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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야츠하시에는 날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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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19, 2016 07:42에 작성됨.

야츠하시란 쌀가루와 설탕, 계피등을 원료로 해서 마치 만두처럼 소를 감싼 모양을 하고 있는 교토의 대표적인 화과자로서, 단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부담없이 먹기 좋은 물건이다. 당연하지만 교토 출신이라면 한번쯤은 봤을 물건이며 특히나 화과자집 출신인 시오미 슈코에게는 여러가지 의미로 애증이 서려있는 선호 음식인 것이다.
그러니만큼 그걸 자랑으로 여기진 않았지만 슈코는 남들보다는 야츠하시에 대해 더 잘 안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흐응, 슈코쨩, 원래 야츠하시라는게 날아다니는 물건이었던가아~?"

"...몰라. 모르겠어."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런 생각을 깔끔하게 지워버리기로 했다. 응. 난 모르고 있던거야. 화과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슈코의 눈 앞에서 야츠하시가 파닥거리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본고장의 야츠하시는 활기찬 거구나? 프레쨩 조금 놀랐어."

응. 내가 더 놀랐어.
슈코의 마음속에서 뭔가가 꺾일랑 말랑 하는 기분이 들었다. 저게 난생 처음 보는 곳에서 만든 야츠하시면 이정도까지 슈코가 평정심을 잃진 않았을것이다. 하지만, 하필이면, 저걸 보낸 곳은 슈코의 친가였다. 친가에서 야츠하시를 몇상자나 보내기에 여러가지 만감이 교차하는 심정으로 상자를 열어 봤던 슈코는 이번엔 다른 의미로 만감이 교차하는걸 느껴야 했다.
...어째서야.

"흐응... 슈코쨩, 슈코쨩. 근데 다른 야츠하시도 상자 열면 날아다닐까?"

"...아마?"

"그럼 이 야츠하시는 취급에 주의 해야겠네~ 문 열면 날아가려나아?"

"...!"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는 머리로도 그게 위험하다는건 알겠더라. 슈코는 반사적으로 말이 나오자마자 문에 손을 뻗어 문을 잠갔다. 반사적 행동이기 때문에 이 동안 숨조차 쉬지 않았다. 프레데리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슈코를 보는 동안, 슈코는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문고리를 잡고 있었다.

"저... 프,프레데리카. 일단, 야츠하시부터, 정리, 할까?"

눈치 빠른 프레데리카가 아니더라도 이때 보여준 슈코의 미소가 무리하고 있는 미소라는건 알수 있었으리라.

"그... 그럴까아? 흐흥. 슈코쨩, 아무리 그래도 프레쨩이 이 상황에서 문을 열진 않는다구?"

"그, 그렇지...?"

애초에 왜 들고 왔더라. 자아 성찰의 시간이다. 연락도 않고 있던 본가에서 대뜸 슈코가 가장 좋아하는 야츠하시를 보내왔다. 그것도 몇박스씩이나. 슈코는 자신이 암만 야츠하시를 좋아한대도 이만큼은 못먹을거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보자마자 거기 꽃혀 있는 쪽지는 보지도 않고 방 한 구석에 쳐박아 뒀다 들고 와서 나눠 주려고 했다. 음. 일련의 과정에서 문제될건 없는데. 어째서 이런 문제가 생긴걸까.

"이게 무슨 일이지? 설명해 보도록."

하지만 오래 생각할 틈 조차 없었다. 별안간 상... 아니, 전무가 방에 들어 왔던 것이다. 잠깐, 문은 잠궜을... 아니, 문이 하나가 아니었구나. 어머나. 그건 몰랐네?

"상무님! 문 닫아요!"

"상무가 아니다. 전...아악?!"

슈코는 야츠하시들에게 쪼이고 있는 전무의 모습이 마치 새떼에 시달리는 옥수수 같다고 생각했다. 우와. 굉장해. 한폭의 그림같아. 짝짝짝. 야츠하시들이 무슨 생각으로 전무를 공격한건지는 의문이지만 조금 쌤통이라는 생각이 안 드는것도 아니었다.

"...아 참, 이게 아니지. 프레데리카, 저거 못 나가게 막아야 해!"

"그래야지? 자, 잡는다-? 양장본 나가신다-!"

"얼른 포획을 해야...응? 방금 뭐라고? 양장본?"

"에잇!"

"잠깐?! 그거 후미카 거잖아!?"

프레데리카는 두꺼운 양장본(후미카 소유)로 야츠하시를 후드려 팼다. 효과가 있는건지 양장본에 맞은 야츠하시들은 나가 떨어져서는 꿈틀댄다. 뭔가 말하고 싶은 마음은 꿀뚝같았지만, 현 상황에서 프레데리카에게 태클을 거는건 별로 좋은 판단이 아닌것 같았다.
미안. 후미카. 책이 상하면 나를 원망해줘.

"에잇 에잇! 에잇 에잇!"

"아! 아! 그만 때려도 된다! 미야모토 프레데리카!"

"에잇! 에잇!"

프레데리카의 위업(?)에 의해 야츠하시는 반이 넘게 나가 떨어져 가고 있었다.(슈코는 아주 잠깐 전무를 위해 묵념했다.) 전무가 문을 열때는 간담이 서늘했지만 잘만 하면 어떻게든 될거 같다. 이제 혹시 빠져 나갔을지도 모를 야츠하시를 찾아보기만 하면 되겠지. 슈코는 행동을 멈춘 야츠하시를 다시 상자에 주섬주섬 주워 담았다. 개별 포장이 되어 있는게 천만 다행이었다.
하지만 누가 알았을까. 이 또한 안일한 생각이었음을.
슈코는 별안간 야츠하시 박스들이 연달아 터졌을때까진 기억하고 있다. 상자들이 덜컥거리더니, 그대로 터져나가 버렸다. 하지만 그 뒤로는 기억이 없다. 어째서일까. 야츠하시들에게 쪼인다는 사실 자체에 충격을 받았던걸까. 아니면 망했다는 절망감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물리적으로 얻어맞고 기절해서일까. 하여간 슈코의 마지막 기억은 정신을 놓고 괴성을 지르며 야츠하시들에게 돌격하다가 뒷통수 맞고 기절하는 것이었다.

 


"...프레데리카."

"..."

"...전무님."

"..."

"...하, 하하, 하하하..."

정신이 들은 슈코의 입에서 헛웃음이 튀어 나왔다. 차라리 되려 정신을 잃었으면 좋겠다. 절망감이 온몸을 휘감고, 평소의 여유따윈 티끌만큼도 남지 않았다. 슈코는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터덜터덜 몸을 일으켜서 문 밖으로 향했다. 받아 들이고 싶지 않은 현실이지만, 받아들일수 밖엔 없다. 이성이 받아들이라고 소리치고 있는데 본능이 거부하고 있었다.
응. 이러다가 나 다음부터 야츠하시 못먹는건 아닌가 몰라.

"후미...카?"

그렇게 한참을 터덜터덜 걸어가던 슈코를 멈춰 세운건 복도 한복판에 쓰러져 있는 후미카였다. 슈코는 멍해지려는 머리를 억지로 부여잡고 후미카에게 달려가서 후미카를 부축했다.

"슈코...씨..."

"후미카! 정신 차려! 후미카!"

"전... 틀렸어요. 슈코씨는 꼭 살아 남으세요..."

"그런 소리 하지 말고! 무슨 일이 일어난건데?!"

"어떤가요... 과거의 내가 보면 칭찬해 주려나...?"

"후미카!"

"훗... 농담이에요. 몸도 재대로 못 가누는 상태인걸..."

"후미카아아아아!"

풀썩. 후미카가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슈코는 어딘가 모르게 그래야 할 거 같은 기분에 휩싸여 처절하게 후미카를 불렀다.
...근데 생각해 보면 그냥 기절 한거잖아. 야츠하시 상대로. 외상 하나 없이. 응. 이런거 더러 분위기 탔다고들하지.

"...근데 왜 분위기 잡아?"

"...한번... 해 보고 싶었어요..."

"...뭔가 감명 깊게 본게 있는 모양이네. 하여간 복도에 누워 있으면 안 좋아. 얼른 일어나."

"저... 그게... 실은 허리를 삐끗해서... 못 일어나겠어요..."

"야츠하시...한테 당한거야?"

"아뇨... 때려잡고 신나서 피버한 포즈를 하다 그만..."

"..."

"...슈코씨?"

슈코는 잠자코 후미카를 내려 놓았다. 응. 자업자득이야. 아무렴.

"그래... 야츠하시 회수해야...지..."

...여기고 저기고 전부 생각하기 싫은 일 뿐이었다. 슈코는 도망치고 싶은 생각을 억지로 뿌리치며 복도를 터덜터덜 걸어갔다.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려...아니, 생각하지 말자. 아무것도 아닌것만 생각하자. 바람만을 생각하자.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죽어버릴거야.

"고-투-헤에에에엘!"

멀찌감치에서 쇼코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 이미 퍼질대로 다 퍼졌구나. 하하. 하하하. 엎어버릴까. 하하.
...아냐. 정신 차려.

"으아아! 이게 뭐야?! 저리 가! 저리가라고!"

조금 거리가 있는 곳에서 나오가 가방을 휘두르며 야츠하시를 쫓아내고 있었다. 슈코는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며 그런 나오를 도우러 몸을 움직이려고 했다.
그런데,

"저리... 가란 말야!"

나오가 가방을 대뜸 열더니 내용물을 흩뿌렸다. 그리고 하늘을 떠도는 내용물을 손으로 낚아채더니, 그대로 날려 버렸다. 사방으로 날아간 내용물은 야츠하시를 꼬치처럼 꿰어서 벽에 그대로 꽃아버렸다.
그제서야 슈코는 그 내용물이 학용품들이라는걸 깨달았다.

"암만 내가 호구 소리 들어도 이런 것들에 당할까봐."

...아니, 그건 또 어디서 배운거야.

"아, 슈코? 있지, 들어봐, 큰일 났어! 야츠하시들이 날아다니면서 사람들 습격하고..."

"아... 알고 있어."

"너도 역시 알고 있구나? 카, 카렌은 무사할까?"

"...찾으러 가 보자."

일련의 흐름에서 나오에게 도대체 그건 어디서 배웠냐는 질문을 할 틈따윈 없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야츠하시들도 언제 배워서 날아다녔겠나 싶다. 납득이 안 되는거랑은 별개로 그냥 현상이 있으면 받아들이는게 좋을것 같다.

"그런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적네? 다들 피난했나?"

"그게... 나도 잘 모르겠어. 갑자기 야츠하시들이 날아다니고... 린이 전화해서는 자기들이 어떻게든 해 볼테니 가만히 있으라고는 했지만 카렌이 걱정되어서 견딜수가 있어야지... 아- 정말! 왜 이 프로덕션은 하루가 머다하고 이런일이 일어나는거야?!"

...찔린다. 엄청 찔린다. 하지만 그 와중에 어째서 나오가 저런 전투력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어딘가 감이 오기 시작했다. 그래. 이런 상황에 살아남으려면 뭐라도 전투력을 가져야겠지...
...아니, 역시 비상식적인데 그거. 애초에 이런 상황이 수시로 일어나는 것 자체가 이상한 거잖아. 체념하는 이성을 본능이 자꾸 밀어낸다. 뭐지 이거. 본능이 이성을 잡아줘야 정상 아냐?

"슈코!"

"으, 으응?!"

"전방에 야츠하시가 셋, 온다! 슈코!"

어느샌가 고개를 들어보니 눈 앞에 야츠하시가 추가로 퍼덕대고 있었다. 하하. 싫다 야. 이건 정말 악질적인 농담 같잖아.

"으으으... 이제 던질것도 없는데! 슈코! 어떻게 할 수 없어?"

"그, 글쎄?!"

"게다가 좁은 복도라서 도망치기도 좀 그런데... 앗, 더 늘어났어!"

나오의 말대로, 눈 앞에는 야츠하시가 갈수록 많아져 가고 있었다. 아니 근데, 내가 들고온 야츠하시가 저렇게 많았나?

"샤이닝-! 킥!"

우렁찬 기합소리와 함께 슈코의 뒤에서 어떤 인영이 야츠하시에게 날아간다. 걷어차고, 내리 찍는다. 기합소리와는 다르게 자그마한 체구에 빛나는 히어로 복장을 입은 그녀는...

"히카...루?"

"히어로는 곤란한 사람을 돕는 법이지!"

피츙. 빛나는 미소. 응 그래. 그게 히어로인건 맞는데 많이 신나 보인다 너.

"백귀야행의 끝에는 빛이 기다리고 있으리. 히어로 샤이닝, 여기에 등장!"

휙. 휙. 역동적인 동작. 응 그래. 그게 히어로인건 맞는(하략

"자, 여기는 내가 맡을 테니 얼른 안전한 곳으로 가!"

"안전한 곳...?"

"1층 에스테 룸. 거기서 다들 모여 있을거야!"

"그럼 너는?"

"이것들만 다 정리하고 갈게! 여기는 우리에게 맡기고 앞으로! 카렌은 내가 찾아올테니까!"

"아...응!"

복잡한 것은 잠시 잊고 움직이자. 움직이는 동안에는 아무 생각도 안 해도 될거야. 슈코는 슬슬 지끈거리려는 머리를 억누르고 나오와 함께 몸을 움직였다.
그런데, '우리'라고...?

"샤이닝- 펀-치!"

 

"방금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17층 레슨룸에 낙오된 사람이 3명. 전무님, 미야모토양, 사기사와양. 네. 그쪽으로 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호시양."

"그대- 그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기에-"

"아, 요리타양.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네 CP 프로듀서입니다. 시라사카양? 네. 카와시마양의 구출에 성공한 모양이군요. 네. 수고, 매번 감사드립니다."

어쩌다 이런 사태가 된걸까. 슈코는 따라갈 엄두가 안나기 시작했다.
에스테 룸은 이미 사건 대처 본부가 되어 있었다. CP의 프로듀서, 그리고 척 봐도 범상치 않은 능력을 가지고 있을거 같은 몇몇 사람들이 분주하게 뭔가를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꾸준히 구조활동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아니아니, 좀 이상하지 않아? 암만 그래도 고작 야츠하시인데. 그야 쪼이면 좀 따끔하긴 하지만...

"P쨩, P쨩! 이거 도대체 어떻게 된거냥?!"

"현재, 사태 파악 중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태가 어떤 사태인지 우리도 알아야 할거 아니냥! 쇼코쨩하고 코우메쨩은 뭔가 알고 있는거지?"

"...죄송합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원인은 밝혀내지 못한 상황이라..."

그리고 저기에 슈코와 필적하게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아이돌이 한명. 이 곳엔 이미 사람이 꽤 많이 모여 있었기에, 여기저기서 수근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좋지 않은걸. 슈코는 심란한 가운데에서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대- 그대- 잠시 이야기좀 할 수 있을런지-"

"응...?"

정신을 차려 보니 어떤 소녀가 슈코의 옷 소매를 잡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름이...

"요시노... 였나?"

살포시 웃으면서 끄덕. 어딘가 급한 마음을 가라앉혀 주는 미소를 가진 소녀다. 그래, 기억난다. 시부야 린이 한참동안 '시마무라 우즈키의 미소'에 대해 역설했던 것이. 아마 시부야 린이 말한 시마무라 우즈키의 미소는 저것과 비슷한 느낌 아니었을까.

"잠시 할 이야기가 있기에-"

요시노는 소매를 잡아 끌며 슈코를 사람들 눈에 안띄는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그건 그렇고 왜 나를 부르는걸까. 슈코는 알수없는 친근감과 거리감을 동시에 느끼며 요시노를 바라보았다.

"그대는 식신이라는것을 알고 있는지?"

"식신... 말야? 만화에서 봤어. 부하 같은거 아냐? 음양사들이 부리는. 그런데 왜?"

"식을 만들때에 있어서는, 술자의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지요. 식이란 곧 술자의 상념을 반영하는 것이기에- 달리 말하면, 강력한 의지가 반영 되면 의도치 않아도 식을 만들수도 있는 법이지요. 아시겠는지?"

이해 못하는게 이상하다. 슈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겠어. 그런데 그게 ㅇ...잠깐."

슈코는 약삭빠르다는 평을 듣는 사람이었다. 달리 말하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재빠르게 포착하는데 능했다. 그런 슈코의 머리에서 날아다니던 야츠하시와 방금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럼 설마, 저것도 일종의..."

"이해 하셨는지요? 저것 또한 일종의 식. 술자의 강렬한 사념이 담겨 있는 식신이랍니다."

"..."

"이 또한 아마 의도치 않은 식신이겠지요. 무언가를 만든다는 행위는 그 물건에 자신의 혼을 불어 넣는 것이기에. 분명, 저 야츠하시를 만든 사람은 무언가를 한결같이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랍니다. 네. 분명."

"아..."

슈코의 입에서 저절로 탄성이 흘러 나왔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보낼 야츠하시를 만들며 생각할건 뻔하지 않은가. 가출한 딸에게 보낼 선물을 만들면서 한 생각이 식신을 만들었다면, 그 생각이 뭐건 간에 딸이 죄책감 느낄 이유로는 아주 차고 넘칠것이다.

"...그런데, 요시노가 굳이 나한테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저 야츠하시에 담긴 생각을 알수 있던 모양이네..."

"그런것은 아니기에- 저도 전부 알지는 못한답니다. 그저..."

"그저?"

요시노는 품 안에서 포장지를 꺼냈다. 상호가 적혀 있었다. 화과자점 시오미당.

"예전부터 시오미당의 과자는 좋아했는지라-"

슈코는 시오미당의 과자가 칭찬 받은것을 순수하게 기뻐할수 없었다.

 

정리해 보자.
시오미 슈코는 가출했다.
가출하고 집에 한번 가 본적 없다. 연락 한번 해 본적 없다.(그야 프로듀서가 시오미당의 야츠하시를 사 온적은 있지만 그게 전부고.)
그 와중에 슈코의 아버지가 무슨 생각인지 수제 야츠하시를 한아름 보내왔다.
그리고 요시노님 가라사대, 저 야츠하시가 날뛰는 이유는 만든 사람이 무언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란다.
결론은 심플하다. 이견이 없는 결론이다.

"시오미 양! 나가시면 안됩니다! 시오미 양!"

"미안! 금방 갔다 올 테니까!"

슈코는 냅다 에스테 룸을 뛰쳐 나갔다. 이렇게 앞뒤 생각 않는건 나 답지 않아. 언제나 적당한 성격이었는데, 언제나 가장 이득 보는 위치를 선점하는 약삭빠른 여우 같은 인간이 나였는데. 하지만 슈코에게는 지금 당장 봐야만 하는 것이 있었다.

"자, 카렌. 나오도 거기 있을테니... 응? 슈코? 어디가? 위험해!"

"미안 히카루! 금방 갔다 올 테니까!"

죄책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야츠하시 상자 사이에 쪽지가 끼워져 있다는걸 알면서도 무시한 것은.
그런 죄책감과 슈코 특유의 적당주의가 겹쳐 생긴 폐혜였다. 그러니 만큼 더더욱 슈코는 그 쪽지를 봐야만 했다. 지금 당장. 이 사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서라도.
슈코는 무뚝뚝한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렸다. 농땡이 피우고 적당히 지내던 자신을 말 없이 지켜 보던 그 얼굴. 어느날 갑자기 자신을 크게 야단쳤던 그 얼굴. 딸이 맞고함치자 나가라고 고함 쳤으면서도 그래 나가주겠다며 진짜 나가려는 딸 앞에서 비킬 생각을 못하고 있던 그 모습도.

"정말 나더러 어쩌라는거야 망할 아버지...!"

아니 정정. 이건 본심이 아니다. 하지만 본심은 말로 할 수 없었다. 애초에 말로 하지 못해서 뛰쳐 나온 것 아니었던가. 하지만... 하지만...!

"후히... 친구...? 여긴 위험해..."

계단을 다 오르자 마자 보이는 자그마한 인영이 있었다. 쇼코는 기절한 사람 세명을 얹어둔(사실 한명은 기절한건 아니다) 손수레를 끌다 슈코가 보이자 의외라는 투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는 표정이었다.

"하아... 하아... 쇼코... 하아... 거기... 하아... 없지...?"

"치, 친구... 진정하는게... 좋을거야... 아니면 내가 모르는 대화법이 있는걸까나..."

"하아... 하아... 하아... 쇼코... 프레데리카랑 전무님이 있던 방에... 뭐 특별한건 없었지?"

"없어... 그치만 그곳... 버섯이 잘 자랄거 같습니다... 후히..."

"고마워!"

"저기 친구... 그치만 친구는 거기 못ㄱ"

슈코는 미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마저 뛰쳐 나갔다. 순간적으로 예전에 들었던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는 어머니의 훈계가 생각났지만 그런건 지금의 슈코에게는 우선순위가 상당히 낮은 덕목이었다. 이렇게 마음이 급한데 그 말을 다 듣고 있을 틈이 어디있나.
하지만 들었어야 했다.

"크억?!"

미처 다섯걸음을 떼기 전에 정체불명의 털뭉치에 맞고 날아가 버렸다. 인식은 행위에 따라온 다고 누가 그랬던가. 상황판단이 안되는 동안 그대로 바닥에 미끄러져 버렸다. 인식이 따라온 것은 그 직후. 뭐지? 뭐에 맞고 날아갔지? 분명 털뭉치의 감촉이었는데?

"친구... 가는 길목에 피냐가 잔뜩있어..."

"그런건... 특별한게 있는 거잖아..."

[피냣! 피냐 피냐!]

[피냐 피피! 피냐냣!]

아 저 까만거 왠지 CP 프로듀서 닮았어. 그보다 쇼코 넌 어떻게 저기서 빠져 나온건데.

"차, 참고로 제가 빠져 나온 직후부터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후히..."

"그러니까 그게 특별한 거래도..."

그래 쇼코. 넌 나중에 단어의 사용에 대해 진지하게 토의좀 해 보자. 슈코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피냐는 그 자리에서 더 이상 움직이진 않고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꽤 고무적인 사실이었다. 당연히 더 얻어 맞고 싶진 않으니까. 하지만 그건 그거고 슈코는 지금 저 숱하게 많은 피냐를 뚫어야 했다. 슈코는 당연히 일반인이다. 물론 아이돌 중에서는 저 피냐를 때려잡을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겠지만...

"후히... 친구. 그렇게 쳐다봐도 저 많은 수는 못 뚫어줘..."

쇼코는 슈코의 시선을 느낀건지 미리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아니, 쇼코가 잘못한건 아니니까. 하지만 쇼코로도 무리라면... 어쩐다...?

[지-금- 콘-치키-]

"네. 시오미입니다."

그런 와중에 전화가 울렸다. 슈코는 미처 벨 소리가 다 울리기도 전에 반사적으로 낚아채 받았다. 이런것도 직업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슈코양, 맞으신지- 재대로 연결 된것이 맞는지-]

"...응? 요시노?"

[제가 이 휴대폰님을 처음 이용해 보아서 잘 전달 되는지 잘 모르겠네요. 슈코양 맞으신지?]

"응. 그건 그런데. 왜 전화한거야?"

[슈코양이 움직여 준 덕에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슈코양은 현 상황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것 같기에-]

"...응. 설명이 필요한건 맞아."

[아무래도 인형탈들은 사념의 영향을 받기 쉬운지라- 야츠하시에 들어 있던 사념들이 피냐에 옮겨 붙은듯 합니다. 그리고, 예상이 맞은 모양이군요. 전부 슈코양을 중심으로 모여들고 있기에-]

"아버지는 대체 무슨 생각을... 아, 아무것도 아냐 요시노."

[혹시나 하는 폭주 사태를 대비해서 여러분을 피신시키길 요청 했사오나, 원인이 규명 된 이상 남은 것은 슈코양이 하기 나름이랍니다. 원념은 원인과 마주 해야 풀리는 법. 제가 알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겠군요.]

"아아. 여기까지만 해도 고마워. 생큐."

[생큐... 감사 인사였던가요? 아닙니다. 이것이야말로 요시노의 업이기에. 그럼 이만-]

뚝. 전화는 거기서 끝났다. 슈코는 전화기를 주머니에 대충 쑤셔 넣어 놓고 피냐를 노려 보았다. 피냐의 모습에서 애증어린 아버지의 등이 겹쳐 보였다.

"...쇼코. 내려가 있어."

"그치만 친구... 힘들지 않아...?"

"이건 내 가족사거든."

"가족사... 알겠어... 후히... 이해는 안되지만... 가자, 손수레 송이버섯 3호... 버섯... 버섯... 새송이 버섯... 숫총각 버섯... 호시 쇼코..."

"윽, 쇼코씨, 윽, 저 허리가, 윽, 아프, 윽,"

후미카의 앓는 소리와 함께 쇼코의 모습이 사라졌다. 남은 것은 머리에 야츠하시를 붙인 채 자율행동하는 피냐들과 슈코 뿐. 별거 아닌거 같아도 초현실적인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하, 하하."

슈코는 비웃음같은 웃음을 흘렸다. 새삼 생각해 보면 이 어찌나 우스운지. 한낱 야츠하시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이야.
...그러고 보니 아버지 앞에서 웃은 적이 있던가, 나?

"있지, 아버지. 나 항상 아버지가 무슨 생각하는지 궁금했어. 아버지는 다섯살 이후로 나한테 한번도 웃어 준 적 없잖아?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끝도 없이 반죽을 미는 그 커다란 등 뿐이었어."

바보같이. 피냐한테 말해봐야 아버지한테 닿을리도 없는데. 하지만 슈코의 입은 계속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아버지한테 웃은 적이 없었던거 같아. 아버지가 너 커서 뭐할거냐고 물어 봤을때도 진지하게 생각하질 않았어. 어차피 진지하게 안 들을거잖아. 그렇게 생각했어.
하지만, 아니었던거지? 진지했던거지, 아버지?"

불끈.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목소리가 떨린다. 아버지 앞에서는 차마 내색하지 못했던 이야기. 스스로도 깨닫지 못했던 감정을 자각하자,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뭐라도 말해봐! 연락도 없다가 대뜸 한아름이나 선물을 보냈으면 무슨 생각이라도 있었을거 아냐! 안 그래?! 무슨 생각으로..."

휙. 한참 외치던 중, 맨 앞에 선 피냐가 무언가를 슈코의 발밑에 던졌다. 고풍스러운 장식이 되어 있는 메모지다. 화과자 선물 세트에 곁들이면 딱 좋게 생긴.
슈코는 직관적으로 이것이 야츠하시 사이에 끼어있던 쪽지라는것을 깨달았다.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허리를 숙여 쪽지를 집어 들고, 천천히 쪽지의 내용물을 읽었다.

"'네가 좋아하는거 보낸다. 잘 먹어라. 불효자식.'"

슈코는 쪽지의 글씨를 한참동안이나 뚫어지게 쳐다 봤다. 무표정하던 슈코의 입꼬리가 조금씩 올라가고, 슈코의 입이 알수 없는 미소를 짓기 시작한다.

"하,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하하!"

미소는 웃음이 되고, 웃음은 급기야 폭소가 되었다. 슈코는 뭐가 그렇게 웃긴지, 한참을 그 쪽지를 보고 웃고 있었다.

"아하하하하하하! 그래, 그래. 불효자식 여깄어요. 망할 아버지. 근데, 그 불효자식을 걱정했으면, 이 사단은 만들지 말았어야 하는거 아닌가요? 안 그래요?"

호기롭게 외치며 슈코는 들고 있던 쪽지를 뒤로 던져 버렸다. 그리고는 냅다 피냐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결국 이건 내가 치워야 하는거잖아!"

아아. 이건 정말 광대놀음인걸. 슈코는 맨 앞의 피냐를 사정없이 후려 갈기며 그렇게 자조했다.

 


"...그래서, 결국 피냐 인형 한가운데에서 발견 되셨다는거군요..."

"어떻게든 된 거려나... 요시노 네게는 감사하고 있어. 네가 아니면 이번 일의 이유도 모르고 끝날 뻔했고."

"그저 저는 당연한 일을 한 것이기에- 슈코양에게 도움이 되었다면 저도 기쁩니다."

"그리고... 가까운 오프날에 친가를 갔다와 볼까 싶어."

"그런가요...? 괜찮으신지...?"

"아직 머릿속은 복잡하지만, 아버지 얼굴을 보고 싶어졌거든. 야츠하시의 답례도 해야하고."

"..."

"분명, 마주하지 않으면 알수 없는것도 있는거야. 그렇게 생각해."

"그런가요..."

"...응? 왜 그렇게 웃어?"

"안도의 웃음이랍니다. 사람을 인도하는 것이 요시노의 사명이기에."

"그래? 꼭 신님 같네?"

그 말을 들은 요시노는 대답 없이 창 밖을 바라보며 웃었다. 어쩐지 그러고 싶은 기분이 들었기에, 슈코는 그런 요시노를 보고 미소지었다.

"거기 둘!! 인형 옷 옮기는 것 좀 돕지?! 슈코 너는 여기서까지 땡땡이냐?!"

두 사람은 프로듀서의 고함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창 밖을 보며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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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세로만 글을 써나가면 이런게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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