냉큼 달려가고, 그 뒤로 미키가 킥킥거리며 내게 손을 흔들고는 히비키와는 다른 곳(아마 자신의 집 쪽이겠지.)으로 걸어갔다. 마지막으로 타카네가 내 옆을 스쳐지나가며,

“눈이 마주친 순간~”

“타카네!! 타카네에에!!! 제발 너만큼은 저 녀석들한테 물들지 말아주라!!”

정말이지. 나는 오늘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왜 이리 피곤한 거냐고. 저 셋을 뽑은 건 분명히 재능면에서는 최고의 패지만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는 최악의 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지금에 이르러서야 새삼스럽게 들기 시작했다.
괘, 괜찮아. 이 정도는 다 예상했던 범위니까. 타카네까지 저러는 건 예상외지만.

“다녀왔습니다… 젠장.”

사무소에 들러(날 보자마자 날뛰려는 히비키의 입을 막느라 고생 좀 했다.) 마무리를 한 다음 집으로 도착하자, 그제야 억지로 밀어냈던 피로가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왔구나.”

“카에데 누나. 방은 구했어?”

“아직.”

“…찾아보고는 있는 거야?”

“응.”

“미안한데 난 앞으로 한 달 동안 꽤나 바빠질 테니까. 같이 방을 구하러 다녀줄 수 없게 됐어.”

“어째서니?”

“아이돌 패스티벌에 나갈 유닛을 내가 프로듀스하기로 했거든. 아. 그래. 누나 소속사에선 안 나가?”

“아이돌 패스티벌이라면… 우리도 나가게 됐어. 아이랑, 료랑, 에리가 유닛을 짜서.”

에리라면… 누나가 말했었지. 방긋방긋 동화의 ‘ELLIE’가 바로 누나의 876프로덕션에 들어온 신인 아이돌 미즈타니 에리라고.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땐 나도 깜짝 놀랐었다. 어쩐지 요즘 영상이 안 올라오더라니.

“누나는 안 나가는 거야? 유감이네.”

“나는 다른 소규모 오디션에 듀엣으로 나가게 되었어.”

“오? 진짜로??”

누나는 아무 말 없이 약간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누나도 슬슬 빛을 받기 시작하는 건가. 물론 그 오디션에서 좋은 성적을 얻어야 하겠지만, 누나라면 분명히 잘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거, 이거. 제대로 하지 않으면 우리가 추월당해버릴지도 모르겠는데.

“그래서 말인데…”

“응. 말해봐. 또 생각만 하지 말고 말로 전달해.”

“푸훗. 응. 사실 오늘 나와 듀엣을 하기로 한 아이랑 이번 오디션에 대한 상의를 하기 위해 내가 여기로 초대를 했거든.”

“뭐. 초대해도 좋아. 근데 그 아이가 나를 괜찮아할지 모르잖아. 내가 나가 있을까? 편하게.”

“아니야. 괜찮아. 허락해준 것만으로도 고마운걸.”

“그런데 그 애는 언제 온다는데? 슬슬 저녁 먹어야지.”

“올 시간인데… 전화해볼게.”

카에데 누나는 곧바로 휴대폰을 들고 전화를 걸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녀(당연히 소녀겠지.)와 통화를 마친 누나는 내게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길을 못 찾고 있는 것 같아. 말하는 걸로 봐서는 이 근처인데… 내가 같이 올 걸 그랬네. 일이 남아있다고 해서 먼저 왔는데.”

“뭐. 그럼 내가 찾으러 가지. 그 애. 어떻게 생겼는데?”

내 말에 누나는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가,

“…조금 특별해. 미안. 표현이 서툴러서 이렇게밖에 말을 못하겠어. 그래도 네가 딱 보면 감이 올 거야.”

특별하다? 이건 저번에 미키가 설명한 하루카, 마코토, 유키호, 이오리의 모습보다 더 이해가 안가는 설명이었다.
어떻게 집을 나오긴 했다만, 내가 알고 있는 거라고는 그녀의 이름과 ‘특별하다.’라는 설명뿐. 이걸로 어디있는지도 모르는 녀석을 어떻게 찾으라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맨션을 나선지 5분 만에 카에데 누나의 설명이 정확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더운 여름날에 검은색의 드레스를 입고(이제 고스로리인지 뭔지 하는 그 옷인가?) 검은색의 양산을 쓴 소녀를 보고 누가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할까. 뭔가 엄청난 복장에 가서 말을 걸기도 망설여졌다. 그래도 누나의 손님인데 어떻게든 말을 걸기 위해 가까이 갔더니, 세상에나 눈동자가 피처럼 붉은 것이, 저거 혹시 컬러렌즈?

“저기…”

내가 이 말을 꺼내는 데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내가 말을 걸자, 그녀는 그 자세 그대로 아무 말 없이 눈동자만 내게 향했다.

“카에데 누나가 부탁해서 왔는데, 네가 카에데 누나 손님이지?”

소녀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뭐… 그래. 만나서 반가워. 자. 집으로 안내할게.”

최대한 어색하지 않게 보이려 애쓰면서 실없이 웃었더니, 그녀 역시 옅은 미소를 짓고는,

“어둠에 삼켜지세요!”

뭔가 엄청난 말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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