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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코미디 마스터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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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20, 2012 23:15에 작성됨.

“자. 주목!”

사장님과 30분 정도 면담을 한 다음, 사장님은 나를 사장실에 대기시킨 다음, 밖으로 나와 모두의 이목을 끄셨다. 나는 열린 사장실의 문에 매달려 눈만 빼꼼히 내밀고 그녀들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엇흠! 마침 다들 모여 있군. 오늘 우리 765프로에 드디어 경사가 생겼다네.”

각자 떠들기 여념이 없었던 녀석들은 사장님의 말에 일제히 시선을 집중했다.

“드디어! 우리 765프로에 프로듀서가 입사했다!”

““오오오---!!””

다들 놀라는 와중에, 이미 사실을 알고 있는 미키는 미소를 짓고, 정장을 입고 사장실에 들어가는 나를 유일하게 목격한 하루카는 다시금 눈을 휘둥그레 뜨며 놀랐다. 다들 놀라는 와중에서도 리츠코는 아예 황홀하다는 표정까지 짓고 있다. 그렇게 힘들었던 건가. 저번의 그 오빠 연기때도 대충 느꼈지만.

“그럼 시간 끌지 않고 곧바로 우리의 신인 프로듀서를 소개하도록 하지. 자, 이리 오게나.”

사장님의 말에 나는 마치 시내 순회를 나온 히틀러마냥 오른손을 사선으로 펼치며 밖으로 걸어 나왔다. 녀석들의 반응은 약간 놀라면서도, 언젠가는 할 것 같았다는 표정이라 나는 조금 실망했다.

“뭐야. 더 놀라달라고.”

“그렇게 말해도 말이지…”

“마음속으로 조금이나마 예상하고 있었으니까요.”

“쳇.”

재미가 없군. 서프라이즈를 위해 일부러 미키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하긴 지금까지 그렇게 무보수로 붙어 다녔는데 그런 내가 언젠가는 진짜 프로듀서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녀석들이 많았겠지.

“그래도 놀라는 척 정도는 해줘야지. 정말 재미없는 녀석들이네.”

“그럼 지금이라도 놀라줘?”

“필요 없어.”

“자, 그럼 우리 프로듀서의 각오를 한 번 들어보도록 할까.”

사장님의 말에 나는 움찔했다. 그런 멘트 전혀 생각 안 해놨는데. 아니. 뭐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나? 그냥 생각한 대로…

“비록 아는 건 개뿔도 없지만, 그래도 차차 배울 테니까. 니들 마음대로 부려먹어 보라고.”

내 소신 표명에 옆에 있던 사장님은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걸 신호탄으로 모두들 내 앞으로 몰려들었다.

“흐응… 너. 의외로 이 차림 어울리잖아?”

“더럽게 비싼 거야. 이거 사느라 눈 돌아가는 줄 알았다고.”

“결국 이렇게 될 거면서 그동안 왜 이리 튕기셨던 거에요?”

“튕겼다니, 누가! 이건 그냥 심경의 변화일 뿐이야. 미키가 요구했던 ‘1등상’이 다름 아닌 이것이기도 했고.”

“에엣? 미키가?”

리츠코는 놀란 눈으로 방긋 웃고 있는 미키를 바라보았다. 리츠코의 시선을 느낀 미키는 손으로 브이 자를 그리며,

“리츠코…씨가 실패한 걸 미키는 해낸 거야.”

“그건 아니지. 1등이 누가 됐든 그 녀석이 내게 프로듀서가 될 것을 요구했다면 난 그대로 따랐을걸.”

“에에- 그걸 여기서 말할 필요는 없는 거야!”

“푸후훗. 어쨌든 고마워, 미키. 덕분에 드디어 어깨 위에 있는 짐을 덜어낼 수 있겠네.”

“그 짐은 고스란히 내 어깨 위로 올라가는 거겠지.”

“물론이죠.”

“…역시 다시 생각해봐야겠어. 지금이라도 사표를…”

사장님은 재빨리 사장실로 돌아가시더니 문을 꼭 닫고 나오지 않았다. 원천봉쇄인가.

“……저럴 수가.”

“꼼짝없이 오늘부로 프로듀서가 되신 거네요.”

“하는 데까지 해보지, 뭐. 하는 데까지만.”

“또 그런 약한 소릴. 현 대회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던 그 야구선수 씨는 어디 가셨나요?”

“몰라. 그런 사람.”

이렇게 말은 해놨지만, 그래도 이렇게 된 이상 제대로 해봐야지. 다른 건 몰라도 체력은 자신 있으니,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 건 전문이다. 스트레스 또한 엄청나게 받겠지만, 그건 어떻게든 되겠지.

“자, 야구선수 씨… 아니. 프로듀서! 힘내세요. 하이터-치!”

“팔꿈치를 비스듬히. 그래! 예이-! 힘내라구!”

“흥. 네가 프로듀서를 하는 건 별로 상관없지만, 이 이오리쨩의 발목을 잡았다간 용서 안할 테니까.”

“저… 쓸모없는 아이지만… 야구선수 씨가 프로듀서가 되어주신다면, 한 번 힘내볼게요오.”

“후훗. 이렇게 함께 높은 곳을 향하게 되어 기쁩니다. 프로듀서님.”

여러 가지로 응원을 받았지만, 지금의 나에겐 응원이라고 쓰고 부담이라고 읽는 상황이다. 어깨 위가 한층 더 무거워진 것을 느끼며 리츠코가 안내해준 내 전용 데스크에 가 앉았다. 이제부터 여기서 일하게 되는 건가. 양복만 입어놨지 아직 실감은 나지 않는다.

“프로듀서 씨?”

누굴 부르나 했다가 그게 나인줄 알고 뒤늦게 고개를 쳐들었더니 오토나시 씨가 빙긋 웃고 있었다. 나를 프로듀서라고 부르는 것도 적응이 안 되는군. 항상 야구선수 씨로 불렸었으니까. 이 문제는 차차 나아지겠지만.

“네. 오토나시 씨.”

“후훗.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아… 저,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겠지만.”

“그건 이제부터라도 배워나가시면 돼요.”

과연 그 배우는 게 쉬울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분명 어렵겠지. 이 나이에 배우는 것이 쉬울 리가. 머리 안 쓴지 오래돼서 다 굳었을 거라고.
…라고 생각하는 와중에, 리츠코가 뭔가 엄청나게 쌓아놓은 파일첩들을 들고 와 내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내려놓을 때 쿵 소리가 날 정도로 많은 자료들이었다.

“뭐, 뭐야. 이게.”

“이걸로 공부하세요. 프로듀서는 어떤 일을 하는지.”

“이걸 전부.”

“네. 이걸 전부.”

“그동안 고마웠어.”

“어 딜 가 시 나 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리츠코에게 뒷덜미를 붙들려 강제로 앉혀졌다.

“이런 세상에. 이걸 언제 다 머릿속에 쑤셔 넣으라는 거야!”

“이 정도도 각오하지 않으셨으면서 어떻게 프로듀서를 한다고 하시는 건가요?”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 짓이야! 난 여기서 나가겠어!”

다시 일어났다. 하지만 한 걸음도 떼기 전에 다시 리츠코에게 붙들렸다. 리츠코는 내 눈에는 가히 악마의 그것과도 비견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입사하셨을 땐 마음대로였지만, 퇴사하실 땐 아니랍니다?”

“그럴 수가… 여기가 무슨 다단계 판매회사냐? 그것보다 너 오늘 쓸데없이 텐션 높잖아, 어떻게 된 거야?”

“우후훗. 글쎄요? 평소의 저라고 생각하는데?”

“절대로 아니야.”

“어쨌든! 아무리 우는 소리 하셔도 소용없어요. 이걸 다 익혀놓으셔야 그나마 한 사람의 몫은 하실 테니까요.”

“그럼 지금은 반편이라는 거네.”

“프로듀서로 치자면 그렇죠. 사장님께서는 야구… 아니. 프로듀서의 아이돌들과의 친화력을 예전부터 높이 평가하고 계셨어요. 그리고 그건 저도 마찬가지로 생각해요. 프로듀서는 상당히 빨리 저희들과 친해지셨죠. 분명히 프로듀서와 아이돌의 교감은 이 일에 있어서 중요한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것 하나만 가지고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거겠지. 그래. 무슨 소리 할지 알고 있어.”

“알고 계신다면…”

“실천으로 옮기라는 거냐.”

“역시 프로듀서는 대화가 잘 통하네요.”

“끄응… 역시 쉬운 게 없구만.”

별 수 있나. 한숨을 푹푹 내쉬며 첫 번째 파일첩을 들어 내 앞에 놓고 펼쳤다. 첫 장은 다름 아닌 아마미 하루카의 아이돌 프로필과 대략적인 장단점이 줄줄이 적혀 있었다.

“프로필?”

“네. 프로듀서로서 가장 먼저 자신이 맡은 아이돌들을 대략적으로 파악하는 게 중요하겠죠?”

그렇긴 하겠네. 그럼 어디 보자… 아마미 하루카. 17세. 키 158에 몸무게 46kg. 생일이 4월 3일이면 이미 지났군. 혈액형 O형.
쓰리사이즈는…

“역시!”

“에? 뭐가요?”

“아. 아무 것도 아냐.”

83-56-82! 역시 83! 80 이상이군! 겉보기에는 그냥 호리호리한데 말이야.
생각해보니 이걸 계기로 열두 명 모두의 쓰리사이즈를 합법적으로 알 수 있게 되는군. 벌써부터 막 기대가 된다.

“취미는… 아이 만들기? 뭐, 뭐야. 이런 프로필 공식으로 써도 되는 거냐? 하루카 취미가 정말 이거야?”

“…하아. 아이 만들기(子作り)가 아니라 과자 만들기(お菓子作り)! 파일을 제대로 펼쳐서 보시라고요.”

아, 아아… 제대 파일을 조금 덜 펴서 앞쪽이 잘 안보였구나. 괜히 식겁했네. 그러고 보니 저번에도 하루카가 직접 만든 쿠키를 준 적이 있었지.

“아이돌 이미지를 더욱 개선시켜야 할 프로듀서가 그런 말을 하시면 어떻게 해요? 이게 만약 팬 미팅이었다고 생각을 해보세요.”

끄, 끔찍하군. 사소한 것에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 아이돌들이 관련되어 있는 한은.

“그리고… 노래방 가기랑 친구랑 전화로 오래 수다 떨기… 라는 취미는 왜 써넣은 거야. 노래방까진 이해를 하겠다만. 그렇게 취미가 없나.”

“그건 여고생다운 취미라고 생각해주세요.”

하긴. 여고생이라면 한참 수다 떨 나이라고 하니까.
하루카의 프로필을 쭉 훑어본 다음, 페이지를 넘기니 치하야의 프로필이 적혀 있었다. 이 녀석. 여기 아이돌 중에서도 키가 커 보인다고 생각했더니 160 이상이었구나. 타카네도, 미우라 씨도 160 이상은 된다는 거라는 결론이 나오는군.

쓰리사이즈 : 72-55-78

72. 저번에 바다에서 엄청 작다고 생각은 했었는데 72라니. 이건…
이 사항에 대해서는 일단 잊어버리자. 그 편이 모두를 위해 좋을 것 같은 기분이다.

취미는 역시나 음악 감상. 그 중에서도 클래식인가. 저번에 여동생 연기를 할 때는 괜찮았지만, 그래도 이 녀석은 나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려고 하니까, 취미를 이용해 어떻게든 접근해보려고 했는데… 클래식이라고는 베토벤의 운명밖에 모르는 내가 취미로 접근하긴 글러먹었다. 아니. 애초에 운명이 클래식 맞긴 한 거야? 맞겠지?

다음은 미우라 씨의 프로필. 가장 먼저 쓰리사이즈부터 살펴본 후에 나도 모르게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후후. 역시나 91. 91이라고! 72와는 다르다! 72와는!
취미는 개와 산책하기… 라고 되어있는 것 같다.

“개와 산책? 개와 전국일주가 아니라?”

“아하하…”

리츠코 역시 미우라 씨의 위력을 잘 알고 있는지(하긴. 그 전부터 해왔으니 나보다 훨씬 더 잘 알았으면 알았겠지.), 내 딴죽에 그저 웃음만 흘릴 뿐이었다.

“그럼 저도 제 업무가 있으니까. 프로듀서가 필요하게 되면 언제든 불러드릴게요?”

“제발 그래주라.”

나는 내 책상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파일첩을 보며 다시금 한숨을 쉬었다. 이걸 한 번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날 지경인데… 보는 것과 익히는 것은 천지차이니까. 정말. 학생 때도 하지 않았던 공부를 하게 되다니.
하지만 머릿속에 든 것도 없이 이것저것 하려고 했다간 그야말로 재앙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은 공부를 하는 수밖에 없다. 리츠코가 말한 대로 제대로 한 사람 몫의 일을 하려면 말이다.

라고 생각한지 15분 만에 좀이 쑤시기 시작했다. 역시 난 몸을 움직여야 된다고. 한 곳에 가만히 앉아서는 집중이 안 된다.
결국 내가 선택한 방법은 파일첩 하나를 들고 사무소 곳곳을 돌아다니며 머릿속에 집어넣는 방법이었다. 이렇게라도 움직여야지, 가만히 앉아서는 도저히 못하겠다.

“오빠. 오줌 마려운 강아지 같아.”

프로듀서가 되었다는 이유로 ‘선수’라는 호칭을 떼어버린(아직 팀을 나온 것은 아닌데 말이다.) 아미가 킥킥 웃으며 말했다.

“무슨 소릴 하는 거냐. 그것보다 너. 아이돌이라고. 오줌이라는 단어 함부로 쓰지 마. 좀 더 고상한 표현을 쓰라고.”

“헤에… 정장 입고 그런 말 하니까 진짜 프로듀서 같아.”

“프로듀서 같은 게 아니라 프로듀서거든?”

“반쪽짜리.”

“…그건 또 언제 들었대. 어쨌든, 공부하는데 방해하지 마.”

“에에- 재미없어-”

“내가 니 재미있으라고 프로듀서 한 줄 아니?”

“그럼 왜 프로듀서를 하고 싶었던 거야?”

아미의 말에 나와 아미 주변에 있던 몇몇 녀석들(유키호라든가, 타카네라든가, 이오리라든가)이 슬쩍 우리 쪽을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미키가 1위 보상으로 그걸 요구했으니까.”

“응~후~후. 정말 그것뿐?”

“정말 그것뿐…이라고 말한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냥. 너희들이 성장하는 걸 좀 더 가까이서 보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고 할까.”

“호오. 꽤나 정석적인 발언이시군요.”

“뭐가.”

“후훙. 오빠가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식상한 이유라는 건가? 뭐. 그래도 좋아. 설령 내가 찾았어야 할 새로운 목표가 이것이 아니라고 해도, 이것이 그저 거쳐 가는 길이라고 해도, 그 길에 이 녀석들이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녀석들에게 크게 신세를 졌으니까. 내가 어떻게든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주는 것이 좋겠지.
지금으로선 방해만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하루라도 빨리 은혜를 갚기 위해선 머리에 쥐나도록 배워둬야 하는 건가. 우울하네.

“시끄러워. 빨리 일이나 나가.”

“일이 있어야 나가지.”

“…대회 끝났다고 곧바로 이렇게 되는 거냐.”

“그러니까 오빠가 열심히 해서 우리들 TV에 나오게 해줘?”

“노력해볼게.”

그야말로 첩첩산중이군. 내가 진짜 할 수 있을까. 이 녀석들을…
뭐. 발품 파는 건 자신 있으니까 하다보면 될지도 모르지.

“아미. 릿쨩이랑 오빠가 함께라면 왠지 믿을 수 있으니까. 다시 한 번 잘 부탁해!”

“왠지…라는 말은 빼도 좋지 않냐. 어쨌든 나도 잘 부탁한다.”

씩 웃으며 내 팔에 매달리는 아미를 그대로 둔 채 다른 한 손으로 파일첩을 들어 보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아미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내 정장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을 꺼내들고는,

“릿쨩이다. 아미가 받을게.”

“어이.”

내가 뭐라 말할 틈도 없이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는 몇 마디 대화를 나누더니, ‘알겠엉-’이라며 전화를 끊었다.

“뭐래.”

“나랑 유키뿅. 지금 릿쨩이 있는 곳으로 데려오래.”

“거기가 어딘데.”

“어-”

아미는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을 망설였다. 이 바보가 그새 잊어버린 게 분명하군. 아니면 아예 물어보지 않았거나.
결국 내가 다시 리츠코에게 전화를 하고 나서야 두 사람을 차에 태워 목적지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아이돌들 몇 명 태워 나른 것을 제외하면, 내 기념비적인 프로듀서 전직 첫날 내가 한 일이라고는 파일첩 뒤적거리는 것이 전부였다. 정말 기운 빠지네. 게다가 내 머리 회전에 따라서 이 짓을 몇 주, 최악의 상황에는 달 단위로 해야 된다는 거지. 차라리 765프로의 전용 운전기사로 취직할 걸 그랬나봐.

오늘 내 마지막 일정은 녀석들의 단체 연습을 지도(라고 쓰고 참관이라고 읽지만)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리츠코와 함께 모두를 데리고 댄스 연습실에 도착했다.
댄스라면 자신 있다고 내게 말해왔었던 마코토와 히비키는 역시나 능숙하게 어려운 동작들을 소화해내어 모두에게 박수를 받았다. 야요이와 유키호도 저번에 본 것보다는 확실히 나아져가고 있다는 것이 보였고, 하도 보컬리스트 운운하기에 정말 노래 말고는 관심이 없나 싶었던 치하야도 꽤나 좋은 실력을 보였다.

“하는 걸 보니까 역시 아이돌은 아이돌이네.”

내 옆에 서있는 리츠코에게 툭 던지듯 말하자, 리츠코는 빙긋 웃으며,

“그리고 이 아이들을 세상에 내보낼 수 있게 찬란한 빛을 주는 것은 우리들의 역할이죠.”

“…너는 몰라도 내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후훗. 애초에 그걸 생각하고 765프로에 입사하신 게 아닌가요?”

“아니. 물론 여기서의 목표는 그거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내 욕심으로 무턱대고 발을 들여놓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정말 그랬다면 사장님께서 프로듀서를 받아주시지 않으셨겠죠. 저는 사장님의 안목을 믿어요.”

“……”

“그리고 저의 안목도.”

흘끗 리츠코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내게 빙긋 웃어준 다음 한 차례 연습을 끝내고 앉아있는 녀석들을 향해 다가갔다.

“자. 몸 다 풀었으면 슬슬 시작해야지? 새로운 프로듀서를 위해, 아이돌의 방식으로 환영해주는 거야!”

““네에--!!””

아이돌의 방식으로?
내가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 녀석들은 리츠코의 지시에 맞춰 뭔가의 대열을 이루어 섰다. 혹시 단체곡이라도 부르려는 건가. 확실히 나는 저번 치어걸 때의 응원을 빼고 이 열두 명이 다 함께 부르는 노래는 들어본 적이 없다.

내 예상이 맞았는지, 모두의 준비가 끝난 것을 알린 리츠코는 휴대용 오디오 하나를 들고 와 재생 버튼을 눌렀다. 아무래도 내 예상이 맞은 것 같다.


♬ The world is all one!! - 765PRO ALLSTARS


하늘을 보며 손을 잡아보자
이 하늘은 빛나고 있어
세상 모든 손을 잡고
The world is all one!!
Unity mind


오오. 열두 명이 동시에 움직이니까 뭐라고 할까… 박력이 있는데?
다들 일사불란하게 노래를 부르며 안무를 소화해내는데, 그저 연습실에서 트레이닝복을 입고하는 데도 이 정도인데, 제대로 스테이지 위에서 무대의상을 입고한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만 해도 끝내줬다. 이래서 다들 아이돌에 열광하는 건지.

내가 어떻게든 힘을 내면, 이 녀석들을 제대로 된 스테이지 위에 올릴 수 있는 건가. 그럴 수 있다면, 확실히 힘을 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일이 바로 아이돌을 빛나게 하는 일이니까. 바로 내가 그 빛나는 모습을 보고 싶으니까.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
동료와 함께라면 할 수 있어
뛰어넘을 수 있는 건 ‘Unity is Strength’

하늘을 보며 손을 잡아보자
이 하늘은 빛나고 있어
세상 모든 손을 잡고
The world is all one!! The world is all one!!
Unity mind


노래가 끝난 후, 나는 웃으며 박수를 쳐주었다.

“고마워. 지금까지 받았던 어떤 환영인사보다 값진 것이었어. 너희들이 힘을 받아, 나도 힘내볼 테니까.”

열세 명의 시선과 내 시선이 한 곳에 만났다. 나와 그녀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을 지었다.



다들 슬슬 퇴근할 시간이 되었지만, 나는 사무소에 조금 더 남아있기로 했다. 슬슬 제대로 이곳에 적응을 해야 하고, 또 집에 가면 공부고 뭐고 내팽개칠 것이 뻔하니까, 여기서 조금이라도 더 볼 생각을 했던 거다.

영업 하나 뛰는데 뭐 이리 주의사항이 많은지, 터질 것 같은 머리를 감싸 쥐며 보고 있는데, 오토나시 씨가 내 책상에 커피가 든 컵을 올려놓았다.

“열의가 있으신 건 좋은데, 그래도 조금 쉬면서 하세요.”

“아. 감사합니다. 그래도, 하루라도 빨리 아이들의 도움이 되고 싶으니까요.”

“마음은 알겠지만 그래도 갑자기 이렇게 무리해버리면 탈이 날지도 몰라요?”

“휴… 그럼 10분 정도만 쉬죠, 뭐.”

고개를 쳐들고 기지개를 한 번 쭉 켜는데, 잠깐 나갔다 오겠다던 하루카가 돌아왔다. 손에는 웬 잡지 비슷한 것을 들고 있었다.

“오. 하루카. 슬슬 집에 가야지.”

“네. 그런데… 미키는 벌써 갔나요?”

“응? 미키 여기있는 거야.”

막 잠에서 깨어난 미키가 자신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손을 팔랑팔랑 흔들었다. 그러자 하루카는 표정을 환하게 풀고는,

“미키. 저번에 우리 둘이 찍은 수영복 사진. 잡지에 실렸어!”

“헤에. 정말?”

아. 그 차 안에서 저 둘을 데리고 가슴 이야기를 신나게 했을 때, 그 시발점이 바로 저 두 사람의 수영복 사진 촬영이었지.

“나도 한 번 봐도 될까?”

“에에… 아저씨… 아니. 프로듀서가 본다고 하면 왠지 불순한 생각이 드는 거야.”

“…이미 니들 수영복 차림은 바다에서 실컷 봤거든.”

“그것도 그렇네. 그럼 봐도 좋은 거야.”

난 프로듀서라고. 그런 거 보는데 허락까지 받아야 되냐? 하는 거 보니까 잡지사에서 사전에 샘플 비슷한 걸 프로덕션으로 미리 보여준다며. 그럼 당연히 내가 가장 먼저 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호오… 잘나왔네.”

저번 바다에서와는 달리, 하루카는 붉은 색의, 미키는 노란 색의 비키니를 입고 포즈를 취한 사진이 있었다. 그 밖에도 몇몇 다른 아이돌들의 사진도 있었지만, 내 눈에는 저 둘밖에 보이지 않았다.

“미키도, 하루카도 잘 나왔군. 역시 둘 다 얼굴도, 몸매도 되니까…”

“칭찬은 고마운데…”

“어째 프로듀서 씨가 말하니…”

“하루카마저 그러기냐.”

앞으로 이런 패션잡지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나. 도통 이런 거엔 관심 안두고 살았는데 말야.
사무소에 남아있던 사람들이 모두 미키와 하루카의 사진을 보게 된 다음, 테이블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패션잡지를 들어 펄럭펄럭 넘겨보았다.

…잠깐.

내가 뭔가 낯익은 얼굴을 본 것 같은데?

넘겼던 페이지를 다시 되돌렸다. 천천히, 천천히… 그 얼굴이 맞는지 확인하던 와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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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6 프로덕션 소속 신인 아이돌 타카가키 카에데
나이 25세. 취미는 온천 순회…

나는 머릿속이 백지가 되는 것을 느끼며 주변에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잊고 소리쳤다.

“말도 안 돼!!! 카에데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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