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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코미디 마스터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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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20, 2012 23:14에 작성됨.

음… 다들 정말 좋았는데. 이제 와서 ‘사실 너희 모두가 우승자야.’라고 하고 싶지만 그랬다간 집중포화를 얻어맞을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그럼 우리 전부의 희망사항을 한 가지씩 들어줘야겠네?’ 라고 나오면 난 빼도 박도 못하고 개털이 된다.
어쩔 수 없지. 정말 괴롭지만 한 명을 선택할 수밖에.
의외의 애교 섞인 모습을 보여준 리츠코도, 라면을 호- 불어달라던 타카네도, 여동생 그 자체였던 야요이도 좋았지만… 역시 내 예상을 완전히 박살냈던 미키의 눈물연기에 1위를 주겠어.

“1위는… 미키. 미키다.”

““에에에---?””

“얏호-! 해낸 거야!”

미키와 나머지 열두 명의 희비가 극명하게 갈리는 순간이었다.

“절대로 납득 못해!”

“내가 뭣 때문에 그런 부끄러운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저희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요구합니다!”

“애초에 미키의 시츄에이션은 남매간의 그것이 아니었잖아!”

“그건 너희들도 마찬가지잖아. 세상에 어느 여동생이 오빠를 유혹하려 들겠냐고. 차라리 미키의 눈물로 호소하는 쪽이 더 설득력 있는 것 같은데. 그리고 언급했다시피 미키는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열의를 보였으니까.”

“열의라면 우리도 보였어-!”

“내가 얼마나 고심했는지 알기나 해?”

아아… 예상은 했지만 반발이 너무 심한데. 어떻게 해야 이 녀석들을 납득시킬 수 있을까.

“너희들은 오빠를 유혹할 생각만 했잖아. 그게 어떻게 해서 남매지간이냐고. 그래서 유혹수를 뻗친 녀석들은 죄다 감점한 거니까 그렇게들 알아. 내가 마지막으로 고민했던 것도 그나마 정상적인 남매였던 타카네랑 야요이랑 미키 사이에서 고민한 거니까.”

“그렇군요… 저는 유혹이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전 잊혀진 거군요…”

아. 맞다. 유키호가 있었지.

“최선을 다했는데… 그런 연기력으로도 어필하지 못하는 저 따윈… 저 따윈…”

“아, 안 돼. 저 녀석을 말려봐-!”

유키호가 삽을 치켜든 찰나, 마코토를 위시한 몇몇 녀석들이 달려들어 유키호를 붙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 틈을 타서 사무소 밖으로 뛰어나갔다.

“앗-! 도망친다! 잡아!”

내가 도망치는 것을 가장 먼저 발견한 이오리가 소리쳤으나, 나를 그나마 따라잡을 수 있는 두 사람. 마코토와 히비키는 유키호를 뜯어말리느라 바빴고, 미키는 자신이 1등으로 지목되었는데 굳이 날 쫒을 이유가 없었다. 그 덕분에 나는 여유 있게 건물 밖으로 나와 차를 몰고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한동안 미키를 제외하면 만나는 걸 삼가야 할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내일 결승 때 최소 두 명은 만날 텐데… 하루 동안 기분이 풀어지길 바랄 수밖에 없나.

집에 도착해 침대에 누워서 내일 있을 결승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역시 발신자는 미키였다.

“여보세요.”

[미키가 1등이니까 아저씨가 요구사항 하나를 들어주는 거지?]

“그것 때문에 전화한 건줄 알았다. 그래. 들어줄게. 뭐냐. 어제 말했던 옷?”

[아저씨. 기억나?]

“뭘.”

[저번 잡지 촬영 때 아저씨가 들어주기로 했던 두 가지. 그 중에 한 가지를 아직 이야기 하지 않았던 거야.]

“뭐? 그게 뭔 소리야.”

[에에-? 벌써 잊어버린 거야? 아니면 일부러 모르는 척 하는 거지?]

아. 그래. 기억났다. 미키를 잡지 촬영장에 데려다주기로 해놓고 약속시간에 늦었던 것과 펑크가 난 한 명을 메우기 위해 내가 미우라 씨를 데려오는 동안 최대한 시간을 끌어달라고 했던 것. 두 가지 요구 중에 한 가지는 점심으로 주먹밥을 사주는 것으로 해결했지만, 나머지 한 가지는 미키가 나중에 이야기한다고 해놓고 지금까지 말이 없었지.

“그거… 유통기한 지나지 않았어?”

[그런 약속에 유통기한 따위는 없는 거야.]

“하아… 그래. 그럼 그때 그거까지 두 가지를 한 번에 사용하겠다는 거냐?”

[음… 대충 그런 셈인 거야. 일단 내일 결승전 경기가 오전에 있지? 폐회식 행사도 오후면 끝나니까. 그 이후에 얘기할게. 아핫.]

“휴. 네 마음대로 해라.”

[응! 후후… 나중에 다른 소리 하긴 없는 거야.]

“알겠다. 그럼 이만. 난 좀 쉬어야겠다.”

[결승전 힘내!]

“고맙다.”

전화를 끊고 다시 드러누웠다. 내일이 벌써 결승이군. 우승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일단은 컨디션 조절을 위해 맥주 한 캔만 마시고 일찍 자둘까.



다음날 아침.
으레 그랬듯이 아침 러닝 후에 곧바로 씻고 결승전이 열릴 경기장으로 향했다. 오늘 결승전이 끝나면 바로 그 자리에서 폐회식을 하기 때문에, 3,4위전을 할 옆 구장에 투입될 두 명을 제외하고는 모든 아이돌들이 우리 구장에 와있게 되었으므로, 나는 그 소식을 들은 순간 등골이 서늘한 것을 느꼈지만 다행히 몇몇 녀석들(히비키라던가 이오리라던가)이 투덜거리는 것을 제외하고는 어제 같은 반응은 아니라 안심했다.
그나저나 참 대책 없네. 만약 결승전보다 3,4위전이 더 늦어지면 어쩌려고 동시에 시작하는 주제에 폐회식은 곧바로 하겠다는 건지. 이게 속칭 동네야구대회의 폐해인가. 아니. 그래도 확실히 이번 대회는 작년보다 신경을 쓴 티가 나는 게, 공식 후원도 있고, 규모도 살짝 커졌고, 게다가 이번 결승은 지방방송에서 중계까지 하는 모양이다.

“웃우-! 힘내세요!”

우리 팀의 배트걸인 야요이가 힘을 불어넣어준 것을 시작으로, 드디어 이번 대회의 마지막 경기인 결승전이 시작되었다. 동전 던지기를 한 결과 우리 팀이 말 공격이 되어 나는 곧바로 글러브를 챙겨 내 수비 위치인 우익수 쪽으로 이동했다.

좋아. 어디 한 번 잘 해보자. 여기서 3관왕의 위치를 굳혀놓을 수 있다면 좋겠군. 예전 같으면 몰라도, 지금은 중계 같은 것도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는다. 지방방송이라고 해봤자 이 지역 주민들만 보겠지. 저번에 언급했다시피 이 지역에서의 내 평판은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다. 그리고 이번 중계의 캐스터는 나와도 약간의 안면이 있는, 그 사건이 있고 나서도 나를 좋게 봐줬던 사람이니까.
문제가 있다면, 제대로 된 구장이 아닌데다 방송 시스템도 열악하기 때문에 중계진이 큰 목소리를 내면 선수들에게까지 들려버린다는 것일까. 이건 뭐 예능프로도 아니고 말이지. 아니. 어떻게 생각하면 이게 더 사회인야구답지만 말이다.

어쨌든 경기는 시작했다. 정신 차리고 하지 않으면.
1회초는 상대팀의 2번 타자가 친 공이 내 쪽으로 꽤 멀리 날아와 거의 펜스 앞에서 잡았다는 것을 빼면 삼자범퇴로 끝낼 수 있었다.
1회말은 톱타자인 내가 2루타를 쳤지만, 후속타 불발로 선취점 찬스를 날려먹었다.

그리고 경기가 꼬이기 시작한 건 바로 2회초였다.
4번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운 우리 팀의 3선발(감독님이 조커로 깜짝 기용한 분이었다.)이 5번 타자의 강습타구에 왼다리를 직격당한 것이다. 코치들이 깜짝 놀라 달려갔지만, 아무래도 계속 던지는 것은 무리인 것 같았다. 못해도 5회는 버텨야할 선발투수의 조기강판에 우리 팀 덕아웃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궁여지책으로 1선발인 쌀집 아저씨가 구원등판 했지만, 바로 이틀 전에 50구 가까이 던지신 데다 몸도 제대로 풀지 못하고 올라왔으니, 당연히 제구가 되지 않았다. 억지로 스트라이크를 넣기 위해 던진 공은 가운데로 몰려 난타를 당하기 시작. 2회에만 4실점을 당하는 상황이 되었다.

“…뭐. 맞은 대로 돌려주면 되겠죠.”

2회초가 끝나고 덕아웃으로 돌아오니, 팀 사기는 바닥까지 떨어져 있었다. 그저께 난타전으로 불펜소모가 컸고, 어제 역시 필승조를 돌려막았기에 이길 수 있었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오늘 선발투수의 조기강판은 그야말로 치명적이었다. 팀원들을 어떻게든 힘내게 하기 위해 저런 말을 꺼낸 나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2회말 삼자범퇴. 3회초 1실점. 3회말 2점 만회, 그러나 4회초 다시 1실점. 4회말 찬스 무산. 5회초 3실점. 5회말 2득점. 6회초 아슬아슬하게 무실점.
6회초가 끝난 시점에서의 스코어는 4대9. 경기는 점점 상대팀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어려운데.”

2사 주자 1루. 타석에는 9번 타자.
대기타석에 서있던 나는 9번이 0-2로 몰려있는 상황을 보고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이 페이스대로 가면 경기가 끝날 때까지 끌려 다니게 된다. 이번 공격을 제외하면 앞으로 남아있는 공격 횟수는 세 번. 게다가 지금까지 1회와 6회를 제외하면 모두 점수를 내줬던 탓에 다음 상대의 공격 세 번에서 실점을 하게 되면… 여러 가지로 우리의 우승은 멀어지게 되는 거다.

“야구선수 씨.”

뒤에 앉아있던 야요이가 내 한숨소리를 들었는지 나를 불렀다. 나는 뒤를 흘끗 돌아보고는 그녀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 최대한 웃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괜찮아.”

“저. 야구선수 씨 팀이 질 거라는 생각. 절대로 하지 않으니까요.”

“정말?”

“네!”

“지금 상황. 알고는 있는 거야?”

“물론이죠. 물론 지금은 힘든 상황이지만… 야구선수 씨가 있는 이상 이 팀. 절대로지지 않을 거에요!”

“…내 능력을 너무 과신하지는 말아줘.”

“아니에요. 야구선수 씨라면 할 수 있어요. 야구선수 씨는 제가 지금까지 본 사람 중에 가장 야구를 잘하니까요!”

“허허…”

식견이 좁구나. 이 세상에 나보다 야구 잘하는 사람은 차고 넘친단다.
하지만 확실히 힘은 나는 것 같다. 지금의, 이 대회에서의 이 팀은 나마저 무너지면 아예 끝장이 나버리는 팀이 되었으니까. 내가 조금 더 힘내지 않으면.
나는 야요이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는 예의 그 표정. 보는 사람들마저 힘이 나게 만드는 그 표정을 지으며 주먹을 불끈 쥐어보였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픽 웃으며 마주 주먹을 쥐어주었다.

정말 야요이가 힘을 불어넣어준 덕분인지, 평범한 땅볼을 친 9번은 설렁설렁 뛰었을 예전과 달리 있는 힘껏 1루를 향해 내달렸다. 그 덕분에 당황한 2루수가 공을 한 번 더듬게 되어, 아슬아슬하게 세이프. 2사 주자 1,2루에서 내 타석이 왔다.

여기서 한 방이면 2점차로 좁힐 수 있겠는데. 여기서 잠깐 고민을 해야 했다. 오늘 내 뒤의 2번은 안타가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내가 여기서 홈런을 노리는 스윙을 해야 할까. 아니면 단타라도 치는 스윙으로 그래도 후속타를 노려봐야 할 것인가.
내가 타석에 들어서자 외야수비가 모두 뒤로 물러났다. 역시 내가 장타를 노릴 것을 염두에 둔 수비였다.
나는 타석에 서서 크게 심호흡을 했다. 관중석에서는 이 경기장의 배트걸인 야요이, 히비키. 옆 경기장의 마코토와 타카네를 제외하고는 모든 아이돌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거 자칫하다간 반격의 실마리고 뭐고 개망신이나 당하겠구만.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 앞에서 그럴 수는 없지.

1-1 카운트에서 3구 바깥쪽 낮은 공을 엉덩이를 빼며 걷어 올렸다. 타구는 1루수 키를 넘긴 다음, 선 안쪽에 떨어진 후 데굴데굴 굴렀다.

“페어볼--!!!”

중계진이 소리를 지르는 것을 들으며 내달렸다. 타구가 떨어지는 것을 확인함과 동시에 3루를 생각하고 달렸기에, 주자를 모두 들여보낸 후에 3루에 안착할 수 있었다. 스코어 6대9. 이걸로 3점차다. 하지만 2번을 믿을 수 있을까. 오늘 정말 컨디션 안 좋아 보이던데.
그렇다면 역시 그거군.

에러성 내야안타에 바로 2타점 3루타를 얻어맞은 투수가 그 충격에서 회복되기 전인 초구를 던질 때, 나는 바로 홈으로 쇄도했다. 타석에 서있던 2번은 눈치 빠르게 배터박스에서 살짝 비켜섰고, 나는 포수의 태그를 피해 슬라이딩하여 한 점을 더 추가했다. 7대9. 이젠 해볼만하다.

“홈스틸!! 홈스틸을 성공시킵니다--!!”

나는 덕아웃의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일부러 큰 동작으로 호응을 유도했고, 드디어 우리 팀 덕아웃은 슬슬 끓어오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야요이 덕분이야.”

“아니에요! 저는 야구선수 씨가 해낼 거라고 믿은 것밖에 한 게 없는 걸요!”

“그래. 바로 그 믿음이 내게 힘을 준거야. 고맙다. 야요이.”

“에헤헷.”

그렇게 8회에는 어느 팀도 점수를 내지 못하고, 9회초.
우리팀의 구원투수가 아웃 카운트 하나를 잡고 연속 볼넷으로 1,2루를 만들었다. 누가 봐도 체력이 달리는 것이 분명했지만, 감독님은 마운드에 올라오고도 투수를 바꾸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투수가 사실상 우리 팀이 가용할 수 있는 마지막 투수였기 때문에. 아무리 결승전이라지만 어제 사용한 투수들을 또 올릴 수는 없었다. 다들 연속된 출장으로 지쳐있기 때문에, 구위가 떨어져 얻어맞을 것이 뻔했으니까.
투수라… 투수들이 없으면 야수들 중에서라도 끌어 써야 할 텐데. 사회인 야구에서 투수와 야수를 모두 경험한 사람이 있을 리 만무하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어떻게든 시간이라도 끌어볼 속셈인지 포수와 투수를 두고 한숨을 쉬시던 감독님은, 내가 마운드에 올라오자 여기서 뭐하는 거냐는 표정을 짓더니… 내 의도를 파악했는지 표정이 밝아지셨다.

“네놈… 설마.”

“네. 제가, 던질 테니까.”

“…할 수 있겠냐.”

“글쎄요. 고등학교 때 이후로는 던져본 적이 없긴 하지만, 아. 저번에 좀 던진 적이 있었구나.”

마코토를 훈련시켜줄 때 잠깐.

“이래지나 저래지나 마찬가지. 그래. 니가 한 번 던져봐라.”

감독님은 곧바로 투수를 후보 외야수와 교체했다. 그리고 나는 5년 만에, 물론 사회인 야구이긴 하지만 그래도 대회니까 공식 경기의 마운드에 서게 되었다.
하필 5년만의 마운드가 2점차로 뒤지고 있는 9회초 1사 1,2루라는 상황이라니. 조금 떨리는구만. 조금.
연습피칭을 하며 관중석을 봤더니 다들 술렁이고 있었다. 다들 내가 치는 모습은 프로 경기에서나 여기에서나 봤겠지만, 피칭을 하는 건 본 사람이 없겠지. 그도 그럴 것이 고등학교 2학년 이후로 마운드에 서본 적이 없으니까. 내 고등학교 시절을 본 사람이 아니라면 당연히 처음 보게 되는 것이다.

연습피칭이 끝나고, 경기는 재개되었다.
그리고 나는 첫 타자에게 초구 몸에맞는볼을 내주고야 말았다. 주자 만루. 젠장.
괜찮아. 마음을 비우고 던지는 거다. 어차피 사회인 야구. 구속은 약간 줄여도 된다. 제구만 제대로 된다면…

“보크!!”

에엥? 뭐?
다음 타자에게 초구를 스트라이크로 꽂았는데, 스트라이크 선언은커녕 구심이 날 가리키며 한다는 말이 저거였다.
나는 무슨 말을 하냐는 제스처로 양 손을 들어 올리며 어필했지만, 구심은 내게 이중동작으로 인한 보크를 지적했다. 맙소사.
모든 주자는 한 베이스씩 진루. 만루였기 때문에 뭘 해보지도 못하고 한 점을 더 내줄 수밖에 없었다. 7대10.
다행히 다음 두 타자를 삼진과 뜬공으로 처리해 더 이상의 추가 실점은 없었지만, 중하위 타선으로 이어지는 9회말에 3점을 쫒아가기란 힘든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적은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일어난다고, 그 중하위타선이 상대팀의 마무리 전문 투수를 상대로 폭발. 두 점을 따라잡고 타순을 나까지 연결해주었다!
원아웃 주자는 1루. 9대10의 스코어에서 내 타석이 돌아왔다. 이 대회는 지명타자 제도를 채택하지 않는 대회니까. 투수인 나도 타석에 설 수 있는 거다.
만약에 병살을 친다면 우리들은 여기서 곧바로 패배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는 아까처럼 살아나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쳐야 할지도 모르겠다.
타석에 들어서기 전, 덕아웃을, 야요이를, 히비키를, 관중석에 있는 나머지 녀석들을, 그리고 우리 팀 응원석에 앉아있는 다른 관중들을 바라본 후 타석에 섰다. 내 이번 대회 마지막 타석이 될 가능성이 높은 타석이니까. 마지막 의식이라고 해도 좋을까.

초구 스트라이크를 그냥 보냈다. 두 번째, 세 번째 공은 볼이었다. 네 번째 파울. 다섯 번째 볼.

처음 야구부에 들어갔을 때는 모든 게 그저 재미있었다. 중학교 때부터 나는 더 이상 야구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그 스프링캠프 사건 이전까지 계속, 아니. 어떻게 생각하면 지금 이 순간까지 그런 생각을 해왔기에 내가 이런 사회인 팀에서나마 야구를 이어오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과연 언제쯤 내 생활에서 야구를 내려놓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안 해본 건 아니다. 하지만 프로의 꿈이 2년 만에 깨진 이후에도 나는 마치 망령같이 야구에 집착해왔다.

하지만 미키를, 야요이를, 미우라 씨를, 그리고 다른 녀석들을 차례차례 만나고부터, 그녀들이 가까워진 만큼 야구에 대한 내 생각도 점점 유연하게 변해간 것도 사실이다. 만약 그녀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까.
아아… 미키가 내게 할 요구. 지금도 대충 짐작은 하고 있다.

“제 6구 걷어 올립니다!! 이 타구가 센터 쪽! 센터 뒤로오오오--!!!! 그가 마침내 영웅이 되었습니다! 끝내기 투런홈러어어어어어언----!!!”

참 시원하게 뻗어 가는구나. 뭔가 시원섭섭한 기분이다.



그렇게 결승전까지 대회의 모든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나는 대회의 마지막을 장식한 끝내기 홈런으로 3,4위전에서 2개째의 홈런을 친 선수를 밀어내고 홈런왕을 차지했다. 물론 타율과 타점 역시 내 압도적인 1위였다. 약속했던 대로의 3관왕 달성이었다. 대회 MVP는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었다.

“상복이 터졌구만. 이놈이. 으허허.”

“감독님.”

“그래. 이놈아. 수고했다. 정말 수고했어.”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저 하고 싶은 거 해도 되는 겁니까?”

감독님은 내 말에 잠시 동안 내 눈을 들여다보셨다. 그러더니 피식 웃으시며,

“마음대로 해라, 이놈아. 나는 니 감독일 뿐이다.”

라고 하시고는 껄껄대며 수상식장으로 이동하셨다.


♬ 러블리 - 미우라 아즈사


미우라 씨의 귀여운 노래를 들으며 열광하고 있는 와중에, 내게 다가온 사람은 다름아닌 미키였다.

“자. 미키랑 가는 거야.”

“어, 어이. 지금 가도 되는 거냐?”

“응. 미키 차례는 이제 끝났으니까. 리츠코…씨도 허락했어.”

“그으래… 그럼 가지.”

폐막 행사 도중에 빠져나온 나와 미키는 곧바로 차를 타고 번화가로 이동했다. 그 이후 나는 미키에게 여기저기 휘둘려 다니면서 그 근방 옷가게란 옷가게는 모조리 뒤지고 다녔다. 도중에 몇 번이나 ‘미키에게 뭐가 어울릴 것 같아?’라는 질문을 받았지만 거의 반타작 수준이라 미키는 내가 화를 냈다. 이봐. 내가 그걸 다 알면 스타일리스트나 점쟁이를 하지 이러고 있겠냐고.

결국 마지막으로 들른 곳에서 미키가 봐 놓았다는 옷을 찾을 수 있었다. 이 녀석. 일부러 여길 가장 늦게 온 것 같은데.

“자. 이 옷을 사준 게 저번 촬영 때의 보상인 거야.”

“그러냐. 그럼 이번 1위 보상은 뭘로 해줄까?”

“그거야 물론… 음… 저번엔 제약이 있었지만 이번엔 아무런 제약이 없었으니까. 이 요구조건을 말해도 되는 거지?”

“뭔데. 들어나 보자고.”

미키는 곧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그 요구사항을 이야기했다.
역시나. 내가 예상하고 있는 그것이라 안심…이라기보다는 그냥 올 것이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

“자. 어때. 들어줄 수 있어?”

“하아… 그러지 뭐. 못 들어줄 것도 없지.”

“정말? 됐다-!”

미키의 좋아하는 얼굴을 보고, 내가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그냥 나도 웃어주는 것밖엔 할 수 없었다.



현 대회가 끝난 후로부터 이틀이 지났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하던 대로의 일과를 마친 후 바로 옷을 입고 765프로덕션 사무소로 향했다.

“아. 야구선수 씨. 안녕하… 어머?”

가장 먼저 나를 발견한 하루카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뭐야. 내가 뭐라도 했냐?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

“뭔가 어색하면 말해.”

“아, 아뇨. 어색한 건 아닌데… 에헤헤…”

“그럼 됐어.”

하루카를 그 자리에 내버려두고 사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다행히 사장님은 안에 계신 것 같았다.

“오오… 자네가 나를 다 찾아오고… 무슨 일인가?”

나는 이틀 전 마지막 타석에 들어섰을 때처럼 한숨을 크게 쉬었다. 그리고는 준비해온 것을 사장님이 앉아계신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음? 이건 뭔가? 그러고 보니 자네의 양복차림은 또 처음보네만.”

바로 어제. 양복이라는 걸 처음 사 입어봤던 나는 사장님께 내민 것의 정체를 밝혔다.

“이력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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