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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된 리츠코 (생일팬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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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23, 2013 05:53에 작성됨.

그날은 재수가 없었다-라고 리츠코는 생각했다.
잠시 안경을 책상 위에 벗어놨다가 세면실에 얼굴을 씻으러 갔을 뿐이다. 그리고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나오는데 흐릿한 시야 너머에 익숙한 색의 정장을 입은 남성이 어째서인지 자신의 책상 앞에 서있었다. 

“무슨 일이시죠?”

흐릿한 시야지만 희미하게 보이는 윤곽으로 765프로덕션의 유일한 남자프로듀서인 P인줄 알아보고서 리츠코가 물었다. P는 머리를 긁적이며 무언가를 들었다.

“그게, 무심코 서류를 내려놓다가 실수해서....”

리츠코가 가까이 가서 보니 그것은 자신의 안경이었다. 어떻게 한 것인지 가운데 부분이 뚝하고 부러져있었다.

“곤란하네요. 예비용도 없는데.”

리츠코가 한숨을 쉬다가 가까이에서 P의 얼굴을 보았다. 얼굴까지 빨개진 그는 굉장히 미안해하는 표정이었다.

“미안.”
“하아, 어쩔 수 없죠. 일부러 그러신 것도 아니고. 마침 퇴근시간이 되었으니 안경이나 사러가야겠네요.”
“그럼 같이 갈게. 잘 안보이니 돌아다니기 위험하잖아. 거기다 내 잘못이고.”
“뭐,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신세 좀 질게요.”

둘은 남은 서류를 정리하고서 같이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시야가 불안해 일을 하는데 힘들었지만, 아예 안 보이는 것이 아니라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서류를 마치고 나가는 것이 문제였다. 불안한 시야는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 비틀거리게 만들어 넘어질 뻔했다.
다행히 그것을 옆에서 P가 잡아주었다.

“앞이 안 보여서 힘들지? 나도 시력이 나쁘니깐 그 기분 잘 알아.”
“하아,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원....”
“안경을 맞출 때까지는 나에게 기대.”

리츠코는 그 말에 부끄러워하다가 조심스럽게 상대에게 팔짱을 꼈다.

“그럼 안경을 맞출 때까지에요.”
“그, 그래.”

자신이 권했지만 팔에서 느껴지는 리츠코의 부드러움에 P는 당황하면서도 멀쩡한 척 하기 위해 태연한 척 걸어갔다. 하지만 심장만은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심장이 무지막지하게 뛴다. 전력질주를 끝낸 후처럼 괴롭게 뛰는 심장소리가 리츠코에게 들리지 않기를 바라며 프로듀서는 걸어간다. 그것은 리츠코도 마찬가지였다.
흐릿하지만 아직 저녁은 밝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완연한 여름이다. 낮의 열기가 밖으로 나오자 자신들을 감싼다. 세상이 이렇게 불안했던가?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으니 걷는 것이 불안했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지탱해주는 옆의 이 남자가 너무나 든든했다.

“자주 가는 안경점 있어?”

P가 묻자 리츠코는 고개를 저었다. 시야를 잡으려다보니 저절로 인상을 쓰게 되었다.

“원래 안경을 맞췄던 곳이 사라졌어요. 동네에서 맞춘 건데.”
“그럼 내가 가는 곳은 어때?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분이라 잘해주실 거야.”
“그럼 거기로 가죠.”

리츠코는 대답하면서 더욱 그에게 기대며 팔짱을 낀 팔에 힘을 주어 붙었다. 그러자 P의 몸이 견직 된 것처럼 딱딱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 앞이 잘 안 보여서 중심잡기가 힘들어서 말이죠.”
“하하, 잘 알고 있으니 얼마든지 붙어도 상관없어.”

P는 웃으며 말했지만 그 얼굴은 부끄러움에 식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후 둘은 살짝 어색한 침묵 속에 차에 탔다. 
둘을 태운 차는 묵묵히 목적지를 향해갔다. 그녀는 모르고 그만 아는 곳. 그녀는 어쩐지 앞도 보이지 않아 납치당해 끌려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옆의 있는 숙맥인 남성은 여성을 납치할 배짱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말이다.

“앞이 잘 보이지 않으니-”

문득 침묵 속에서 리츠코가 입을 열자 P는 그녀 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꼭 당신에게 납치당해 가는 것 같네요.”

그 말에 P는 작게 웃었다. 생각해보니 자신만 아는 곳에 앞도 제대로 못보는 그녀가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것이 맞았기 때문이다.

“그렇군. 나 같은 남자에게 납치당하는데 불안하지 않아?”

웃음기 어린 그 협박에 리츠코 또한 웃었다.

“후후, 절 어디로 데려가실 생각이시죠? 그보다 무엇이 목적인데요? 전 아직 부족한 신인프로듀서라 돈도 얼마 없다고요?”
“리츠코 정도의 여성은 굳이 돈이 아니라도 납치할 가치는 충분하다고.”
“헤에- 어떤 점에서요?”
“아름다운 여성으로서 말이지. 그 아름다움은 납치해서 집안에 꼭꼭 숨겨두고 싶은 엄청난 가치의 보물이라고.”

거기까지 말하며 프로듀서는 웃으며 살짝 옆을 보았지만 리츠코는 별다른 반발을 못하고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푹숙였다. 어쩐지 평소의 그녀와는 다른 반응이었다. 평소라면 ‘하아,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가요?’라던가 하면서 설교 같은 걸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리츠코는 어쩐지 소녀 같이 부끄러워한다. 그러고 보니 리츠코는 소녀다. 평소에는 프로듀서로서 어려보이는 자신의 외모를 일부러 나이 들어보이게 하려고 화장하거나, 엄한 모습만 보여 잊고 있지만 그녀는 사실 아직 10대인 소녀다. 내일이면 생일을 맞아 술도 마실 수 있지만 말이다.
그 순간 P는 깨달았다. 내일은 리츠코의 생일이다. 이제 정식으로 성인이 되어 술도 마시고, 결혼도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성인. 
그것을 깨달은 순간 어쩐지 그녀와 좁은 한 공간에 있는 것이 갑자기 덥게 느껴졌다. 좋은 여성이고 호감을 느끼고 있는 상대다. 하지만 지금 타이밍에서 이렇게 의식할 줄은 몰랐다.

“이, 이상한 소리 하지 마세요, 프로듀서! 정말, 변태....”
“변, 변태라 들을 부분은 없지 않아?”

어쩐지 이해할 수 없는 매도에 자신도 얼굴을 붉히며 반박하자 리츠코가 시야가 맞지 않는 시선으로 억지로 노려보았다.

“여성을 아,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납치하는 게 변태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요? 그보다 납치해서 어쩌려고요?”
“그, 그게.... 글쎄....”
“흥, 거봐요.”

리츠코는 그리 말하고서 창밖을 본다. 화난 듯 보이지만 그 얼굴은 귀까지 새빨개져 있었다. P는 그것을 운전을 핑계로 보지 않고 앞만 보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변태라도 단순히 예쁘거나 아름답단 이유만으로 납치하거나 하지는 않아.”
“하아, 무슨 말인가요?”

어처구니 없다는 듯 묻는 말에 P는 살짝 침을 삼켰다.

“......상대가 리츠코라면 그런 마음은 들지 모르지만.”

순간 그 대답이 나오고서 차안은 침묵에 감싸였다. 그 때 갑자기 P가 앞 좌석의 창문을 모두 열었다.

“그, 여름은 여름인가봐. 덥지?”
“그, 그러네요. 너무 더워요.”

둘은 그 말을 애써 무시하며 다른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 여름은 덥다. 하지만 어쩐지 지금은 무더위의 한낮보다 더 덥다. 리츠코는 일부러 손부채질까지 하며 땀을 식힌다. 차가 신호에 걸려 멈춘다. 그 때 프로듀서는 슬쩍 리츠코는 본다. 정장을 입고있지만 계절마다 미묘하게 다르다.
리츠코의 정장은 검은 바지에 하얀 와이셔츠. 마이는 덥기 때문에 입지 않는다. 상의는 속이 비치지 않도록 하얀 나시를 껴입는다. 하지만 바지는 겨울이나 봄보다 얇아 그 전보다는 다리의 윤곽이 더욱 나타나는 편이고, 하얀 와이셔츠도 나시가 닿지 않는 면적의 살색이 땀에 젖어 적날하게 드러난다. 거기다 위로 단추를 두 칸 풀어 살짝 가슴골이 눈에 띈다.
어쩐지 묘한 기분에 감싸여 P는 급히 시선을 돌렸다.

“무슨 일인가요?”

리츠코가 그 시선을 눈치챈 듯 물었다. P는 태연하게 되묻는다.

“뭐가?”
“저보고 갑자기 시선을 돌리셨잖아요.”
“기분탓이야.”
“정말인가요?”
“그렇다....”

옆을 보자 리츠코가 자신의 표정을 보기 위해서인지 얼굴을 가까이 데고 있었다. 안경을 안 쓴 리츠코는 상당한 미인이구나, 하는 감상이 먼저 떠올랐다. 그리고 그런 리츠코의 붉은 입술이 눈에 띈다. P는 슬그머니 시선을 돌려 앞을 본다.

“...니깐. 착각이야.”
“흐음-”

리츠코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무시했다. 지금 여기서 더 리츠코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봤다가는 실수할지도 모른다. 
신호가 바뀌어 차를 움직인다. 리츠코도 제대로 앉아 앞을 본다. 하지만 시야가 흐려 여전히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다.

“설마 안경을 핑계로 이상한 곳으로 가는 건 아니죠?”
“그런 거 아니거든?”
“그렇게 믿을게요.”

그러면서 말투는 전혀 믿지 않는 듯 했다. 하지만 옆을 보지 않은 P는 보지 못했다. 리츠코가 상당히 즐겁게 웃고 있었음을.
둘은 10분을 더 가서 P가 아는 안경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음, 저희 집에서는 거리가 제법 되는 곳 같네요. 안경을 쓰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그, 그래? 그럼 다른 곳으로 갈까?”
“아니, 됐어요. 안경점은 그리 자주 오는 곳도 아니고. 그럼 들어가죠.”

리츠코가 먼저 들어가고, 그 뒤를 따라 들어가던 P는 멈칫했다. 자신이 잘 아는 가게인 이곳은 결국 자신의 집에서 제일 가까운 곳이었다. 만일 오늘 리츠코가 가까운 자신의 집에 오라도 한다면-
그런 생각을 하다가 휙휙 고개를 젓는다.
그런 일은 있어선 안 된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아이를- 
...그럼 성인이니 괜찮지 않을까? 
알 수 없는 욕망과 싸우며 P는 안경점으로 들어갔다.
안경점에 들어가자 주인이 먼저 아는 척 인사를 해왔고, P는 정중히 인사를 했다. 그리고 리츠코의 안경을 맞추려 왔다고 하자 주인은 어째 묘한 시선으로 웃었다.

“헤에- 애인도 안경을 쓰는군. 안경도 커플로 맞출 생각인가?”
“애인이-”
“커플이면 특별할인가로 싸게 해줘야겠군.”
“이 가게 마음에 들어요, 달링.”
“쿨럭!”

부정하려던 리츠코가 곧장 자연스럽게 말을 바꾸어 자신을 부르자 P는 헛기침을 해버렸다. 그러고 보니 765의 경리도 맡고 있는 그녀는 돈에도 깐깐했다. 특별히 싸게 해준단 말에 바로 말을 바꾸는 리츠코는 보며 P는 어색하게 웃고 말았다.
잠시 후 둘은 가게에서 나왔다. 리츠코는 새로 맞춘 안경을 고쳐 쓰며 만족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

“근데 안경테는 그걸로 좋은 거야?”
“괜찮잖아요? 이러는 편이 커플로 보이고.”

안경테를 맞출 때 리츠코는 심하게 고민하더니, 슬쩍 P를 보고서 그와 같은 것을 골랐다. 그리고 만족할만한 할인가로 만면에 미소를 띄운 것이다.

“하아, 아이돌들이 뭐라 할지.”
“보통은 안경까지 세세하게 보지 않는 다고요? 문제는 본인들이지. 당당하게 굴면 아무도 몰라요.”
“그런가?”
“그렇다고요.”

리츠코의 잔신만만한 미소와 확답에 P도 그냥 넘어갔다. 

“근데 안경값을 내주시다니,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뭐, 나 때문에 망가진 거니 책임져야지.”
“그게 프로듀서의 잘못이라고만은 볼 수 없다고요. 그런 가벼운 서류로 그렇게 망가질 리가.......” 
“뭐, 그럴 때도 있는 거겠지. 신경 쓰지 말라고.”

P는 웃으며 말한 후 차의 문을 열어주다가 멈칫했다. 지금 차에 태우면 이대로 집에 보내줘야 할까?

“아, 여기 위치가 어떻게 되죠? 버스로 돌아가도 충분해요.”
“그럴 수는 없지. 여기까지 끌고온 건 나니깐 끝까지 책임지게 해줘.”
“정말, 너무 책임이란 말을 남용하지 말라고요. 누가 들으면 오해해요.”

리츠코의 말에 P는 웃다가 시계를 보는 척하며 말했다.

“우리 식사하러 가지 않을래? 저녁 때니 배고프잖아.”

저녁놀이 지는 하늘은 예쁜 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그런 하늘이 P의 안경에, 리츠코의 새로 맞추어 깨끗한 렌즈에 새겨지고 있었다.

“그러네요. 그럼 안경을 사준 보답으로 제가 살게요. 근처에 괜찮은 식당 아시는 곳 있으세요?”
“식사 값은 권한 내가.....”
“안 돼요. 너무 받기만 하는 건 부담 된다고요.”

단호한 그 태도에 P는 웃고서 이내 어깨를 으쓱했다. 리츠코의 성격이면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알았어. 그럼 자주 가는 곳으로 안내할게.”
“그렇다고 너무 싼 곳으로 안내하시면 안돼요?”
“뭐, 걱정 말라고. 가격에 신경쓰지 않고 최대한 맛있는 곳으로 안내 할테니.”

그러면서 P는 리츠코에게 차문을 열어주었고, 리츠코는 자연스럽게 그곳에 탔다. 조수석에 안경을 맞추고 본 곳은 생소한 동네였다. 

“그러고 보니 여기는 무슨 동네죠? 사무소에서 제법 먼 것 같은데.”
“내가 사는 그냥 평범한 동네야. 리츠코의 집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제법 멀 것 같네. 혹시 모르니 데려다줄게. 아, 이거 거절하지 말고.”

자신과 같은 단호한 말에 리츠코는 웃으며 감사를 표했다.

“알았어요. 그럼 호의에 감사히 응할게요.”

그러고서 리츠코는 주위를 자세히 보았다. 이곳이 P가 사는 동네. 사무소의 아무도 알지 못하는 장소를 자신만이 아는 것이다. 어쩐지 앞서간다는 생각에 미소가 지어진다.
P가 데려다 준 식당은 그리 비싼 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장담한대로 정말 맛있는 곳이었다.

“동네에 있는 식당 중에서 제일 많이 이용하는 곳이야.”
“확실히, 맛은 있네요.”

그리 평하면서 리츠코는 자신 몫의 음식들을 비어간다. 어쩐지 그 속도가 빠르게 느껴져 P는 초조함을 느껴버린다. 그것은 리츠코도 마찬가지였는지 먹는 속도가 느려진다. 그 때 P가 말을 건넨다. 최대한 먹는 속도를 늦추기 위해.

“프로듀서 일에는 많이 익숙해졌어?”
“뭐, 아직은 풋내기지만 처음보다는 많이 능숙해졌다고 생각해요.”
“류구코마치의 프로듀서가 풋내기여서는 곤란하지만.”
“그랬다가는 이오리에게 끌려 다닐 걸요?”
“100% 오렌지 주스만 사오게 되겠지.

둘은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한편 이야기의 주체가 된 이오리는 푸딩을 먹다가 재채기를 하며 투덜거리고 있었다.

“그래 뵈도 이오리는 귀여운 아이지만.”
“아직 중학생이라고요? 성격이 그래서 잊고 있지만 외형만 보면 그냥 귀여운 아이죠. 뭐, 사실 성격도 아이 답게 순수하지만요.”

리츠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P는 같은 나이의 사무소 아이에 대해 말한다.

“그에 비해 야요이는 성격도 겉모습도 너무 아이 같고, 미키는 성격과는 다르게 지나치게 몸매가 어른 같지.”
“15살에 그건 반칙이라고요.”

리츠코는 재능은 있지만 게으른 천재를 생각하며 투덜거렸다. 사실 P가 봤을 때는 리츠코가 질투할 정도로 몸매가 나쁘지는 않다. 오히려 리츠코의 몸매는 전직 아이돌인 만큼 지나치게 좋았다. 실제로 그녀는 그라비아 촬영도 손쉽게 해냈다.

“......어째 시선이 음흉하신대요?”
“기분 탓이야.”

P는 음식으로 시선을 주며 시치미를 뗐다. 이상하게 오늘은 미묘하게 의식하고 있다. 아마 앞으로 4시간이면 리츠코가 완전한 성인이 되기 때문인 듯 했다.

“앞으로 4시간인가.”
“네? 무슨 말씀이시죠?”
“흐음......”

P는 잠시 고민하다가 웃으며 다시 식사를 재개했다.

“별거 아니야. 아, 음식 식겠다. 빨리 먹어.”
“뭔가 의심스럽지만, 뭐, 그러죠.”

그러고 둘은 마저 식사를 끝냈다. 식사를 끝낸 후 둘은 밖으로 나왔다. 밖은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지며 어두워진 거리를 가게의 네온사이드와 같이 밝혀주고 있었다. 주홍빛 노을의 흔적은 희미하게 사라지며 별들이 그 자리를 서서히 차지하고 있었다.

“이 동네는 별이 잘 보이는 군요.”
“우리 동네의 자랑이야.”

그리 말하고서 P는 차에 시동을 걸려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건넨다.

“맞다, 혹시 영화보고 갈 생각 없어?”
“영화요?”
“근처에 괜찮은 자동차극장이 있거든.”

옛날에 영화에서 봤던 연인들이 차를 주차하고서 보던 곳을 상상하며 리츠코는 호기심어린 표정을 지었다.

“헤에, 그런 곳도 있군요. 옛날 영화에서만 봐서 지금은 없는 곳인 줄 알았는데.”
“뭐, 흔하지는 않지. 어때, 이 기회에 보는 건.”

리츠코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내일 일에만 지장이 없다면 말이죠.”
“좋았으!”
“네?”
“아, 아무것도 아니야.”

P는 손을 휙휙 저으면서 리츠코를 태우고 20분은 걸리는 거리에 있는 자동차극장에 갔다. 입구에서 표를 계산하고서 팝콘을 따로 사서 들어간 곳은 넓은 주차장에 큰 스크린이 있었다. 근처에는 제법 많은 수가 주차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차가 많네요.”
“옛날보다는 적은 거래. 아마 이곳도 얼마 안 돼서 추억으로 사라지겠지.”
“그전에 즐길 수 있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리츠코는 그리 말하면서 옆에서 들고 있던 팝콘을 집어먹었다. 영화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자막에 의지해 봐야했다. 창문을 열면 들리겠지만, 벌레가 들어와서 그럴 수 없었다. 슬쩍 옆을 보자 어째서인지 차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리츠코가 그것을 신경쓰자 P가 태연히 말한다.

“아, 저런 신경 쓰지 마. 원래 예전부터 영화가 아니라 저것을 목적으로 오는 사람들이 많았으니깐.”
“‘저것’이라면........?”

리츠코가 이해를 못하자 P는 슬쩍 리츠코의 반대편 어깨에 손을 얹고서 끌어당겼다.

“이런 거.”
“.......네!?”

그러자 리츠코가 화들짝 놀라며 가까워진 P의 시선에서 고개를 돌렸다.

“그, 그 이런 거라면 설마?” 

그리고 다시 시선을 돌린다. 흔들리는 차는 한 대가 아니었다. 리츠코는 빨개진 얼굴로 P를 보았다.

“서, 설마 당신도 이걸 노리고!”
“걱정마 아니니깐.”

간단하게 팔을 거두며 P가 부정하자 리츠코 쪽에서 황망한 얼굴로 ‘에?’하고 반응했다.

“단순히 이 자동차극장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어. 흔치 않은 기회니깐.”
“......그런가요.”

안심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한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끼면서 리츠코는 다시 P의 시선을 따라 영화를 본다. 하지만 아까처럼 집중을 하지 못한다. 영화를 다 보자 밤 9시가 넘어갔다.

“......이제 집으로 데려다 줄게.”

P는 그렇게 말하며 차에 시동을 건다. 어쩐지 그 목소리가 건조하면서 공허했다. 그 말에 리츠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차는 고요히 밤의 도로를 달린다. 리츠코의 집에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처음 가는 길을 P는 리츠코의 안내에 따라 헤매지 않고 간다.
신호에 걸렸을 때, P는 진지한 표정으로 리츠코에게 사과했다.

“미안.”
“안경 일이라면 괜찮아요.”
“그게 아니야.”

P의 말에 리츠코가 말하자, P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사과하는 건 다른 거야.”
“네?”

P는 잠시 묵묵히 앞을 보다가 서서히 입을 열었다.

“.......사실 오늘 리츠코는 좀 더 늦게 보내려 했어.”
“......어째서요?”

리츠코는 어쩐지 불안함을 느끼며 되묻는다. P는 힘겹게 천천히 입을 연다.

“2시간만 지나면 리츠코의 생일이니깐.”

이미 시간은 밤 10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가 자신의 생일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기쁘면서도 그의 발언이 어쩐지 불안했다.

“기, 기억해주셔서 감사해요.”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 아니었지만, 안경점에 도착했을 때 욕심이 났어.”

P의 말은 계속 되었다.

“너의 첫 성인의 날을 독점하자고.”
“......”

리츠코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듣고 있었다.

“제일 먼저 축하해주고, 성인이 된 너를 독점하며 갖고 싶었어. 같이 술도 마시면서 말이야.”

어쩐지 그의 목소리는 괴로워보였다. 자신을 믿고 따르는 여인을 배신했단 마음에 괴로운 듯 했다.

“오늘 저녁도, 자동차 극장도 시간을 끌기 위해서여서. 하지만.....”

그는 괴로운 시선으로 억지로 웃었다.

“흔들리는 차들을 불안하게 쳐다보는 널 보니깐 내가 몹쓸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영화가 끝나자마자 바로 집으로 데려다주려고 하는 거야.”

그는 슬쩍 리츠코는 보며 힘들어 보이는 미소를 유지한다.

“.....내가 더 나쁜 마음을 먹기 전에 말이야.”

소중한 사람을 상처 입혔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 그에게는 큰 죄책감으로 다가왔었다. 그 때문에 그는 시간을 벌기 위해 들렸던 자동차극장에서 곧장 리츠코의 집으로 향한 것이다.

“미안. 이런 한심하고 음흉한 남자라.”

그런 P의 말에 리츠코는 말없이 있었다. 그러다가 묵묵히 차를 출발시켰을 때, 슬쩍 그에게 부탁했다.

“다시 돌아가 주세요.”
“뭐?”
“안경점에 뭔가 두고 온 것 같아요. 돌아가 주세요.”
“지금 시간이면 안경점도 문 닫았어. 내일 내가 가져다주는 게....”
“돌아가 주세요.”

단호히 말하자 P는 놀라다가 차를 유턴해 돌렸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둘은 말이 없다. 하지만 어쩐지 둘 다 자신의 심장이 크게 뜀을 느끼고 있었다. 불 꺼진 안경점에 도착했을 때는 시간이 11시가 다 되어 간다. 

“문이 닫혔네요.”
“그렇다고 말했잖아.”

그 말에 핀잔을 하자, 리츠코는 P를 보다가 말한다.

“어쩔 수 없네요.”
“그럼 지금이라도.....”
“당신의 집으로 가죠.”
“뭐?”
“지금 집으로 가면 너무 시간이 늦는다고요. 그래서는 내일 피곤해서 일에 지장이 올 테니 당신의 집에서 재워주세요. 그 쪽이 낫겠어요.”

단호한 말. 하지만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P도 알고 있었다. 어떻게 할지 P는 고민했다. 리츠코를 슬쩍 보자 시선을 돌리고 있어 알 수 없었다. 그 때 P가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차안에 있는 리츠코에게 물었다.

“저 앞에 편의점에 갈 건데 같이 갈래? 자고 갈 거면 치약 같은 게 필요하잖아.”
“.....그렇죠.”

리츠코는 끄덕이며 어쩐지 긴장한 표정으로 차에서 내렸다. 둘은 편의점에 같이 들어가고서 쭈뼛거리며 각자 필요한 물품들을 사기 시작했다. P는 리츠코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조각케이크와 작은 촛불, 와인을 샀다. 그리고 콘돔상자를 만지작거리다가 이내 그것을 집어 들었다. 옆에서 리츠코는 그것을 보다가 시선을 돌리며 모른 척을 했다. 그런 자신은 칫솔과 양말을 사다가 몰래 편의점에서 파는 여성용 속옷을 샀다.
둘은 각자 계산을 따로 했지만 점원의 시선이 미묘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 자신들이 사는 물건으로 앞으로 자신들이 할 일을 예상 했을 것이다. 창피하다는 생각보다는 정말 그리 될지에 대한 의문이 두 사람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여기까지 저지르고서 말이다.
서로 얼굴이 빨개져 차를 타고 이동할 동안에 서로 말이 없었다.

“....들어와.”
“....실례합니다.”

둘은 어색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P의 집에 들어왔다. 혼자 사는 원룸. 깔끔하다기보다는 휑한 곳이었다. 거기서 P는 상을 피며 준비한 케이크와 와인, 그리고 다른 먹을거리를 차렸다. 리츠코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방을 구경했다. 책상과 컴퓨터, 텔레비전. 그리고 작은 장롱이 다인 곳이다. 일 관련 서적들과 아이돌들의 앨범을 제외하면 딱히 자신의 물건이 없는 씁쓸한 곳이다. 그리고 침대가 눈에 띄자 어쩐지 더욱 긴장이 되어 침을 삼켰다.
시간은 아직 12시가 되려면 20분 정도 남았다.
둘은 상 앞에 앉아 서로를 어색하게 웃으며 쳐다보았다.

“하하, 좀 덥네요.”
“그, 그러게. 아, 샤워하고 올래?”
“먼저 하시는 쪽이....”
“아니, 난 갈아입을 옷도 준비해야하니깐 먼저 해. 리츠코가 입을 만한 옷이 있는지 볼게.”
“.....네.”

리츠코는 자리에서 일어나 샤워실로 향했다. 그 사이 P는 리츠코가 입을 만한 옷을 찾아본다. 옛날에 입었던 고등학생 때의 체육복이 보인다. 고무줄이 있어 리츠코도 입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리츠코는 탈의실에서 고민하다가 서서히 옷을 벗었다. 속옷을 사기 잘했다고 생각하며 샤워실에 들어가 옷을 입는다. 그 사이 P는 탈의실에 자신의 체육복을 두고 바로 나온다. 하지만 그의 머리에는 슬쩍 본 리츠코의 벗은 옷들이 각인 되어 있었다.
어쩐지 지나치게 심장이 뛴다. 막상 닥치니 긴장으로 움직임이 이상하다.
리츠코의 샤워는 오래 걸렸다. 그에 반해 자신의 샤워는 금방 끝났다. 리츠코가 들어갔던 곳이란 생각에 흥분이 되는 듯 했지만 참았다. 뒤에 있을 일을 상상하니 이런 식으로 뺄 수가 없던 것이다.
샤워를 끝내고 나오니 12시가 다 되었다. 리츠코는 자신의 체육복을 입고서 다소곳하게 상 앞에 앉아 있었다. 추리닝을 입은 그는 그 앞에 앉아 조각케이크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방의 불을 끄고서 천천히 노래를 불렀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리츠코의- 생일 축하합니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노래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리츠코는 그 노래에 웃다가 촛불을 후하고 불어껐다. 푹죽 대신 P는 크게 박수를 치고서 방의 불을 켰다.
그래도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리츠코에게 와인을 한 잔 따라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잔에는 리츠코가 따라주었다. 붉은 와인. 잔을 맞부딪히며 P가 다시 말했다.

“성인이 된 걸 축하해.”
“고마워요. 이렇게 바로 축하해 주셔서.”

리츠코의 웃음이 방금과 달리 자연스러워졌고, 그것은 P도 마찬가지였다. 그 뒤 다시 한 잔을 더 나눠 마시고 조각케이크도 나눠먹었다. 취한건지, 아님 다른 이유에서인지 리츠코의 얼굴이 발그레해져 있었다. 늘 묶거나 머리핀으로 고정해 올린 머리가 오늘은 젖은 상태로 풀어져 있었다. 리츠코의 머리에서 자신과 같은 샴푸 냄새가 난다. 몸에서는 향수를 안 뿌린 같은 비누향도 낫다.
리츠코가 웃으며 말한다.

“저도 이것으로 성인이네요.”

그러더니 서서히 안경을 벗어 옆의 책상에 올려둔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고 P에게 말했다.

“......성인이니 제 일에는 스스로 책임질 수 있어요. 그러니,”

그리고 잘 보이지 않아 P에게 가까이 얼굴을 가져간다.

“걱정하지마시고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제 스스로 선택해 받아들이는 거니깐.”
“......잘 보이지 않는 걸 핑계로 얼굴을 가까이 가져오는 건 반칙이야.”
“하지만 잘 안 보이는 걸요?”
“안경 있잖아.”
“김 때문에 잘 안 보여요.”
“그럼 어쩔 수 없네.”

P는 그리 말하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도 안경을 벗어 리츠코가 벗어둔 안경 옆에 두었다. 그리고 앉아 있는 리츠코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 일으켜 허리를 안았다.
둘의 얼굴은 안경을 쓰지 않아도 잘 보일 정도로 가까웠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니깐.”

리츠코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P는 그런 리츠코에게 얼굴을 더욱 가까이 가져가며 눈을 감았다.
그날 밤 둘은 편의점에서 산 물건을 모두 사용하고 말았다.
뜨거운 열기가 가득했던 밤, 둘은 안경을 쓰지 않고도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안경을 벗은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고, 안경을 벗은 그의 모습은 너무나 멋있었다.
둘은 이불 속에서 더운 와중에 서로를 꼬옥 끌어안고서 서로를 보며 웃었다.

“다시 한 번 성인이 된 걸 축하해, 리츠코.”
“절 성인으로 만들어져서 고마워요, P. 아니, 달링.”

안경점에서 연기한 단어를 그대로 내뱉으며 리츠코는 아픈 와중에도 행복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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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츠코 생일이라 힘냈습니다!
리츠코의 안경이 부러진 건 아미마미의 장난탓이지만, 이 내용은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P.S : 신입이나 처음 보는 분들이 있을 지 모르니 자기 소개! 얀돌이 넘쳐나는 아이마스팬픽계에서 훈훈달달이나 치유계를 전문으로 쓰는 네잎입니다! 얀은 아주 가끔만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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