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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마스] 옥상의 그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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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30, 2013 22:52에 작성됨.

 “저기, 나오. 아직도 화해 안 한 거야?”
 “시끄럽네! 그쪽에서 뭔가 말하기 전엔 그럴 생각 없다니까!”
 햇빛이 매섭다. 녹음이 우거진 기나긴 가로수길에는 녹색 이파리들이 떨어지고 흐드러지며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가로수길 양 옆을 따라 보이는 두 개의 운동장에서는 활기찬 기합이 땅을 울리고 그 기합을 내고 있는 아이들이 흘리는 땀방울이 매서운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주변의 다른 어떤 곳보다도 이곳이 가장 젊음과 열정이 가득하겠지. 가로수길 끝에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는 시계탑은 9시 10분 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계탑 뒤에는 웅장한 건물이 학생들의 젊음과 열정을 받아 한껏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건물의 웅장함에 비해 조촐한 현판에 새겨진 ‘사립 신데렐라 학원’. 졸업장에 이 이름을 새기게 될 학생이 한 해 2천 명에 달하는 최고의 문화교육기관이 그 곳에 서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오가 잘못했지만.”
 “뭐라구?! 아니, 그것보다 린은 나한테 존댓말 하라고 했잖아!”
 “싫은걸.”
 스쳐지나가는 흰색 카디건을 입은 소녀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검은색 카디건. 찰랑이는 검은 머리 사이로 은색의 귀걸이가 반짝인다. 일부러 그랬는지 거칠게 풀어헤친 넥타이 덕에, 쇄골이 보이도록 열린 셔츠 사이에서도 은색의 목걸이가 보인다. 얼굴을 붉히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다른 소녀를 바라보는 초록색의 눈이 웃는다. 린이라고 불린 그 소녀는 연하게 미소지으며 자신의 카디건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고는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나오, 빨리 안 오면 두고 갈 거야.”
 “나오 언니라니까!! 그리고 계속 말하지만 그 카디건 교칙위반이라고!”
 두 소녀가 언덕을 다 오를 즈음, 9시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시부야 린이지?”
 “...응.”
 하늘이 맑다. 옥상에 쳐진 철조망은 그 맑은 하늘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린은 한 층 높이 있는 정화조가 있는 곳으로 올라서 있었다. 정화조에 기댄 채 어디서 사 왔는지 모를 테이크아웃 음료를 마시며,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그녀에게, 정화조 아래에서 또 다른 소녀가 말을 걸어왔다. 린은 처음 대답할 때만 그녀를 바라봤을 뿐, 이후로는 하늘을 향해 다시 시선을 돌렸다.
 “여기, 출입금지인데.”
 “알고 있어.”
 “...정말로 알고 있어?”
 다른 소녀는 린이 서 있는 정화조를 향해 올라왔다. 사다리가 꽤 높았지만, 순식간에 발을 딛고 올라왔다. 린은 그녀를 보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옆으로 쏜살같이 다가온 그녀를 보고 놀라 발을 헛디딜 뻔 했다.
 “서 있으면 위험하니까 앉아.”
 소녀는 그런 그녀의 손을 잡아 중심을 잡아주곤 미소를 지어보였다. 린은 고개를 살짝 숙여 감사인사를 대신하고, 그녀를 따라 그녀가 앉은 곳의 옆자리를 털고 풀썩 주저앉았다.
 “여긴 내 전용석인데. 나 이외에는 출입금지.”
 “엣, 선도부 아니었어?”
 “어느 학교 선도부가 이렇게 교칙에 위반되는 장소에 일부러 나타나겠어?”
 린은 어이가 달아난 듯 멍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소녀는 롤 헤어를 살짝 다듬으며 린에게 악수를 권했다.
 “호죠 카렌이라고 해.”
 “...시부야 린.”
 “후후, 알고 있어. 전학생에 대한 건 금방 알려지거든.”
 린은 어색하게 악수를 받았다. 그녀는 린이 잡은 손을 붕붕 흔들어대다가, 어느새 가방에서 린이 가지고 있는 것과 똑같은 로고의 테이크아웃 음료수를 꺼내들었다. 난간에 걸터앉은 채 다리를 흔들거리며, 음료수를 입으로 가져갔다. 린도 그녀를 바라보며 음료수 한 모금을 목으로 넘겼다.
 “흠... 흔히 말하는 ‘노는 아이’ 라는 얘기를 듣고 궁금했는데 말이지.”
 “따, 딱히 그렇게...”
 “나쁜 아이로는 보이지 않는데?”
 린을 쳐다보지도 않고 음료수에 집중한 채 카렌은 말을 이어갔다.
 “내 자리를 함부로 빼앗아 가서 좀 놀랐지만, 몰랐으니까 용서해 줄게.”
 “애초에 자기 자리라는 게 있어?”
 “물론 내 맘이지.”
 린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녀의 페이스에 말려들어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카렌은 그런 그녀에게 신경도 쓰지 않고, 아까는 쳐다보지도 않던 그녀의 이목구비를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속눈썹이 얼마나 긴지, 피부가 얼마나 깨끗한지, 귀걸이는 어떤 걸 하고 있는지, 머릿결은 어떤지 여기저기를 만진다. 린은 왠지 움직이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잠자코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얼굴 이곳저곳을 다 본 후, 방금 전 악수를 했던 그녀의 손을 잡았다. 다듬지 않은 손톱을 보자 그녀의 눈이 반짝거린다.
 “다음에 네일아트 안 해볼래? 도구는 내가 가져올 수 있는데.”
 “에, 네일아트?”
 당황하는 린을 앞에 두고 카렌은 손을 꼭 쥔 채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도 충분히 귀엽지만, 더 귀여워질 거야.”
 “귀, 귀엽다니...”
 귀까지 새빨개진 린에겐 관심도 없는 듯 그녀는 그녀의 손톱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곳은 어떻게 정리하면 좋겠다는 둥 색은 어떤 걸 칠하면 좋겠다는 둥, 계속 자신의 이야기만 하고 있을 무렵, 옥상 문을 박차고 또 다른 소녀가 뛰어 들어왔다.
 “카렌!! 당장 내려오지 못해!!”
 “아, 나오다. 좋은 아침.”
 “뭐가 좋은 아침이야!! 점심이 다 되었잖아... 가 아니라 빨리 내려오라구!”
 또 다른 소녀가 온 학교에 울리도록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지만, 카렌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뒤에서 같이 앉아있던 린이 더 당황하고 있었다. 위치상 카렌이 움직이지 않으면 자신도 움직일 수 없었기에, 그녀는 카렌이 움직이는 것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나오라고 불린 소녀는 카렌의 뒤쪽에 함께 앉아있는 린을 보고는, 더더욱 화를 내기 시작했다.
 “너, 시부야 린이지! 전학 온 첫 날부터 이게 무슨 짓이야! 카디건은 첫 날이니까 봐줬지만 이건 확실히 징계감이니까! 어서 내려와!”
 “이 사람이 비켜주질 않으니 내려갈 수가 없는걸.”
 나오는 밑에서 얼굴이 새빨개져서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당장이라도 실력행사로 그녀들을 끌어내릴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카렌은 미동도 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나오도 내가 해준 네일아트를 예쁘다고 다른 학생회 임원들 몰래 하고 있는 시점에서 남을 지적할 건 못 된다고 생각해.”
 카렌의 말에 화가 나서 빨개졌던 나오의 얼굴이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이 더더욱 붉게 물들었다.
 “이, 이건... 그, 차, 착각하지 마! 학생회가 바빠서 지울 시간이 없었을 뿐이라고! 카렌이 붙잡고 예쁠 거라고 우겨서 억지로 해놓고선!”
 말까지 더듬어가며 변명거리를 찾는 그녀가 귀여웠는지, 린이 뒤에서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나오가 그것에 대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카렌이 그녀의 말에 쐐기를 박아 넣었다.
 “하는 동안 ‘이 색 귀엽다! 이 반짝이는 건 뭐야?! 이걸로 손톱이 다듬어지는 거야? 신기하네!’ 하고 좋아했던 건 잊어버렸나 보네.”
 “시끄럿!! 빨리 내려오기나 하란 말이야!!”
 웃음을 참지 못하는 린과, 나오를 계속해서 놀리는 카렌, 그런 카렌에게 얼굴이 빨개져 화를 내는 나오. 맑은 하늘 아래, 그 하늘과 맞닿은 옥상에서, 그렇게 셋은 처음 만났다.

 “카렌 오늘 안 왔어?”
 “응. 아마 몸이라도 안 좋은 거 아닐까? 카렌, 그렇게 보여도 의외로 몸이 약한 편이라. 예전부터 자주 쉬었어.”
 “그건 알고는 있는데...”
 등굣길에 항상 만나는 사거리에서, 카렌을 아슬아슬한 시간까지 기다려봤지만 결국 오지 않았다. 그녀를 기다리다 지각하는 불상사는 없길 바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먼저 출발했지만, 늦게라도 오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들러 본 그녀의 교실에서도 그녀가 오지 않았다는 대답 말고는 들을 수 없었다. 린은 조심스레 2학년 교실을 빠져나왔다. 1학년인 그녀가 이곳에 오래 있다가는 좋은 말을 못 듣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오에게 메일이나 해 둬야지.”
 ‘카렌, 오늘 안 왔다는데. 몸이 안 좋은지도 모른다고 하더라. 연락해서 문병이라도 가는 게 어때?’
 간단히 문자를 보내고 핸드폰을 닫자마자 진동이 울린다. 펼쳐보니 역시나 나오였다.
 ‘안 가!! ㅡㅡ!’
 그녀다운 문자라고 해야 할까, 린은 피식하고 웃고, 1학년 교실과는 정 반대 방향으로 가면서 핸드폰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수업 종이 울렸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은 채, 아래층인 1학년 교실 대신 위를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에, 나오. 3학년이었어?” “그래! 카렌도 2학년이고! 둘 다 나한테 존댓말을 해야 하는 거 아냐?”
 의기양양하게 선언한 나오였지만, 그녀의 손톱을 만지작거리며 자신의 가방에서 이런저런 색의 매니큐어를 뒤적이던 카렌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뭐 괜찮잖아. 나오. 그렇지, 린?”
 “나오 선배라니까!!”
 “남의 집에 쳐들어와서 애니메이션 DVD를 마음대로 틀고 있는 사람에게 선배 대접을 해 줄 마음은 안 드는데.”
 린의 말대로 이곳은 그녀의 집이었다. 토요일 방과 후에 갑자기 집에 쳐들어와서는, 시간이 늦어지자 ‘내일 수업도 없으니 자고 가도 되는 거지?’ 하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카렌과, 그 옆에서 탐탁찮은 표정을 한 채 뭔가 가방에 바리바리 싸들고 온 카렌이 집에 들어온 지 벌써 대여섯 시간은 지났다. 린이 키우는 애완견인 하나코와 함께 신나게 놀던 카렌과는 달리, 나오는 의외로 개를 무서워하는 듯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가방 안에서 자신의 컬렉션이라고 주장하는 애니메이션 DVD를 꺼내들어 린에게 재생시킨 채 소파에 엎드려 다리를 까딱이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코가 사료를 먹으러 간 사이, 카렌이 나오의 손을 빼앗아 이리저리 관찰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상황이었다.
 “그거랑은 관계없잖아! 자기도 재미있게 보고 있으면서!”
 “하여튼, 나오는 나오야. 그렇지 린?”
 “글쎄, 나오 선배라고...”
 “자꾸 움직이면 매니큐어 잘못 칠할지도 몰라?”
 카렌의 말에 나오는 소파에 있던 쿠션에 얼굴을 묻고 볼을 부풀렸다. 린은 그녀를 보며 웃음이 터질 뻔 했지만, 지금 웃었다간 나오가 화낼 게 뻔하니 간신히 참아냈다.
 ‘그건 그렇고, 결국 애니메이션 DVD 얘기로 끝나버렸네.’
 속으로 그렇게 생각한 것도 그녀는 비밀로 하기로 했다. 사료를 다 먹은 하나코가 린에게 안겨온다. 하나코를 안고 소파에 몸을 웅크린 채 TV화면을 바라보는 린과, 그 옆에 앉아 나오의 손가락을 주물거리는 카렌. 그리고 카렌에게 손을 맡긴 채 소파에 누워 TV를 보고 있는 나오. 고요한 평화가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나오는 곧 졸업이네.”
 “응.”
 끌로 손톱을 다듬어 주는 카렌의 손놀림에 몸을 맡긴 채, 나오는 베개에 막혀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카렌은 그 질문만을 한 후로 말이 없었다. 다시금 정적이 흐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린이 입을 뗀다.
 “나오는 졸업하면 뭘 할 거야?”
 “...크게 생각해본 적 없는데. 카렌은?”
 “막연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거?”
 그녀는 네일아트를 말하고 있었다. 나오는 카렌에게 손짓하여 그녀가 손에서 멀어지게 한 뒤 누워 있던 소파에서 일어나 똑바로 앉았다.
 “린은?”
 “...부모님의 꽃집 일을 배울까 해. 기껏 신데렐라 학원에 온 게 조금 아쉽긴 해도, 꽃집은 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아.”
 흐르는 정적 속에 TV만이 시끄러웠다. 나오가 가져온 애니메이션 DVD의 영상 속에서는, 그녀들과 비슷한 나이대의 소녀들이 춤추고 노래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고 열심히 준비하여 공연을 성공리에 마치는 아이돌들. 말 그대로 왕도적인 전개였다. 셋은 막연히 TV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쟤들은 좋겠다, 춤추고 노래하고. 즐거워 보이네.”
 “그건 아닐걸?”
 나오의 말에 카렌이 즉답했다. 린은 내심 카렌의 반응에 놀라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눈을 나오에게 돌리고 있지는 않았지만 눈에서 단호함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저 아이들도 저 무대를 만들기 위해 헤아릴 수 없는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즐거워 보이는 건 사실인걸.”
 카렌은 다시 볼을 부풀린 채 부끄러움을 숨기며 눈을 내리깐 나오를 보며 살짝 웃었다. 린도 앉아 있던 곳에서 자리를 옮겨 나오의 옆에 다가가 조심스레 앉는다.
 “저 즐거움을 위해, 많이 노력했을 거야. 그치, 린?”
 “그렇지. 우리 학교에도 아이돌 관련 준비하는 친구들이 많잖아. 그 아이들을 보면 느끼는 게 많아. 아무리 즐거워 보여도, 그 즐거움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구나 하고.”
 나오는 아무 말도 못한 채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그녀가 조금 의기소침해 보이자 카렌이 다시 그녀의 손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나오가 우리 중에 제일 게으르니까 그래 보일 법도 하지.”
 “뭐? 왜 얘기가 그렇게 되는데?!”
 카렌의 말에 다시 웃음이 감도는 방 안에서, 린도 비로소 따라 웃을 수 있었지만. 뭔가 무거웠던 분위기는 그리 쉽사리 풀리지는 않을 것이다. 셋 모두 혼자 남으면 자신의 일에 대해, 모두의 일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리라. 그렇게 한 발씩, 어른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다.

 “정말 안 갈 거야?”
 “안 갈 거라고 했지! 왜 자꾸 귀찮게 물어보는 거야?!”
 3학년 교실 앞에서 고성이 오간다. 아니, 정확히는 가고 있다고만 해야 할 것이다. 한쪽은 조곤조곤 이야기하고 있지만 다른 한쪽은 흥분이 지나쳐 목소리가 엄청나게 커져 있으니. 물론 조용히 말하는 쪽은 린이고, 복도가 떠나가라 소리를 치는 쪽은 나오였다.
 “내가 안 가겠다는데 왜 자꾸 데려가려고 하는 거야?”
 “사과해야지. 나오.”
 “...내, 내가 왜?”
 린은 나오를 잠깐 바라보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고 돌아섰다.
 “됐어. 마음대로 해.”
 혼자 계단을 내려가는 린의 뒷모습을, 나오는 조용히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래서, 카렌은 졸업하면 바로 전문학교로 가는 거야?”
 “응. 아마 그러지 않을까. 대학은 크게 관심이 없어서...”
 이번에 그녀들이 모인 곳은 나오의 집이었다. 방 한쪽을 가득히 메운 애니메이션 DVD가 보이는 것만 제외하면, 극히 소녀 취향적인 방이었다. 린은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나오는 결국 어쩌기로 했는데?”
 “...몰라.”
 “아직 못 정한 거구나?”
 카렌은 실실 웃어보였다. 방 한가운데에는 무수한 과자가 늘어놓아져 있는 테이블이 있었다. 나오의 부모님이 가져다 주셨으리라. 침대에 누워 있는 린과는 달리, 나오와 카렌은 테이블 앞에 마주앉아 과자를 집어먹으며 늘어져 있었다.
 “나오는 곧 졸업이잖아? 슬슬 위험하지 않아?”
 “...너희가 상관할 바 아니거든! 카렌이야말로 자기 앞가림이나 하라구! 네일아트 같은 거 하기 쉽지 않으니까!”
 나오가 평소보다 좀 심하게 화를 내고 있었다. 다른 누구보다도 나오 본인이 가장 자신의 앞일을 걱정하고 있음을 다른 둘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녀가 화를 내는 걸 잠자코 듣고 있던 두 사람이었지만 이번엔 나오가 좀 말이 심하지 않았나 하고 린이 말하려는 찰나, 카렌이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카렌?”
 “...미안, 나 몸이 좀 안 좋아서. 먼저 들어갈게.”
 그렇게 툭 던지고, 카렌은 뒤쪽에 널브러져 있던 자신의 가방을 잽싸게 챙겨들고 나오의 방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나오는 그녀의 뒤에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방문이 닫히고, 벙찐 채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나오를 보며 린이 조용히 쏘아붙였다.
 “...화났어. 카렌.”
 “뭐, 뭐야. 내 잘못이라고 하는 거야?”
 “나오가 말이 심했어. 지금은.”
 린은 덤덤한 말투로 나오에게 나지막하게 말하고 있었다. 나오는 절대로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붕붕 휘젓더니, 테이블에 있는 과자를 한 주먹 집어 들고 입에 우겨넣었다.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과자가 가득한 입에서는 혀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린은 그녀를 보고 한숨을 한 번 내쉬더니, 자신의 가방을 집어 들었다.
 “나도 갈게. 카렌한텐 나중에 사과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조심스레 방을 나서는 린의 뒷모습에도, 나오는 방금 카렌에게 그랬듯이 아무 말도 건네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몸은 어때?”
 “내일까진 쉬라고 부모님이 그러시긴 했는데... 솔직히 내일이라도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잠깐 열이 좀 올랐을 뿐인데.”
 린은 안도하고 있었다. 예전에 심하게 아팠던 적이 있다고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파서 오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녀를 보기 전까진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막상 그녀를 보니 안심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침대에 기대 앉아있을 뿐이지 평소와 똑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나오는?”
 “...안 오겠데.”
 그녀의 질문에 사실대로 대답해야 할지 조금 고민했지만, 숨겨봐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고 린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카렌은 그녀의 대답을 듣고 살짝 웃어보였다.
 “후후, 나오답네.”
 “...화난 거 아니야?”
 “응? 화나다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카렌을 보고 린도 그녀와 똑같은 표정을 짓는다. 린의 표정을 본 카렌은 잠깐 뭔가를 생각하더니 아, 하고 손을 탁 쳤다.
 “혹시 저번에 나오네 집에 갔을 때 얘기하는 거야? 그거라면 정말 몸이 안 좋아서 집에 간 건데.”
 “...나오한테 카렌이 화 많이 났다고 엄청 쏘아붙였는데, 큰일이네...”
 둘은 마주보고 웃었다. 잠깐 동안 둘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나, 린의 꽃집 일 같은 것들을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슬슬 가 볼게. 저녁에 꽃집을 봐야 해서...”
 “응. 모레 학교에서 보자.”
 그렇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 카렌의 방 밖으로 나서는데, 뭔가 거대한 짐덩이를 질질 끌며 2층으로 올라오는 익숙한 얼굴이 린과 마주쳤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 계단 한가운데서 움직이지 못했다.
 “안 온다며?”
 나오는 대답하지 못했다. 린은 그녀에게 뭐라고 말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이후의 상황이 재미있어질 것 같은 상황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들어가려면 빨리 들어가. 난 먼저 갈 테니까.”
 “...그래.”
 “...제대로 사과해. 부탁할게.”
 왠지 심각하고 가라앉은 그녀의 말투와 수심이 가득 찬 표정을 보고 나오는 당황스러웠다. 카렌이 심하게 아프기라도 한 건지, 혹시 또 입원이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닐지 머릿속이 심란해진 그녀를 뒤로 하고, 린은 계단을 내려와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카렌의 부모님에게 인사를 하고 카렌의 집을 나섰다. 그 사이 나오는 연달아 심호흡을 하더니 다시 짐을 질질 끌며 카렌의 방문을 열어젖혔다.
 “어, 나오 왔어?”
 침대에 누워 고개만 돌려 그녀를 바라보는 카렌을 보고 그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나오는 카렌에게 대답도 하지 않고 여태 낑낑대며 끌고 왔던 거대한 짐을 카렌의 침대 옆으로 던져버렸다.
 “이게 뭐야?”
 “...내 비장의 DVD 세트야!”
 카렌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거 다 보고, 감상문 써서 가져와! 집에만 있으면 심심할 테니까 특별히 숙제를 내 주는 거니까! 저번에 내가 잘못해서 미안해서 그런다고 착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네!”
 나오는 이유 없이 뭔가 울컥하는 마음에 금방이라도 펑펑 울 듯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카렌이 뭔가 말하려는 것을 자신의 목소리 때문에 듣지 못한 그녀는 자기 할 말만 기관총처럼 쏴댄 후 돌아섰다.
 “...빨리 나아서 학교나 나오라고! 나도 너 없으면 옥상에 올라갈 명분이 없으니까!”
 카렌의 방문을 세게 닫아버리고, 급히 집을 뛰쳐나가는 그녀의 눈에서 카렌 앞에서 간신히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울었다고?”
 “아, 안 울었거든!! 카렌이 방 청소를 안 해놔서 먼지가 들어갔을 뿐이야!”
 며칠 뒤, 다시 세 사람이 걷게 된 녹색의 가로수길. 능글맞은 웃음을 흘리는 린과 카렌을 앞에 두고, 카렌은 얼굴이 새빨개진 채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햇빛이 밝게 녹색과 붉은색을 비춰주고 있었다.
 “...엄마가 나오가 돌아간 다음에 방에 올라와서 ‘너희 싸웠니? 나오가 펑펑 울면서 뛰쳐나가던데?’ 라고 하셨는데.”
 “하, 하아?! 안 울었다니까? 카렌네 어머니가 뭔가 잘못 보셨을 거야!”
 “거기다 은근히 돌려 말하면서 사과까지 하고.”
 “착각하지 말라고 했잖아!”
 홍당무처럼 새빨개진 얼굴로 변명을 늘어놓는 나오의 머리를 카렌이 귀여워 죽겠다는 듯이 쓰다듬었다. 나오는 얼굴이 더 빨개져 손을 뿌리쳤고, 카렌을 따라 나오를 쓰다듬어 보려고 조심스레 손을 가져가던 린은 다시 조심스레 손을 카디건 주머니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렇게 걷는 동안 다다른 가로수길의 끝에, 변함없이 굳건히 선 시계탑이 9시를 알렸다. 그제서야 마음이 급해진 소녀들은 부리나케 달리기 시작했다.
 “나오가 제일 꼭대기 층이니 100% 지각이야!”
 “시끄러! 너희 이따 옥상에서 두고 보자고!”
 마치 조금 뒤에 옥상에서 만나자는 투로 말하는 나오를 보며 다른 둘은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정작 나오는 웃음이 터진 둘을 보며 황당해했지만, 계단을 오르는 그녀의 얼굴에도 미소가 가득히 번져 있었다.
 아마 그 날의 옥상은 그 어느 때보다 햇빛이 가득하지 않았을까.




트위터 리퀘로 쓴 린나오카렌 일상 학원물입니다.
나오의 귀여움을 어필하고 싶었는데... 
써놓고 보니 소리만 잘 지르는 캐릭터 같아서... 좀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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