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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하라 베이커리-도쿄에서 만난 교토 아가씨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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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14, 2016 14:52에 작성됨.

이전편들

 

“.........푸핫!”

 

잠깐 당황한듯 눈을 크게 뜨고 히이라기를 정면으로 바라보던 슈코는 한 방 먹었다는 듯 웃어버리고말았다.

 

“아, 그건 아니다.”

 

“그렇죠?”

 

히이라기 또한 예상했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오랜만에 웃겼어”

 

“오, 1점 땄네요.”

 

“그리고 오빠가 좋아하는 사람은 미치루아냐?”

 

“아.....좀 다르네요. 사랑하는 거죠”

 

“오.....근친?”

 

“슈코가 요즘 소설을 자주 읽는 것 같지만, 그건 아니에요.”

 

히이라기는 천천히 양 손을 가볍게 깍지를 끼고 말을 이어나갔다. 이럴 때면, 늘상 히이라기는 제법 진지한 이야기를 이어나가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묘하게 끌리는 이야기였다. 글로 써놓으면 참 지루하고 현학적인 이야기인데 저 사람이 이야기하면 뭔가 있달까

 

“정말로 깊이 사랑하면 두근두근한다든가 얼굴이 붉어지는 그런 건 없어요. 처음 자각했을 때, 아직 풋사랑단계에서는 있을지도 모르지만요. 그냥 같이 있는 게 편안하고 익숙하죠. 평소에는 ‘특별함’같은 건 못 느끼지만....없어지면 그때가서야 가슴이 아픈, 그런 거랍니다. 적어도 내가 경험하기로는.”

 

“흐~음.....잘 모르겠네.”

 

“미안해요. 슈코랑 같이 편하게 있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서 말이 길어져버렸네요.”

 

“뭐, 확실히 너무 오랜만이기는 하지.”

 

“전 좋거든요. 이렇게 같이 있는 시간이.”

 

“그런가~”

 

슬쩍 시계를 보고서 히이라기가 뒤로 물러나며 말을 꺼냈다.

 

“시간이 너무 늦었네요. 슈코, 자지않아도 괜찮나요?”

 

“아.....듣고보니 졸린 것 같기도 하고...”

 

“제 방에서 자면 되요.”

 

“오빠는? 설마....나랑..후흥~”

 

“걱정마세요. 미치루랑 같이 잘 거에요.”

 

“잠깐 스톱. 내 감동 돌려줘”

 

슈코가 히이라기의 어깨를 붙잡고 힘을 주자, 히이라기가 장난스러운 미소로 돌아봤다.

 

“농담이고, 오늘 밤샘해야해요.”

 

슈코는 갸웃-하다가 금새 ‘아-’하고 의미를 알아차렸다. 슬슬 연말이고 하니 오오하라 베이커리로 밀려드는 케이크 주문이 있겠지. 양이 많지는 않지만, 맞춤주문제작이니 제작 시간은 오히려 배로 들 것이다. 대충 예상한 슈코는 침실로 몸을 돌렸다.

 

“그럼~ 초보자는 그럼 들어가보겠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슈코는 오랜만에 만나는 침대에 누웠다. 뭐랄까, 들어온 지 몇 시간도 안 됬지만 가벼운 마음이다. 푹 잘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약 1시간 후, 슈코는 잠에 들지 못하고 있었다. 딱히 잠자리가 불편하지는 않다. 오히려 부러울 정도로 잘 만들어진 침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슈코에게 있다. 잠을 청하며 눈을 감고있으면 소리가 들린다. 방금 전 들었던 소리가 계속 맴돈다.

 

‘슈코, 나 좋아해요?’

 

“아니”

 

‘슈코, 나 좋아해요?’

 

“아니라니깐!”

 

못 참고 벌떡 일어났다가 다시 눕기도 했다.

 

‘사랑은 그냥 일상 같은~~~’

 

‘난 슈코가 좋은데요?’

 

“아니다아....아니다아...아니다아....”

 

어째 점점 왜곡되어가기까지 하는 말이 불꽃처럼 피어올랐다가 연기처럼 흩어지는 어지러운 밤 속에서 슈코는 침대에서 뒹굴고만 있었다.

 

그러나 슈코가 어쨌든, 달은 지고 해는 떠오르는 법. 천천히 떠오르는 아침해처럼 오오하라 베이커리 안에서도 천천히 빵 냄새가 솔솔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직도 눈을 부비는 미치루가 오빠에게 안겼다가 씻고서 다시 아침빵을 먹는 그런 아침이 다시 떠올랐다.

 

다른 향은 없이, 밀가루 본연에 가까운 냄새가 느껴진다. 바삭하게 잘 구워진 파이의 향도 아닌 밀가루 본연의 향이다. 손으로 잡자 공기가 들어찬 주머니처럼 푸욱-하고 눌렸다가 어느 순간에 꽉 차 있는 듯한 저항감이 느껴진다. 다시 손을 떼자 바람이 들어오는 풍선처럼 빠르게 제 모습을 정돈한다. 하나의 가죽주머니와도 같은 모양새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동근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알수없는 안정감과 포만감을 준다. 칼을 밀어넣자, 찢어지지않으려는 가죽처럼 저항하다가 이내 잘리고만다. 벌어진 속은 하얗고 구멍이 송송 뚫려있다.

 

“으그그..극-!”

 

미치루가 힘을 주어 병을 열자, 살짝 어두운 빨간색 액체가 한가득 담겨있다. 설탕의 단 내에 딸기향이 살며시 섞여서 병 안으로 흘러나와 코를 간질인다. 코 끝을 콕콕찌르는 단 내에 아직도 어깨에 달라붙어있던 잠이 조금 달아나고 침샘이 활발하게 움직이기시작했다. 딸기잼을 새하얀 치아바타 위에 얹자 도화지 위에 홀로 끼얹어진 빨간색처럼 잼이 선명하게 두드러져 보인다.

 

버터마저 올리고 치아바타를 입에 넣어 깨문다. 겉은 조금 질겨, 송곳니를 조금 내밀어 힘을 준다. 이에 살짝 붙었다가 떨어지는 감촉, 여러번 씹어도 조금 눌렸다가 다시 되돌아올뿐 좀체 잘리지 않는 쫄깃함. 입 속을 한 가득 채우고 있는 묵직함. 마치 잘 만들어진 떡과 같은 식감. 이것이 올리브유를 머금은 치아바타만이 줄 수 있는 식감. 언제 먹어도 즐겁기만한 그런 식감을 쫓아 입을 한껏 우물거리다보면 혀가 잠깐 찌릿-하더니 이내 코로 기분좋은 향이 밀려온다. 치아바타의 단조로운 밀가루 향을 가리는 딸기향이다. 빵 안의 딸기잼과 버터는 식감을 해치지않고 아주 약간의 신선함을 더하는 단계에서만 머문다. 잼이 입 안을 장악해 그 맛이 너무 과해지고 딸기향은 가시기 전에 버터의 고소함이 그 안에서 묻혀있다가 잼의 뒷순서에서 서서히 올라와 입 안을 깔끔하게 덜어준다.

 

“후고후고후고후고....”

 

치아바타처럼 둥글게 부풀어오른 미치루의 뺨을 양 손바닥으로 잡고 매만지면서, 히이라기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한 번 지었다. 히이라기는 미치루가 잡은 하얀 빵 옆의 다른 것을 잡고서 미치루의 바로 앞에 위치했다.

 

어딘가 조그만, 그렇지만 푸르름이 가득한 밭이 떠오르는 향이다. 아, 그래. 가끔 찻잎주머니에 코를 가져다대었을 때의 기분이다. 머리가 조금 아프려고까지 하는 그런 짙은 향이 느껴진다. 조금은 거칠고 딱딱한 얕은 막에 둘러싸인 겉표면을 칼로 찔러본다. 바삭하는 소리가 잠깐 들리더니 묵직한 저항감이 칼날을 짓누르는 것이 느껴진다.

 

그 속살을 한번 손가락으로 눌러보자, 거친 겉과는 달리 아기의 손바닥처럼 부드럽게 푸-욱-들어갔다가 다시 돌아온다. 손가락이 오히려 조금 간지러운 느낌도 나는 것 같다.

 

치아바타와 같은 식감이지만, 맛은 다르다. ‘맛’, 혀끝에서만 느껴지는 맛. 치아바타의 ‘맛’은 빵보다는 잼으로 시작하는 단 맛과 버터의 고소함으로 끝나는 깔끔함이라면, 허브빵은 그 위에 하나 더 있다. 입 안에서 느껴지는 모든 맛의 단계 위에서 그걸 모두 감싸고 있는 하나의 맛이자 향. 빵 속에 들어간 허브가 입과 코를 한꺼번에 열어놓는 듯한 시원함을 주고있다. 잼의 단 향은 오히려 가끔 괴로울 수도 있다. ‘달다’라는 감각은 늘 옅으면 아쉽지만 강하면 괴롭다. 하지만 허브가 들어간 이상, 그럴 일은 없다.

 

빵을 우물거리다가 미치루가 슬쩍 슈코가 있는 방을 돌아보았다.

 

“아직 안 일어난걸까?”

 

“미치루가 한 번 보고와줄래요?”

 

“네~”

 

총총 걸어가는 미치루를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히이라기는 빵집 카운터 쪽에서 들리는 어린 목소리에 휠체어를 돌려 나갔다.

 

미치루가 살며시이- 문을 열고 고개만 잠깐 넣어 보자 침대 위에서 슈코가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한참을 뒤척인 흔적이 침대를 넘어 방의 온 바닥으로 떨어져있었고 그 한가운데에서 슈코가 자고있었다. 미치루가 톡-하고 잠깐 슈코를 손가락으로 찔러보았지만, 아주 잠깐 흔들렸을 뿐 슈코는 소리하나 내지않았다.

 

좀 더 세게- 밀어 흔들자 허우적거리는 신음 소리를 내었다. 결국 미치루는 방 안으로 들어와서 슈코를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

 

“저기요오~? 슈코 언니, 안 일어나도 되요?”

 

“아우우우....5분만 더어...”

 

“그러니까 오늘 일 없으시냐구요?”

 

“일?.....근데 누구세요?”

 

“미치루요. 오오하라 미치루.”

 

슈코의 얼빠진 질문에 미치루도 비슷하게 대답하며 슈코를 깨웠다.

 

“아아.....”

 

“방 안에 욕실 있으니까 씻고 나오세요. 오빠의 아침빵은........남겨둘게요.”

 

남겨둔다는 말까지 깊은 고뇌와 침묵을 가졌던 미치루가 나가고서 슈코는 무거운 몸을 옮겨 욕실로 어떻게든 들어갔다. 차가운 물이 잠을 거칠게 깨우고 잠을 설치던 밤의 흔적을 씻어내리고 있었다.

 

아직도 촉촉한 머리칼을 수건으로 닦아내며 슈코가 방 밖으로 나가자, 그곳에는 의외의 인물이 화사하게 슈코를 맞이했다. 실제로 슈코를 알아차리지는 못했지만, 슈코에게는 그냥 존재만으로도 제법 기분이 묘해지는 사람이었다.

 

“사에...”

 

사에가 왜인지 들어와서 히이라기의 옆에 앉아 -내용은 들리지않지만- 조잘조잘 이야기를 건네고있었다. 안 그래도 고민으로 가득했던 밤이었는데 고민의 원인이 아침부터 보이니, 기분이 울컥했다. 그런데, 그런데....

 

‘왜....낯설지가 않지?’

 

자신이 이런 적이 있던가. 햇빛이 들어와 눈을 찌르는 아침에서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있던가. 사에와 히이라기가 둘이 있는 것을 아무도 모르게 왜 인지 들킬까봐 조마조마하면서 본 적이 있던가. 히이라기가 사에의 옆에 앉아 천천히 그녀의 말을 들어주고, 달래주는...?

 

아직도 머리가 조금은 어지러운 아침이라 그럴까, 못 다 잔 잠이 몰려오는가 슈코가 바라보는 둘을 중심으로 흔들린다.

 

“아....”

 

“슈코 언니?”

 

의미모를 탄성 속에 빠진 슈코를 미치루가 끄집어내자 슈코 눈에 다시 제대로 보였다. 하지만, 방금 전 까지와는 다르게 보였다.

 

“미치루.....우리가 만난 지 얼마나 됬지?”

 

“에?에?......10년? 음....잠깐만요...”

 

당황스럽기 그지 없는 질문에도 진지하게 고민하며, 미치루가 얼굴을 찌푸렸지만. 슈코는 오히려 상쾌한 얼굴로 웃었다.

 

“아냐. 고마워. 너무 어려운 질문이네. 오래됬으니까. 그치?”

 

“네에....에?”

 

슈코는 입에 잼 스푼을 넣고 어리둥절해하는 미치루를 뒤로하고 앞으로 걸어나가 히이라기의 어깨 위에 손을 얹어놓았다.

 

“어머나, 슈코 양도 여기 계셨나요? 프로듀서 씨가 찾고계시던데, 평안하시다니 다행이네요.”

 

“....사에, 이제 알았어.”

 

“예?”

 

“네가 왜 싫은지 이제 알았어.”

 

그리고 슈코는 히이라기의 얼굴을 끌어당기며 허리를 숙이고 다리를 굽혔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내밀어, 입을 맞췄다.

 

“?!”

“?!”

“후고?”

 

슈코를 제외한 세 명이-어쩌면 두 명이-놀라서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음에도 슈코는 여유롭게 몸을 세우며 사에에게 말했다.

 

“내 자리에서 나와. 이 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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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갈수록 퇴화하는 필력. 돌이킬 수 없는 조회수.

 

슈코는 히이라기가 사에를 달래주던 밤에 몰래 엿봤습니다. 제가 글을 구상할때는 머릿속에서 영상화되어있는데 그걸 글로 옮기려니 힘드네요.

 

버킷리스트 봤습니다.

 

히이라기를 불치병으로 쓰려트려보고싶다.

 

슈코가 18살이던가....오 6살 차이네요.

 

연하 킬러, 히이라기

 

히이라기: 이 자리는 미치루 자리인데요?

 

여담이지만 히이라기는 양 다리가 허벅지만 남아서 바지는 대충 입고 그 위를 담요로 덮습니다. 담요가 일종의 패션 아이템이라 매일 쓰는 담요가 다르다는 설정. 오오하라의 고객 사이에서는 유명해서 선물로도 제법 받습니다. 황궁에서 받은 담요. 영국 왕실에서 받은 담요. 등등....

 

제일 좋아하는 건 미치루 담요.

 

아, 이제 쓸 빵이 거진 다 떨어져가는데요.....자연스러운 연ㅈ- (퍽) 농담입니다. 찾아봐야죠.(시나몬롤은 빵집을 하나 찾았는데 12시 되기도 전에 다팔리는 수제 빵집이라네요. 허헉)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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