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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나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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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08, 2016 01:27에 작성됨.


  "이번에 갈 고성 있잖아? 거기에 있다는 벚나무 아래에 소녀가 잠들어 있다는 전설이 있대~. 그래서 선생님이 벚나무를 찾으라고 한 건가 봐!"
 

 교실의 구석에 있는 한 아이가 옆 아이에게 소곤거렸다. 그 말을 들은 아이는 눈가를 찡그렸다.

  "전설이잖아. 설마 있다고 하더라도 수십 년은 됐을 텐데 이미 죽은 거 아냐?"
 구석의 아이가 고개를 저었다. 연보라색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그게 사실…, 들은 바로는 그 소녀, 마녀래!"
 자신감 있게 말하는 아이에게 단발의 아이가 딱밤을 쳤다.
  "마녀? 넌 도대체 그딴 허무맹랑한 소리를 누구한테 듣고 다니는 거야?"
  "아으으…, 이번엔 정말이라니깐! 종종 할머니가 들려주신 이야기라구…!"
 딱밤을 맞은 아이는 이마를 문질렀다.
  "네네~. 뭐 마녀라면야 이미 우리 반에 한 명 있긴 하지만 말이지."
 단발의 아이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미키를 째려보았다.
  "애, 그런 말 하지 마."
  "사실인데 뭘. 저렇게 뻔뻔하게 있는 애는 이런 말 들어도 싸."

 

 검은 머리의 아이는 자신의 팔을 문질거렸다. 푸른빛이 은은하게 나는 팔찌가 팔목에 난 흉터를 일부분 가려주고 있었다. 그날 이후부터 아이들은 팔찌를 끼고 있었다. 교장의 말로는 몸에 난 상처를 서서히 치료해준다고 했다.
  "맨날 나한테는 뭔지 안 알려주면서……. 나 혼자 갈래."
 아이는 삐져선 뒤도 안 돌아보고 밖으로 나갔다.
  "야, 야!"
 그녀를 단발의 아이가 뒤쫓아갔다.

 

 


 두 아이의 반응에 학급의 아이들은 미키를 슬쩍슬쩍 쳐다보았다. 다 들리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대놓고 험담을 하는 이는 없었다. 뭐라고 해봤자 덜떨어진 아이들이 지껄이는 쓸데없는 말일 뿐. 미키는 성당의 첨탑 가까이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성급히 학급을 빠져나가는 아이들의 소동이 한바탕 지나간 후, 미키는 눈을 살짝 뜨고 하품을 했다. 오늘도 출석만 하고 몰래 빠져나가면 될 지루한 소풍이 그녀를 반기고 있었다.

 

  "저기…."
 이 소심한 목소리는 그 아이, 장발의 아이다. 고개를 돌려보니 연보랏빛의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있었다. 아이의 발이 문 사이에 걸쳐있었다.
  "난 신경 안 써."
  "다행이다…!"
 멍청한 건지, 눈치가 없는 건지. 그럼에도 미키의 기분은 썩 나쁘지 않았다.
  "그, 같이… ."
  "뭔데?"
 미키가 몸을 돌려 아이를 정면으로 바라보자, 아이는 급히 몸을 문 뒤로 숨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품에 있는 인형을 꾹 쥐곤 입을 열었다.
  "가, 같이 벚나무 찾지 않을래?"
  "별로, 그런 거 난 관심 없는 거야."
  "응…. 알겠어."
 뜻밖에 단념이 빨랐다.
  "그러면 좀 있으면 출발하니까 회관 1층으로 와줘?"

 


  "너."
 가는 이를 붙잡듯 나온 말.
  "왜?"
 어째서 그녀를 불러세웠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미키는 물음을 표하는 아이를 앞에두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무슨 할 말 있…."
 문 건너편에서 누군가 아이의 손을 잡아채 말을 끊었다. 아이는 끌려가면서 옆을 돌아보았다.
  "자, 잠깐만 아직 할 말이…."
  "제발 좀."
 또 그 애인가. 쓸데없는 불평불만만 내뱉는 불행한 사람.
  "제발 가까이하지 마! 또 사람이 다치는 건, 너까지 다치는 건 보고 싶지 않다고!"

 

 귀가 밝은 것은 정말로 기분 나쁜 능력이다. 지려밟아 찢어진 출석증을 내려다보던 미키는 설렁설렁 학급을 빠져나갔다.

 

 

 

&

 

 

 

  "여긴 도대체 어디?"
 미키는 주변을 두리번댔다. 형형색색의 꽃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미키의 위에는 거대한 그늘이 햇볕을 가려주고 있었다.

 

 연보랏빛 아이의 말을 따라 들어온 숲속에서 미키는 길을 잃었다. 다른 아이들의 시선을 피해 멀찍이 떨어져 발자국을 따라갔지만, 이상하게도 한 곳을 빙빙 돌뿐이었다. 아이들이 자신을 놀리려고 일부러 발자국을 남긴 걸지도 모른다. 왠지 화가 난 미키는 발자국이 없는 길, 수풀 사이를 헤쳐나갔다.
 발이 아파져 올 즈음, 미키는 아카시아로 가득 찬 숲을 빠져나와 아무것도 없는 들판에 도착했다. 분명 미키가 향한 방향은 그녀의 집이었을 터. 계속해서 걸어나갔더니 들판 한가운데에 불에 탄 듯한 고목이 하나 있었다. 고목 주변엔 아무것도 없는 이상한 풍경의 들판. 지쳐버린 미키는 의심 않고 고목을 등 삼아 기대앉았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떠 바라본 풍경은 잠이 들기 전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미키가 앉은 들판은 자그마한 언덕이 되어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게 되었다. 눈을 비벼대도, 볼을 꼬집어 보아도 이 세상은 깨지 않는 꿈이다.

 


  "이번에도 늦었네."
 어디선가 소곤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야?"
 귀를 간질이는 숨결과 함께 누군가가 옆으로 다가왔다.
  "너, 아이돌이…."
 미키는 놀래 팔을 휘둘러, 옆에 서 있던 누군가를 강하게 손으로 쳐버렸다.
  "꺄앗?!"
 무언가 닿은 촉감과 들려온 짧은 비명. 고개를 돌려 소리의 지점을 바라보았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대신 눈동자에 잡힌 분홍빛의 벚꽃잎 하나가 손바닥에 내려앉았다. 미키는 고개를 들어 머리 위를 쳐다보았다. 고목은 어디 가고, 환하게 만개한 벚나무가 미키의 등을 받혀주고 있었다.


  "아파…."
 꽃 사이의 흔들이는 다리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미키는 그곳에 시선을 고정했다.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있는, 처음 보는 검은색 동복 교복에 짧은 단발을 하고 있는 소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거기 정체가 뭐야?"
 소녀는 발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미키와 눈이 마주쳤다. 소녀의 눈 주위는 불그스름헸다.
  "수녀였던가……."
 옆 마을 성당의 학생일까.
  "수녀?"
  "아니지. 그냥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벚나무의 요정이야."
  "제대로 말해주는 거야."
  "누구든 비밀 한 두 가지는 있지요."
 벚나무의 소녀는 사뿐하게 바닥으로 착지했다. 머리에 가득 내려앉은 꽃잎을 털어내던 소녀의 청록색 눈동자. 미키는 가감 없이 손을 뻗어 어깨의 꽃잎을 털어주었다.

 


  "아, 고마워."
  "나이 정도는 알려줄 수 있지?"
 꽃잎을 모두 털어내자 미키의 손엔 마치 타버린 재 같은 먼지가 묻어 나왔다.
  "음, 착한 아이에게는 그쯤이야 물론."
 소녀는 뒤돌아서서 나무를 바라보았다. 힘껏 나무를 안아보는가 싶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미키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아마, 이 벚꽃이 피어난 햇수만큼?"
  "꽃…? 그럼 어디서 살아?"
  "저기서."
 소녀는 언덕 너머의, 오늘 가려고 한 소풍지인 고성을 가리켰다. 울창한 수풀과 덩굴에 휩싸여 제대로 된 형상이 보이지 않는 오래된 성이었다.
  "저긴 다 낡아빠진 성인데? 으으, 왜 죄다 이상한 대답만 하는 거야?"
  "요정은 신비한 존재랍니다~."
 소녀는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았다.
  "미키가 생각하기엔 요정보단 그냥 이상한 사람이야."
  "이상한 사람이라니-?!"
 미키의 말에 소녀는 발이 꼬여 털썩 넘어져 버렸다. 무안한 듯 머리를 긁적이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잘 믿어준 그 애랑은 좀 다르네..."
  "그 애?"
  "아니아니, 아무것도 아냐."
 소녀는 손을 저었다. 미키는 그녀의 정체가 더욱더 궁금해졌다.
  "아, 음, 그래. 그거 하나는 확실히 말해줄 수 있어."
 소녀는 오른손 검지를 들었다.
  "뭔데? 또 이상한 대답 하면 갈래."
  "미키가 와줘서 깨어날 수 있었어. 고마워."
 소녀는 내려가 있는 미키의 손을 두 손으로 살짝 잡아주었다. 차갑던 손이 점차 따뜻해졌다.

 


  "어라?"
 미키는 방금 전 소녀에게서 이상한 점을 느꼈다. 잡고 있던 손을 급히 떼놓았다.
  "왜 미키?"

  "어라?"
 소녀는 미키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 날의 그 사람처럼. 미키는 한 발짝 뒷걸음질을 쳐 소녀에게서 떨어졌다.
  "넌 어떻게 알고 있어? 어떻게?"
 미키는 험악한 표정으로 따져 물었다.
  "뭐, 뭐가?"
 소녀는 당황했다.
  "미키의 이름! 방금 말했잖아!?"
  "또 미키가 말해줬네요."
  "미키는 알려준 적 없……앗!"
 말하는 동시에 깨달았다. 어느새 버릇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무의식의 말버릇이라니. 그만큼 편한 상대라는 것일까. 이토록 포근한 사람은 오랜만에 만나보았다. 지난 한 달간의 생활은 기억하고 싶어도 기억할 수 없는 나날이었으니.

 


  "그렇지?"
  "그렇네."
 한순간에 허탈해졌다. 괜한 사람을 의심했다.
  "어찌 됐든 미키의 이름을 알려줬으니까, 네 이름도 알려줘…."
 무안해져 부끄러워진 미키는 소녀에게 되레 물었다. 그 모습에 소녀는 미소를 짓더니 벚나무를 향해 돌아섰다.
  "봄 내음이 물씬 풍길때는…."
 소녀는 눈을 감고 무언가 중얼거렸다. 바람이 불어 벚나무의 수많은 잎이 우수수 언덕에 내리 앉았다.
  "역시 그게 좋겠지."
  "또 이상한 걸 말하려고."
  "하루카."
  "응?"
  "하루카라고 불러줘. 미키."
 하루카는 돌아서서 미키를 바라보았다. 바람이 그쳐 벚꽃잎의 비가 멈췄다.
  "흐음……."
  "왜?
  "본명은 따로 있는 거야?"
 미키의 물음에 하루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건 말이지."
  "비밀?"
  "앗."
  "비밀 횟수가 무진장 늘어날 것 같은 예감이야."
  "아하하…."
 오랜만에 웃고 떠드는 사람과 마주해보았다. 경멸의 기색은 하나도 없는 그녀의 순수한 미소가 미키를 사로잡았다. 미키는 초조해졌다. 혹시나 이 사람도 자신을 오해하게 된다면 멀어져 버리지 않을까.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사이로 변하지 않을까.

 


  "미키말야, 더는 하루카에 대해서 알려고 안 할게. 대신 딱 하나만 제대로 말해줘."
  "뭔데?"
  "넌, 하루카는… 떠나지 않을 거지?"
  "아까도 말했지만 저는 벚나무의 요정이라 떠날 수가 없답니다."

  "미키를. 미키한테서 떠나지 말아줘."
 미키는 하루카의 옷자락을 잡았다.
  "응. 약속할게."
 하루카는 미키의 손을 잡아주었다.
  "이번엔 절대로 떠나지 않아."
  "이번…?"
  "아니아니, 이게 아니라 내 말은."
  "흐음…."
 오늘의 약속은, 정말로 이상하고 신기한 사람과의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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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을 병행하기는 힘드네요.

그래서 글 먼저 마무리하는 걸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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