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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스토리 [lay all your love on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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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17, 2016 22:15에 작성됨.

“하트 모양의 꽃잎~♬ 한 송이 빨간 장미~♬”

 

다채로운 색깔의 수백송이의 장미로 장식된 화려한 무대. 무대 위에서 단 한 명의 소녀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매일 미소 지어주며 사랑을 속삭여주세요~♬(정말 좋아해♡)”

 

이 무대는 소녀 단 한 명만을 위해 준비된 무대. 소녀가 노래를 부르며 손을 높이 들어 흔들 때마다 관객석을 가득 매운 사람들이 그에 맞추어 야광봉을 흔들어 커다란 파도를 일으키곤 한다.

 

“따끔따끔 가시까지 사랑해주세요~♬”

 

소녀가 잠시 숨을 고르며 뒤로 한 걸음 갔다가 다시 두 걸음 앞으로 걸어가며 노래를 계속했다.

 

“입맞춤은 조금 빨라요~♬ 다정히 손을 잡아주세요~♬”

 

소녀는 왼쪽 눈을 살짝 감았다 뜨면서 마이크를 잡지 않은 한쪽 손을 관객석을 향해 내밀었다. 관객석에서 큰 함성으로 답해주었다.

 

“두근두근(두근두근) 거려요!(거리나요?)~♬”

 

소녀는 텐션을 높였다. 지금까지도 좋았지만, 그보다 좀 더 활기찬 목소리로. 환하게 웃어보였다.

 

“당신과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맹세의 꽃다발 계속 계속 함께에요~♬”

 

노래의 마지막, 소녀는 남은 힘을 다해 힘차게 불렀다. 노래가 끝남과 함께 관객석에서 큰 환호가 이어졌다. 야광봉을 흔들며 환호하는 팬도 있고, 목이 터져라 소리를 외치며 환호하는 팬도 있었다. 노래를 끝마친 그녀는 환호와 박수소리를 들으며 무대에서 내려갔다. 그러면서 소녀의 시선은 끝까지 관객석을 향해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관객석의 가장 뒤, 문 옆에 서있는 한 남성을 향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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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를 내려온 소녀는 개인 대기실로 향했다. 3곡 정도가 더 공연된 뒤, 무대 인사가 예정되어 있어 의상은 갈아입지 않고 기다리기로 했다. 소녀가 대기실에 들어온 지 1~2분쯤 후에 문이 또다시 열렸다.

열린 문으로 들어온 사람은 남성이었다. 큰 키, 불량배도 저리가라할 정도로 험악한 얼굴, 검은 양복. 세 개가 세트를 이루어 마치 범죄조직의 간부라도 되는 듯한 포스를 풍기고 있었다. 아마 모르는 이가 보았다면 마치 소녀를 납치하러온 괴한으로 착각할지도 모를 인물상이었다. 하지만 이 남성은.

 

“프로듀서 쨔마(이하 p쨔마).”

“죄송합니다. 조금 늦었군요. 사쿠라이 양.”

 

다행히도 남성은 소녀의 프로듀서였다. ‘사쿠라이’라고 불린 소녀는 미소로 그를 맞이했다. 프로듀서는 문을 조용히 닫고, 구석에 있는 의자를 가져와 소녀의 반대편에 앉았다.

 

“아니에요. 오히려 빨리 오신거에요. 공연. 봐주셨던거죠? 관객석 끝에서.”

“예. 그렇습니다.”

“감상을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좋은…미소였습니다.”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시지 않으시겠어요?”

“아…. 죄송합니다. 그럼.”

 

프로듀서는 뒷목에 손을 올리며 잠시 숨을 가다듬고 솔직하고 자세한 감상(포엠)를 쏟아냈다. 그의 감상은 기분 좋게 듣던 소녀가 서서히 얼굴이 빨개지면서 이제 괜찮다며 손사래를 칠 때까지 계속되었다.

 

“p쨔마는 그런 진지한 얼굴로 레이디를 부끄럽게 만드는 말을 너무 잘 꺼내시네요.”

“죄송합니다….”

“떽! 그 ‘죄송합니다’ 버릇을 고치시라고 제가 충고하지 않으셨나요? 또 그러시면 딱콩! 할거에요!”

“죄송…아. 죄…어…. 그게….”

 

아직 초등학생정도로 보이는 소녀가 손가락질을 하며 지적하자 프로듀서는 당황하며 사과하려했지만, 애초에 그 사과 자체가 지적대상이라서 혼란스러워 했다. 혼란에 빠져 우왕좌왕 하는 프로듀서의 모습에 소녀는 무심코 ‘키득’이라는 소리를 내며 웃고 말았다.

 

“슬슬 다시 무대로 돌아갈 시간인 것 같네요.”

 

소녀는 일어서면서 한 손을 부드럽게 남성을 향해 내밀었다.

 

“에스코트 부닥트려요 p쨔마.”

“아…알겠습니다 사쿠라이 양.”

 

프로듀서도 일어서서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주었다. 그는 소녀의 걸음 속도에 맞춰 보폭을 줄였다. 서로 아무 말도 없어 그저 구두굽이 바닥에 닿는 소리만 고요하게 울려퍼졌다. 무대 뒤쪽에 연결된 대기실에 도착하자 프로듀서는 가볍게 손을 놓아주었다. 소녀는 대기실로 들어가기 직전, 뒤를 돌아보며 프로듀서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p쨔마. 이제 슬슬 모모카라고 불러주시지 않으시겠어요?”

“검토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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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부터는 연휴이고 일정은 일부로 잡지 않았습니다. 쉬실 시간도 필요하실 것 같아서….”

“어머. 감사드려요 p쨔마.”

 

공연이 완전히 끝나고 라이브 회장을 나오니 어느새 해가 져버렸다. 모모카와 프로듀서는 프로듀서가 운전하는 차에 탑승해 이동한다. 활동을 마치면 보통 사무소로 향하지만, 오늘은 더 이상 일이 없기에 프로듀서가 직접 모모카를 집으로 데려다 주기로 했다.

 

“감사드려요 p쨔마.”

“아닙니다. 담당 아이돌을 집으로 데려다 드리는 것 정도야….”

 

모모카의 집으로 향하는 차는 잠시도 정적에 잠기는 일이 없었다. 모모카가 계속해서 프로듀서에게 말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공연에 대해서, 집에서 있던 일에 대해서. 모모카는 즐겁다는 듯이 말했다. 모모카가 계속해서 말을 꺼내기만 하면 지치지 않을까 걱정한 프로듀서가 중간 중간 먼저 입을 열고 주제를 꺼내는 배려도 해주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차는 집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 이미 몇 번이나 와본 집이지만 프로듀서는 도저히 익숙해지질 않았다. 이유는 단순히 너무 거대해서. 문만 봐도 프로듀서 차의 두 배 크기는 되며 아름다운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p쨔마. 안에 들어오셔서 홍차라도 한 잔 하시고 가지 않으시겠어요?”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자자, 급한 일도 없으시잖아요. 같이 가죠.”

 

정중하게 거절할 생각이었지만, 그에게는 본인의 소매를 잡으며 순수한 눈빛으로 올려다보는 모모카의 제안을 거절할 용기가 없었다. 결국 그녀의 부탁대로 집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잠시후 문이 열리며 프로듀서의 차를 안으로 들어오게 해주었다.

 

“주차는 어디에 하면 됩니까.”

“주차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저희 사용인 분들께서 대신 해주실 겁니다.”

 

마당으로 들어온 프로듀서의 차로 연로한 어르신이 다가왔다. 뭐랄까. 마치 드라마 속에서 나오는 집사를 그대로 가져온 듯한 모습이었다. 모모카와 프로듀서가 차에서 내리자 꾸벅 인사를 하며 그 둘을 문으로 안내해주었다. 프로듀서가 뒤쪽을 바라보니 어떤 남성이 프로듀서의 차에 들어가고 있었다. 아마 대신 주차해주려는 것 같다.

 

“모모카 님. 오셨습니까?”

 

안으로 들어가니 집사와 마찬가지로 드라마에서 그대로 가져온 듯한 메이드들이 그들을 맞이해 주었다.

 

“네. 오늘은 p쨔마와 함께 왔어요. 홍차를 준비해주시지 않겠어요? 특별히 준비한 것으로.”

“! 알겠습니다.”

 

모모카의 말에 메이드들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움직였다. 모모카는 프로듀서의 손을 잡고 차를 마시는 방으로 향했다. 프로듀서는 지금 꽤나 놀라고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 문 앞에서만 그녀를 배웅해주었다. 부잣집 아가씨라는 것도 알고 이미 집의 외형도 대충 눈에 익었지만, 안으로 들어오니 내부는 더 놀라웠다.

명품에 대해 문외한인 프로듀서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고가의 가구들.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와 벽면에 걸린 아름다운 그림들. 그리고 차를 마시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인터넷에서만 보던 화려한 초고가 탁자와 의자. 곳곳에 장식되어 있는 형형색색의 장미들. 새삼 그녀가 부잣집 아가씨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p쨔마? 왜 그러신지요?”

“아,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신가요? 일단 앉아 있죠. 곧, 홍차를 가져와 주실 겁니다.”

 

모모카가 먼저 의자에 앉자 프로듀서는 그 맞은편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런데 사쿠라이 씨의 부모님께서…?”

“오늘 조금 늦게 오신다고 하셨어요. 그보다 p쨔마. 정말 모모카라고 불러주시질 않으시는군요. 그리고 편하게 말하시지 않으시는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사람을 성으로 부르는 게 더 익숙해져서…. 의식하고 있지만 아직은 자연스럽게 나오질 않는군요. 그리고 역시 말을 낮추는 쪽이 더 편하신가요?”

“처음엔 어린이 취급하시지 않는 것 같아 좋았지만, 이제 저를 담당하신지도 꽤 오래되었고 사이도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니 낮추어주셔도 좋을 거라 생각해요.”

“그럼. 앞으론 노력하겠…하, 할게.”

 

프로듀서의 말에 모모카는 ‘호호’거리며 웃었고, 그에 프로듀서는 뒷목에 손을 올리는 것으로 답해주었다. 대화가 오가는 중에, 준비가 끝났는지, 메이드들이 홍차를 가져왔다. 꽃무늬로 장식된 찻잔을 소리를 내지 않고 둘앞에 하나씩 올려주고 메이드들이 직접 홍차를 따라주었다. 그리곤 홍차를 담은 마찬가지로 꽃무늬인 병을 탁자 옆에 내려두고 꾸벅 고개를 숙이며 방을 나갔다.

프로듀서는 찻잔을 얌전하게 들어올렸다. 적절한 온도를 찻잔을 든 손으로 느끼고 한 모금 마셔보았다. 잠시 입에 머금으면서 향을 느끼고 삼키며 목으로 넘어가는 차의 맛을 음미했다. 모모카를 담당한 이후로 자주 가지는 티타임으로 인해 차에 대해 여러모로 공부하고, 직접 탐방도 갔던 그였지만 맛의 차원이 평소와 달랐다.

 

“마음에 드시는지요?”

“예…아니 응. 정말 맛있ㅅ…어.”

“다행이에요. 혹시나 입에 맞지 않으면 어쩔까 걱정했는데.”

 

찻잔을 내려두고 대화를 하다가 한 모금, 다시 대화하고 한 모금, 찻잔이 비면 다시 찻잔에 홍차를 따르고 마시며 얘기하고. 그런 일을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시간은 훌쩍 지나가버렸고, 준비된 홍차도 바닥을 보였다.

 

“이제 가봐야 할거 같…아.”

“p쨔마? 너무 늦으신 거 같은데 저희 집에서 주무시고 가시지 않으시겠어요?”

“아냐. 괜찮…아.”

 

시계를 보니 어느새 11시를 훌쩍 넘겨버렸다. 더 이상 있다가는 폐가 될 거라 생각한 프로듀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째서인지 평소보다 조금 몸이 무거운 느낌이 들었다.

 

‘홍차를 마시며 너무 몸의 긴장이 풀린 걸까요.’

 

자고가도 된다는 모모카의 배려를 애써 물리치고 프로듀서는 집을 나서려 했다. 마당 정원으로 향하는 문 앞에서 아까 만났던 연로한 집사가 허리를 숙여 인사해주었다. 그리고 무전기를 들어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문을 열고 나가니 마당에 프로듀서의 차가 얌전히 주차되어 있었다.

차문을 열려 있었고, 차키는 제자리에 꽂혀 있었다. 프로듀서는 지친 몸을 애써 이끌어 핸들을 잡았다. 사이드 미러에서 문 안쪽에서 모모카가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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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앞에 도착할 즈음, 프로듀서의 몸은 천근만근으로 무거웠다. 몸 상태에 의문을 가진 프로듀서는 내일 일어나면 병원이나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옷도 갈아입지 않고 그대로 침대로 돌진했다. 쓰러지듯이 누운 프로듀서는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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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아침인가요.”

 

눈꺼풀 위로 들어오는 햇살에 프로듀서는 눈을 떴다. 평소보다는 무겁지만, 어제 밤에 비해 많이 가벼워진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철컹!

 

“어?”

 

프로듀서는 괴상한 쇳소리가 난 방향을 쳐다보았다. 오른쪽 손목에 수갑이 채워진 채, 침대의 기둥에 묶여 있었다.

 

“앗!”

 

그제야 프로듀서는 침대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어젯밤에도 누운, 매일같이 누워 자던 그 침대가 아니었다. 옷은…그대로다. 주변의 가구는…당연하게도 다르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왜 자신이 여기에 있는지. 시야가 닿는 범위에 문이 하나 나 있기에 나가보려 했지만, 손목에 채워진 수갑이 그것을 방해했다.

 

“수갑이라니….”

 

힘으로 어떻게든 해보려 했지만 역시 무리였다. 손이 닿는 범위 내에 어째서인지 철사가 보여 이것을 이용해 만화처럼 따려고 했지만, 역시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프로듀서는 모모카를 담당하고 있지만, 그녀만을 담당하고 있지는 않다. 얼마 전 담당 아이돌 하나가 가져온 공포영화를 둘이서 시청했던 적이 있었다. 영화에서 사람이 자고 일어나니 낯선 곳에 있고, 거기서 준비된 화면에서 가면을 쓴 사람이 나와 음산하게 말하는…그런 영화였다. 지금 본인의 상황이 그와 비슷하다고 생각한 프로듀서는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프로듀서는 온 힘을 다해 수갑을 당겼다. 하지만 역시 꿈쩍도 하지 않는다.

 

“호…혹시 여기 어딘가 열쇠가….”

 

다급해진 프로듀서는 여기저기를 뒤져보았다. 그러다 베개를 들쳐보자 아래에 열쇠가 깔려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열쇠를 수갑에 넣자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수갑이 풀렸다.

자유로워진 프로듀서는 우선 문을 열고 나가기로 했다. 문을 열고 나가자 평범하게 거실이 등장했다. 저쪽에 바로 연결된 부엌이 있었다. 거실 벽에는 시계가 있었고, 그 외에도 큰 TV가 있고, 바로 옆에 컴퓨터 한 대가 있었다.

 

“구조는 1DK(침실 하나와 다이닝 키친 룸, 곧 부엌 겸 식당의 구조)인가요?”

 

별 의미는 없지만 일단 그런 것 같았다. 혹시 밖에 나갈 수 있는지 큰 문으로 향했지만, 밖에서 잠귀는 구조인 것인지 도무지 열리질 않았다. 결국 나가는 것을 포기한 프로듀서는 조심스레 컴퓨터에 다가갔다. 잠금이 되어있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런 건 없었다. 우선 구글에 접속해서 이 상황을 메일로 전달하려고 했다.

 

“받는 사람은…일단 치히로 씨로 하면 되겠죠.”

 

치히로씨의 메일주소를 입력한 후 전송을 누르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커서가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커서는 로그아웃이 되고나서야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을 멈추었다.

 

“원격제어…인가요. 이런 짓을….”

 

몇 번을 더 반복했지만 역시 원격제어 모두 막혀버렸다. 평범한 검색은 문제없이 실행되지만, 프로듀서의 상황과 정보를 외부로 보내려고만 하면 원격제어가 걸려 제멋대로 종료되어버렸다. 프로듀서는 컴퓨터를 이용해 외부와 연락하는 방법을 포기했다. 대신 이곳을 샅샅이 뒤져보기로 했다.

 

-1시간 후-

 

“우와아….”

 

프로듀서는 무려 10대에 달하는 초소형 카메라들을 발견했다. 침대 천장에 붙어있는 것도 있었고, 벽 구석에 보일 듯 말 듯 붙어 있는 것도 있었다. 다행히(?) 가장 열심히 뒤져본 화장실에는 아무런 카메라가 배치되어 있지 않았다. 어쩌면 발견하지 못한 걸지도 모르지만.

프로듀서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다시 되짚어 보았다. 자고 일어나니 영문 모를 장소. 이 장소로 자신을 데려온 인물은 불명. 밖으로 나가는 듯한 문은 잠겨있고, 창문에는 쇠창살이 되어있어 현재로선 탈출 불가능. 냉장고에는 식재료가 잔뜩 있으며 그 외 요리 도구도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음. 가스와 수도는 정상적으로 이용가능. 카메라들이 잔뜩 있었음.(아직 더 있을지도 모름)

 

“…….”

 

막상 되짚어 봐도 딱히 변하는 건 없었다. 막막함만 남을 뿐. 고민하던 찰나에 배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나자, 프로듀서는 우선 밥부터 해먹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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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들이 거의 다 발견되었습니다.”

“이렇게 빨리 찾을 줄이야…. 거의 다? 남은 건 있어?”

“두개입니다. 욕조 옆에 준비된 샴푸로 위장한 카메라와 침실에 이중으로 설치되어있던 카메라가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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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친 프로듀서는 아까 발견해 모아두었던 카메라들에 다시 관심을 가졌다. 일단 본인이 처한 상황은 감금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 카메라들은 왜 있는것일까.

프로듀서는 ‘감금’이라는 것을 영화에서나 접했다. 영화에서 나오는 감금의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깊은 원한관계이거나,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독점하기 위해 가두는 것. 어느 쪽의 이유든지 간에 대부분의 경우에는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꽁꽁 묶어두는 식이었다. 하지만 본인은 지금 자유롭다. 기억을 되짚어 보면 과거 봤던 영화중에서 비슷한 내용이 있다. 증오하는 이를 함정이 가득한 집에 가둔 후 카메라들을 통해 그가 함정에 빠져 어떻게 고통 받는지를 지켜보는 그런 내용.

이 집의 구조상 함정을 설치할 수 있을 정도로 넓지 않을뿐더러, 아까 조사에서도 아무것도 없었으니 일단 본인을 증오하는 이가 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본인을 잡아 가둘 정도로 병적으로 사랑할 여성이 있는지 생각해 보았지만,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여성 관계라고는 학창시절에 잠깐 만났다 헤어진(그것도 여자쪽에서 먼저 찬) 그런 경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입사한 이후에도 같은 이성의 사무원에게나, 혹은 담당 아이돌들에게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살았다. 너무 친해질 것 같으면 한 발짝 물러서서 이야기 하고, 너무 멀어질 것 같으면 반대로 이쪽에서 한 발짝 다가가는 식으로.

 

“으윽. 머리가 아픕니다.”

 

너무 많은 생각을 한 탓인지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아까 일어날 적의 무거웠던 몸이 한층 더 무거워진 듯 했다. 식사를 한지 오래 지나지 않았지만 피곤함이 계속된 프로듀서는 결국 양치라도 하고나서 바로 잠에 들기로 했다.

화장실에 칫솔과 치약이 준비되어 있었다. 꽤나 신경 써주는 것인지 치약의 종류가 많았다. tv광고에서 자주 나오는 브랜드부터 듣도 보도 못한 외국의 것까지. 하지만 이런 다양한 종류가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에 프로듀서는 더 혼란스러워졌다.

양치질을 끝낸 프로듀서는 침대로 향했다. 다시 한 번 주위를 살펴보고 카메라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이후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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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디디딕..띵! 철컥….

“…자는 거 맞지?”

“얼른 다시 설치하고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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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서는 피곤했다. 잠이 제대로 오질 않았다 반수면 상태라고 해야될까? 졸린데도 잠이 좀처럼 오지 않고, 몸은 피곤해서 잘 움직이지도 않는. 그런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거실 쪽에서 들려온 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는 정신이 조금이나마 맑아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서둘러 움직이지 않았다. 실눈을 뜨면서 이곳으로 오기를 기다렸다. 오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아니 어쩔 수 있는게 아니죠!’

 

스스로에게 태클을 거는 일은 프로듀서로선 처음 겪는 일이었지만, 피곤함 탓으로 돌리기로 했다. 잠시 후 한 남성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낯에 익는 얼굴이다.

 

‘저 얼굴…어디서 봤었죠…아…잠깐, 혹시!’

 

속으로 고민하며 기억나는 사람들과 얼굴을 대조해본 결과, 어제 모모카의 집에서 차를 대신 주차해주었던 바로 그 남성이었다. 왜 그가 여기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었다. 프로듀서는 기다렸다. 그가 최대한 가까이 오기까지를. 실눈으로 관찰하던 중, 그가 침대의 천장에 카메라를 달려는 순간!

콱!

 

“으흐러어허허허헣!?”

 

카메라를 설치하려 했던 남성은 자고 있는 줄 알았던 프로듀서가 갑자기 손목을 붙잡자 뭐라고 하는 건지 모를 괴상한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그가 저항하기 전에 프로듀서는 그를 바로 끌어당겨서 침대에 눕히고 올라탔다. 잡고 있던 팔은 뒤틀어 꺾어버리는 동작을 취하려 했다. 그런데 밖에서 발소리가 멀어지려 하자, 황급히 남성을 두고 거실로 나갔다. 거실로 나간 프로듀서는 열려있던 문을 닫히려고 하는걸 보았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생각한 프로듀서는 온 힘을 다해 문을 향해 달려 어깨로 밀쳐냈다. 쾅! 하는 엄청난 소리가 울려 퍼졌고, 프로듀서는 부딪힌 어깨가 매우 고통스러웠지만 덕분에 닫히려고 했던 문이 반대로 활짝 열렸다. 그리고 열린 문 너머에 한 노인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물론 그 노인도 어제 모모카의 집에서 만났던 그 연로한 집사였다.

 

“사쿠라이…… 모모카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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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있은 후 사흘 뒤, 프로듀서의 개인 집무실에서 사쿠라이 모모카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채 있었다. 다행히 맨바닥은 아니고 위에 방석들을 깔아주었다. 프로듀서가.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들을 수 있을까요?”

“우으으….”

“전 사쿠라이 양을 그렇게 신뢰했는데 어째서 저에게 그런 짓을 하신것이죠?”

“…….”

“말할 필요도 없다. 이거군요. 알겠습니다. 말하기 싫으시다면 계속 입 다물고 계셔도 좋습니다.”

 

프로듀서의 말에 살짝 화색이 돌아온 모모카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올렸다. 하지만 프로듀서의 얼굴은 여전히 굳어있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했다.

 

“p쨔마? 무엇을 하고 계신지요?”

“담당 변경 요청을 할 예정입니다.”

“옛?!”

“프로듀서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아이돌을 가만 놔둘 수는 없습니다. 일단 변경 요청을 하고, 추후 같은 일이 벌어질 경우 정식으로 계약을 해지하겠습니다. 그럼.”

“잠깐! 기다려주세요. p쨔마! 전부 말할게요! 말씀드릴게요!”

 

모모카는 벌떡 일어나서 프로듀서의 소매와 바지를 붙잡았다. 프로듀서는 한 번 쏘아보고 뿌리치고 나가려고 했지만, 모모카의 눈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보고 마음이 흔들렸다. 이내 그녀의 뺨을 타고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리자, 챙긴 자료들은 모두 책상에 대충 던지고 손수건을 꺼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변경 요청 같은건 안할 테니 진정하라며 토닥여주었다.

한참을 훌쩍거리던 모모카는 겨우 눈물을 그치고 나서야 힘겹게 입을 열었다. 감금한 것은 사실이지만 계속 그럴 생각은 아니었다고. 이틀째에 경찰들로 위장한 사용인들을 데리고 프로듀서 씨를 꺼내줄 생각이었다고. 그렇게 말했다.

 

“어째서 그런 짓을 하신겁니까….”

“그…그건. 훌쩍. p쨔마와 제가 더 가까워졌으면 해서….훌쩍. 원인모를 방에 갇혀 힘들어 하시던 p쨔마를 구해드리면 분명 p쨔마라면 저에게 큰 감사를 표해주시고 절 소중히 대해주실거라고 생각해서…훌쩍…. 죄송해요. 으아아앙!”

“사…사쿠라이 씨. 뚝! 진정하세요.”

 

한바탕 또 눈물을 쏟아내는 모모카. 프로듀서는 당황해서 그녀의 눈물을 그치게 하려고 노력했다. 잠시 후 조금 진정한 모모카는 모든 걸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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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쿠라이 모모카는 지금 사랑을 하고 있어요. 그 대상은 바로 저의 멋지신 프로듀서님. 절 아이취급도 하지 않으시고, 언제나 배려해주시는 상냥하고 멋진 프로듀서님이에요. 하지만 그 분은 저만의 것이 아니에요. 저 외에도 다른 아이돌들을 담당하시며, 그녀들한테도 친절하게 대해주시며, 인기가 많으신 분이에요.

치에 양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가끔씩, 프로듀서님이 저만의 것으로 만들어버린다면! 하는 나쁜 상상도 하게 되요. 제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면 분명 저를 질색하시겠죠. 그렇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제 마음은 더 커져만 갔고, 거리는 더 이상 좁혀지질 않았어요.

결국 저는 나쁜 마음을 실행하기로 했습니다. 뭐, 저는 미움 받을 것을 두려워한 겁쟁이라서 교활한 방법으로 조금 변경했지만요. 하지만 이제 들키고 말았어요. 이제 프로듀서 씨는 절 싫어하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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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송해요. p쨔마…. 죄송해요.”

 

모모카는 고개를 들지 못한채 계속해서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나쁜 마음을 실제로 시행하려고 마음먹었던 과거의 자신을 원망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야 후회하고 있다. 그런 짓만 안했어도, 이런 상황은 없었을텐데. 진전은 더디다 해도, 마음은 전해지지 않는다 해도, 평소처럼 프로듀서님과 티타임을 즐기고 있었을텐데.

프로듀서는 손을 들어올렸다. 모모카의 이마에…딱밤을 날렸다.

 

“캭!”

 

모모카는 갑작스럽게 이마에 온 충격에 당황했다. 별로 아프지 않았다. 아마 정말 살살 때린 것일지라. 모모카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면서 프로듀서를 바라보았다. 아까의 굳어져있던 표정은 어느새 풀려 있었고, 오히려 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하면 딱콩. 모모카 양이…아니 모모카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않았나?”

“예? 예? 예?”

“또 죄송합니다 하면 한 번 더 입니…야.”

“p쨔마? 저 지금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없는데요?”

 

프로듀서는 미소를 풀지 않고 모모카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쓰다듬어 주었다. 모모카는 또다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당황했지만, 쓰다듬어 지는게 좋아서 가만히 있었다. 계속 쓰다듬어지면서 모모카의 표정도 서서히 풀려 종국엔 “에헤헤.”하는 소리까지 냈다.

 

“이제 다 풀린거지?”

“p쨔마? 괜찮으신건가요?”

“예…아니, 응. 모모카 같은 귀여운 아이가 저…나에게 그런 감정을 품었다니 굉장한 영광입…이야.”

“그…그런건가요? 절 싫어하지 않으시나요? 그런 짓까지 했는데?”

“아닙니…아냐. 오늘 교훈을 얻었으니, 다신 그런 일 안하시지…안할 거지?”

 

프로듀서의 물음에 모모카는 위아래로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별 차이 없어 보이겠지만, 모모카의 눈에는 프로듀서의 미소가 한층 더 밝아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럼 됐습…됐어. 아직 모모카 양은…아니아니 모모카는 그런 사랑을 하기엔 조금 나이가 부족하다고 생각합…생각 해. 좀 더 성숙해지고 나서도 절…날 향한 감정이 그대로라면 그때 가서 긍정적으로 검토…생각해볼게.”

 

프로듀서는 계속해서 말을 더듬었다. 이을 말이 생각나지 않는게 아니라, 경어가 아닌 모모카가 원했던 편하게(?) 낮춘 말을 하려고 그러는 거다. 물론 모모카도 알고 있다.

 

“그런 나쁜짓을 한 모모카인데도요?”

“물론입…이지. 그 일부분도 모모카…만의 개성…이니까.”

“정말이지요?”

 

모모카의 얼굴에 아까의 눈물자국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어느새 평소의 당당한 레이디로 다시 돌아가 있었다. 프로듀서도 그 자세로 돌아온 것을 기쁘게 생각했다. 모모카는 프로듀서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그리고 손을 잡고 말했다.

 

“그럼 키스해주시지 않으시겠어요?”

“엣?!”

“말뿐이면 못 믿겠어요. 증거를 보여주신다면 전 앞으로도 기쁘게 활동할 수 있을거에요.”

“그…그런.”

 

프로듀서가 당황하든 말든, 모모카는 고개를 살짝 젖히고 눈을 감고 기다렸다. 잠시 후, 모모카의 한쪽 어깨에 무게가 느껴졌다. 모모카는 볼 수는 없었지만, 서서히 프로듀서의 얼굴이 내려오는 것을 느꼈다. 모모카는 침을 꿀꺽 삼켰다. 어깨에 오는 무게가 조금씩 늘어난다. 그리고 이윽고, 첫키스

 

………는 없었다.

딱콩!

 

“아얏! p쨔마 무슨짓이에요!”

“입맞춤은 조금 빨라요~♬라고 말하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언제… 앗! 그건 노래일 뿐이라구요!”

 

프로듀서는 펄쩍 뛰는 그녀를 놔두고 아까 책상에 올려두었던 자료들을 챙겨들고 문을 향해 걸어갔다. 모모카는 레이디의 순정을 가지고 논(?) 행동에 화가나 소리치려고 했지만, 그만두었다. 걸어 나가는 프로듀서의 포복은 좁고, 느렸고, 빈 손 하나를 모모카가 있는 뒤로 뻗고 있는걸 보았기 때문에.

모모카는 바로 달려가 그 손을 잡았다. 그리고 프로듀서를 향해 무대에서도, 평소에도 보여준 적 없는, 가장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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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프로듀서는 타케우치p입니다.(제 소설은 아마 거의 다...)

큐트 최애캐 쓰알이 나왔지만 뽑지 못한 마음에 모모카를 주제로 써보았습니다.

원래 기획은 얀데레로 하려 했지만 도저히 모모카와 프로듀서를 고통스럽게 만들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 타케우치p의 행동은...어떤 의미론 캐붕일지도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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