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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하라 베이커리-도쿄에서 만난 교토 아가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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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10, 2016 16:16에 작성됨.

 이전편들

 

찰박-찰박-

 

바닥에 고인 물을 차는 소리가 슈코의 발 끝을 타고 울렸다. 우산도 없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온몸으로 받으며 그녀는 오히려 좋다는 듯 양 팔을 벌리고 가슴을 내밀었다.

 

조금전의 방송녹화에서 사에와 얽혀버린 탓이었다. 풀리지않은 답답함을 품고있는 상황에서 그 답답함의 제공자를 만나버리자 자신도 모르게 날카로워졌던 것이다. 사에가 자신이 아이돌을 하게된-아마도 히이라기와 관련된-계기를 말하던 와중에 그런 이야기라면 자신에게도 있다며 무시해버렸고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어찌어찌 녹화는 마무리했지만, 프로듀서를 포함한 관계자들의 냉랭한 시선이 그녀를 찌르고, 결국 프로듀서의 질책을 견디다 못해 뛰쳐나와버렸다. 전부 다 싫었다. 이해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 전부 싫었따. 사과해야하지만 사과할 마음도 뚜렷히 들지 않고 열병같은 답답함만 가지고 있으니 슈코 본인도 어찌 할 바 없다가 밖으로 나와 무작정 걷고있었다.

 

갑자기 내리는 비가 오히려 반가웠다. 생각없이 비나 맞고있으려니 잡념이 지워지는 기분이랄까. 프로듀서가 화낸다든가 하는 뒷일은 생각나지도 않았다. 다만, 이렇게 계속 있고싶었다. 자신의 몸을 푹 적시는 비가 자신의 열병인지 고민인지 모를 이것도 씻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조금은 미친 듯 휘청이며 걷던 슈코는 이내 주저앉았다.

 

‘아, 귀찮아’

 

이런 생각을 하며 방송녹화에서 받았던 피로감에 그녀는 서서히 눈을 감고 꾸벅이기 시작했다. 종소리가 희미하게 들릴 때 쯤 그녀는 완전히 잠들었다.

 

얼마나 시간을 흘렀을까. 슈코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가 본 것은 마지막 기억과 사뭇 달랐다. 푹신한 침대와 두툼한 이불 사이의 따뜻한 열기가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었고, 방 안의 공기도 나름 훈훈했다. 방 밖에서는 애교있는 어린 소녀의 목소리와 나긋나긋한 청년의 목소리가 시나브로 들렸다.

 

갑작스럽게 변한 상황과 이전의 자신이 떠오른 슈코는 순간적으로 자신이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길바닥에서 자고있는 젊은여성이 어느 방 안으로 옮겨진 건 누가봐도 의심스러운 상황. 다행히 소지품은 그대로 있다. 살며시 문 옆으로 다가가 천천히 문고리를 돌렸다. 밖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 문을 열었을 때, 사람이 앞에 있었다. 소라빵처럼 묶은 머리와 초롱초롱한 보라색 눈동자가 인상적인 매우 귀여운 아는 동생이었다.

 

“어라? 일어나셨네요?”

 

“미, 미치루?”

 

미치루는 퍼득 생각났다는 듯이 깊이 몸을 옮기려다가 손에 든 것을 슈코에게 다시 맡기고는 오빠를 길게 부르며 사라졌다. 슈코의 손에 들린 것은 아직도 더운 김을 내뿜고 있는 콘스프였다. 다시 슈코가 뒤를 돌아 방을 둘러보자, 그제서야 방도 자신이 아는 방이라는 걸 깨달았다. 처음 도쿄에 왔을 때, 무작정 들어와 눌러앉았던 집의 익숙한 방. ‘오오하라 히이리기의 방’이었다.

 

“잠시만요.”

 

불쑥 뒤에서 말소리와 함께 팔이 뻗어나와 그녀의 귀를 후볐다.

 

“?!”

 

기습공격에 놀라 괴성을 지르며 뒤돌아보자, 체온계를 들고 있는 히이라기가 있었다.

 

“36.5도, 남의 집 앞에서 비 맞던 노숙녀치고는 완전 멀쩡하네요.”

 

“응?”

 

“슈코가 우리집 앞에서 노숙하고 있길래 주워왔어요.”

 

“아, 음-”

 

그제서야 상황파악이 끝난 슈코가 무언가 말해보려고 했지만, 더 빠른 쪽은 히이라기였다.

 

“연락같은 건 아무데도 안 했으니까. 슈코가 알아서 판단하세요. 그 때까지는 있어도 괜찮아요. 그리고 미안하지만, 제가 지금 바빠서요. 조금 실례할게요.”

 

그리고는 휠체어를 움직여 빠르게 주방 속으로 사라졌고 결국 다시 혼자 남은 슈코는 일단 앉아서 스프를 먹었다, 배고프니까. 배는 나름대로 행복하고 잠자리도 따뜻하니 좋았지만, 혼자있으려니 다시금 마음이 기묘했다. 핸드폰을 켰지만, 딱히 돌아가고싶은 생각은 없었다. 아무것도 해결되지않은 채로 돌아가봐야 결국엔 원점이니까. 하지만 여기있는다고 뭐가 달라질까.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에서 앓기만 하며 뒤척이기를 몇 시간, 방문에서 통통-튀는 소리가 들렸다. 히이라기가 한 손에 무언가를 들고 들어왔다.

 

“멋대로 집에 데려와놓고서 쌀쌀맞게 굴어서 미안해요.”

 

“아니.....뭐..솔직히 잘못한 건 이쪽이고...”

 

슈코가 약간 머쓱해하면서 사과하자 오히려 히이라기는 놀라서 슈코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뭔가 무안해진 슈코가 되물었다.

 

“뭐, 뭐 왜..?”

 

“3년 전에 저희 집에 멋대로 들이닥쳐서 ‘부탁할게에~’라는 식으로 짐을 펼쳤던 제가 아는 슈코랑 너무 달라서요”

 

“뭐, 그때는 오빠 쪽이 유혹한거고 지금은 내가 무작정 들어온거고”

 

“도쿄에서 쿄토까지 유혹했다고요...?”

 

“.....모르면 됬어. 잠깐, 생각해보니까 길거리에 버려져있는 여자를 멋대로 들여온것도 오빠쪽이잖아? 뭐야 난 잘못 없었네.”

 

“제가 아는 슈코가 맞아서 다행이네요.”

 

안도했다는 제스쳐를 취한 히이라기는 그릇에 담긴 타르트를 슈코 쪽을 내밀었다.

 

마치 고운 콘스프를 담고있는 그릇이 연상되는 자태에 경탄했다. 살며시 칼을 가져다대자 노란색 위에 얹어져있는 투명한 젤라틴층이 파르르-흔들리는 것이 보인다. 어린 시절, 자고 일어나니 함박눈이 펑펑 내려 밖에 나갔을 때 아무도 밟지않은 순수하고 두터운 그 흰 색 눈길을 제일 처음으로 밟는 느낌. 묘한 죄책감과 쾌감이 뒤섞인 감정이 타르트 하나를 통해 다시금 치솟아오르고 있었다.

 

칼을 밀어넣자, 주위는 단 한치도 무너지지않고 칼만은 마치 먹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이윽고 칼이 타르트 속으로 전부 들어가고나면, 타르트 위에는 한 줄기 선 만이 그어져있다. 아마 화가가 와서 붓으로 살며시 긋는다고해도 이렇게 흐트러짐없는 선은 나오지않을 것이다.

 

그리고 조각을 잘라내어 들어보자 그 안에 든 것은 치즈. 구멍이 자잘하게 났지만, ‘구멍’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실함은 느낄 수도 없었다. 그 깊고 널따란 파이그릇을 한가득 채우고있었다. 겉에서보면 투박한 파이에 둘러싸여 광택을 발하는 노란색이 보이지만 칼이 밀어넣고 꺼내보면 광할하기 그지없는 양의 황백색 치즈가 자태를 드러내고있는것이다. 기대와 전혀다른 색의 대비가 시각적인 탄성을 자아내고있었다.

 

곱게 구워진 달달한 밀가루 향을 느끼면서 입으로 살며시 타르트를 물어보면, 자그마한 거품들이 터져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입을 움직이면 치즈는 금세 허물어져 혀 아래로 밀려내려가고, 깊고 광할한 크림 밑에 살며시 깔린 파이가 씹힌다. 처음 볼때는 크림에 비하면 너무 얕지않은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파이는 절대 부족하지않다. 얉은 막이 겹치고 겹치고 쌓여서 만들어진 파이는 오히려 풍부한 기분을 가져다준다. 치즈만 먹었다면 느끼하다고 느끼거나 입 안에서 충분히 굴려보기전에 목 뒤로 넘겼을 것이다. 그러나 파이가 있다면 다르다. 파이를 씹을 수록, 입 안의 움직임을 타고 치즈는 서서히 입 안으로 퍼지고 그 맛을 내놓는다. 이윽고 아이스크림이 녹아 사라질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치즈가 녹아내리면 그제서야 한 가지 맛이 슬그머니 올라온다. 치즈 특유의 시큼함이 마치 탄산음료의 탄산이 톡-토톡-톡-하며 올라와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것 처럼 느껴진다. 이것이 치즈타르트라는 것을 잃어버리지 않게 해주지만, 더 놀라운 것은 절대로 기존의 맛을 해치지않는다는 것이다. 입 안이 이제 조금 심심해지려는 찰나에 정확히 올라와 풍미를 더하여, 마지막 순간까지 즐거움을 잃지않게끔하면, 이제 치즈크림이 사라져있다. 불 앞에 힘없이 녹아내려 흘러버린 양초처럼 스르륵-하고 내려가버렸다.

 

그리고 입 안에 남아있던 파이가 파이 본래의 달달한 빵냄새에 더해 치즈크림을 조금 머금은 채 입 안에 남아있다. 몇 초간 그것을 씹고나서 넘기면, 입 안은 공허하다. 많은 밀가루를 겹쳐 만든 파이이거늘, 입 안에는 단 한 치의 부스러기도 남아있지 않다. 본래 오오하라가 명문 귀족가를 상대하는 명인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식사의 마지막을 미련없이 정리해주기까지 하는 배려와 그 놀라운 솜씨가 엿보인다. 그러나 이걸 먹은 이들은 이미 기억하고 있다. 이 타르트를 입에 넣었을 때의 풍부함과 부드러움을. 그렇기에 지금, 단 한 치의 무언가도 남아있지않은 깔끔한 입은 상대적으로 공허하다고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한 숟갈 더 입에 넣는다.

 

“오오- 역시...”

 

타르트 하나에 본래 텐션을 되찾아가는 슈코와 다르게 슈코를 보는 히이라기의 얼굴은 제법 심각했다.

 

“오빠, 무슨 일 있으신가?”

 

“.......”

 

“잠자리에다가 타르트도 얻어먹었겠다. 상담 정도는 해줄게. 특급 아이돌의 상담, 완전 행운이라고?”

 

히이라기는 그제서야 한숨을 깊게 내쉬며 결심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슈코에게 되물었다.

 

“그럼....슈코, 저도 미치루가 만들어주는 스프가 먹고싶은데 어떻하죠?”

 

“어.....”

 

슈코는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가만히 스푼을 물고있었다. 슈코는 직감했다. 여기서 선택지를 잘못 선택하고 이 빵집의 장르가 괴기호러로 변할지도 모른다는 걸.

 

“........”

 

“........”

 

슈코에게는 몇 시간으로 느껴졌던 몇 분간의 침묵을 깨트린 건 다름아닌 히이라기였다.

 

“뭐, 이런 ‘중대한’ 문제는 슈코랑 고민할게 아니니까 넘기고, 제가 한 가지 슈코한테 물어보고싶은 게 있어서요.”

 

“뭔데?”

 

“원래, 슈코는 감정은 읽기 쉬운 편인데 며칠 전부터 그게 힘들어져서요. 지난번일도 있고 해서, 혹시....제가 무슨 실례라도 했나 해서요.”

 

“그러니까 여태까지 내가 쉬운 여자로 보였다는거야?”

 

“단순한 애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것 같은데요.”

 

오고가는 훈훈한 농담에 조금 웃다가 슈코는 팔짱을 끼고서 진지한 얼굴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으음....뭐랄까나..”

 

분명히 그 때, 슈코의 기분이 나빴던 것은 맞다. 맞는데....

 

“잘 모르겠어”

 

“네?”

 

“잘 모르겠다고. 뭐 지금은 괜찮으니까. 덕분에 이런 특급 타르트까지 혼자 얻어먹고 있잖아. 흐흥. 가끔은 토라지는 것도 나쁘지않네.”

 

“다행이다....”

 

히이라기는 한 시름 놓았다는 듯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슈코가 평소에 자주 오는데, 앞으로도 슈코가 계속 기분 나쁠까봐 걱정했는데 다행이에요.”

 

“응? 그거 무슨 소리?”

 

“아.....저는 완강히 거부하는데 사에 양이 계속 올 것 같아서요..”

 

히이라기가 뒤에 덧붙인 소리는 듣지도 않고 슈코는 그대로 숟가락을 강하게 내려놓았다. 계속 한가롭게 타르트나 먹고 있을 정도로 가벼운 기분이 순식간에 달아나버렸다.

 

“역시, 그건 안 돼.”

 

“....무슨 문제 있나요?”

 

“아, 그야 아이돌이 그렇게 다른 남자랑 같이있으면 소문도 안 좋고, 그럼 분명 이쪽한테도 뭔가 불똥이 떨어질지도 모르고...아무튼!”

 

순간, 슈코는 본인도 잘 알 수 없지만 무언가 히이라기한테 들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솟구쳤다. 하지만 이 일을 계속 두기 싫은 마음도 여전해서 결국에는 횡설수설하며 아무렇게나 이유를 갔다붙이고 말았다.

 

“음...역시 저도 그게 고민인데, 차라리 슈코가 사에 양에게 엄하게 이야기하면 안 되나요? 언니로써”

 

“....사에랑 대면하기에는 조금 그렇고...차라리 오빠가 더 퐉하고 나가라고!”

 

“중요한 고객이라서 함부로 대할 수도 없어요.”

 

이도 저도 안 되는 상황에 슈코가 얼굴을 찡그리며 고민을 시작하자 오히려 히이라기가 그녀를 말리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저와 사에 양의 일이니까-”

 

“안 돼”

 

슈코의 논리는 이미 마비되어 쓸모없었지만, 그녀의 직감이 울리고 있었다. 둘을 절대 붙여두지말라고.

 

“....네?”

 

“내가 그....같은 고향사람이고 언니니까!”

 

이제 산으로가는 걸 넘어 우주 너머로 치솟는 슈코의 논리를 보다못한 히이라기가 그녀를 다독이면서 진심으로 걱정하기 시작했다.

 

“슈코...요즘 어디 안 좋나요? 혹시 사춘기라도 왔나요?”

 

“아니, 그게 아니라아아.....으아아아-! 왜 설명이 안 되는거지!?”

 

이윽고 폭발한 슈코를 보며 히이라기는 난생 처음 겪는 슈코의 모습에 조금 뒤로 물러섰다. 퍽-소리가 들릴 정도로 테이블 위에 엎어진 슈코는 자포자기한 듯 아무렇게나 중얼거리고있었다.

 

“나도 잘 모르겠단 말이지. 딱히 오빠랑 같이 있으면 별 기분도 안 드는데, 사에랑 오빠랑 같이 있는 걸 보니 뭐랄까 원래 없던 사람이 막 멋대로 비집고 들어와서 눈치없이 끼어든 기분인데 사에를 보면서도 별 좋은 기분이 안 들고...”

 

“음....혹시 슈코, 사에 양을 좋아한다던가?”

 

의외로 관대한 히이라기의 관념에 슈코는 얼이 빠져버렸다.

 

“하?”

 

“뭐, 그럴 수도 있잖아요. 저랑 있으면서 별 감정이 안 들면 오히려 그 쪽 일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

 

그런가?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역시 그건 아닌 것 같다며 결론을 내린 슈코는 머리를 가로로 천천히 저었다.

 

“그럼....슈코, 저 좋아해요?”

 


=====

 

여러분 치즈타르트 드세요 치즈타르트 꺄핫- 마시쩡!

그리고 작가는 스토리를 뽑아내지 못하고 있다아아.....살려줘욧. 사실 이번편도 그래서 늦었습니다. 그전에 솔직히 슈코는 왠지 잘 모르겠단말이죠.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화는 캐붕이 아닐까싶습니다.

히이라기는 슈코를 부를 때 뒤에 존칭을 안 붙입니다. 친하거든요.

여담이지만, 초기 기획에서는 히이라기가 마법사였다는 것.....

이따 밤에 치히로씨가 잔뜩 올라갑니다! 안 올리면 제가 미치루랑 헤어집니다!

히이라기의 바게트가 무슨 최종병기처럼 알고계시는 여러분 오해입니다. 바게트가 어떻게 최종병기입니까

 

 

 

 

 

 

 

 

 

 

 

평타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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