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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경시정이 된 P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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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06, 2016 00:22에 작성됨.

야밤, 첩첩산중의 국도를 따라 경광등을 반짝이고 있는 경찰차들과 경력버스들이 이동중이었다.

 

"하아......"

"선배님, 괜찮으십니까?"


스트레스로 인해 올라오는 두통을 이기지 못하고 한숨을 쉬자, 이내 운전석의 후배가 걱정스러운 눈치로 말했다.

 

"아냐, 그냥 머리가 아픈거뿐이야."

 

나는 잠시 눈을 감으며, 약 일주일 전을 회상했다.

 

 

.

.

.

.

.

.

 

 

"잠시 신분증 검사 좀 하겠습니다."

"예, 여기 있습니다."

 

오전 10시.

산속에 싸여있는 국도를 따라 가던 중, 나는 국도에 있던 검문소에서 내 신분증을 내밀었다. 검문을 하던 경관은 내 신분증을 확인하고나서 경례를 한 뒤, '저쪽의 주차공간에 주차를 하시면 됩니다'라고 말했고, 나는 그 말에 따라 허름한 검문소 옆의 조그마한 주차장에 차를 대었다.

도시에서 여기까지 차를 몰고오기까지 약 2시간이 걸렸던 만큼 뻐근한 근육들을 풀고자 이리저리 스트레칭을 하고 있자니, 이윽고 반대편 차선에서 고급 승용차 한대가 내 앞에 부드럽게 멈춰섰다. 운전석에서는 경찰복과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제복을 입은 한 명의 아리따운 젋은 여성이 내렸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악수를 청하며 자기소개를 하였다.

 

"교정본부 보안과의 카시마 유우키입니다. 어서오시죠."

"네, 저는 이번에-"

"하코다테 방면본부장에 취임한 P 경시정님. 맞으시죠?"

"아... 네."

"그럼 시간도 부족하니 얼른 타시죠.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녀는 곧장 조수석에 탈 것을 권유했고, 나는 그에 따라 차문을 열고 탑승했다.

아무래도 잡담을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으니, 그냥 조용히 차창 밖의 경치나 구경하기로 했다.

 

내가 지금 방문하려고 하는 곳은 상당히 특이한 곳이다.

민간인은 접근이 불가능한 곳이기 때문이다.

아니, 평범한 사람이라면 접근하고 싶지 않은 지역이기도 하겠지.

 

그런 곳에 내가 갈 수 있는 이유.

나는 경찰이기 때문이다.

 

내 나이 40.

내가 속한 캐리어조라면 누구나 올라가는 경시정이라는 자리에 승진하게 되었다.

그러나 평범하게 월급을 타면서 적당하게 살고 싶은 나는 도쿄도의 자리가 아닌 훗카이도 쪽의 방면본부장으로의 자리를 원했고, 편안한 생활을 기대했다.

 

다만 이곳은 하나의 복병이 있었는데, 바로 법무성 산하의 수용소가 있다는 점이다.

만에 하나, 이곳에 있는 수용소 인원들이 돌발상황을 일으키게 되면 내 책임하에 경찰병력을 지원해줘야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에, 어느덧 차가 멈춰섰다.

 

"여기가 수용소입니다. 그럼 곧장 수용시설들을 돌아보시죠."

"그럽시다."

 

차에서 내리자, 파놉티콘을 연상시키는 듯한 커다란 감시탑들이 곳곳에 세워져있고 10m는 되어보이는 커다란 벽이 이 곳을 둘러싸고 있었다.

아마도 생각을 하던 중에 이 곳에 들어온 것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조심하세요. 아무리 저희가 감시하고 있다지만, 별종들이 있으니깐요."

 

그녀의 말에 약간 한기가 들었다.

 

"킁킁...... 앗! 새로운 냄새다!!"

 

하얀색 죄수복을 입은 앳된 여성이 갑자기 나에게 달려와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저기저기, 당신 좋은 냄새가-"

 

순간, 앳된 여성의 뒷통수를 교도관이 진압봉으로 쎄게 쳤다.

그러자 나에게 매달려있던 그 여성은 하얀 거품을 물고 앞으로 쓰러졌다.

 

교도관은 우리들에게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쓰러진 그녀를 대충 잡고선 질질 끌고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

"설마 저녀석들을 인간처럼 생각하시는건 아니겠죠, 본부장님?"

 

그녀의 말이 맞았다.

저걸 인간으로 대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약 10여년 전.

'아이돌마스터 신데렐라걸즈 스타라이트 스테이지'라는 게임이 설치된 사용자들의 집에 각자의 최애캐들이 실체화해 등장하는 소위 '레플리칸트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이 수면에 오르자 여러 이슈들이 부상했는데, 특히 이 실체화해 등장한 여성들에게 일반 국민들과 같은 권리를 줄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들이 오갔다.

물론 정부측에서는 인구 감소에 대처할 수 있도록 시민권을 부여하자는 의견이 강했었다.

 

그러던 중, 단기간에 수많은 사건들이 '실체화된 그녀들(이하 레플리칸트)'에 의해 벌어지고 말았다.

 

이치노세 시키의 화학 실험 중 폭발로 아파트가 통째로 날아가 사망자만 100여명이 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케부쿠로 아키하 같은 레플리칸트는 대담하게 방위성을 해킹하려고까지 했다.

그리고 여기에 기름을 끼얹은 것이 바로 은행털이사건이었다.

 

레플리칸트들은 자신의 주인들이 시키는대로 밤시간대에 은행을 털고 유유히 도망갔지만, 경찰은 CCTV에 찍힌 레플리칸트들을 보고서도 범인들을 추적하여 잡을 수가 없었다.

 

왜냐고?

도쿄에 있는 시부야 린이라는 레플리칸트나 후쿠오카에 있는 시부야 린이라는 레플리칸트나 생김새는 물론 DNA 나선구조까지 똑같았으니까.

 

즉, 시부야 린이라는 그야말로 똑같은 개체가 수천개나 있는 상황에서 경찰은 어떤 시부야 린이 은행을 털고 도망가서 잠적했는지를 특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렇듯 수많은 사건사고들이 연이어 터지며 각종 범죄사건들에 레플리칸트들이 이용되자, 정부와 의회는 '레플리칸트 관리법'을 제정하여 훗카이도의 수용소에 모두 넣어버리고 말았다.

 

소수의 오타쿠들을 제외한, 전국민적인 동의를 얻으면서......

 

"그럼 이동하시죠."

"네."

 

카시마 과장의 안내를 받고, 수용소 안으로 들어온 나는 상당히 쾌쾌하면서도 끈적한 냄새를 마주했다.

 

"이곳은 가구를 만드는 노역장입니다. 보다시피 힘이 쎈 녀석들을 골라서 쓰고 있죠."

 

땀냄새로 가득한 그 곳엔 같은 얼굴에 같은 체격을 한 레플리칸트들이 열심히 노동을 하는 것이 보였다.

 

"감독관. 잠시 화장실-"

"존칭을 쓰라고 몇 번을 얘기하나, 무카이-0356번."

"감독관...님, 잠시 화장실을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그래, 저기 깡통에다가 싸도록."

 

이윽고 수많은 무카이 타쿠미 중의 한 명은 구석에 마련된 깡통에 쭈그려앉아 소변을 보았다.

 

"위생상태가......"

"어차피 청소하기를 좋아하는 녀석인 이가라시들이 알아서 관리해줍니다."

 

카시마 과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말그대로 이가라시 쿄코들이 똑같은 청소복을 입고 열심히 청소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러고보니 어린애들도 있지 않았습니까?"

"아아, 그런 녀석들은 일단 간단한 작업에 동원되고는 있습니다만 노동력으로 쓰기엔 좀 힘든 상황이라서요...... 그럼 다음 장소로 가시죠."
 


그녀의 안내에 따라 다음 방으로 이동하자, 거기엔 수많은 딸기가 재배되는 실내농장이 있었다.

 

"타치바나들이 딸기를 좋아하는 습성이 있어서 이렇게 딸기농사에 투입시키고 있습니다. 다만, 아까 말씀드렸듯이 어린 녀석들의 성과가 좋질 않아서 곧......"

"그렇습니까."

 

가만히 둘러보던중, 어느 곳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제발... 조금만 쉬게 해주세요......"

"타치바나-3578번, 지금은 쉬는 시간이 아니다."

"팔이... 팔이 올라가질 않아요."

 

어린 소녀는 곧 눈물을 흘릴듯이 고통을 호소해왔다.

그러나 감독관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소녀의 배를 군홧발로 걷어찼다.

 

"컼-"

"자, 이제 배가 더 아파서 팔의 아픔은 느껴지지 않지? 가서 일해."

 

소녀는 바닥을 뒹굴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달려가 도와주지 않았다.

수많은 타치바나들도 눈치만을 보며 딸기를 따고 있을 뿐.

 

"그럼 다음 장소로-"

"아, 아뇨. 이제 됐습니다. 마지막으로 볼 장소가 어딥니까?"

"이쪽으로 오시죠."

 

그녀의 안내를 따라 몇개의 건물을 들어왔다나갔다를 반복하길 약 10여분째.

어느 건물의 지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여긴 처분장입니다."

"처분장?"

"네, 병이 들거나 다치거나 등등의 이유로 더 이상의 노동력을 상실한 레플리칸트들을 처리하는 곳이죠."

"그런것치고는 여기 지하도 그렇고, 이 건물 자체가 굉장히 말끔하군요."

"당연하죠."

 

그녀는 어느 통유리로 된 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여기서 일하는 자들은 모두 진짜 '인간'들이니깐요."

"레플리칸트들은 어떻게 처리되는겁니까?"

"DNA 자체는 인간의 것이지만, 레플리칸트의 장기를 함부로 이식해서 쓰다가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깐요. 멀쩡한 사체들은 가공처리해서 의과대학등에 해부학교실 실습용으로 보내거나 자위대 산하 특전대들의 사격교육에 쓰입니다."

"그럼 멀쩡하지 않은건요?"

"그냥 소각하는거죠. 뭐, 보통은 소각하는 편입니다. 인체실험에 쓰이는 레플리칸트들이 많은 편이라......"

 

 

.

.

.

.

.

.

 

 

그렇게 레플리칸트들의 수용소를 대충 둘러보고 서둘러 밖으로 나왔던 기억이 있다.

 

"선배님, 뭣하면 쉬시겠어요?"

"아니, 괜찮아. 도착까지 얼마나 남았지?"

"이제 곧 도착입니다."

 

후배의 말대로, 이윽고 차창 밖에서 검문소가 서서히 가까워지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검문소 쪽에 다들 차 세워놓고 시작하지."

"네."

 

수많은 경광등이 어두운 산속을 빨갛게 물들이는 가운데, 수백명의 경찰병력들이 차에서 내렸다.

그들의 대다수는 진압용 방패를 소지하고 있는 시위진압부대였다.

 

나는 무전기를 들고 명령을 내렸다.

 

"다시 한번 알린다. 현재 교정본부 산하 레플리칸트 수용소에서 폭동이 발생, 현 시간부로 레플리칸트를 진압한다."

 

1, 2, 3중대장을 비롯한 여러명의 책임자들이 확인했다는 무전을 보내고, 진압작전은 시작되었다.

나는 후배에게 검문소부터의 1, 2차 차단선을 만들고, 산 속에 저격수를 배치하라는 지시를 하고, 곧장 병력들을 이끌고 교정본부로 향했다.

 

약 10분 정도 걸어들어가자 드디어 10m 높의 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자들의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헉, 헉... 오... 오셨습니까."

"카시마 과장님, 괜찮습니까?!"

 

급하게 도망쳐온듯이 그녀의 경단머리는 풀어해쳐져있었고, 그녀가 입은 제복의 오른쪽 어깨부분이 빨갛게 물들어있었다.

 

"녀석들... 생각보다 강하더군요. 설마 이쪽이 사상자를 낼줄이야......"

"현재 상황은 어떤가요?"

"교도관들이 권총을 빼앗겼습니다. 조심하세요."

"알겠습니다."

 

나는 탈출해나오는 교도본부 직원들을 도울 경관들을 남긴채, 정문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모두 방패를 똑바로 들고, 곧장 진형을 유지해서 들어간다! 하나! 둘! 셋!!"

 

나의 지시에 따라 경관들은 방패를 들고 곧장 정문 안으로 들어갔다.

이열종대로 들어간 경관들은 정문 안에 들어가자마자 곧장 일렬횡대로 바꾸었고, 안에서 난리를 치던 여성들의 소리가 갑자기 뚝하고 멈추었다.

다행히도 감시탑들은 아직 레플리칸트들에 의해 점령되지는 않았던지, 불빛이 레플리칸트들이 모여있는 곳에 집중되어 있었다.

 

나는 옆의 경관이 넘겨준 확성기를 들고 레플리칸트들을 향해 외쳤다.

 

"훗카이도 현경이다! 지금 즉시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반복한다, 지금 즉시 무기를 버리고-"

 

순간, 탕하는 소리와 함께 나의 앞에 방패를 들고있던 경관이 움찔했다.

자세히보니 정확히 나의 머리를 조준한 듯 방패에 총알이 박혀있었다. 만약 그 방패가 없었다면, 나는 이자리에서 즉사했을 것이다.

 

그 냉혹한 카시마 과장이 저리도 허둥댈 정도라는 것이 느껴졌다.

 

"시끄러! 이대로 투항해봤자 우린 변하는게 없다고!!"

 

레플리칸트의 우두머리격으로 보이는 녀석이 앞으로 나와 외쳤다.

 

"우리들도 사람이야! 우리들도 인간이라고!! 왜 우리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드는건데?!"

"맞아!" / "그렇다고!" / "흐흑..."

"나는 그저 프로듀서에게 사랑받고 싶었을 뿐이라고! 내 이름은 번호 따위가 아니야! 내 이름은-"

 

[푸-슉]

 

순간 리더격으로 보인 그녀가 피를 흩뿌리며 쓰러졌고, 소위 카타기리 레플리칸트들이 권총으로 이쪽을 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방패를 들고있는 우리에게 피해가 가는 일은 없었고-

 

[푸-슉, 푸-슉, 푸-슉]

 

배치된 저격수들이 권총을 든 카타기리 레플리칸트들을 쏘는 조용한 총알소리만이 들려왔다.

이윽고, 레플리칸트들이 혼비백산하여 흩어졌다.

 

"진압해!!"

 

나의 명령에 일렬횡대로 서있던 경관들은 진압방패와 진압봉으로 레플리칸트들의 머리나 명치 같은 급소를 노리며 진압을 시작했다......

 

 

.

.

.

.

.

.

 

 

"후우......"

 

해가 뜨는 아침.

수용소의 운동장에 해당하는 곳에 서있는 나는 한숨을 쉬며 바닥을 보았다.

레플리칸트 시체들이 즐비한 그야말로 아수라장.

 

수십명의 경관들과 교도관들이 시체처리를 위해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진압에 성공하셨나보군요."

"카시마 과장......"

 

오른쪽 어깨에 붕대를 감고 등장한 그녀는 수용소를 한번 쳐다보았다.

 

"어깨는 괜찮으십니까?"

"몸이야 나으면 되니깐요."

 

그녀도 작게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레플리칸트들의 수를 줄이려고 일부러 폭동을 유도했다지만, 하마터면 역으로 당할뻔했네요."

"......"

"어쨌든 고생하셨습니다. 덕분에 폭동으로 인해 노동력이 거의 없던 어린 레플리칸트들을 처리할 '명분'을 얻을 수 있었으니깐요. 저 녀석들은 성장도 노화도 되지 않아서 여러모로 골치를 썩고 있었거든요. 그 놈의 국제인권단체가 뭔지......"

 

그렇다.

내가 일주일 전에 수용소에 간 이유.

그건 폭동진압을 위한 사전조사를 위한 것이었다.

 

"그럼 저도 이만 가보겠습니다. 저희 직원들의 피해상황을 점검해야하는지라."

 

그렇게 그녀는 유유히 내 곁을 떠나 수용소 안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나도 조용히 수용소 밖을 향해 걸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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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가의 말.

진짜 요즘에 글이 안 써진다는걸 경험 중입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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