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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판타지]추모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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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0-29, 2016 21:37에 작성됨.

왕국 어딘가.

 

"흠흠흠... 흠흠..."

 

약간 웨이브가 있는 머리카락을 지닌, 이국적인 옷을 입은 작은 키의 여성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길을 걷고 있었다.

등 뒤에 매달은 류트와, 어딘가 여유로워 보이는 그 품새는 그녀가 음유시인임을 쉽게 짐작할수 있게 하였다.

게다가, 음유시인에 대해 조금만 더 지식이 있다면, 그녀가 대륙에서 유명한 음유시인인 아리우라 칸나라는 것을 알수 있을 것이다.

 

아리우라 칸나. 불멸의 음유시인이라고도 알려져있는 여성.

그녀가 만들고, 부르고, 연주한 곡만 수십만개가 될것이며, 그녀가 퍼트린 영웅담은 또 수천만개가 될것이다.

그녀는 항상 자신의 류트를 들고 대륙을 떠돌아다니면서 노래하는것을 일종의 사명으로 여겼으며, 그건 그녀의 천성적인 방랑벽이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그녀는 대륙을 방랑하기에는 적합한 여자는 아니었다. 그녀의 무력은 평범한 여자 그 이상도 그 이하의 것도 아니었고, 그녀가 특별한 능력을 갖춘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녀는 이상하게도 운이 좋았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녀가 위기에 처하면, 항상 구원의 여지가 들어왔다. 가령 도적이 습격하였을때, 우연히 그녀의 친구인 루미가 그곳을 지나가고 있다던가. 아니면 도적단의 두목이 사실은 그녀의 팬이라서 그녀가 노래를 하는 것을 대가로 밥을 먹여주고 보내준다던가.

바다를 건너려고 할때는 마침 우연히 탑승 인원중 한명이 그녀의 시를 좋아하는 귀족이어서 얻어 타게 된다던가. 오우거가 습격했을때엔 우연히 그 오우거가 갑자기 나무에 걸려 넘어져 도주할수 있다던가.

 

운. 운. 그저 우연히 라고밖에 설명할수 없는 일들로, 그녀는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녀는 평범한 인간이지만, 천년을 넘은 시간을 살아왔다. 그녀가 이렇게 된 이야기를 노래 부르길, 어느 마녀의 약을 먹어, 불로의 능력을 얻게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불사는 아니라고 하지만 그녀는 지금껏 겪은 수없이 많은 위기를 넘겨온 여성이었다. 애초에 그 이야기가 진실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는 일이지만.

 

그것은 둘째치더라도 그녀는 아주 뛰어난 음유시인이었다. 그녀가 대륙에서 들은 이야기들을, 그녀는 노래로 만들어서 다른 이에게 전파해주었다. 그 이야기는 폭군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이야기이기도 했고, 비극적인 사랑을 소재로한 비극이기도 했고, 용맹한 모험가의 모험담이기도 했다.

 

사실 그녀는 제국의 수도에 아주 거대한 여관의 오너이기도 했지만, 그녀가 그곳에 들르는 일은 그렇게 흔하지 않았다. 사실 그 여관 역시 그녀의 친구들이 그녀의 방랑벽을 죽이기 위해 삽시일반 돈을 모아 만들어준것이지만, 정작 만든 후에도 그녀의 방랑벽을 고칠수 없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여관은 그녀의 소유이기 때문인지 장사는 매우 잘되는 편이었고, 특히 가끔씩 머물때엔 여관은 하루종일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있는 곳은 미시로 왕국이었다.

미시로 왕국. 비록 전후에 피폐해져 있는곳이지만, 그녀는 오히려 전란에 의해 피폐해져있는 곳을 돌아다니면서 노래부르는것을 좋아했다. 자신의 노래가 그들을 치유하기를 믿으며. 사랑하기를 믿으며.

그중에서도, 그녀가 특별히 좋아하는 곳이 있었다.

 

"후훗. 미리아양은 건강할까나."

 

조가사키 재단이 후원하는 고아원이었다. 부모님이 없는 아이들이지만, 아이들은 그 누구보다도 맑은 눈동자로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 모습에 칸나는 물론 주변의 어른들도 동화되어, 저절로 따뜻한 미소를 내게 된다. 그것은 칸나도 어려워하는 것이었다. 칸나라고 항상 모든 이들에게 사랑과 평화를 줄수있는것은 아니었기에. 지금 가는 곳은 조가사키 재단이 후원하는 고아원중, 미리아라는 아이가 있는 고아원단지였다. 고아원중에서도 특히 아름다운 곳이어서, 그녀가 정말 좋아하는 장소이기도 한 곳이었다.

 

그녀가 신은 단화가 자박자박 소리를 내면서, 흙을 밟는 소리를 낸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그녀는 또 다른 가사를 생각해낸다. 이렇게 길을 걸으면서 생각하는 노래는 항상 좋은것이기에, 칸나는 흥얼거리면서 곡을 생각해낸다.

 

"그렇지. 이번에는 고아원들의 아이를 주제로한 노래를... 음. 좋아좋아. 곡상이 떠오르고 있어. 음. 카오루가 저번에 분명 쿠키를 구웠다고 했지..."

 

짖궂은 남자아이들의 미카의 치마를 들춘 일.

아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소풍을 나와서 즐겁게 놀았던 일.

싸웠던 아이들이,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화해했던일.

너무나도 훈훈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가사로 변하기 시작한다.

 

자박자박.

 

고아원이 눈에 들어온다. 고아원은 변함없이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평원에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곳.

그리고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곳... 이지만. 오늘은 왠지 침묵이 단지를 덮고있었다.

 

"음~?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데?"

 

아이들의 목소리는 실로 큰것이여서, 멀리 있어도 충분히 들릴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니? 뭐. 이건 그녀를 크게 걱정시키지 않았다.

 

"수업중이려나~?"

 

오늘은 평일이고, 낮 시간대이니 충분히 가능하지. 아무리 그녀라도 교육의 중요성은 부정하지 않기에, 수업시간에는 조용히 수업을 듣는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였다.

 

자박자박.

 

이윽고 그녀가 단지의 입구로 들어섰을때.

 

'...어라?'

 

경비병들이 없었다.

 

비록 이곳이 위험구역은 아니었지만, 평소에는 단지 입구에는 경비병들이 늘어진 태도로 손님을 맞는것이 일상이기 때문이었다.

 

'오오. 칸나님 아니요. 잘오셨수.'

 

'네~ 경비병 아저씨. 수고하세요~'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 패스하는것일테지만. 아무도 없다는것은 조금 이상하였다. 게다가...

 

"뭐야... 이 침묵..."

 

너무나도 고요했다. 수업이 진행되서 생기는 고요와는 차원이 다른 고요. 이 고요는 마치, 폐가의 그것과도 같은 고요였다.

 

"이건 도대체..."

 

칸나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져갔다. 자세히보니, 고아원은 마치 최근에 버려진듯이 관리가 되지 않은듯, 곳곳에 문이 열려있었고 창문으로는 어린아이의 모습은 조각도 보이지 않았다.

 

칸나가 고아원의 입구로 들어선다.

 

"...없어. 없어."

 

칸나가 고아원을 둘러본다. 그 말대로, 고아원은 아무도 없이 황량해져 있었다. 그렇다고 이사를 한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보물과, 선생들의 소지품따위는 그대로 방 안에 남겨져 있었다.

 

"도적...? 아니야. 귀중품은 그대로 있었는걸..."

 

문득, 칸나는 고아원의 한 아이가 옛날에 했던 말을 떠올린다.

 

'칸나누나! 이거봐봐!'

 

그 남자아이는, 고아원의 구석에 숨겨져있는 철문을 가리켰다.

 

'흐음? 이게 뭘까?'

 

'이거. 지하 대피소라는 거래! 우리가 위험하면 여기에 들어가서 숨는거래!'

 

'그래애~? 마치 비밀기지 같은걸?'

 

이런 바보같은 대화를 한 것도 최근의 일 같은데.. 칸나는 생각했다.

 

칸나는 그 철문이 있는 곳으로 걸어간다.

 

"...!"

철문은, 활짝 열려있었다. 칸나의 불안한 감정은 증폭되어만 갔다.

 

"제발...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 아니기를..."

 

칸나는 철문 안으로 들어간다. 한발 한발. 계단을 내려가면서, 그녀는 긍정적인 사고를 하려고 노력한다. 마치 현실을 부정하듯이.

그러나 그녀의 코로 스며드는 불쾌한 냄새와 불길한 기운이, 그것이 틀렸음을 그녀가 직감하게 하고 있었다.

 

뚜벅. 뚜벅.

 

그녀는 덜덜덜 거리는 몸을 겨우 이겨내고, 대피소를 한발한발 내딛는다. 대피소의 불은 꺼져있어, 칠흑과도 같이 어둡다.

그녀는 불을 켤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는다는것이 더 맞겠지. 불을 키면 그녀가 두려워하는 진실을 보게 될테니까.

 

툭.

 

문득, 그녀는 발에 무언가가 채이는것을 느낀다. 그것은 돌과같이 딱딱하지도 않았고, 부드러운 것이었다.

 

이제, 그녀는 그것을 확인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녀는 덜덜덜 떨리는 손으로, 불을 밝히는 도구를 꺼내었다.

 

화앗. 하는 소리와 함께, 빛은 방을 가득 채웠고...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칸나의 절규 역시, 방을 가득 채웠다.

그녀의 예상은 틀린것이었다. 아니, 세상에 어떤 인간이 그 보다 더 끔찍한 것을 생각할수 있었을까?

그녀가 본것은 실로 끔찍하기 그지없는 것이었으니.

 

.

.

.

.

 

"..."

 

"칸나언니..."

 

얼마 후, 간신히 정신을 수습한 칸나는 재단으로 달려가, 미카를 보기를 원했다.

그러나, 미카 대신 내려온것은 리카. 어딘가 어른스러워진 눈을 가지게된 리카였다.

 

"칸나언니..."

 

"리카. 고아원에서..."

 

"...본거...야?"

 

"..."

 

자매는 이 일을 알고 있었다. 칸나는 더욱 미카가 보고싶어졌다. 그녀가 사랑하던 고아원의 아이들이 저렇게 되었다면 미카는...

 

"리카. 미카를 보고싶어. 부탁이야."

 

"언니... 언니는... 지금..."

 

리카가 눈을 질끈 감다가, 이내 서서히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와줘... 언니를... 보여줄게."

 

"..."

 

미카의 방으로 가는동안, 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칸나는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그 나름대로의 직감도 뛰어난 편이었다. 하지만 그때와 마찬가지로 그 직감을 부정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그녀의 직감이 맞아버렸다.

 

"..."

 

미카는, 안락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러나, 예전처럼 칸나를 향해 '칸나 언니!'라고 외치며 달려오지도 않았고, 그 밝은 미소도 보여주는 일도 없었다.

반가운 존재가 왔음에도, 고개조차 돌리지 않은채 그저 정면을 향해, 허공만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미카!"

 

칸나가 미카가 있는곳으로 달려가, 그녀를 바라본다. 리카가 고개를 떨궈버렸다..

 

"..."

 

"아아..."

 

칸나도 이러한 사람을 본적이 있었다. 크나큰 정신적 충격으로, 심각한 트라우마가 생겨버려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사람... 모든 오감을 닫아버린채,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들어버린 사람...

미카의 아름다운 두 눈은, 이제 무엇도 담을수 없는 텅 빈 유리구슬이 되었을 뿐이었다.

 

"어째서... 이런일이... 아아. 미카... 미카...!"

 

칸나는 미카의 볼을 쓰다듬으며, 안타까운듯 중얼거렸다. 고개숙여 어두워진 리카의 볼아래로, 한줄기 물방울이 또르륵 흘렀다.

 

.

.

.

 

얼마후, 조가사키家의 정원.

 

칸나는 미카가 앉은 휠체어를 밀면서, 리카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칸나언니에게는 많은 걸 이야기하지 못해요. 죄송해요."

 

"이해해... 너 역시 고민이 많겠지. 리카."

 

"..."

 

"...미카도, 그런 고민이 있었어. 결코 내색하려 하지 않았지만."

 

"언니가...요? 칸나언니에게?"

 

"응. 나는 감이 좋으니까. 미카가 무언가 어두운 과거를 가졌다는것을 눈치챘지. 결코 말하려하지 않았어. 하지만 그런 과거가 있었기에 이러한 삶에 집착했다는 것을 알수 있었어."

 

"이런 삶이라니요?"

 

"속죄. 라는 것이야. 미카의 자선활동에는 뭔가 집착적인 면이 있었어. 무언가를 속죄하듯, 잊어버리듯 말이야. 그리고 미카가 그런 행동을 함으로서, 그녀는 마음에 커다란 안식을 가져올수 있었지."

 

"아이들..."

 

"맞아. 아이들... 아이들이야. 그녀의 버팀목이 되었지. 미카의 적.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미카를 잘 아는 녀석임은 분명해."

 

"칸나언니가... 그걸 어떻게 아시죠?"

 

리카가 경계섞인 눈으로 칸나를 바라보자, 칸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리카를 바라보았다.

 

"오래 산 언니의 추측이야. 미카는 저래봐도 멘탈이 단단해. 하지만 그녀의 약점만을 정확히 노려서 그녀를 붕괴시켰어. 놈은 과거의 잘못으로, 그녀를 뒤흔들었어. 그리고 그 과거의 잘못으로 인하여, 그녀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붕괴시킨 것으로 '인식' 시켰어. 미카는 소중한 아이들이 그렇게 된것이 자신때문이라 생각하면서, 마음이 무너져버린거지."

 

"..."

 

"후후... 억측일 뿐이지만 말야..."

 

칸나는 문득, 휠체어를 멈추고 등에서 류트를 꺼내었다.

 

"나. 고아원에 가면서 생각해둔 노래가 있었어. 미카와 아이들에게 들려주려고 했었지... 아이들은 들어줄수 없지만... 미카와 리카. 네가 들어주지 않겠어?"

 

"...네."

 

리카는 대신 휠체어를 잡자, 칸나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이들의 한때 즐거운 추억과 미카와 아이들의 즐거운 한때를 기록한 노래.

분명 그것은 신나는 노래였지만, 칸나는 그것을 구슬프고도 애절한 목소리로 부르고 있었다.

 

"...아아. 언니... 언니이이이이이!"

 

이윽고, 리카는 오열하면서 주저앉아버린다. 칸나의 목소리는 변함없었지만,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미카의 유리구슬 같은 오른 눈에서, 눈물이 한방울 또르르 흘렀다.

먼지로 인해서 흘려진 눈물일까? 알수 없었지만, 그 눈물은 더없이 비극적인 자매의 모습을 보여주는듯 하였다.

 

 

 

 

어제 크라이시스를 보고 한편 썼습니다. 미요는... 음.

대략 그때 이후로 얼마 안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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