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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즈 담당 프로듀서는 죽을 만큼 후회했다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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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0-30, 2016 23:46에 작성됨.

원작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 - 반다이 남코 엔터테인먼트/ A-1 Pictures

11월 22일.

346 프로덕션 아이돌과 제3 사무실.

프로듀서는 책상에 앉아 모니터의 시계를 보며, 초가 지날 때마다 깍지 낀 양손의 엄지를 맞부딪쳤다. 프로듀서는 그러면서 스케줄 시간이 오길 기다렸다. 그때 누가 문을 두드리며 사무실로 들어가길 청했다.

노크 소리는 두 번이었으므로 안면이 있는 사람. 프로듀서가 허가하자 치히로가 서류 봉투를 안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어라? 자료 벌써 다 만드셨어요?”
“네, 실질적으론 어제 다 처리했는데 오전엔 드리지 못해서요.”
“이런, 죄송합니다.”
프로듀서는 치히로가 건넨 서류를 살펴보았다. 쓱 한 번 훑어보아 필수 기입 항목을 체크. 완벽하게 채워져 있으므로 프로듀서는 서류를 책상에 올려놓았다.

“오전엔 어떻게 됐나요?”
치히로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치히로가 오전에 서류를 건네주지 못한 건 프로듀서가 오전에 보낸 일정 때문이다.

후타바 안즈 담당 프로듀서 징계 위원회.

치히로는 사내 인트라넷에서 징계 위원회 회의록을 열람할 수 있지만, 결과 공지는커녕 아직 회의록도 인트라넷에 올라오지 않았다. 그러므로 지금 346 내에서 결과를 아는 사람은 아직 소수다.

프로듀서는 팔짱을 끼곤 고개를 바짝 들어 천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니까 말이죠. 그게에…….”
프로듀서의 말이 길게 늘어졌다. 탐탁지 않아 하는 티가 물씬 나는 태도. 치히로는 그걸 보고 회의 분위기를 짐작했다.

“일단……. 최악의 사태는 면했어요.”
“그럼 징계는…….”
“징계는 받습니다. 감봉 처리로 끝났어요.”
프로듀서는 고개를 내려 치히로와 시선을 맞추었다. 치히로는 프로듀서의 시선을 맞고 주춤했다. 프로듀서의 시선에 끈적끈적한 피로가 묻어나왔기에.

프로듀서는 회의에서 오갔던 대화를 머릿속으로 회상하며 정리했다.

오전. 프로듀서는 회의실에 들어서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 346 중역 몇을 포함한 위원회 자리에서 가수 부서 부장과 예능 부서 부장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예상한바. 출석요구서에 적힌 위원회 구성 멤버에 그들의 이름이 있었다. 프로듀서는 최대한 평정을 유지한 채로 징계 위원회에 참석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예상한 대로 프로듀서를 향한 공세가 쏟아졌다. 개중엔 사무적인 추궁을 넘어선 것들도 있었다.

-346에는 비밀로 계약을 맺다니 무슨 생각입니까? 혹시 하나 더 맺은 건 아니겠죠? 뒤로 무언가 받아먹었다거나…….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걸 어떻게 믿죠?
가수 부서 부장이 능청스럽게 프로듀서를 쏘아붙인다.

-제가 말할 건 그 이상은 없다는 것뿐입니다.
어디까지나 징계 위원회였으므로 프로듀서는 의연하게 대처했다. 하지만 그런 태도에도 한계가 있는 법. 애초부터 프로듀서가 불리한 자리였으니, 프로듀서가 어찌 대처할 수 없는 위기가 찾아왔다.

-제가 아이돌 부서를 가만히 살펴봤습니다만……. 사실 나쁜 사람은 없다고 봐요. 그쪽 프로듀서가 열심히 하려다가 실수를 한 것이겠죠. 그는 유능해요. 암요. 유능하고말고요. 그가 없었으면 지금의 346 아이돌 부서가 없었을 거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유능하지요.
여태 조용했던 예능 부서 부장이 부드럽게 운을 떼었다. 마치 아이를 감싸면서 훈계하는 것처럼. 그러나 부드러움과 거리가 먼, 거친 뜻이 담긴 이야기가 부드러움의 끝자락에 질기게 달라붙었다.

-그래서,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말에 거무스름한 무언가가 피어오른다. 예능 부서 부장의 검은 꿍꿍이.

예능 부서 부장은 숨겼던 발톱을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상대를 방심시키고 나서 갑자기 목덜미를 채가는 야성의 수법. 물론, 이 자리에서 예능 부서 부장의 수상한 거동을 눈치채지 못한 이는 없다. 단지, 알더라도 제동을 걸지 않을 뿐이다.

프로듀서는 긴장하면서 예능 부서 부장이 발톱을 드러내길 기다렸다. 프로듀서의 목을 그을 날카로운 갈고리가 드디어 빛을 발한다.

-아이돌 부서 위에, 검수 부서를 하나 더 두고 싶습니다. 기존의 구조 위에 하나 더요.
예능 부서 부장은 선심을 쓰듯이 밝게 말했다. 반면 프로듀서의 얼굴은 어둡게 굳어졌다. 예능 부서 부장의 제안은 선심을 바탕으로 나온 게 아니다. 예능 부서 부장이 꺼낸 건 올가미였으니까.

-아이돌 부서가 346의 제동을 받지 않는다……. 그런 인식이 346에도 퍼져 있는 걸 아실 겁니다. 어쩔 수 없지요. 예능과 가수 부서에 비하면 신생 부서니까요. 그래서 구조를 개혁하자는 겁니다.
프로듀서는 말에 깔린 본심, 이야기에 숨겨진 가시를 살폈다. 예능 부서 부장의 말을 직설적으로 정리하면 이러하다. 아이돌 부서를 예능 부서가 조종하겠단 거다.

-물론, 어디까지나 기획 검수 용도입니다. 그 외의 용도는 말도 안 되죠! 구성은 믿을 만한 사람들로 채우면 되겠지요.
믿을 만한 사람이라……. 보나 마나 예능 부서 관련자겠지. 아니면 뒤로 연줄이 있는 자거나.

프로듀서는 입술을 깨물었다. 누가 봐도 일촉즉발 위기일발. 이걸 지금 쳐내지 못하면 아이돌 부서의 미래는 암울하다. 하지만 지금 프로듀서는 반박조차 할 수 없는 처지다. 지금 이 자리에서 예능 부서 부장의 말을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여러분, 발언해도 되겠습니까?
미시로 상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프로듀서는 여기까지 겪은 이야기를 간결하게 정리해서 치히로에게 전했다. 여기까진 막힘없이 설명했으나 문제는 이다음. 프로듀서는 혀를 한번 차고는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말을 이었다.

“상무님께서 절 변호해주셨어요. 그리고 결과, 아이돌 부서에 족쇄가 달리지 않게 되었지만 상무님도 저와 마찬가지로 감봉 처리를 받게 되셨습니다.”
프로듀서는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고개를 숙였다.

미시로 상무는 통괄 중역. 그런 그녀가 감봉 처분까지 받아가며 부하 직원의 실수를 감쌌다. 거기에……. 실상 감봉 처분으로만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안즈 담당 프로듀서의 실책을 자기 이름으로 감쌌으니, 임원들 사이에선 여러 말이 오갈 테고 그것이 곧 견제로 이어질 것이다. 가뜩이나 346에선 각 부서 간의 알력 다툼으로 인해 보이지 않는 발길질이 성행하고 있는데, 상무가 아이돌 부서를 감싸 방패막이가 된 것이다.

“면목이 없습니다.”
프로듀서는 입맛을 씁쓸하게 다셨다. 혀에 쓴맛이 몰려든다. 정신적인 피로가 몰려왔다.

“상무님은, 확신을 가진 것엔 투자를 아끼지 않는 분이니까요. 그분께선 합당하다고 생각한 일을 하신 것일 테니 너무 풀 죽지 마세요.”
치히로는 책상에 스테미너 드링크를 올렸다.

“지금은 기운 내서 보은하는 걸 생각해요!”
“오오, 감사합니다!”
프로듀서는 뚜껑을 따고 내용물을 섭취했다. 드링크가 목을 건너 프로듀서의 위장에 직행. 위장이 시원해지며 위를 중심으로 기운이 넘치기 시작했다. 피로가 순식간에 날아갔다! 프로듀서는 낯빛을 밝히곤 치히로에게 다시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치히로가 돌아간 직후에…….

의자에 앉은 채로 축 늘어졌다.

“아아, 육체는 회복되었지만 정신이 문제구나.”
프로듀서는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프로듀서가 기다리던 시간이 왔다. 몸가짐을 가다듬고 시간에 맞춰 핸드폰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을 기동.

프로듀서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어느 채팅방 창을 띄웠다. 상시 접속 중인 채팅방. 그곳의 멤버는 이 방이 개설됐을 당시와 변함없다. 세상에서 단 3명만 들어올 수 있는 암호화된 공간. 프로듀서는 그곳에 메시지를 올렸다.

-어땠어?
그리고 몇 초 지나지 않아 다른 사람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예상대로야. 여태 그래왔듯이 적은 346 내부에 있었어. 예능 부서에서 법무팀과 계약팀을 움직였다. 게다가 그쪽 부장이 후타바 가에 가느다란 연줄이 있는 모양이야. 대단한 건 아니지만, 작은 정보를 흘릴 법한 연줄이.
마치 미리 준비한 것 같은 장문의 문장이 채팅방에 한 번에 올라왔다.

이어 문서파일과 사진 파일이 첨부파일로 올라왔다. 프로듀서는 그것들을 다운받아 살펴보았다. 전부 열람하고 프로듀서가 내린 결론은 상대가 보낸 메시지 내용과 같다.

프로듀서는 생각을 문자로 구성해 채팅방에 올렸다. 관련 이야기가 채팅방에 한참을 오간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화제가 길어진다. 꼬리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자료를 보낸 이가 프로듀서에게 질문한다.

-이쪽은 보류. 우선은 후타바부터 어떻게 해야 해. 이쪽이 더 급해.
프로듀서가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자 이번엔 다른 이가 프로듀서에게 질문한다. 이것 역시 기다렸다는 듯이 잰 듯한 타이밍에 곧바로 올라왔다. 프로듀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파악했는지.

-후타바를 어떻게 할 생각은 있어?
프로듀서는 메시지를 읽곤 입술을 조금 씹었다. 약 5초 동안 생각에 잠긴 후에 프로듀서가 답장을 보낸다.

-무슨 뜻이야?
-말 그대로야. 네가 후타바 건을 어떻게 처리하고 싶으냐. 그거지.
-되도록 신중하게 갈 생각이야.
메시지를 입력하는 와중 괜히 초조해진다. 프로듀서는 핸드폰 케이스 프레임을 검지로 세게 문질렀다.

-신중하게 가는 건 찬성이야. 후타바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니까. 내가 덤벼도 어떻게 될 거란 장담은 못 해. 내가 궁금한 건 이거야. 왜 신중하게 가려고 하는지.
-안즈를 위해서지.
-정말이냐? 네 말에 정말 한 점 거짓도 없어? 이게 전략을 바탕으로 신중하게 내린 결론이면 군말 않고 지지해주마. 하지만 그게 아니라 다른 이유로 그러는 거면 난 반대할 거다.
픽셀로 이루어진 딱딱한 문자에서 질책이 배어 나온다. 액정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 프로듀서의 눈을 통해 프로듀서의 속마음을 떠보고, 엿보려고 한다. 단순한 문장에서 이렇게 서늘한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건, 오래 알고 지낸 상대라서 그런 것이리라.

프로듀서가 대답을 망설이자 채팅방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프로듀서가 대답하거나, 얼린 장본인이 녹이는 수밖에 없다.

프로듀서는 손을 액정에 대었다 떼길 반복했다. 뭐라 대답해야 할까. 결국 프로듀서보다 먼저 상대가 말을 이었다.

-우리가 너를 몇 년이나 알고 지냈다고 생각하는 거지? 누구나 감정에 휩쓸리면 판단력이 흐려지기 마련이지. 넌 특히나 그래. 그게 너의 약점이야. 그 아이에게 정이 많이 들어서 그런 거냐? 그렇다면 넌 지금 도가 지나치게 이입했어.
프로듀서는 묵묵히 메시지를 읽었다.

-네가 갖고 싶어 했던 걸 다른 사람도 갖고 싶을 거란 보장은 없다. 자기만족은 네 자유지만, 타인을 통한 대리만족만은 하지 마. 그 아이를 만나기 전까지 너는 그걸 경계하고 있었다. 그것만은 잊지 마라.
겨우 문자의 나열이 프로듀서의 정곡을 찔렀다. 이렇게까지 엉망진창으로 꿰뚫렸는데 입을 다물고만 있을 순 없다. 적어도 비명이라도 흘려야 하는 게 예의다. 프로듀서는 떨떠름하게 문자판을 두드렸다.

-오늘 이야기 주제는 달성했으니까 이제 그만하자.

이후 채팅방 주제는 심각한 주제에서 벗어나 가벼운 신변잡기로 이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로그가 뜸해지더니 이내 동결되었다. 프로듀서는 채팅방 창을 닫았다.

머릿속이 어지럽게 빙글빙글 돌아간다. 프로듀서는 책상 의자를 빼서 공간을 만들고, 앉은 채로 의자를 빙글빙글 돌렸다. 그렇게 의자가 몇 바퀴 돌다가 멈췄다.

머리가 도는 반대 방향으로 돌았건만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하다. 프로듀서는 의자를 다시 책상에 맞추고 핸드폰 시계를 체크했다.

다음 스케줄까지 시간이 남았으므로 치히로가 건네준 자료를 정리했다. 자료를 읽으며 종이를 몇 장 넘기고 시간을 체크. 다음 스케줄로 들어가기에 딱 좋은 시간이 프로듀서를 맞이했다.

프로듀서는 핸드폰 전화 애플리케이션을 켰다. 그의 손은 다이얼 페이지를 벗어나 곧바로 주소록으로 넘어갔다. 프로듀서의 목표는 얼마 전에 받은 명함에 적혀 있던 번호.

명함의 주인이 한 번 통화하고 말 상대가 아니기에 주소록에 저장했다. 실제로 이번이 두 번째로 하는 통화다. 저번 통화는 오늘 통화 약속을 잡기 위한 짧은 통화였다.

프로듀서는 전화 버튼을 눌렀다. 벨 소리가 몇 번 울리고 핸드폰 내부에 저장된 음원과는 이질적인, 탁 트인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다. 상대방 핸드폰에 있는 마이크와 연결된 소리다. 프로듀서는 핸드폰 스피커를 귀에 갖다 대었다. 통화개시.

“여보세요.”
프로듀서가 주문처럼 말을 건넨다.

-여보세요.
상대방도 똑같이 대꾸한다.
회선이 연결된 걸 확인하자 프로듀서가 이야기를 이었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오늘 이 시간 약속이었죠? 전화 드렸습니다.”
-네,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답니다. 딱 맞는 시간에 전화 주셨네요.
부드럽고 나긋나긋한 목소리. 전자신호로 변환되는 과정에서 생생함을 조금 잃었지만 목소리에 담긴 포근함은 여전했다. 목소리의 주인은 안즈의 교육 담당. 프로듀서는 오늘 안즈의 교육 담당과 통화 약속을 잡았다.

“시간에 엄격한 직업이니까요.”
-후후, 그렇군요. 사회인으로서 좋은 자세입니다.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스케줄이 모호해서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어쩔 수 없죠.”
상대는 안즈의 교육 담당이라는 직책 외에 국제 영업부 본부장이란 직책도 맡고 있다. 아니, 오히려 지금은 그쪽이 메인일 테지.

-후후, 감사합니다. 그럼 호의를 받아들여 이야기를 진행해도 될까요?
교육 담당의 목소리가 조금 변했다. 전에 직접 만나 이야기했을 때처럼. 부드러움 속에 딱딱한 알갱이가 하나둘, 끼어들기 시작했다.

-보고 결과가 나왔습니다. 아가씨 부모님께서는 여전히 강경하게 나가고 싶어 하십니다. 어지간히도 안즈 아가씨를 다시 본가로 데려오고 싶어지신 거겠죠. 안즈 아가씨의 가능성을 다시 확인하셨으니까 당연한 반응입니다.
안즈는 단기간에 아이돌 업계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안즈의 재능은 평범한 수준이 아니다.

-그 재능이 당연히 쓰여야 할 곳이 있다, 고 아가씨 부모님께서는 그렇게 생각하십니다.
지금 이야기를 안즈가 듣는다면 또 질색할 테지. 안즈를 내쫓은 건 다름 아닌 안즈의 부모니까.

-그분들은 완고하시니까요. 생각을 바꾸시진 않으실 겁니다.
“그렇군요. 저희 입장에선 곤란한 이야기네요…….”
-마음의 준비를 해두셔야 할 겁니다.

마음의 준비. 후타바와 전면전.
하지만 프로듀서는…….

“그럴 일이 없게, 교섭하고 싶습니다. 그쪽의 요구와 이쪽의 입장을 최대한 조율하고 싶습니다.”
상대편에서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조용한 숨소리 몇 개만이 휴대폰과 휴대폰 사이를 오갔다.

-그렇죠, 이게 당연한 반응이고, 평범한 반응이죠. 하지만…….
스피커 너머 교육 담당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조금 실망이네요.
“무슨 말씀이신지…….”
-안즈 아가씨께서 후타바 본가를 싫어하시는 건 알고 계시잖아요?
“그래도 자기네 집안하고 싸우는 건 안즈한테 너무 가혹합니다. 되도록…….”
-되도록……. 뭐죠?
수화기 너머 목소리에 노이즈가 실렸다. 짜증인가 아니면 실망의 기색인가……. 그 어떤 것이든 개인적인 감정이 실린 건 확실하다.

“안즈와 후바타가 싸우는 건 막고 싶어요.”
-재밌는 말씀을 하시네요. 전에 저보고 프로듀서 씨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나요? 프로듀서 씨는 안즈 아가씨의 이해자이며 동반자라고.
전에 프로듀서는 보란 듯이 당당하게 교육 담당에게 그렇게 말했다.

-제3의 선택지는 없습니다. 후타바……. 아가씨의 부모님은 물품을 받느냐 마느냐 여부에만 관심을 가지고 계시죠.
교육 담당은 여전히 노이즈 섞인 목소리로, 일부러 어조를 세게 하여 발음하였다. 특히 ‘물품’ 부분에서.

프로듀서는 그 말에 움찔거렸지만 그래도 속을 꾹 눌렀다. 프로듀서를 도발하려는 목적이었다면 실패했다. 하지만…….
-후타바에선 이미 당신의 신상정보를 모두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안즈 아가씨를 위해 후타바 가에 방문한 그날부터.
도발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346에서 마셨던 커피 맛이 잊히질 않네요. 굴곡진 인생을 겪은 사람만 낼 수 있는 씁쓸한 맛, 씁쓸한 향. 이런 건 정말 바닥을 굴러본 사람만이 낼 수 있는 맛이죠. 시설 경험이 녹아든 건가요?
프로듀서는 자기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이가 갈리는 소리가 핸드폰 마이크에 흡수되었다. 소리를 확인한 교육 담당은 답례로 조그마한 숨소리를 흘려보냈다. 풋, 하고.

-지금 당신은……. 안즈 아가씨에게서 무엇을 보고 계시죠? 아니, 정확히……. 당신은 안즈 아가씨에게 뭘 끼워 넣으려고 하는 겁니까?
도발이 끝났다. 교육 담당의 목소리에서 감정이 빠져나갔다. 그러나 프로듀서는 교육 담당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교육 담당도 프로듀서의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는지 간지러운 어투로 말을 이었다.

-이런, 쓸데없이 수다를 떨고 말았네요. 실례했습니다. 후후……. 그럼 용건을 끝까지 전하겠습니다. 형식상으로나마, 아가씨 부모님께서 프로듀서 씨를 뵙고 싶어 하십니다.
“다른 선택지는…….”
-없어요. 이런 자리를 왜 마련하는지 입장을 반대로 봐주시길.
“나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전해드리죠. 장소와 날짜는 나중에 메일로 넣어드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전화 종료 알림 소리가 프로듀서의 귀에 울렸다. 핸드폰 화면이 점멸하며 전화 애플리케이션이 꺼졌다. 프로듀서는 핸드폰을 든 손을 힘없이 내렸다. 손이 마치 시계추처럼 의자 근처를 맴돌았다.

“아니야……. 그런 게 아니야……. 이건 안즈를 위해서야……. 나는……. 그래서…….”
프로듀서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프로듀서의 손이 책상에 올라간 건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 프로듀서는 핸드폰을 책상에 올려놓고 핸드폰 시계만 응시했다. 다음 스케줄을 위해. 초가 지나고 분이 지나고 시간이 지난다. 스케줄 시간이 다가오자 프로듀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슬슬 안즈를 데리러 갈 시간이다.

-
라디오 방송실을 살펴보자.

현장은 외부 잡음과 차단된 라디오 부스. 부스 안에는 MC와 게스트가 앉아 떠드는 테이블과 그 위에 올라간 작은 간식거리와 음료, 그리고 마이크가 존재한다. 마이크에 연결된 선은 부스 밖의 음향 장비와 컴퓨터에 연결되고, 거기서 나온 선이 다시 외부 회선으로 연결된다. 외부 회선을 통해 송신소로 나가면, 라디오 현장의 소리가 세상 밖으로 발신된다.

라디오는 소리를 전파에 실어 송출하기만 하는 매체여서 멀티미디어 매체에 비하면 인기가 적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랑하는 이들이 있어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과거 라디오 세대뿐 아니라 요즘 세대에도 라디오 애청자들이 존재한다.

그들이 라디오 방송을 청취하는 이유는, 원인은 라디오가 완전히 멸망할 때까지 새로운 팬을 하나둘 끌어모으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으니까. 그들은 바로 스타의 팬. 좋아하는 사람이 라디오 방송에 나오면 아무리 사소한 방송이라도 채널을 열고 소리를 귀에 담는다.

라디오의 장점은 소리만 나오는 것. 어떤 이는 운전하면서, 어떤 이는 낚시를 하면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벗 삼아 지루한 작업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그리고 오늘, 어느 누군가의 지루한 작업에 활기를 불어놓을 사람은 바로…….

“안녕 냐~ 청취자들 다 잘 지냈어? 오늘도 그 시간이 왔어 냐! 미쿠가 요즘 주목받는 아이돌과 함께 손수 만들어가는 방송! 미쿠냥의 샤이니 넘버즈! 오늘 미쿠와 함께할 게스트는 바로!”
“하아……. 끝났지? 이제 집에 가도 돼?”
“뭐라는 겨!”
미쿠와 안즈.

안즈는 테이블에 뺨을 밀착한 채로, 미쿠는 그런 안즈에게 (청취자들은 못 볼 텐데도) 손을 튕기며 태클을 걸었다. 화면은 보이지 않지만 미쿠의 열의만은 마이크를 통해 전해졌을 테다.

오늘 안즈는 미쿠가 고정 MC로 있는 라디오 방송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요즘 이름을 날리는 아이돌을 초대해 청취자들이 보내주는 사연을 읽거나 특정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는 방송이다. 안즈는 오늘을 포함해 방송에 총 2회 출연하기로 계약했다.

“자자, 안즈 쨩, 오늘 방송에 출연한 소감이 어때?”
“음……. 집에 가도 돼?”
“그 개그는 됐으니까 냐!”
“응, 과자가 맛있구나……. 하고.”
“출연 소감이 아니잖아 냥!”
방송은 이런 느낌으로 진행. 물론 토크 흐름은 적절하게 조절해서. 기본적으로 만담 풍의 유쾌한 분위기라 그런지 청취 수가 제법 높았다. 방송은 물 흐르듯 흘러가 막힌 곳 없이 끝까지 진행되었다.

진행이 끝나자 부스실의 문이 열리고 방송 PD와 몇몇 스태프가 밝은 얼굴로 안즈와 미쿠에게 노고를 치하했다. 오늘 방송은 성공이라는 모양이다.

안즈와 미쿠는 부스에서 나와 휴게실로 향했다. 안즈가 휴게실로 향해서 미쿠가 따라간 것인데, 안즈는 오늘 일이 모두 끝나서 프로듀서가 데리러 오길 기다리는 거고, 미쿠는 일이 남아있으나 여유가 있어서 안즈를 따라갔다.

“와, 여기 미쳤네. 음료수 사이에 생선 캔을 팔고 있어.”
안즈는 자판기 메뉴를 둘러보면서 말했다.
“한번 뽑아볼까?”
안즈가 호기심에 말하자 미쿠는 고개를 필사적으로 붕붕 가로저었다.

“농담이야. 여기서 이런 걸 사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지. 근데 왜 그렇게 필사적이야? 생선 싫어해?”
“그, 그럴 리가 없잖냥!”
안즈는 복숭아 소다를, 미쿠는 오렌지 주스를 뽑았다.
안즈는 음료수를 홀짝거리고, 미쿠는 단번에 들이킨다. 입에 여유가 남은 미쿠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저기, 말이야. 냥.”
“뭔데?”
“요즘 어때?”
“그냥 그렇지.”
“아이돌 활동은 어때? 냐.”
“음……. 재밌어. 할 만해.”
“그렇구나. 냐.”
미쿠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물어볼 거 있으면 뜸 안 들이고, 그냥 물어봐도 될 텐데.”
“앗, 그게, 그냥…….”
미쿠가 당황하는 사이에 안즈는 캔을 멀리 떨어진 쓰레기통에 던졌다. 안즈가 던진 캔이 쓰레기통 정중앙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미쿠도 안즈에 이어 캔을 던졌다. 미쿠가 던진 건 쓰레기통 모서리를 맞아 튕겨 나갈 뻔했다가 아슬아슬하게 들어갔다.

“이야기 들었어. 괜찮아? 냐.”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지만 후타바 가에 관한 이야기겠지.
“상당히 짜증 나.”
안즈는 곧이곧대로 대답했다.

“미쿠 쨩은 부모님하고 사이좋아?”
“응, 요즘도 기숙사에서 시간 날 때마다 연락하고 있어.”
“뭐, 그게 보통이겠지.”
안즈는 어깨를 으쓱였다.

“저기, 우리 집은 안즈 쨩 집이랑 달라서 안즈 쨩의 마음을 다 알 순 없지만, 그래도 혹시 곤란한 일이 있으면 말해줘. 적어도 이야기 상대라도 되어주고 싶어.”
미쿠가 한 걸음 안즈에게 다가온다. 이미 가까이 있는데도 팔이 닿기 직전까지 가까워졌다.
“안즈 쨩은 미쿠의 은인이니까.”
미쿠의 진심이 전해진다.

“그리고, 실은 C5가 결성되었을 때 P쨩이 부탁한 것도 있거든. 안즈 쨩을 잘 부탁한다고. C5는 해체됐지만 그래도 같은 사무소 동료로서 안즈 쨩의 힘이 되고 싶어.”
안즈는 생각에 잠겼다. 미쿠가 이 상황에서 과연 어떤 도움이 될까. 그건 아마 미쿠 자신도 알고 있을 것이다. 미쿠는 인기 아이돌이지만 안즈의 집안 사정에 어떠한 간섭도 할 수 없다는 걸. 그래서 이야기 상대를 자처하는 것이다. 적어도 마음의 부담이라도 덜라면서.

지금 사태의 경중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행위지만, 안즈는 지금 미쿠의 말이 낸 효과를 체감했다. 미쿠의 존재감이 왠지 모르게 든든하게 느껴진다.

C5 활동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미쿠는 주변 사람을 잘 챙기는 타입 같다. 그야말로 리더의 인재상이다.

안즈는 생각에서 빠져나와
“고마워.”
감사를 입에 담았다. 그리고 동시에,
“일단은 프로듀서가 어떻게든 해줄 것 같고, 나도 호락호락 그만둘 생각은 없으니까 말이야. 아마 괜찮을 거야.”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미쿠는 그런 안즈를 보고 뭐라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렇지만 안즈의 표정과 언동은 차분해 보였으므로 마음에 쌓았던 걱정을 조금 덜었다. 둘은 그렇게 휴게실에서 잡담을 나누며 프로듀서를 기다렸다. 오래 지나지 않아 프로듀서의 구두 소리가 둘을 불렀다.

프로듀서와 합류한 안즈는 그대로 프로듀서와 동행. 미쿠는 프로듀서와 인사를 나누고 현장으로 직행. 미쿠와 프로듀서는 오래 지낸 친구처럼 친근함을 담아, 농담도 섞어가며 인사를 나누었다. 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안즈와 프로듀서는 사무소로 돌아가기 위해 차에 몸을 실었다. 안즈는 차 뒷좌석에 궁둥이를 붙이고 쓰러지듯이 옆으로 누웠다. 차에 둔 작은 쿠션이 안즈의 머리를 딱 좋게 받아준다.
 
프로듀서가 운전석에서 뒷좌석으로 주먹 쥔 손을 뻗었다. 프로듀서가 손을 펼치자 골든 캔디가 낙하한다. 안즈는 그걸 간단하게 잡았다.

“어라? 골든 캔디잖아. 오늘 일이 그렇게 대단한 일이었나?”
“요즘 열심히 활동한 상이야.”
“그래? 그럼 사양 않고.”
안즈는 포장지를 풀어 사탕을 입에 넣었다.

“목에 걸리지 않게 조심해.”
“으응, 알았어.”
안즈는 혀로 사탕을 감쌌다. 그러면서 포장지의 글귀를 눈으로 읽었다.

-흐린 하늘에도 별은 틀림없이 그곳에 있어.

골든 캔디에 적힌 글귀의 정체는 바로 노래 가사. 이 가사에 멜로디를 붙이면 과연 어떤 노래가 나올까……. 안즈는 시험 삼아 가사를 입에 올리려다 말았다. 아직 사탕이 입에 남아있으니까. 안즈는 포장지를 고이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엔진 소리에 놀라 달아나는 것처럼 창밖 풍경이 움직인다. 안즈는 그걸 가만히 지켜본다. 풍경이 여러 번 바뀌고 안즈 입 안의 사탕이 녹아 사라졌을 때쯤에 프로듀서가 안즈에게 말을 걸었다.

“있잖아, 얼마 후에 너희 부모님하고 만나기로 했어.”
“그렇구나.”
안즈의 목소리 톤이 약간 낮아졌다. 텐션 다운.
“걱정하지 마. 네가 아이돌을 그만두게 하지 않을 거니까.”
프로듀서가 안즈를 달랜다.

“너는 정말 대단한 녀석이니까 안 놓아줄 거야. 후후…….”
조금 장난스럽게 발언. 효과는 미미했으나 안즈가 뺨을 긁적일 정도는 되었다.

“칭찬해주는 건 좋지만 정말 괜찮을까? 믿어도 돼?”
안즈가 한 마디 돌려준다.
“음……. 자신 있게 대답하고 싶지만, 솔직히 말해서 불안하긴 해.”
프로듀서는 차 속도를 줄였다. 도로 상황이 조금 혼잡한가 보다.

“그래도 이거 하나는 진짜 자신 있어.”
차에 다시 속도가 붙었다. 안즈는 차가 가속하는 것에 가슴이 조금 두근거리는 걸 느끼며 프로듀서의 말을 기다렸다.

“너는 정말 대단한 녀석이니까 안 놓아줄 거야.”
“……그거, 농담 아니었어?”
“그냥 그게 자신 있다는 거지.”
안즈는 조금 신음하면서 입맛을 다셨다. 프로듀서의 말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아까 말인데, 나하고 미쿠하고 친하게 인사했잖아.”
“그렇지.”
“난 미쿠하고 그렇게 인사하는 날이 이제 영영 오지 않을 거로 생각했어.”
C.M.Y.K. 해산 이후 프로듀서와 미쿠의 사이는 서먹해졌다.

“하지만 그런 날이 왔어. 설마 했는데 말이야.”
차가 신호에 맞춰 멈춰 섰다. 프로듀서는 그 타이밍에 고개를 뒷좌석으로 돌렸다.

“다 네 덕분이야. 내가 하지 못한 걸 네가 해낸 거지.”
프로듀서는 이를 드러내면서 웃었다. 진심으로 기쁜 티가 나는, 환한 웃음이었다.
신호가 바뀌고 프로듀서의 고개가 다시 앞으로 향한다.

“너라면 정말 뭐든지 해낼 것 같아. 내가 하지 못하는 모든 걸 말이야.”
“조금 부끄럽네.”
안즈는 쿠션에 얼굴을 묻고 눈을 감았다.

조금 전에 본 프로듀서의 얼굴이 눈꺼풀 뒤 암막에 떠오른다. 차가 요람처럼 기분 좋게 흔들리며, 수면욕이 안즈의 눈가를 살며시 문지른다. 안즈는 프로듀서의 웃는 얼굴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는 감상을 가슴 한구석에 남겨두고, 의식을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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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이후로 속도를 올리려고 했으나... 실패했습니다. 으음... 아무튼 다시 속도를 붙여봐야겠네요.
마지막 부분이 저번 화랑 비슷한 패턴이라서 고칠까 했는데 문장이 마음에 들게 나와서 놔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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