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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 아이돌의 사랑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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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24, 2013 11:36에 작성됨.

*이 소설의 리카는 신데마스의 리카와는 연관이 없습니다.
*히로인이 구르는 모습이 싫은 분들은 보지 마세요.
*이번편 얀은 안 나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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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이틀이 지났다. 사고가 난지 이틀이 지났지만 리카는 여전히 깨어날 기미가 없었다. 하얀 침대 위에서 죽은 듯 자고 있는 리카는 평온해 보였다. 몸에 감은 붕대와 팔에 연결된 여러 링거만 아니라면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리카.”

 P는 부드럽게 상대를 부르며 흐트러진 앞머리를 쓸어주었다. 하지만 불러도 상대에게는 반응이 없었다. 무언가 무너질 것 같아 자신을 다잡듯 리카의 손을 꼬옥 쥐어주었다. 

 “……신이시여, 만일 당신이 있다면 정말 전 당신을 원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괴로운 일을 겪고, 고생만 하다가 겨우 미키의 콘서트에서 프러포즈를 받고 서서히 행복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 짧은 이틀은 정말 반짝인다 할 정도로 리카는 행복에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단 한 순간. 
 단 한순간의 사고로 리카는 많은 것을 잃었다.
 결혼을 꿈꾸던 여자로서 미래를 잃었다. 아이를 잃었고, 거기다 더는 아이를 가질 수도 없었다. 이런 일이 있다 해서 자신은 리카를 버릴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끝까지 리카를 책임져야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하지만 리카는? 부모님은?
 아이를 유산하고, 거기다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어 친손주를 볼 수 없단 사실을 알고도 과연 아무리 사람 좋은 자신의 부모님이라도 결혼을 쉽게 허락해줄까?
 리카는 어떨까? 아이만이 아니라 아이를 가질 수 없단 사실을, 행복하게 미래를 꿈꾸던 평범한 여자로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직접 자신의 뱃속에 안고 있던 아이를 잃었다는 아픔이 얼마나 큰 아픔일지 남자인 자신은 평생 알 수 없을 것이다. 
 죽은 아이의 모습은 보지 못했다. 아버지로서는 실격이라는 걸 알지만, 결코 볼 수 없었다. 전혀 존재도 모르던 아이를 자신은 결국 끝끝내 마지막까지 봐주지 못했다.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괴로웠고, 그 모습을 보려는 것만으로 괴로웠다. 아니, 애초에 수술 이 후 병원에서는 유산한 아이를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애초에 형태도 제대로 잡혀있지 못했던 아이다. 사고 후 수술로 꺼내 제대로 된 모습일 리가 없었다.
 보는 것만으로, 듣는 것만으로 괴로운 이 일은 직접 자신의 뱃속에 지니고 있던 리카에게는 더욱 큰 아픔일 것이다. 모르고 있었다지만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특히 리카는 몇 번의 사건들로 정신적으로, 심적으로 많이 불안하고 약해져 있었다. 그런 리카가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의사는 리카의 상태가 좋아지면 말해주는 것이 좋을 거라 하는데, 그 때가 언제일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리카 본인에게 일어난 일이니 평생 숨길 수도 없었다.

 “……어두운 곳이 무섭잖아. 언제까지 눈을 감고 있을 거야?” 

 리카는 트라우마로 인해 어둠 속에 혼자 있지 못한다. 혼자 어둠 속에 있게 되면 환지통으로 인해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 고통에 괴로워한다. 그 때문에 어두운 곳은 연인인 자신이 꼭 같이 있어줘야 했다. 자신이 없으면 밤에 불을 끄고 혼자 잠을 자지도 못한다.
 그런 리카가 계속 눈을 감고 혼자 자고 있다. 어쩌면 일어난 현실에서 회피를 해 꿈속을 헤매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쪽이 행복하다면 계속 기다려줄게. 편히 쉬고 와.”

 그리 말하고서 P는 잡고 있던 리카의 손을 자신의 이마에 데었다. 그 때 누군가 병실 문을 두드리고서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리카는 좀 괜찮니?”

 P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문 너머에서 걱정스럽게 쳐다보다가 이내 억지로 웃어주었다.


 보호자용 의자에 앉은 두 사람을 앞에 두고 P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미리 연락을 받았지만 그래도 직접 만나니 더욱 할 말이 없었다. 자신의 부모에게 털어놓고 말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리카의 상태를 안다면 그렇게 좋아했던 리카라 해도 반대하실 지도 모른다. 당장은 리카가 몸이 안 좋아 눈치를 보며 아무 말도 안할 테지만, 다시 결혼 이야기가 나오면 슬슬 반대를 하실지 모른다. 
 그렇게 되기 전에 리카의 상태가 좋아지는 것을 보고, 먼저 리카에게 말한 후 그 다음에 부모님께 사실을 말하고 서서히 설득을 해야했다.

 “많이 안 좋은 거니?”

 어머니가 걱정스레 묻자 P는 울적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 후 이틀이 지났는데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나와 통화하면서 행복해 하던 게 그날인데…….”

 P의 어머니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리 중얼 거리고서 리카의 손을 잡아주었다. 마음이 심란할 것이다. 자신과 즐거워하며 통화를 한지 얼마 안 되어 그런 사고를 당한 것이니. 아버지는 말없이 리카를 보고 있었다. 그렇게 예뻐하던, 아직 결혼은 안했지만 며느리로 여기던 아이의 모습을 본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특히 사고가 났던 날, 아버지는 결혼 소식에 기뻐하며 동네 어르신들과 술잔치를 버리고 있었다. 그렇게 기뻐하던 날 사고가 났다.

 “하늘로 짓궂으시지……. 어쩜 이 아이에게…….”

 P의 어머니는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고 그저 리카의 손을 매만졌다. 이렇게 리카를 걱정하는 분들이 리카와의 결혼을 반대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 힘들었다. 하지만 자신의 부모들은 평범하게 친손주를 원하는 분들이었다.
 그 부분은 아무리 좋은 분들이라 해도 어쩔 수 없었다.

 “너 밥은 제대로 먹고 있냐?”

 복잡한 시선으로 며느리를 보던 P의 아버지는 대뜸 그리 물었다.

 “……그럴 정신이 어디 있겠어요.”
 “제대로 먹어둬. 너 마저 쓰러지면 리카는 자기를 챙겨줄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니깐.”

 그 말에 P는 제대로 대꾸를 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말이 옳았다. 리카는 고아다. 그녀의 가장 가까운 사람은 자신뿐이었다. 즉, 리카를 위해서라도 자신의 몸을 챙겨야했다.
 
“……네.”

 P의 아버지는 기운 빠진 P의 대답을 듣고 혀를 찼다.

 “원래 가족이 아프면 다 힘든 법이지.”

 자신의 며느리가 될 아이를 보는 P의 아버지의 얼굴은 수심에 가득 찼다.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고 P는 솔직히 말하지 못하는 지금 속으로 두 분에게 사과를 했다.


 두 사람은 P랑 같이 병원 식당에서 저녁식사까지 한 뒤에야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을 겨우 돌릴 수 있었다. 1층 로비까지 배웅하는 P의 손을 잡고서 P의 어머니는 여러 가지 말을 하다가 이내 다시 눈물을 짓고 병원을 떠났다. 두 사람을 보내고서 P는 다시 리카의 곁으로 돌아왔다.
 혹, 그 짧은 사이에 깨어나지 않았을까 하고 기대를 하였지만, 리카는 여전히 잠만 자고 있었다. 

 “부모님께는 어떻게 말씀 드리고, 너에게는 또 언제 말해야 할까?”

 스스로 리카에게 말하듯 혼잣말 하다가 이내 마음이 약해져 입을 다물었다. 겨우 이틀. 하지만 숨겨야할 것이 너무나 무거웠다. 자신에게 있어 제일 소중한 사람들에게 숨겨야 하는 비밀은 너무나 괴로웠다.
 누군가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날도 리카의 옆에서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 젖은 수건으로 리카의 몸을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붕대와 링거들 때문에 닦을 수 있는 부분만 닦아주고서 옷을 입혀주었다. 씻겨 주는 것은 이미 익숙했다. 손을 다쳤을 때도 혼자 씻지 못해 자신이 도와준 적이 있었다.
 그렇게 닦아주고 옷을 입혀준 후, 얼굴을 닦아 주었을 때 리카는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천천히 눈을 떴다.

 “리카!?”

 P는 눈을 뜬 리카의 모습에 기뻐 소리치다가 곧 바로 간호사와 의사를 호출했다. 하지만 간호사와 의사가 오는 그 짧은 사이에 리카는 다시 잠들었다. 그러고서 다음 날 저녁이 되어서야 제대로 눈을 떴다.
 의사는 리카의 상태를 보고서 상태는 괜찮아졌다는 말을 해주고서 병실을 나갔다. 

 “리카, 몸은 어때?”

 리카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입을 살짝 벌리다가 이내 힘없이 다물었다. 그렇게 겨우 10분을 눈 뜨고 있다가 이내 피곤한지 다시 잠들었다. 
 다시 잠든 리카를 보며 P는 이대로 또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닌지 하고 불안감을 느꼈지만, 다음 날 점심때가 가까워지니 리카는 일어나주었다.
 일어나자마자 떨리는 손으로 물을 가리켰다. P는 침대를 살짝 들어 리카의 상체를 올린 후, 자신이 컵을 잡아 물을 마시는 것을 도와주었다.

 “몸 불편한데 없어? 기분은 어때?”

 P가 기쁜 한편, 걱정스럽게 물었지만 리카는 그저 고개만을 저을 뿐이었다. 수술 후 깨어나 말할 기운도 없어보였다. 점심 때 간단히 죽을 먹고, 저녁이 지나서야 겨우 짧게나마 말을 할 수 있었다.

 “P…….”
 “응?”

 리카의 옆에서 웃으며 P가 대답하자 리카가 힘없이 링거를 꽂지 않은 한 손을 배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배가…….”
 “왜, 혹시 배가 아파?”

 리카는 고개를 젓고서 말했다.

 “배가 왠지 허전해…….” 

 리카는 그 뒤 힘을 들여 겨우 덧붙였다. 

 “뭔가 사라진 것 같은 같은 느낌이야.”

 그 말에 P는 순간 얼굴이 무너지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아낼 수 있었다. 역시 모르고 있었다 해도 무의식중에 알고 있었던 듯하다.
 당연했다. 직접 자신의 뱃속에 아이를 품던, 어머니였으니깐.
 눈물이 날 것 같은 걸 참으며 P는 리카의 손을 잡아주었다.

 “수술해서 그래.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거야.”

 평소라면 순순히 자신의 말을 믿고 고개를 끄덕였을 리카가 이번에는 웬일인지 다시 반문을 했다.

 “……정말?”
 “응. 정말이야.”
 “…….”

 P의 대답에도 리카는 무언가 석연치 않아 보이는 표정이었다. 혼수상태에서 이제 막 깨어난 리카에게 말해 줄 수 없는 사실이라 P는 유산에 대해 계속 비밀로 했다. 
 리카가 깨어난 후 3일이 지났다. 리카는 떨리는 손으로 스스로 식사를 하고, 링거의 수도 하나로 줄었다.  

 “무언가 소중한 게 사라진 기분이야.”

 기운이 나서인지 이제는 제대로 말하는 리카는 그렇게 말했다. P는 지금도 사실을 말할 수 없어 돌려말했다.

 “수술했으니깐 아마 장기 같은 것도 제거 했을지도 몰라. 나도 제대로 듣지 못해서……. 나중에 의사에게 물어봐줄게.”
 “응.”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다. 거기다 안에 있던 아이도 잃었다. 
 의사는 지금 당장의 몸 상태로서는 알 수 없을 거라 했지만, 아이를 품던 여자로서 무언가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나 잠시 음료수 좀 사러 갔다올게. 필요한 거 있어?”

 리카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 얼굴은 어딘가 쓸쓸하고 슬퍼보였다. 깨어난 후 리카는 줄 곧 저런 표정이었다.
 P는 한숨을 쉬고 병실을 나왔다. 리카가 깨어난 건 좋았지만, 이렇게 숨기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 너무나 괴로웠다.

 “어머, P씨?”

 누군가 자신을 불러 쳐다보자 거기에는 놀랍게도 아즈사가 병문안을 온 듯 음료수가 든 상자를 들고 서 있었다.
 아즈사는 특유의 태평한 미소로 살짝 고개를 숙였다.

 “오랜 만이에요.”
 “네, 오랜 만이네요. 이곳에는 어쩐 일로?”
 “미키에게 리카씨에 대해 들어서 걱정이 되어 와봤어요. 연락하고 싶었는데 핸드폰이 왠지 연락이 안 돼서……. 지금 면회해도 될까요?”

 핸드폰 번호를 바꿔 연락이 안 되었던 듯 하다. 지금 자신의 핸드폰 번호는 몇몇 지인들과 미키와 리츠코만이 알고 있었다. 

 “죄송해요. 아직 리카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P가 거절을 하자 아즈사는 곧바로 미안한 듯한 얼굴을 하였다.

 “그렇군요. 죄송해요, 마음대로 와서.”
 “아니에요. 와주셔서 감사해요. 나중에 미키에게 말해서 괜찮을 때 제가 연락을 드릴게요.”
 “네, 꼭 부탁 드릴게요. 아, 이건 빈손으로 오기 뭐해서…….”

 아즈사는 자신이 들고 온 음료수상자를 P에게 건넸고, 그것을 P는 상대의 배려를 생각해 순순히 감사 인사를 하며 받았다.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다음에 꼭 불러주세요.”
 “아, 입구까지는 같이 갈게요.”

 리카의 상태도 많이 도와줘 입구까지는 같이 갈 수 있었다. 

 “어머, 그래도 되나요? 그럼 부탁드릴게요.”

 아즈사는 웃으며 그 정도 일에도 기뻐했다.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다가, 바로 병원을 나서지 않고 어쩌다 공원 뒤편에 환자와 가족들을 위해 만들어놓은 작은 공원에 갔다. 
 그곳에는 환자와 가족들이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뭔가 고민이 있으세요?”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즈사는 문득 이렇게 물었다.

 “그렇게 보이나요?” 

 P는 힘없이 웃으며 그렇게 답했다. 

 “네. 프로듀서는 옛날부터 힘든 일이 있어도 스스로 고민할 때가 많았으니깐 희미하게 느껴져요.”

 그 말에 P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지금의 상태는 너무나 힘들었다. 이렇게 무겁고 중요한 일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고, 그저 타인인 의사하고만 간간히 상담해 결정해야만 하다니. 
 결국 혼자 결정하고 리카에게 말해야하는데, 그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저기……. 괜찮으시다면 저에게 말해주실 수 없을까요? 인연이 없는 것도 아니고, 또 그렇다고 너무나 가깝지도 않으니 이런 저에게만 말할 수 있는 고민도 있을 거라 생각해요. 물론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게요.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이야기 하시는 편이 훨씬 편할 거라고 생각해요. 아니면 듣고 나서 모두 잊겠다고 맹세할 수도 있어요.”

 아즈사가 간절한 어조로 그리 말했지만 그렇다고 아즈사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이것은 자신이 짊어져야 하는 문제였다.
 하지만 마음이 흔들렸다. 혼자서 짊어진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그런 P의 마음을 눈치챈 듯 아즈사는 씁쓸하게 웃었다.

 “……전 당신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어요. 이미 포기 했지만, 그래도 전 여전히 당신을 좋아하거든요.”

 그 순간 아즈사는 말했고, P는 아즈사의 고백이 생각났다. 답변을 기대할 수 없는 그런 고백, 결과가 뻔한 고백.
 그럼에도 아즈사는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었다. 

 “……좋아하는 사람의 상대가 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힘든 일은 도와주고 싶어요. 그것이 잘못일까요?”

 그래서는 안 된다-하고 생각은 했지만 P는 말로 하지 못했다. 아즈사는 알고 있었다. 이미 자신이 더는 P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도와주고 싶어했다.
 그 마음이 너무나 고마웠다.
 그리고 동시에 기대고 싶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아즈사는 틀림없이 자신보다 나이가 어렸다. 아이돌로서 나이가 좀 많다했을 뿐이지, 사실은 굉장히 어렸다. 사회에서 보자면 겨우 초년생이라 말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무언가 자신보다 연상인 듯한 느낌을 줄 때가 많았다. 평소에는 맹하고, 둔하고 심한 길치지만 그래도 힘들 때는 무언가 의지하게끔 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었다.
 그 때 아즈사가 P의 손에 자신의 손을 겹쳤다.

 “당신을 도울 수 있도록, 허락해주지 않으실래요?” 

 아즈사는 다시 간절하게 말했고, 그 간절한 호소에 결국 P는 넘어가고 말았다.

 “사실은…….”

 그리고 그녀에게 현재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말하고 말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은 후, 아즈사는 울어주었다. 지금의 리카가 너무 안타깝다며 같이 슬퍼해주었다.  

 “죄송해요……. 저로서는 큰 힘이 될 수 없는 이야기였군요.”
 “아니요, 들어주신 것만으로 감사해요. 사실 답을 줄 사람이 아니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거든요. 부모님께 말씀 드릴 수도 없었고…….”
 “아이를 가질 수 없다니, 같은 여자로서 너무 잔혹한 이야기에요.”

 아즈사는 늘 웃던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슬픈 얼굴로 말했다. 

 “그럼 이만 입구까지 배웅해 드릴게요.”
 “네. 빨리 리카씨에게 돌아가 보셔야겠네요. 몸이 안 좋으시니…….”

 P가 아즈사를 입구까지 배웅했을 때, 아즈사는 마지막으로 P를 응원했다.

 “꼭 리카씨 곁에 있어주세요. 당신의 힘이 많이 필요할 테니깐…….”

 아즈사는 마지막으로 그렇게 말한 후 택시를 타고 병원을 떠났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그 사이에는 미키와 리츠코가 병문안을 왔다갔다. 아즈사를 부르고 싶다 생각했지만, 리카가 마음을 연 765의 사람은 안타깝게도 미키와 리츠코 정도뿐 이였다. P의 부모님은 한 번 더 왔다가 리카와 나름 즐겁게 이야기를 나눈 후 돌아갔다. 수술 후 허리에 꽂혀 있던 관도 뺐다. 이제는 링거를 끌고 걸어 다닐 수도 있었다.
 그런 리카를 데리고 공원에 나왔다. 오랜만에 쬐는 햇볕에 리카는 기분이 좋은 듯 했다. 

 “오랜만에 밖에 나오니 좋다.”

 리카는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 리카의 모습을 보고 P도 같이 웃었다. 하지만 이렇게 밖에 있던 시간은 잠깐 이었다. 날도 많이 추워져 곧 몸이 안 좋은 리카를 다시 병실로 데려와야만 했다.

 “병원에 너무 오래 있는 것 같아.”

 리카의 말은 이번 입원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 이번 일만이 아니라 리카는 병원에 자주 입원했다. 그리고 입원해서 좋았던 일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번에도 마찬가지. P는 가슴이 아팠다. 그것을 언젠가 알려주어야 함에…….

 “난 의사선생님과 상담이 있어서. 혼자 있을 수 있지.”
 “응. 빨리 갔다와. 내 상태가 어떤지 꼭 알려주고.”
 “응.”

 P는 웃어주고서 병실을 나섰다. 병실에 혼자 남은 리카는 왠지 모를 쓸쓸함에 외로워지는 것을 느끼다가, 환자용 서랍장 위에 P가 놓고간 핸드폰을 보았다. 잠시 고민했다가 이내 리카는 웃으며 P의 핸드폰을 켰다. P가 없는 지금 바쁘지 않다면 미키하고라도 연락하고 싶었다. 
 그 순간,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P는 기분 좋은 미소로 병실로 왔다. 의사와의 상담 결과, 이제 얼마 안 있으면 퇴원할 수 있을 거란 이야기를 들었다. 좋은 소식이라 생각하며 리카에게 전해주기 위해 병실 문을 연 순간, P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했다.
 리카는 침대 위에서 멍하니 앉아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병실에 들어온 P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는 공허함이 가득했다. 
 리카는 떨리는 목소리로 천천히 물었다.

 “나에게 숨기는 거 있지?” 

 P는 애써 웃었다.

 “하하, 무슨 말이야. 아, 의사선생님이 얼마 안 있어서 퇴원할 수 있을 거라고…….”
 “……정말이야?”

 리카의 물음에 P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제 퇴원할 수 있을 거라고…….”
 “내 배속에 아이가 있었다는 게 사실이야?”

 그 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P는 놀란 얼굴로 리카를 보았다.

 “그게 무슨…….”
 “사실대로 말해줘. 정말 내 배속에 아이가 있었어?”

 리카는 차갑게 다시 물었다. P는 입을 다물었다. 지금 무슨 상황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리카가 어떻게 안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 이야기는 자신과 의사, 그리고 아즈사 밖에 모르는 일이었다. 아즈사는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모르고, 병원에 오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이 짧은 사이에 왔다 갔을 것 같지도 않았다.
 아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누가 알려주었냐가 아니다. 리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P의 얼굴을 보다가 리카는 허망하게 웃었다.

 “하하, 사실이었구나. 나, 아이를 가지고 있었구나.”

 그리고 비어버린 배에 손을 가져갔다.

 “여기에, 아이가 있었어.”
 “리카…….”
 “아이는 어떻게 됐어?”

 자신을 보고 다시 묻자 P는 이내 시선을 피했다. 말로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반응을 보고 예상한 듯 리카는 다시 묻지 않았다. 
 둘 사이에 침묵만이 감돌았다. 리카가 몸을 들썩였다. 그러다가 이내 소리를 죽여 울다가, 끝내 소리를 높였다. 그런 리카에게 다가가 품에 안아주며 진정시키려했다.

 “진정해, 진정해 리카.”
 “어떻게 진정해!”

 그 순간 리카가 악을 썼다. 리카는 울면서 P의 옷을 꽉 쥐며 그를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어떻게 진정할 수 있어! 애가 죽었다고! 내 배속에 있던 애가, 난 있는지도 몰랐던 애가 내가 너무 부주의해서 죽어버렸어! 내가, 내가 지켜주지 못하고 죽여 버렸다고!”
 “아니야 리카, 네가 죽인 게 아니야! 이건 단순한 사고였다고!”
 “알았다면, 좀 더 빨리 내 배속에 아이가 있었다는 걸 알았다면 조심했을 거야! 그런데, 그런데…….”

 리카는 이내 말도 못할 정도로 흐느끼고 말았다. 그런 리카를 안아주었다.

 “……대체 왜, 왜……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거야? 내 아이는 무슨 잘못을 했고?”

 울다가 리카가 자책하듯 말하자 P는 그것을 부정했다. 이미 그도 울고 있었다.

 “아니야, 리카와 아이는 잘못한게 없어.”
 “그럼 왜 죽어야 했는데! 왜 그 죄 없는 아이는 태어나지도 못 한 건데! 내가,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흐느끼는 목소리 사이로 악에 받친 목소리가 너무나 안타깝고 슬펐다. 하지만 리카의 몸상태를 생각해 이렇게 꼬옥 껴안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리카가 발작해 어떤 행동을 할지 몰랐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이를 잃은 것은 자신도 슬펐다. 하지만 그렇다고 리카까지 잃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결정하고서 P는 스스로의 가슴을 후벼파는 말을 했다.

 “우리 아이를 편하게 보내주자. 무덤을 만들어주고, 같이 거기서 몇 번이고 사과를 하자.”
 “거짓말이야…… 거짓말이라고……. 태어나지도 못하고, 안아주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어떻게 젖도 못 먹여주고 떠나 보낼 수 있다는 거야…….”

 리카는 망연하게 중얼거리며 울었다. 그런 리카를 다독여주며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겨우 진정이 된 듯 해서 품에서 떼어놓자 리카는 멍하니 창밖을 보았다. 그 눈에는 눈물이 말라있었다. 

 “잔인한 말이라는 건 알지만, 지금은 일단 아이에 대해서 잊어줘. 일단 산 사람은 살아야지. 난 너까지 잃고 싶지 않아.”

 그 말에도 리카는 대답하지 않고 창밖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입을 떼었다.

 “……남자아이였어, 여자아이였어?”
 “리카 제발…….”
 “제발 알려줘.”
 “제발 리카, 지금은 아이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알려달라고!”

 리카는 소리치고서 다시 P에게 매달렸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입을 떼었다. 리카는 애원하듯 말했다.

 “제발, 제발 알려줘……. 나, 엄마인데, 그 아이의 엄마인데…….”

 이어진 리카의 마지막 절규에 결국 P도 참지 못하고 같이 무너져 침대 위에서 울고 말았다.

 “아이의 이름조차 불러주지 못했단 말이야!”

 1인실 병실에서 둘은 서로 울고 말았다. 
 리카는 소리 내어 울었고, P는 그저 눈물만 흘리며 리카를 안아주고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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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나서 제가 할 말이 아니지만,
리카 좀 그만 괴롭혀라!
근데 더 슬픈게 겨우 하나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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