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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마스X40k 유니버스] Guns and Flowers 2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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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14, 2013 02:35에 작성됨.

앞으로 열흘도 남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이거 초중반도 벗어나지 못한 채 입대를 맞이하는 것은 너무 안타깝네요. 분명 1년 반을 넘어서 다시 쓰기도 뭣할 것이고........ 아닌가? 어쨌든 생각 많이 해보겠습니다.



Guns and Flowers 25편



세월의 상처가 보이는 얼굴에서 말이 끝나자, 칼카스는 다물지 않았던 아랫턱을 닫으며 몸을 뒤로 기울였다. 체격이 원체 좋아 제풀에 넘어지지 않고, 다만 뒤로 한 발자국 움직이고 그곳에서 멈춰섰다.

젊은 이단심문관의 표정은 간단히 읽혀지지 못했지만, 거리를 두려는 모습에서 중년은 무언가 읽어냈다. 굳은 입과 눈가를 쫒는 시선이 원점으로 돌아올 쯤에는 '로드'는 내키지 않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이렇게 자네를 자극하는 것은 원하지 않았지만, 내뱉은 것은 돌려놓을수 없지."

그를 향해 입을 다물어 굳은 얼굴로 칼카스가 응시하였다. 건조한 느낌의 두 눈동자는 조명에도 광택을 발하지 않아 눈언저리에 파묻힌 시선을 더욱 짙게 파묻었다.

"모든 것을 넘어서, 어떤 요인으로 자네가 미나세 가문의 자료를 요구하게 되는 것인가?"


그를 째려보는 듯한 칼카스의 눈빛은 잠시 수그러들었다. "그쪽에서 사유라도 물어본 것입니까, 아니면 개인적인 호기심 때문입니까?"

칼 카스는 자신의 연령보다 훨씬 많은 세월을 복무한 영웅에 대해 약간의 존중이라도 보이지 않았다. 이 기록보관소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에 대한 경외로써 깎듯이 대하는 것에 비해, 오히려 이단심문청의 검은 그 칼날 앞에서 옛 영웅을 다른 자들마냥 동등하게 대접하였다.


"바르고스 프라임에서 그들의 도움을 받고자 하면, 그들의 방식도 존중해야만 하지 않겠나."

"오르도 제노스의 의지를 잊으신 겁니까?" 의자에 걸터앉은 중년을 향한 매서운 눈빛은 더욱 건조해지기 시작했다. "카터의 말이 헛소리가 아니기를 바랬습니다만......" 

그것은 공격성을 띄고 있었지만, 오히려 발걸음은 뒤를 향하고 있었다. "일단 할 말을 마쳤으면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이쪽도 나름대로 바쁩니다."


"자네의 임무를 제외하고도, 바르고스 프라임에서 마땅히 수행할 책임을 망각한 것은 아닐 거라고 믿겠다."

그것은 칼카스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의 취향인지 회합실의 어두운 조명은 의자에 앉아있던 '로드'를 그림자로 감쌌지만, 음험함과는 거리가 멀어 오히려 아늑하다고 느껴졌다. 한 마디의 명령도 없었지만, 칼카스는 뒤로 향하던 몸을 다시 그에게 이끌었다.




"......." 칼카스와 같이, 입술과 턱이 경련하듯 떨리던 로드의 얼굴에는 세월의 굴곡이 엿보였다.

계곡조차 따라가지 못할 깊은 상처와 이마거죽에 박힌 금속 징들의 형태로 그곳에 박혀있던 모습은 아스타르테스의 초인을 연상시켰다. 그 모습과 명성에도 불구하고 사람으로써 틀은 유지하였던 것도 특징이지만.


"이 코트가 무색하게, 직접적으로 자네에게 내릴 명령에 대한 권한은 존재하지 않는다네." 북실거리는 모피로 뒤덮은 옷깃 때문일까, 그의 머리와 더불어 체격이 작게 비추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일과 연관되어서 그들을 조율할 역할은 내가 맡아둔 것이지." 그의 앞에서 기세가 세워진 젊은 이단심문관은 허탈하다는 듯 어깨에 힘을 뺐다. 양쪽 어깨가 가볍게 가라앉아, 높이 세워질 때보다 훨씬 가볍고 편하게 보였다.


"카터가 말한 것도 있지만........" 한숨만 쉬지 않았지 체념한 듯 그는 의자를 꺼내 마주본 채로 앉았다.

최소한의 절도만을 유지한 채로 서류첩 하나만이 들린 오른손을 무겁게 옮겨 책상에 올려두었다. "현재 임무 범위가 확장되고 있습니다. 그쪽, 그러니까 목표......."

곤란한 듯 칼카스가 이마를 엄지와 중지로 쥐어짤 쯤, 듣고 있던 로드는 누르던 양 손가락의 사이 부근을 주시하였다.


지병으로 현기증이라도 있는 것인지 동공이 위로 살짝 올라가며 칼카스의 말이 내뱉어졌다.

"직접적인 관찰 및 정보 획득, 그리고 6개월 뒤의 호송만으로 배신자들의 물자 교환이 설명되지 않습니다. 정작 그 '목표' 자체에는 그들과 연상되는 어떤 커넥션이나 추정되는 단서도 없습니다."

스스로도 갑갑하다는 듯 속내를 터놓으며 서류가 담긴 종이봉지 위에 손을 얹었다.


오른쪽 중지손가락에 끼워진 반지의 아래로 양각된 듯한 상징 하나가 엿보였다. 영향력있고 개방적인 로그 트레이더 가문의 상징으로는 믿겨지지 않게 세심하고 웅장하게 새겨졌다.

십자성을 바탕으로 새겨진 행성이 닻과 수직으로 엮여진 채 독수리에 의해 끌어올려지는 모습은 칼카스가 소속된 곳의 상징과는 너무나도 상반되었다.

"이단심문청의 자료만으로 충분하지 않기에 카터 양이 자네에게 일러준 게로군. 그럴 법도 하지."


적개심은 사라지고, 케이스는 다르겠지만 퇴역한 장교에게 예우를 대하듯 젊은 이단심문관은 의견을 정중히 제시하였다. "애초에 바르고스 섹터에서 이 가문의 영향력을 무시할 방법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당연한 사실을 읆었을 뿐이지만, 칼카스의 뇌리에는 전격과도 같이 재빠르고 강렬한 빛이 스쳐지나갔다.


"잠깐." 스스로 흠칫 놀라듯 칼카스는 자신의 오른손을 살짝 띄었다. 설마하는 마음에 반신반의하였지만, 주시하던 로드의 표정이 확신으로 가득차자 자신감을 얻어 발언하였다.

"미나세 가문의 정보조차 오르도 제노스와 깊은 연관을 지니고 있단 말입니까. 공생 관계를 넘어서."


"그러면...... 레빈스 항성계에서도 그쪽 가문과 협력 관계로 임무를 진행했다는 겁니까." 칼카스의 이어진 추측에 '로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옛 생각에 이마의 주름이 깊어지던 칼카스는 손가락 마디에 힘을 주며 주먹을 쥐었다. "그러면 현재 개입하기 시작한 적의 커넥션은........" 뚜렷한 목소리는 하얗게 변색되는 머릿속과 함께 사라졌다.

스스로 말문이 막힌 것인지, 칼카스는 떨리는 손으로 서류를 짚었다. 아니, 손놀림이 좋은 이단심문관조차 경련을 일으키듯 포장지에 손가락이 미끄러져 두 번 짚어서야 잡을수 있었다.


제국에 의무를 다하기 위해 공포를 배제하는 사내를 어떻게 해야 스스로 두려움을 느끼게 만들수 있을까.



".......... 이거 저주받을 노릇이군."

"그들은 다시 오고 있다네. 레빈스 항성계의 잿더미를 뒤로 둔 채로, 자네가 쫒는 것을 그들도 쫒고 있지. 이 참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선에 내가 남아있는 이유 중 하나고."

유화적인 태도의 로드에게서 지금껏 강렬한 의지를 읽어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레빈스 항성계의 참사 이후로 책임을 안고 물러선 자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머릿속이 아늑해지기 시작했다. 그것을 공포라고 표현한다면 차라리 떨칠수 있겠지만, 이단심문관은 그럴 만용조차 부리지 못하였다.

이 단심문청, 오르도 제노스의 명으로써 수행하는 의무는 그를 받치지만 동시에 물러나지 못하게 만들었을 뿐이였다. 로드는 어떤 명령도 그의 입에서 내뱉지 않았지만, 행동 하나하나와 말 하나하나가 의도하듯 칼카스의 머릿속을 헤집고 조종하는 듯 싶었다.


그의 눈에는 집었던 서류첩이 보였다. 칼카스는 적들의 무자비함, 적들의 동원력을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그것을 부른 원인에는 자연스레 기겁하였다.

차라리 그것만 가늠하고 적을 파악한다면, 그들을 정면에서 깨부수어 공포와 광기를 몰아낼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 믿기도 했다.


"그, 그것이....... 아아." 말을 더듬으려다 스스로 가다듬은 칼카스는 이어서 제대로 물어보았다.

"마지막으로 단 하나만 물어보겠습니다."

"무엇이든 말하라." 묵묵히 답해줄 거라는 확신은 칼카스에게 말하도록 자극하였다.

" 저 서류....... 어떤 정보가 포함되기에 적들의 행동에 대한 기반을 헤아릴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지나친 주의일수도 있겠지만, 칼카스는 당장 수 명의 적을 상대하는 것보다 이 서류를 대하는 것에 더 큰 신경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로드가 팔걸이에 걸쳐둔 두 팔에 힘이 주어졌다. 그것이 눈에 띄어 당장 일어설 것과 같아 칼카스는 뒤로 물러섰지만, 대신 로드의 답변이 강한 어조로 튀어나왔다.

"내 기억에 그릇됨이 없다면 충분히 그들도 기록하였을 것일세." 그의 대답으로 우선 살펴봐야 할 내용들을 추스리던 칼카스는 말없이 긍정하며 서류첩을 챙기기 시작했다.


"알겠습니다. 일단 근방의 성당 위치를 알려줄수 있겠습니까?" 날짜가 날짜인 만큼, 할 말 마치고 서류첩을 확보한 칼카스는 자리를 뜨려 들었다.

마지막 말을 듣고 그는 방에서 나서려고 했지만, 젊은 이단심문관이 떠나기 전에는 절대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을 듯한 로드는 부정된 의견을 표하였다.

"원한다면 알려줄수도 있겠지만, 그곳으로 오늘 발길을 돌릴 생각이면 자제하는 것이 나을 거네. 정체를 밝혀서 판도 전체를 깨부술 생각이 아니라면."

"무슨 소리입니까." 그의 말에 반박하였지만, '목표'와 통화했던 내용 중 일부를 기억하였다. 안식일이여도 간단히 다른 성당으로 방문할수 있는 터였는데, 어째 그것을 옛 상관조차 말리는 것인가는 가늠하지 못했다.

다만, 충고에 따라 이유도 모르는 채 행동하였을 뿐이다.


마지막 긍정과 함께 칼카스는 방을 나섰다.

수십분에 불과한 대화였기에 지치거나 달라진 외양은 눈에 띄지 않았다. 얼굴조차 수 년간 걸쳐진 전투 경험으로 인해 상처받고 단련되어 있지만 그 경계감과 적대감, 투박함으로 가득찬 눈빛이 수그러들었다.

인외마경에서 벗어난 이곳에서도 그 긴박한 감정은 버리지 못하였지만, 진정된 표정은 그곳에서나 찾아볼수 있었던 모습이였다.


그러나, 레빈스 항성계의 참사 이후 7년이라는 세월은 불안한 생각만으로 감추지 못하는 것이였다.




"205년, 42번째 천년기. 여기, 레빈스 3, 아니 하이 고딕인 'III'로 써야지....... 그리고 4주동안....... 4주동안....... 그 다음에 뭐라고 써야지......."

"제발, 심각한데 그냥 나중에 적으면 좀 안되겠습니까? 이런 소리를 하기는 뭣하지만 이러다가 손발 오그라들어서 핸들을 놓칠거 같습니다만."

조수석에 앉아있던 사내가 아예 바깥을 바라보며 딴청을 부리던 사이, 핸들을 떨리는 손으로 잡던 운전병의 두 입술과 두 손을 떨며 간신히 진정하고 있었다.


각각 반응이 냉담한 척을 하며 애써 귀를 속으로 틀어막거나, 아니면 두 손의 손가락들을 따닥거리며 얼굴을 붉히는 데에는 계속 뒷좌석에서 들려오는 말이 원인이였다.

"그러니까 좀 도와달란 말이죠. 4주동안....... 4주동안 제국을 위하여 충성을 바치는...... 이거 외에 덜 상투적인 말이 있을텐데."

뒷좌석에 등을 파묻은 채로 수첩과 연필을 놀리던 여인에게서 가볍게 쉬듯 의견을 제안하였다. "차라리 그 수녀 분께 물어볼걸 그랬어요."


" 장담하는데, 그쪽에 맡기면 1천년 뒤에 국교회에서 유물로 삼을 걸작이 나올 겁니다. 작위적이고 오그라드는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위치로....... 흐흐흠." 귀환하는 길에 긴장을 풀었던 운전병은 어정쩡한 미소와 함께 조소를 지었다.

플랙 아머를 뒤집어쓴 어깨가 들썩인 것은 좌석에 가린 뒤의 시야에서도 쉽게 눈치챌수가 있었다. "그래도 이걸 쓰는 데는 의미가 있는데.... 나름대로 할 일을 했으니 이런 거를 쓰고 자랑할수 있는거 아니겠어요?"


"음. 그 할 일이라는 것이 현장 바깥에서 대기하고, 뭐 질문 하나 물어보는 것에 답한다로 정리한다면 되겠습니다만....... 그러면 우리 입장은 뭐가 됩니까?!"

순간 운전병의 언성이 높아졌다. 자신도 모르게 흥분한 탓에 운전병은 말을 돌렸다.

"의도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내뱉은 말은 변명으로도 돌려놓을수 없었다. 토라진 것과 겁을 먹은 것의 가운데쯤에 위치한 여자는 그저 조그맣게 답할 뿐이였다. "그래도......."


운전병의 입장에서는 보잘것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지만, 직접 언급한 데에 조수석의 사내조차 수긍하니 그녀는 실망감을 넘어 약간의 배신감까지 느꼈다.

그래도 할 말 자체는 찾을수 없었다. 사실은 사실이고, 엄연히 임페리얼 가드의 현역 군인과 바르고스 섹터의 앳된 지원병과 일대일로 비교하는 것에서 무리가 있었으니.


앨리스 카터는 어정쩡한 토라진 얼굴과 함께 창문을 보았다. 썩 마음에 들지는 않고 무섭기도 하지만, 일주일 뒤면 고향에서 추억으로 삼을 것을 떠올리며 창문 너머를 쳐다보았다.

전원적이고 소박한 레빈스 III의 풍경은 기억될 모습으로 충분한 가치를 지녔다.



카터의 색다른 두 눈빛은 차문 너머의 지평선과 언덕에 꽂혀있었다.

그럭저럭 도시라고 부를 수 있었던 정오의 그곳과는 다르게, 서서히 내려가는 태양이 어우러진 농경지는 감성을 자극할 그 무언가 있었다.

뭐 그것과는 상반되게 불편한 점이 많아 오랫동안 있으라고 하면 거절할 것이 뻔하였지만. 특히나 그것은 현재 직위와 더불어서 떠올린 것이였다.


약간 닦아놓은 창문 탓에 저 바깥과 더불어 안의 모습도 흐릿하게 보였다. 그 건너편에서 비추는 자신의 모습도 바깥의 풍경과 더불어 기억될 법도 하였다.

처음에는 대체 무슨 생각인지 멋지다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지만, 일주일 남짓 남은 지금 시점에서는 우스꽝스럽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몸에 꽉 끼지 않고 허름한 점퍼와 같은 군복의 상의는 그나마 앞을 풀어두어 덜 갑갑하게 보였다. 그나마 속에 입어둔 회색의 티셔츠는 나름대로 목에 걸어둔 인식표와 어울렸다.

임 페리얼 가드의 다른 군인들과 다르게 바르고스 프라임의 지원병으로써 인쇄된 명함 크기의 종이에 코팅하고, 구멍을 뚫어두어 섬유 재질의 목걸이로 걸게 만들어졌다. 전에 찍어둔 작은 사진과 함께 이름, 혈액형, 소속과 그 외에 생년월일과 같은 정보들도 기재되어 있었다.


어느새 전원적인 농경지의 모습에 심리적으로 안정되어 카터는 기분이 한 결 나아졌다고 느꼈다. 일단 운전하는 군인이 언급한 대로 적는 것은 나중으로 미뤄 파우치에 두었다.

"음........ 그래도 오늘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괜찮았네요. 처음에 그쪽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겁도 많이 났는데."

"괜히 긴장 풀고 임하라고 말한 게 아니다. 그냥 충실하게 할 일만 해도 중간은 가니까." 운전병을 대신해, 조수석에서 거대한 케이스를 곁에 둔 다른 군인이 입을 열었다.


"앞으로 며칠....... 그래, 오늘 끝났으니 5일인가 6일인가 되겠군." 상대적으로 긴 시간은 아니지만, 그렇게나 남았나 카터가 순간적으로 생각할 계기는 되어주었다.

"일정이 완전히 끝나면 추가 급여를 받고, 네 출신 행성으로 떠나면 되는 일이니 편하게 발 뻗고 잘 수도 있겠군." 전투복과 사복을 섞어입은 군인은 자신의 일마냥 느긋하게 언급하였다.

"대체 그쪽에서도 사람이 딸리는 것인지....... 상관없다만."


"흠....... 그쪽까지 그러면 속상한데요. 최소한 실수 안하고 제대로 끝냈으면 뭐라 하지 않아도 되잖습니까."

" 그렇긴 하지." 허무한 긍정에도 카터는 만족스러운 듯 앞좌석의 밑으로 다리를 쭉 뻗었다. 절로 편안해지며, 추운 날에 따뜻한 이불로 온몸에 감싸듯 안심할수가 있었다. 앞으로도 있을 일에 부담감을 별로 느끼지 못하는 것도 한숨 돌리는 데 한 몫을 하였다.


추운 날에, 따스한 방에 두꺼운 이불 안으로 머리와 팔만을 내놓은 채 누워서 시간을 보내는 상상은 마을을 편하게 하였다.

스스로 인식하지 못했지만, 두 손을 뻗어 시트를 딛은 채 기지개를 펴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행동과 별개로 돌아가는 생각은 그녀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한 웃음을 짓게 하였다.

"후후흐흐흐. 아아.....흐흐."


애초에 입을 다물어도 절로 남성들의 주목을 받는 회색조의 옅은 금발을 지닌 청초한 미인이였지만 이번에는 좀 다른 주목을 받았다.

바르고스 섹터 출신의 별 문제 없이 자란 여자의 웃음소리치고는 어울리지 않는 수준이 특정 선을 넘었다고 둘은 동의하였다. 카터와 비슷한 키의 운전병은 나오지도 않은 식은땀을 닦던 시늉과 함께 물어보았다.


"대체 임무 도중에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 겁니까, 이번에는 무슨 일인지......"

"저건....... 나도 모르겠다. 가끔씩 웃음소리가 털털하니 좀 깨는 면이 있어서." 상상에도 불구하고 귀는 뚫렸는지 카터는 대꾸했지만, 바르고스 섹터의 사람답게 여유로운 느긋함이 남아있었다.

"왜요? 지금 별 문제 없는데." "그렇다면....... 나중을 위해서 이야기를 남겨두든가. 지금 일단 돌아가면....... 잠깐."


이제 십 몇분도 남지 않아 두 사람 다 느긋한 표정과 함께 격양되었지만, 칼카스는 마저 말을 마치지 못한 채 무전을 받았다.

"대거 수신, 리마 인디아, 수송대와 합류....... 확인. 1분 내에 대기하겠음. 이상."

무언가 심상찮아 카터는 좌측이나 우측을 두리번거렸지만 아무것도 맨눈으로 찾을수 없었다. 아마 그라면 번뜩이는 시선으로 찾게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전에 거대한 케이스가 바로 옆으로 툭 떨어졌다.


"무슨 일입니까?" 아무래도 심각한 일인거 같아 예사로운 표정과 함께 집중하며 왼쪽에서 라스카빈을 찾았다.

파스텔톤의 녹안과 벽안 양쪽으로 두리번거리는 것도 잠시, 앞쪽에서 무전과 함께 속력을 늦추는 운전병 탓에 불안함이 증폭되기 시작하였다.

허름하다만 군복을 입은 채 다뤄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카빈을 챙기는 모습은 미숙하여 현역의 입장에서는 위험하고 아슬하게 보였다.


"하차 후 안전한 위치로 지원병을 인솔하십시오." 곧장 차량이 멈춰설 쯤, 오른쪽 문을 열어 밖으로 나선 칼카스가 그에게 명령하였다.

직접적인 지휘권은 없지만, 이단심문청이라는 소속은 운전병이 따라야만 하는 절대적인 권위였다.

"알겠습니다. 컨베이, 델타 3에서 하차하겠다. 후속하는 차량들도 정차하라."

간단한 무전과 함께 헬멧과 라이플을 챙긴 덩치 좋고 카터와 비슷한 키의 가드맨은 왼쪽 문으로 빠져나간 동시에 차량 앞을 가로질러 빠르게 오른쪽으로 향하였다.

그에 휩쓸려 카터도 나가려던 참에 그의 주의에 두고 내리려던 물건 하나를 챙겼다.

"헬멧도 챙기십시오."




주변 수십미터, 아니 수백미터로 농경지와 함께 기껏해야 한 팀이 엄폐할만한 건물이 조금씩 세워졌다.

당장 저격수 한 명이라도 있으면 빠르게 빠져나가는 것도 우선이겠지만, 그것만큼은 아닌 모양이였다. 탁 트인 환경에서도 주의를 기울이던 카터는 손을 땅바닥에 짚은 채로 기어가며 차량 오른쪽으로 향하고 나서 주저앉았다.


"씁, 아아........ 아악." 손바닥이 흙에 긁힌 듯 카터는 혀를 찼다.

아직 피는 흘러나온 것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상황에 긴장감이 올라 마구 손바닥으로 땅을 딛고 기어가 자잘한 긁힌 상처가 났다.

몇 주간의 고생 탓에 곱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나름대로 상처가 나지 않도록 관리한 손바닥의 흉터 부근에서 다시 핏방울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싸한 표정으로 양손바닥을 떨리는 눈과 함께 응시하던 차, 하차한 차량 쪽에서 들려오는 무전음을 잡아냈다.

"알겠다, 맥피어슨. 끝나면 수송대에서 소대원들과 합류하도록." 슬슬 엄지손가락 아랫쪽의 피부가 붉게 스며드는 가운데에, 맥피어슨이라는 이름을 지닌 운전병은 송신기에 대고 답했다.

"알겠습니다. 델타 3 아웃." 다른 군인들에 비해서는 작은(그러나 카터와 비슷한) 키의 맥피어슨은 답하는 즉시 앉아쏴 자세로 앉아 기다렸다.


그가 눈치를 살피던 사이, 싸한 느낌을 넘어 욱신거리는 탓에 카터는 눈물점 부근을 비벼대며 읆었다.

"으아....... 이거 아프네. 다시 덧나면 안되는데. 혹시 주변에 뭐 의약품 가방에서 반창고 하나만 꺼내면 될 거 같기도 하고...... 하나 있어요?"


"에, 이 정도면 딱지만 떼지 않아도 될텐데 말입니다. 일단 조용히 있으십쇼."

묻 은 혈흔을 닦아내는 벽안 근처는 씰룩였지만, 무심한 듯한 맥피어슨이 가리키는 것에 그녀도 입을 다물고 지켜보기만 하였다. '그 사내'와 더불어 비슷한 사복차림의 군인들이 단 한 명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명령을 받는 모습이였다.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마초적인 가드맨들도 시선 마주치기를 꺼렸으며, 과연 그 대머리의 중년 지휘관은 그럴 만한 모습이였다.


마치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에 세공된 '천사'의 모습을 본따 만든듯한 중갑과 전기톱검만 해도 경외심을 넘어 소름끼치는 위기감까지 느꼈다.

그 위에 덧입은 코트에는 온갖 것들이 걸려져 있었다. 방대하고 두꺼운 양장본 한 권, 갖가지 수류탄...... 비슷한 것. 약물통, 기하학적인 형상의 도구들...... 마주치기도 힘든 전사를 넘어선 자라는 것만 알 수가 있었다.


그와 같은 자를 다시 마주치지 않을 거라고 여겼지만, 그 생각을 뼈저리게 깨달고 후회한 것은 수 년 뒤가 되었다.



뭐, 얼마 쓰지도 못할 테지만 남은 날짜동안 할 수 있는데로 다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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