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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나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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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08, 2016 02:13에 작성됨.



  "타카네, 아침에 그 책 보여준다고 했지?"
 의자에 앉아있는 아미는 머리에 수건을 얹고 있었다. 목욕을 끝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몸에선 열기가 피어올랐다. 옆에 서 있는 마미는 바로 앞의 책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 늦은 시간에 괜찮으려나요."
  "궁금해서 도저히 잠이 안 와."
 마미는 이곳저곳 눈을 굴려 어제의 붉은 책을 찾고 있었다.
  "봐봐, 그 천하의 마미도 궁금해한다구. 수업받을 땐 전혀 볼 수 없는 특별한 모습이지~."
 아미는 머리의 수건을 의자에 걸쳐두고 일어났다.
  "내일 아침에 불평하기 없기, 입니다?"
  "응! 후딱 일어날 테니 걱정 마~."
 아미와 마미는 한껏 밝아진 얼굴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타카네는 창문 아래의 작은 책장에 손을 뻗었다. 눈길을 손으로 쭉 따라가, 양장 제본이 된 두껍고 커다란 책 하나를 손쉽게 꺼냈다. 서로 같은 쿠션을 꼭 안고 있는 두 아이는 어서 보여달라며 졸라대었다.
  "읽어드릴게요."
 타카네는 바닥에 작은 방석을 여러 개 깔고 앉았다. 두 아이도 그녀의 옆에 나란히 앉았다. 작게 숨을 내쉬고 첫 장을 넘길 즈음, 새장 안의 앵무새 몇 마리와 눈을 마주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타카네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작은 방의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평소 모습은 온대 간데 사라지고, 모두가 조용히 그녀가 단원의 첫 장을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 아주 오래전, 이 마을은 사실 큰 왕국의 수도였다고 합니다. 다만 지금은 번성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된 완전히 몰락한 왕국이지요."
 타카네는 책장의 반대쪽을 잠깐 바라보았다. 반대쪽이 수풀에 완전히 가려져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창문이 있었다.
  "이제 전, 잊혀진 진실을 밝혀볼까 합니다."
  "진실?"
  "당시 소수의 사람에 의해 전해져온 진실은 이제 모두에게 잊혀버린 전설이 되었습니다. 그 누구도 찾을 수 없기에, 모두에게서 잊힌 쓸쓸한 존재랍니다."
 타카네는 바로 옆의 한 칸짜리 장롱으로 시선을 옮겼다. 작은 자물쇠 여러 개와 쇠사슬로 칭칭 감겨있었다. 그녀는 잠깐 눈을 감았다 떴다. 아무 말 없이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것으로 이야기의 시작을 알렸다.

 

 


[왕국이 번성하던 시절의 옛날 옛적. 백성을 다스리던 왕은 큰 고심에 빠졌습니다. 그건 나라의 공주님이 깨어나지 않는 긴 잠에 빠지게 된 것이지요. 왕과 백성들은 몇 날 몇칠이고 신께 기도를 하며 공주님이 깨어나길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모두의 간절한 바람이 무색하게도 그녀의 상태는 오랫동안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했어?"
  두 아이는 궁금증에 가득 찬 눈으로 그녀의 팔에 달라붙었다.

 


[왕은 무엇이든 공주님의 병을 해결할 방법들을 모두 동원해보았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진수성찬을 펼치기도 하고, 세상의 끝에서 사는 용을 간신히 모셔와 성이 날아갈 듯한 큰 울음소리를 들려주기도 하고, 공주님이 평소에 사모하던 옆 나라 왕자님을 대려와 강제로 결혼식을 올리게 하기도 했습니다.]
  "사랑의 힘?"
  "일어났어?"

 


[아니요. 전혀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기에, 시일이 지날수록 왕은 흉포해졌습니다. 지금껏 믿은 신을 저주하고, 왕국의 모든 재정을 공주가 깨어나는 데에 쏟아붓는 왕에 경악한 신하들은 건드려선 안 될 것까지 끌어들이고 말았습니다.]
  "뭔데?"
  "뭐야?"

 


[그것은 세상의 끝에 존재하는 탑에 은둔한 수녀들이 보관하고 있던 금서들이었습니다.]
  타카네는 작게 손짓을 해 방안의 불을 껐다. 창문의 달빛만이 책을 밝혀주었다.
  "무서워."
  "무서워."
  두 아이는 겁에 질려 품 안의 쿠션을 끌어안았다.

 


[금기를 다루는 것은 죽는 것과 똑같다며 강렬히 저항하는 수녀들에 의해 자신 휘하의 병사 대부분이 그들의 마법에 의해 죽어 나갔습니다. 산처럼 높이 쌓인 시체의 벽은 모두를 공황에 빠지게 하였습니다. 단 한 명, 이미 악에 빠진 왕을 제외하곤 말입니다. 마침내 왕은 탑에 있는 모든 이들을 죽이고 금서를 빼앗았습니다. 이제 공주가 깨어날 수 있겠구나 싶었지요.]
  "안 됐지?"
  "안 되겠지?"

 


[네. 금서를 얻은 것은 좋았으나 한 가지 큰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왕은 고대의 문자를 읽을 줄 몰랐거든요. 오직 신의 수녀들만이 문자를 입에서 입으로 전해주는 역사를 가지고 있었으나, 그들을 모두 학살했으니 더는 문자를 읽을 수 있는 자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잘됐네."
  "오히려 잘 됐어. 이제 비극은 오지 않아."

 


[예전과 비교하면 상당히 수척해진 공주를 보곤 다급해진 왕은 온 세상에 공표했습니다. 무슨 방법이든지 간에 공주의 병을 낫게 하는 이가 있다면 나의 나라를 주겠노라, 선언했습니다.]
  "오우~. 파격적이네."
  "그래도 무리야."

 

 

[평생 상상해볼 수 없는 막대한 보상임에도 불구하고 나서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미쳐버린 왕의 보복이 두려워 사기꾼들은 진작에 나라를 떠났고, 명망 있는 대현자들은 모두 모습을 감췄습니다. 또한 금서를 다룰 줄 안다는 무명의 마술사들도 아무것도 모른다며 왕의 눈을 피해 적대국인 땅끝나라로 도망쳤습니다.]
[그나마 남아있던 실력자들도 모두 떠나버리고, 앵무새처럼 곧 나을 거라며 지저귀는 무능력한 측근과 신하들만이 주변에 남은 왕은 낙담했습니다. 이대로 점차 쓰러져가는 나라를 보고서, 그는 여기서 끝나자고 생각했습니다. 수녀들의 목에 들이댄 칼을 이젠 자신의 목에 갖다 댄 순간, 그의 앞에 검은 로브를 두른 이가 나타났습니다.]
  "누구야?"
  "신?"
  타카네는 다시 손짓을 해 벽에 걸린 등불에 불을 붙였다. 방안의 기운이 따스해져 갔다.

 


[신…. 왕의 입장에선 그가 신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금서를 읽을 수 있다는 사람이었거든요.]
  "에이~."
  "진짜?"

 


[그는 바닥에 한 마법 진을 그려내었습니다. 왕은 금서의 첫 페이지를 펼쳐보았습니다. 놀랍게도 같은 마법 진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일에 멍하니 바닥을 바라보던 왕은 정신을 차리고 급히 그를 공주의 곁으로 데려갔습니다.]
  "가능해…?"
  "설마."
  "두 분의 기대엔 아쉽게 됐네요. 몇 달간 잠들어있던 공주님은……."
  "이 세상에 없구나? 그치?"
  "그렇지?"

 


[너무 오랜 기간이 지났던 걸까요. 숨조차 쉬지 않는 공주의 뺨은 움푹 들어가고, 손과 발, 온몸이 삐쩍 말라버린 미라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에게 벌어진 상황을 부정하며 여기까지 온 왕은 빨리 공주를 깨어나게 해달라며 그에게 엎드려 빌었습니다.]
  "난감하지~."
  "안 될 일이지."

 


[그는 당황했습니다. 생명이 다한 이를 살리는 짓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으로도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금기를 행한다고 해도 신의 의지만은 거역해선 안 됩니다.]
  "응응."
  "당연해."

 


[왕은 우물쭈물 대답하지 않는 그를 보더니 방금까지 자신에게 향하던 칼을 그에게 돌렸습니다. 그러자 주변의 모든 병사가 같은 방향을 향해 창을 내밀었습니다. 광기 어린 그들의 눈빛은 그를 겁에 질리게 했습니다. 하지 않아도, 해도 목숨은 남아나지 않게 된 것이지요. 아무리 금기를 다룰 줄 알아도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을 상대하는 것은 그로서도 무리였던 걸까요. 아니면 무슨 수가 있었던 걸까요."]
  "죽어도 하면 안 돼."
  "절대로 안 돼."

 


[…이번에도 틀렸네요. 그는 두 손을 들고나가 하겠다며 천천히 공주님이 누워있는 침대로 다가갔습니다. 잠자는 공주의 손등에 손을 얹은 순간, 그는 공주의 안에 무언가 남아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가망 없이 죽어있던 그의 눈이 빛났습니다.]
  "응? 방금은 끝났다고 하지 않았어?"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약간의 생략은 상상력을 돋구어 준답니다."
  타카네는 아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에이~~."
  "근데 뭘 발견했어?"
  마미는 이야기를 마저 진행하게 했다.

 


[그것은 한줄기 마지막 희망. 숨은 멎었지만, 아직 마력은 조금이나마 공주님께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공주님이 잠들게 된 이유를 알아낸 그는 의식 동안엔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의식을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왕에게 당부했습니다. 본인에게도 매우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공주님의 손을 붙잡고 무언가 중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병사들은 여태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언어를 듣곤 의심의 눈초리로 대했으나, 이내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동그랗게 놀란 눈이 되었습니다. 공주님이 움직임을 보였던 것입니다.]
  "살아있었어?"
  "그럴 리가."

 


[믿기지 않는 상황이 일어나자 왕은 공주의 곁으로 급히 다가갔습니다. 숨을 가쁘게 내쉬는 공주를 보자, 드디어 살아나고 있다는 것이 눈에 확실히 보였습니다.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린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덕분에, 왕은 그의 당부를 까맣게 잊어버리곤 떨리던 공주님의 손을 잡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안 되는데…."
  마미는 조용히 침을 삼켰다.

 


[이와 동시에, 그가 침을 흘리며 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마치 칼로 찌른 듯한, 더는 서 있을 수 없을 만큼의 고통이 가슴에 느껴졌습니다. 이로써 장대하게 펼쳐지던 의식은 한낱 연기처럼 사라져버렸습니다.]
  "아…."
  "윽."

 


[금기 사용의 부작용이었을까요. 의식 실패의 결과였을까요. 마치 영혼이 빠져나가듯 공주의 몸에서 열기가 사라졌습니다. 차갑게 굳어버린 심장은 다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공주의 생명이 정말로 사라진 것이지요.]
  "살릴 수 있었는데."

 


[힘차게 내쉬던 숨소리가 단번에 멈춘 공주를 향해 눈물을 쏟아내던 왕의 슬픔은, 바닥에 널브러지듯 쓰러진 그를 바라보자 금세 분노로 바뀌었습니다.]
  "자기가 다 망쳤으면서!"
  아미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에다 대고 화를 냈다.
  "하지 말라면 하지 말았어야지."

 


[고통이 잠시나마 멈춘 그는 남은 힘을 짜내 자신을 뒤쫓던 병사들을 저 멀리 날려버렸습니다. 다행히도 위협이 된 마법사들은 마법 진을 그려낸 순간부터 얼굴이 사색이 된 채로 겁에 질려 스리슬쩍 도망갔습니다. 주위에 마법사들이 없다는 것을 알아챈 후부턴 손쉽게 그들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럼 굳이 의식을 치를 필요가 없었네…."
  "뭔가 하려고 했었겠지."

 


[그는 정원으로 뛰쳐나왔습니다. 몽롱한 정신으로 간신히 왕궁 밖으로 나오자마자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습니다. 시야를 가득 채우는 매서운 불길과 왕정의 핍박을 참다못해 일어선 수많은 성난 군중들을 마주하고 있던 것입니다.]
[전에 도망친 마법사들은 이미 군중들의 쇠꼬챙이에 꽂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도 왕의 사람이라고, 측근들이라 오해를 받아 군중들에게 무수히 돌팔매를 맞았습니다. 몽롱한 정신으로 도망가는 것도 잠시였습니다. 결국, 그들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는, 끝없이 펼쳐진 왕국의 하얀 숲에서 영문도 모를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후, 성난 군중들은 신의 저주를 받아 모두 미쳐버려 서로를 죽이는 끝에 왕국은 하루를 못 버티고 파멸을 맞이했습니다.]
  "불쌍해."
  "음…."
  "왜 그래 마미?"
  "두 분이 아시는 '아이돌의 기원'이란 책에선 이런 내용이 아니지요?"
  "아이돌? 아, 이게 그거였어?"

 

 


[지금으로부터 아주 먼 옛날. 어느 한 나라에 늙은 마법사가 찾아와 신탁을 내려준다. 다음에 즉위하는 왕의 첫째 아이의 열 일곱 번째 날, 아이가 잠에서 깨어나면 필시 마녀가 될 악이다. 왕국을 몰락시킬 것이고, 이 땅에 모든 이를 죽일 것이다. 왕은 늙은 마법사가 저주를 한다고 생각해 즉시 쫓아냈다. 왜냐하면 아이는 이미 혼자서도 걸음마를 디딜 수 있을 만큼 자랐기 때문이다.]
   "맞아맞아! 이걸로 배웠어!"

 


[왕은 별걱정 않고 아이를 키웠다. 백성과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아이는 어느덧 어여쁜 공주님으로 자랐다. 그리고 어느 날, 공주님에겐 작은 문제가 하나 생겼다.]
   "이다음엔 공주님은 찾아온 시련을 모두 이겨냈다고 했어. 그치?"
   "응. 운명을 이겨낸 잠자는 공주님은 신에게서 선물을 하나 받았다. 신의 축복. 그것이 바로 아이돌의 힘이었다…. 라고 알고 있었어."
   "마미는 역시 다 기억하고 있구만~."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응? 아직 책 다 안 읽었는데? 다음장 있잖아?"
  "언제 또 기회가 오는 날에 들려드리도록 할게요."
  "이거이거, 한동안 붙잡혀 살아야 하는 건가…."

 

 


  "그 마법사는 불쌍하네."
  "응."
  "도우려고 했는데 죽이다니.. 뭐야 그게?"
  "그런 운명을 주다니, 신은 무자비해."
  "마미도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아미도 신이 못됐다고 생각해!"

  "쉬잇. 혹시라도 신께서 듣고 계신다면 두 분도 저주를 받을 거예요?"
  "흐악?!"
 깜짝 놀란 두 아이는 주머니에서 공갈 젖꼭지를 꺼내 자신의 입에 물었다. 그걸로도 모자랐는지 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방으로 줄행랑을 쳤다.

 

 

 

 

  "신이 정말 있었다면…… 전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테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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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은 서술할 게 부족해!
서 특이하게 띄어보았습니다.

+는 네무리 히메 극중극 시점이고

-는 과거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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