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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마스X40k 유니버스] Guns and Flowers 2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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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22, 2013 21:47에 작성됨.

거의 한 달 전에 입대를 앞두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글을 쓰지 못한 이유가 되겠지만, 그래도 비축 분량을 가능한 한 많이 챙겨야겠죠.


일단 이것에 계속 집중할테니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본편 시작.



Guns and Flowers 23편



섹터 내에서 가장 부유하고, 상공업이 발달하여 문명 활동이 활발한 바르고스 프라임의 한 대도시답게 산맥으로 둘러싸인 하늘은 좁고 어둡게 가려져 있었다.

그를 대신하여 빛은 땅에서부터 퍼져나오니, 고도화된 도심과 마천루의 창문 하나하나가 별빛처럼 야경을 수놓았다. 그 배경은 도시 곳곳에서도 훤히 볼 수 있어, 근교쯤에 위치해 인적이 붐비지 않는 주거 지역까지 다다르렀다.


도시의 재화가 집중되는 중심지에 비해서는 건물들이 운집한 밀도와 건축된 높이는 한참 미치지 못했지만, 그래도 꽤나 모여있는 판에 도시 반대쪽의 야경을 볼 수 있는 곳은 연결된 하나의 도로밖에 없었다.

한산한 인파들 가운데에 대부분은 집으로 걸어들어가 이틀간의 휴일을 통해 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바로 국교회에서 지정한 안식일과 그 바로 전날이 곧 다가오니, 대부분의 신민들은 자신들의 집이나 거처를 향해 가볍게 걸음을 옮기기 마련이였다.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에서는 바르코나르라는 이름의 사내도 예외없이 무리 안에 섞여들어갈수 있었다.

늦은 저녁 하늘의 그림자는 그의 얼굴과 손등에 새겨진 전흔을 가려주었으니 체격만 제외한다면 마땅히 튀어보이지 않는 사내로 비추어졌다. 실루엣으로 남아있는 그의 특징조차 정장차림에 묻어지니 금상첨화였다.


이제 몇 분 지나지 않아 조금만 더 걷는다면 공동주택까지 도착할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발걸음에 무게를 줄이며 그를 지나치지만 사내는 똑같은 발걸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돌아온 집에서 휴식을 취하며 준비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그동안 할 것도 별로 없었으니 생각할 거리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의 안색이 어두워 피곤하게 비추어졌지만, 단순하게 판단하기에는 목 아래로 걸쳐서 힘없이 늘어지지 않았다. 머리와 이마맡을 누르는 압박은 생각과 깊이 연관되어 있었을 뿐, 깊이 잠드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 날도 마찬가지로 지난 일주일의 '낮'과 비슷한 한나절이지만, 그 바로 전날의 '밤'에 닥쳐온 사건과 연결되어 그의 머릿속을 휘저었다.


남들에게는 밝혀지지 못할, 아니 안될 행동의 속박으로 발생하는 무기력함은 그를 짓눌렀다.

수 년간 이단심문청의 충실한 하수인으로써 의무를 다하고, 발자국의 끝을 쫒아 명령과 함께 이 행성에 도착했지만 닥쳐온 것은 그를 당혹케 하였다.

결코 그가 예상하지도 않은 민간인들과 엮여서도 아니고, 행성 자체의 자유분방한 분위기나 낮을 지배하는 그의 또다른 '신분'도 탓할수 없었다.


그것은 명백하며 익히 알고 있었지만, 생각조차 원하지 않았다.

다시 닥쳐오기 시작하는 과거의 잔재, 제이콥 칼카스로써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찬란한 빛 아래의 그림자에 감추어둔 진실이였다.




도로의 건너편에 곧 보일 공동주택의 건물가를 향해 미리 시선을 준 후 보폭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발길을 몸에 맡겨 주머니를 뒤지다 몇 초 후에 그는 원하던 것을 찾고 꺼냈다.

가볍고 수수한 휴대전화의 하단 버튼을 누르며 불을 밝히자, 눈가 근처에 빛이 쏟아지며 화면이 켜져 그 안의 내용을 찾아 읽기 시작하였다.


균형감각 하나는 뛰어난 사내였기에 발을 헛딛거나, 또는 옆으로 게걸음을 치지 않을 법 했지만 오히려 빠른 걸음이 사람을 스쳐지나갈 때 넘어트릴 기세로 비추어졌다.

집중하는 동안 그의 눈가는 더욱 매섭게 좁혀졌지만, 마치 적을 쫒아 사냥할 듯한 동공에 비추어지는 글씨들은 특이할 점이 없는 내용들이였다.


명목상 같이 나선 '직장 동료'가 적어준 글귀는 이미 몇 번 차 안에서 듣고 확인했지만, 돌아가던 차에 더 볼 것은 없나 싶으며 당부한 대로 글귀를 눈으로 쫒기 시작하였다.

이쪽 방면에 도가 튼 것은 아니였지만, 그녀가 쉽게 글을 써주어 이해하기 편하게 하니 문제는 적었다.

한 사람의 내면을 읽는 재주는 타고나지 않았다고 스스로 판단하는 칼카스였지만, 그녀를 만난 다른 사람들처럼 이 방면에 과연 재능이 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위해서 봐둘 서류, 배워둘 단어를 설명함과 함께 위치, 일정 요약들을 로우 고딕과 하이 고딕을 병용하여 자세하게 적어놓으니 되짚기 매우 편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잠깐 앞을 바라보며 자신의 길을 확인하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나서 주변을 둘러볼 쯤에는 몇 분 뒤면 곧 문을 열고 들어갈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휴대전화의 액정에 불이 들어온 채로 허리춤에 두어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기껏해야 그녀가 적어준 기본적인 정보나 향후 있을 단기적, 장기적인 일정과 함께 연락처들을 본 것이 끝이였건만 이제는 완전히 밤이 된 듯 어둑해졌다.

그나마 눈앞에 얼마 가지 않아 닿을 건물가를 포함한 도로는 가로등으로 광선들이 비추고, 찬란한 도시의 야경은 행성의 절반을 차지하니 하이브 월드의 스파이어에서 떠올릴 '땅에 붙은 밤하늘'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몇 달, 아니 몇 년만에 제대로 이 모습을 볼 수 있는지 그는 휴대전화를 지닌 오른손을 왼손으로 꽉 쥐며 수를 헤아리는 체를 하였다.

이단심문청의 하수인으로써 투입된 대부분의 전쟁터는 그 자체로 낙후되거나 부서진 세계였다. 몰락한 전장을 최전선삼아 보호받을 대부분의 세계의 모습은 그곳에서 찾아온 병사들의 입과 입, 그리고 손으로 전해지는 사진으로만 보았을 뿐.

자신의 병역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법도 하였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이 행성조차 위협에서 피해갈수는 없을 거라고 판단하였다........


잠시 묶여진 듯 느려졌던 발걸음을 다시 재촉할 쯤에 휴대전화는 진동하기 시작했다.




손바닥에 붙잡힌 전자기기에서 진동이 울릴 쯤, 앞을 우두커니 바라보던 칼카스는 그의 시선을 붙잡아 아래로 향하게 만들었다.


빌딩 안에서 따로 맞춰둔 진동음만이 울리지 않는 벨소리를 대신해 손바닥에 자극을 주었다. 계속 걸어가던 차, 인지한 그의 얼굴이 가로등의 일체화된 광원으로 들어날 쯤에 그 안의 내용을 확인하기 시작한다.

무뚝뚝한 첫인상의 사내답게 그의 표정은 가로등과 맞물려 더욱 거리감만을 넓히지만, 눈가에 드리운 그림자 속에서 눈꺼풀에 가려진 시선이 더욱 크게 드러났다.

"이번엔 무슨....... 아."


리츠코의 배려 탓에 그녀를 포함한 몇몇 사람들의 연락처가 저장되어 있었건만, 받은 전화는 번호만이 적혀져 있었다.

아홉자리 번호가 세 칸씩 따로 떼어져 구분이 되어있는 번호가 누군지 짐작할수 없었지만, 그 또한 자신의 번호에 쉽게 전화를 걸 자들도 비슷하게 없었다.

그는 가볍게 전화를 받아 먼저 말을 건넨다.


"누구십니까."

직후 들려오는 익숙한 여인의 목소리에 그 경직된 대답이 풀어진지는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받는 사람 태도가 이러면 안될텐데 말이야....... 앞으로 이 번호로 '카에데'라고 지정해 놔. 일단 전화로는."

"그래, 그래. 그걸 네가 괜히 알려준게 아니였어. 지금 귀가중이다. 무슨 용건이라도 있나." 귀에 맞댄 휴대전화를 향해 눈초리가 주어지며, 발길을 돌려 몇 분씩 걸어 도착한 공동주택의 건물가 입구로 진입하였다.


"뭐 때문에 이리 늦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이럴 거면 내가 좀 바빠질텐데 말이야. 설마 그곳에서 잠들은 것은 아니겠지?"

"장난하나? 네가 보낸 그 수하물 덕분에 다시 짜맞추느라 머리를 감쌌다. 차라리 봉투 하나에 제대로 '포장'할 것이지......."

묵묵부답으로 수화기에 무음이 전해지고 몇 초가 지났을까 내던지듯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전투 식량의 반응은 참 가관으로 나오더라. 정말, 정말, 정말, 정말정말 아주 고맙다......."


"뭘. 그런걸 가지고..."

휴대전화를 뺨과 관자놀이에 붙인 칼카스의 그쪽 얼굴이 형편없이 구겨지기 시작했다. 흉터 사이에 주름살에 깊이를 더하며 가관이라는 듯 헛웃음을 지으며 답변을 대신했다.

그녀가 극단적으로 눈치가 없어 가늠을 잡는 것은 아닐테고, 그렇다고 해서 스스럼없이 놓은 사이치고는 이렇게 말이 나올거 같지 않다고 생각했다.


웃음소리마저 그대로 수신기를 통해 전해져 반응이 곧장 도착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고마울 따름이구나. 흐흠....... 그건 둘째치고 이유나 말해."

"망할, 카ㅌ....에(로우 고딕으로 음절마다 억지로 떼어 발음했다.)-데. 다음에는 돌이라도 보내겠군. 기대하마."

몇 초간 정적이 이어졌지만, 이때서야 웃음이 양쪽에서 터져나왔다. 건물가 안에서 큰 소리로 폭소하니 사람들의 시선도 집중될 법 하였지만, 애매한 시간에는 걸어가며 크게 웃는 사내를 신경쓰던 자는 없었다.




"하하, 아....... 이제서야 실감이 좀 나네." "과연 내가 이 행성으로 온 이유가 있었어. 어쨌든, 그쪽에서 말한 것과는 달리 일이 좀 길어졌다."

십여분간 걸어간 끝에 칼카스는 자신의 거처가 속한 공동주택의 1층 입구로 발을 딛었다. 스스로도 약간 걸리적거리는 것이 있었는지 간략하게 설명했다.

"어쩌면 빠르게 계약을 맺든, 아니면 퇴짜를 맺든 이른 오후쯤에 돌아가려고 했는데 그쪽에서 관심을 보이더군. 몇 시간동안 맞장구를 쳐주다 돌아간게 어디냐."


"갑갑하다고 느꼈나 싶었는데...." 동감을 표할 것으로도 매우 적절한 한 문장이였다. 그에 보이지도 않았을 고개를 끄덕이며 주름살도 펴지나 싶었건만......

"그래도 몰래 뒤를 쫒는 것보다는 그냥 앞에서 접근하는 편이 더 낫잖아? 헛힘은 쓸 데가 있고 그냥 참아둘 때가 있는데, 아직까지는 후자에 속하잖아."


곧 도착하지 않을 승강기의 앞에서 몇 초동안 서 있다가, 왼쪽의 계단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길 무렵에 그는 대꾸했다.

"그래....... 너 덕분에 잠도 설쳤고 참 좋아, 안 그래? 단순히 이런저런 잡담이나 하려고 연락한 거면 당장 끊겠다. 마지막 전투에 입수한 자료들, 그리고 네가 준 수하물에서 정리하는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칼카스는 그 스스로가 뭐라고 횡설수설을 부리는 건지 온전히 이해할수가 없었지만, 한꺼번에 털어놓으니 내뱉은 말이 헛소리라고 해도 속이 시원할 지경이였다.


"좋아....... 확인했어." 이번엔 뭔 짓을 하는 건지 싶어 잠시 휴대전화를 귀에서 떼어냈다. 뭔 소리가 들리지도 않고 3초간 정적으로 일관했지만, 그 이후에 카터는 말을 이었다.

"기본적으로 예산 책정을 입안했고 그 문제가 좀 남아있어. 포로 심문 및 정보 입수에 관련되어서는 진전이 없고. 아직까지는 주시만 하면 되니 네가 알아서 해."


표정은 항상 누군가를 노려보는 듯 싶었지만, 그가 고개를 돌리는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시야가 노출된 왼쪽 머리칼을 한 번 쓸어올리다가, 마침내 헛웃음으로 그녀에게 답하였다.

"잠깐, 지금 무슨 소리를...... 하."

자신의 바로 앞에 있는 문을 열기 위해 열쇠를 꺼내며 어조가 바뀌었다. "혹시 지금까지 이런저런 잡담들을 늘어놓은 것도 의도한 건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니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모호해졌지 않아? 일단 자료를 꺼내고,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확인해. 그 외의 명령권은 네게 있으니."

"알겠다." 문은 닫히고, 집 안으로 어떤 창문도 열리지 않아 밀폐되었다.

주변을 굳이 둘러볼 필요도 없이 그는 스탠드 하나만을 밝혀 주방 한 곳에 보관한 더미들을 다시 꺼내기 시작하였다.

두 손은 조심스럽게 이단심문청의 인장이 찍힌 종잇장들을 나열하지만, 귀는 그녀가 말하던 것을 쫒아 언급한 서류를 찾았다.




손짓 한번에 잠복하던 서보 스컬이 미세한 기계음과 함께 나타나며, 상황에 걸맞지 않은 정장 차림의 칼카스는 손에 잡히는 대로 무언가를 꺼냈다.

한손에 적당히 집을 정도로 그 크기는 작았지만, 광량만큼은 이 거처 안의 어떤 조명을 들고 와도 따라잡지 못할 전술 조명은 단숨에 테이블 위를 강렬한 빛으로 비추었다.


백색 바탕에 선명한 흑색의 쌍두독수리 상징이 기본으로 인쇄되어 그 소속을 알렸다. 그 밑에 '3급 비밀' '확인됨' 과 함께 도장으로 찍은 듯 촉감과 질감이 생생한 진홍빛 이단심문청 인장이 비슷한 크기로 새겨져 있었다.

그 붉은 인장 아래로는 위의 상징들과 달리 깨끗하고 일률적인 문자들이 인쇄되어 있었다. 십중팔구 그녀가 언급한 것들과 관련이 이을 터.


그 내용 중 일부가 담고 있는 소모, 요구에 관련되어서는 과연 인장에 걸맞게 민간에서 접근하기 힘들었다. 정반대로 지급되는 예산과 장비는 걸맞지 않게 '소소한' 수준이였다.

다만 그 의미가 부정적이기에 곧 카터의 임무에 대한 상세한 파악을 해야겠지만, 그녀도 이 이상 얻어내기는 매우 힘들 것처럼 비추어졌다.


"이건 기본적인 항목이고, 아마 그쪽에서 지급하는 데에는 예정대로 진행돼. 그래도 이걸로는 향후 작전에서는 한참 부족할테니 따로 지원금 및 장비들을 더 받아낼 수단을 찾아내는 거고."

"필요 이상만 아니면 된다. 기존 장비들을 최대한 활용하면 6개월동안은 어찌 버텨낼수 있을 테니." 그의 시선은 정리해둔 카드보드 게시판에 주어졌다.


가장 위, 6년간의 장대한 작전 끝에 기다리고 있을 약간 허무할지도 모를 '목표'에 대한 주시가 주어지는 사이에 카터는 반박하였다.

" 그래, 아직 네가 원하는 자료나 정보가 제대로 확보된 것은 단 하나도 없지. 그래도 획득하며 준비하고, 조심해야만 할 것을 나쁘다고 하는 자가 있었나 싶은데?" 여전히 카터와 연락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데는 잠시라도 필요했다.


그러나 개의치 않고, 칼카스는 이단심문청의 '작전'을 통괄하는 지휘관으로써 그의 주장을 계속 관철했다.

"내 임무에는 불필요하니 그런 판단을 내린거다. 기본적으로 6개월 내에 충분한 병력을 확보, 이를 이용해 작전하지 않고 일을 불려나가면 오히려 적들이 더 몰려들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나?"

게시판에 찍혀 꽂혀있는 촬영된 평면의 너머로 그의 방향을 보는 두 붉은 눈동자가 있었다. 그 '목표'를 보고 있으니 칼카스는 기묘한 덧없음을 느꼈다.

지금껏 수많은 작전과 전투를 치루고, 분수령이 될 중요한 작전의 핵심이 고작 저 사진 한 장에 담긴 여인이라는 것은 약간 납득이 힘들기도 했다.


그러나, 카터의 말을 기억하며 자신을 다잡았다. 그 어떤 세상이 주변에 있든, 자신은 제국의 의지를 수행하는 자라고.

이단심문청의 하수인으로써 어떤 의문도 묻지 않고 자신의 신념과 함께 그 가치로써 나아갈 명제는 지금껏 전쟁터에서 보아온 광기를 그의 눈 앞에서 잠재울수 있었다.

간신히...



그러나 카터의 언성은 높아졌다. 그나마 지금까지 차분하게, 다른 시각으로는 나긋나긋하다고 보여질 법한 분위기는 사그러들기 시작하였다.

친우로써 동질감과 함께 그를 이해하는 유대감의 사라진 곳을 채우는 것은 다급함, 그리고 경멸감이였다. "애초에 이단심문청 쪽에서 멀쩡히 현장에서 뛰고 있는 널 파견한 게 단순한 '증원 인력'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지."


"그래서, 현재 내려진 임무를 차순으로 둔다는 것인가?"

"그것은 아니라고 말하지." 증오라는 단어라고 하기에는 카터의 어조가 지니는 뼈대는 달라지지 않았다. 단호한 태도를 제외한다면 오히려 무덤덤하다고 말할 정도로.

"다만 옛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다. 네가 수행하는 임무에 대해서는 뭐라 할 권한은 없지만, 그 대가를 네가 이곳에서 당장 감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기에 말하는 것이다."


"......." 서류를 비추는 전술 조명과 함께 간접적으로 얼굴과 손이 드러난 사내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당장 중요한 임무로 인해 어떤 대가를 치루든 차질이 빚게 해서는 안되었지만, 그녀의 말도 분명 일리가 있었다.

"....... 함선에 있는 포로에 대한 심문이나, 정보원들을 이용한 자료 확보가 갱신되는 순간 다시 내게 연락해달라. 어떻게든 그들을 구슬러서 물자와 예산을 재량껏 확보해."


"드디어....... 좋아... 알겠어. 관련된 일은 내가 알아서 하도록 할게. 일정 쪽은 내가 뭐라 할 거는 안되니까 알아서 조절해 줘. 일단 맘놓고 있어도 그쪽 일에서는 맘놓지 말고. 오케이?"

"제발 그만, 끊는다." 마침내 전술 조명의 빛과 동시에 휴대전화의 모니터가 어두워질 쯤, 막상 보이지 않는 시야로도 스위치를 찾아 주변을 밝혔다.

건성으로 그 조명을 던지고, 정신적으로 몰려온 피로는 정리하던 그의 두 눈꺼풀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내구성을 전술 조명과 견주지 못할 휴대전화는 다시 그의 손에 집어진 채로 들려있었다. 바로 머리맡에 둘 생각에, 정리를 마치고 다음날에 주어진 시간을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세워 잠을 청하려고 들었다.

그 전에 서보 스컬을 통한 육성 녹음으로 그 전에 보고, 들고 말한 것을 기록하려 시도하였다. 그것이 다시 위치로 복귀하려 부유할 쯤에 칼카스는 누웠다.


그러나, 눈을 감으면 다시 옛날 일이 생각날 것만 같은 두려움에 그는 함부로 잠에 빠지지 못하였다.

몸은 피로하여 당장 침낭 안, 그리고 등을 받치는 침대에 푹 늘어지고 머리는 어지럽건만 그 이후에 볼 것을 두려워했다.

대체 카터는 무슨 원한이 자신에게 들린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였다. 이것은 편집증이라고 설명하기에는 충분히 드러났지만, 온전히 설명하지 못하였다.


관련된 모든 증언들을 서보 스컬에 녹음한 다음에는 그 생각이 망령처럼 그의 주변을 떠돌기 시작했다. 불안하게 그의 심장을 조여, 눈을 감으면 영원히 멈추고 그 악몽 속에서 갇힐 두려움에 편히 눈을 감지 못하였다.

칼카스는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디지털 웨폰을 만졌지만, 그것은 자신의 과거로부터 달아나게 만들 성물은 아니였다. 오늘 낮, 그리고 아침에 있었던 기억의 재생을 반복하기는 원하지 않았다......

그 때, 다시 휴대전화가 울렸다.




"누구십니까." 보지도 않고 버튼을 누르니 발신자와 연결되었다. 불안한 심리로써 카터에게 몰아붙일 계획이였지만 대신 건조한 어체로 받았다. 그나마 작은 운이라도 주어진 것인지 바로 전에 걸었던 여인과는 전혀 다른 목소리였다.

당장 침대에 누운 채로 받아, 그냥 말로만 주고 받아 상관하지 않아도 충분한 상대로써.


"아, 혹시 제가 방해했나요?"

"아닙니다. 말해보십시오." 격양된 그의 말을 수그러트리는 데에는 다른 사람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였을 것이다.

리츠코의 염려에 그는 딱 잘라 부정하며 괜찮다고 표현했다. 칼카스의 정신상태 자체는 전혀 아니였지만, 최소한 그것을 남에게 드러낼 생각은 가지지 않고 있었다.


태연하게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리츠코는 그에게 자연스레 언급하기 시작하였다.

"아, 그것이....... 확인했어요. 일단 내일, 그리고 안식일까지 연관된 일은 없으니. 다음주부터 그쪽에도 천천히 일을 분담하기 시작할테니 푹 쉬고 준비해 주세요."

일말의 생각도 없이 그는 동의하였다. "알겠습니다. 그 외에 알려줄 것은 더 없는 겁니까?"


"..... 일단은. 그래도 일을 준비해 준다면 나중에 문제가 적어지겠지요." 목 뒤의 힘이 풀어졌지만, 여전히 두 눈을 부릅 뜨고 있던 칼카스에게 마지막으로 그녀가 덧붙였다.

"그래도 푹 쉬고, 앞으로 있을 업무에 많이 집중해 주세요. 바르고스 프라임에 익숙해지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좀 나아질 테니까요. 이만 끊습니다."

"라져, 아니 알겠습니다."


흥미로운 듯 보여지는 그녀의 작은 웃음소리가 도중에 끊겼다. 카터는 기묘한 편안함에 주체하지 못하며 아예 머리를 받치는 침대에 뒷통수를 당겼다.

자신과 제대로 된 말이 통할 것이라고 생각된 카터와는 어째 충돌이 벌어지고, 애초에 스쳐지나가는 얼굴로써 기억될지도 모를 그녀와는 술술 말이 통하는가.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것은 단순히 임무에 대한 집착일 것이였다.

이제 남은 것은 미나세 가문의 기록보관소에서 저장되어 있는 데이터의 열람, 그리고 '로드'와의 접견을 통해서 임무에 대한 상세한 조언을 얻는 것이였다.

자신이 바라던 임무의 목표를 위해서는 어떤 각오도 되어있었건만, 과연 그것이 과거와 마주치고 나서 원래의 자세를 유지할수가 있었을까......


진정된 생각을 접고 그는 잠에 빠져들었다. 수면 안의 환상을 통해서 무엇이든 옛 잔재가 괴롭히지 않고, 어떤 것도 생각나지 않고 보이지도 않을 정적만이 감돌면서.



다음에는 이 팬픽에 관련된 단편 하나를 쓸 예정입니다. 그쪽은 타입문넷에 연재될 겁니다.

입대 전까지는 최소한 에피소드 하나에서 둘은 끝내야 할 텐데...... 그 이후로는 싸지방의 힘을 빌려야만 할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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