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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카「나 말야, 너를, 만나러 왔어」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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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27, 2016 20:26에 작성됨.

전편 1 2 3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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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꿨습니다.


765 프로덕션의 동료들과 라이브를 마치고 무대 위에서 즐겁게 웃는 꿈이었어요.


현장을 가득 메운 팬들의 함성도, 파도처럼 출렁이는 펜라이트의 빛도,


도저히 꿈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생생해서.


그런데도 꿈이라는 사실만큼은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어쩐지 참을 수 없어진 저는, 웃는 얼굴인 채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자기 방의 침대 위에서, 아마미 하루카는 눈을 떴다.


「……」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은 퀭한 시선이 허공에 머물렀다. 입술이 아팠다. 그것은 스스로 깨물었기 때문이다. 팔이 아팠다. 그것은 스스로 움켜쥐었기 때문이다. 알고 싶지도 않은 일들만 속속들이 떠올랐다. 고통스러울 뿐인 기억이다. 그런데도 떠올리는 것을 멈출 수 없다. 아무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눈가에 이질감을 느끼고 축 늘어져 있던 팔을 움직여 닦아냈다. 손끝에 미적지근한 것이 묻어났다. 울고, 있었던 것일까. 이유는 짐작이 가지 않았다. 알고 있었을 텐데, 떠오르지 않는다. 싫은 것들만큼은 잘도 떠오르는 주제에.
하루카는 눈만을 시계 쪽으로 움직여 시간을 확인했다. 늦었다. 지금부터 일어나서 움직이지 않으면 사무소에 제때 도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몸을 움직일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이돌이든 뭐든, 이제 어찌 되든 상관없다.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에 전율할 기력조차 하루카에겐 남아 있지 않았다.


분에 지나쳤다. 처음부터 닿지 않을 곳이었다. 손에 쥘 수 없을 목표였다. 주제넘은 것이다. 유키호의 모습을 취했던 무언가의 말을 기억해냈다. 좋은 일 같은 건 없다. 실제로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하루카는 옆으로 돌아누워 무릎을 끌어안고 웅크렸다.
이제 틀렸다고밖에 할 수 없다. 실격이다. 아이돌 같은 게 허락될 리가 없다.
정말, 꼴불견이다.


「나…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의 안에서 해답을 찾지 못한 물음이 자연스레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치하야」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짓눌릴 듯한 정적. 그 안에서.


─정말로 모르는 거야?


누군가가 그렇게 물어 왔다.


─정말로 상관없는 거야?


다른 누구의 목소리도 아니다.


─정말로 이제 된 거야?


하루카 자신이─ 그렇게 묻고 있다.


「──윽」


분하다. 분하다. 이를 악물었다. 어쩌라는 거야. 어떻게 하라는 거야. 몰라, 몰라, 몰라, 알 리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꼴로, 이런 애가. 이상하고 처참하고 무섭고 불안하고 안타까운데. 그래서 어떻다는 거야. 뭘 할 수 있단 거야. 어떻게 해야 한단 거야 알 리가 없잖아 정말로 몰라 몰라 몰라 묻지 마 그런 거 묻지 마. 토해내 버렸다. 진짜 치하야에게 말해 버렸다. 이해할 리가 없어 알아줄 리가 없다. 부서지고 깨지고 무너지고 망가졌다 이제 와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끝이다. 돌이킬 수 없다. 나는 치하야에게, 왜, 치하야가, 나는, 치하야를, 만나러


만나서,
뭘 어쩔 거였나.


손을 뻗어 핸드폰을 쥐었다. 한 손만으로 느릿느릿 메일을 작성했다. 수신자는 사장으로 설정했다. 발신하면 전부 끝이다. 매달리다시피 해서 얻은 기회도, 완전히 날아가게 된다. 하지만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어차피 처음부터 가능성은 없는 거라면, 그저 괴로울 뿐이라면, 차라리 더 편한 쪽을 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포기. 별다른 감흥도 없이 하루카는 그런 단어를 생각해냈다.


「… 어쩔 수 없는걸」


선택권이 남아있지 않다. 실제로 그렇지 않은지 어떤지도 모른다. 알 바 아니다. 너무, 지쳤다.


하지만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는다.
결정의 근거는 넘쳐흐를 정도로 충분한데, 그렇게 되도록 하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해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그 이상 나아가지도, 그만두지도 않은 채 움직임을 멈췄다. 의식은 이미 명료해져 잠도 오지 않는다. 하릴없이 널부러지듯 누워 있을 뿐이다. 의미가 없다. 의지가 없다. 미련만이 남아 어중간한 존재감을 주장하고 있다. 뭘 하고 싶은 걸까. 하루카는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어쩜 이렇게, 무가치할까──


똑똑, 방문이 두드려졌다. 그리 크지 않은 소리였지만 적막한 방 안에는 잘 울렸다. 아마 엄마일 거라고, 하루카는 적당히 추측했다. 그 밖에 떠오르는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직후 들려온 목소리는 하루카의 예상을 보기 좋게 깨부쉈다.


「아마미 씨, 들어가도 괜찮을까?」


하루카는 튕기듯이 몸을 일으켰다. 잘못 들었나 생각했지만 그럴 리는 없었다. 대답을 돌려주어야 하는데도 어정쩡하게 벌어진 입은 좀처럼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에 문이 열렸다. 침대 위에서 엉거주춤하게 굳어 있는 하루카의 몰골을 보더니 낯익은 방문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어딘가 얼빠지게 들리는 목소리로 한 마디 했다.


「─, 조금 정리할 시간을 주는 편이 좋았을까…」


키사라기 치하야였다.

 


「그러면 잠깐 실례할게」


치하야는 방 한쪽 구석에 앉더니 머리칼과 잘 어울리는 남색 기조의 코트를 벗기 시작했다. 자그마한 봉투를 함께 내려놓은 것으로 보아 뭔가 사들고 온 것 같았다. 어딘가 현실감이 없다. 하루카에게는 눈앞의 광경이 남의 일인 것처럼 느껴졌다. 이것도 환영일까. 아니, 그럴 리는 없다. 그 '치하야'라면 이런 형태로 나타날 리가 없는 것이다. 딱딱하게 굳은 채로, 하루카는 그저 망연자실해 있을 뿐이었다.


침대 위의 하루카와 정좌하고 있는 치하야.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는 숨이 막힐 듯한 고착 상태가 얼마나 이어졌을까. 무슨 말부터 꺼내면 좋은 것인가, 하루카는 고민 끝에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 어떻, 게…?」

「프로듀서에게 부탁해서 주소를 알았어. 오늘은 휴가로 처리해 달라고 부탁하고 왔고」

「그치만… 왜」

「나오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보아하니 실제로 그럴 예정이었던 것 같네」


치하야는 아주 살짝 미소를 띠었다. 주의깊게 살피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 그건, 그다지… 그럴」

「제대로 출근하려고 했다는 거야? 지금 시간을 봐선 그렇게 생각하긴 힘들 것 같은데」

「……」


대답이 궁해진 하루카는 입을 다물었다. 그것을 말없이 바라보던 치하야는 들고 온 봉 투를 뒤적이더니 내용물을 꺼내 내밀었다.


「그냥 오는 것도 뭣해서 사 왔어. 괜찮다면 먹어줘」


하루카는 내밀어진 것을 엉겁결에 받아들었다. 딸기가 얹혀 있는 조각 케이크였다.


「어쩐지 아마미 씨가 좋아할 것 같아서 골랐는데, 실수였을까?」

「─아냐. 케이크, 좋아하는 걸… 고마워」

「다행이네」


치하야는 안심한 듯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이상한 대화다. 일상적인데도 위화감이 있다. 어색한데도 친숙하다. 가벼운데도 가슴을 옥죈다. 무언가가 북받쳐 오를 것만 같아 하루카는 황급히 스스로를 추슬렀다.


「저, 아마미 씨. 부탁이 있는데」

「… 부탁…?」

「케이크, 지금 바로 먹어 주지 않을래」


영문 모를 부탁이었다. 하지만 기껏 사와 준 사람의 부탁이니 들어주지 못할 이유도 없다. 하루카는 케이크의 포장을 벗겨내고 동봉되어 있던 플라스틱 포크로 한 조각을 잘라내 입에 넣었다. 혀 위에서 딸기맛 크림과 부드러운 빵이 눈 녹듯 풀어졌다.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한데, 케이크만큼은 제대로 맛이 있었다. 전날부터 제대로 식사를 하지 않은 반동인지 그제야 식욕이 돌았다. 케이크를 몇 번 더 입에 가져가던 하루카가 문득 고개를 들어 치하야를 보자, 치하야는 묘하게 기쁜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 왜… 그래?」

「응? 아아, 이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면 미안해. 그게, 크림이 묻었으니까」

「아…!」


재빨리 입가를 닦아내는 하루카를 보며 쿡쿡 웃던 치하야는 이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아마미 씨의 그런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아서」

「……」

「─ 그런 걸 보고 싶었어」


하루카의 눈빛이 흔들렸다. 포크는 어느새 멈춰 있었다. 지난 며칠 동안 자신은 치하야에게 어떤 식으로 보이고 있었을까. 어젯밤의,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단숨에 차올라 의식을 유린했다. 하루카는 자기 자신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바보 같다고 느꼈다.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어제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으니까」


고개를 떨군 하루카를 향해 치하야는 덤덤히 말을 이어갔다.

 

「오늘은, 솔직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왔어」

「……」

「처음 봤을 때부터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창문 밖으로 내려다봤을 때도, 사무소에 찾아왔을 때도. 처음 보는 사람을 향한 눈이 아니었어. 우리를 대하는 태도도 이상하다는 말로밖에는 표현할 수 없었고, 언제나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정말로 무서워하는 것 같았어. 하기와라 씨도 소심한 성격이지만,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마미 씨에겐 특이한 분위기가 있었어. 마치 쫓기는 사람처럼」


「…… 읏」

「아마 우리를 어떤 식으로든 알고 있었던 거라고─ 그렇게 짐작은 했지만, 실제로 어떤지는 알 수 없었으니까」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하루카는 이를 악물었다. 하나하나, 들춰져 간다. 몰아넣어진다.


「난 알고 싶었어. 아무래도 신경이 쓰였으니까.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렇게나 괴로워하고 두려워하면서도 아마미 씨가 어째서 그토록 아이돌을 하고 싶어하는지. 어째서 우리 765 프로덕션에 찾아왔는지를. 그래서 어제도 아마미 씨한테 직접 묻고 싶어서 따라갔던 거야」

「치… 하, 야」

「이유만큼은.」


치하야는 부드럽게, 하지만 매듭을 짓듯이 읊조렸다.


「도저히, 모르겠지만─ 아마미 씨는 나 때문에 765 프로덕션에 찾아온 거네」

「……!」


움찔, 하루카가 어깨를 떨었다.


「아마미 씨, 나와 만난 적이 없다고 말했었지. 그건 아마 거짓말이 아닐 거라고 생각해. 나한테도 그런 기억은 전혀 없으니까. 아니, 어쩌면 정말로 내가 기억하지 못하고 있을 뿐인지도 모르지만─ 대답해줘, 아마미 씨. 어느 쪽이야?」

「그, 건」

「아마미 씨. 당신은 나와─」


어떤 관계이냐고.
엷은 갈색의 올곧은 눈동자가 그렇게 물어 왔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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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진 두 달만에 이런 중셉이나 다름없는 연재로 괜찮은가?

제가 군대에 있지 않았더라면……

군인, 핑계는 죄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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