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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똥별이 파고든 자리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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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22, 2013 00:32에 작성됨.


 쿠키를 입에 물어본다. 침대가 이렇게 넓었던가. 팔다리를 쭉 뻗어 봐도, 뭔가 모자란 기분이었다. 쿠키에서는 좋은 향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하루카가 취미에 과자 만들기를 당당히 적어냈던 건 이유가 있을 만하지. 어느새 해가 뜨고 있었다. 밤을 샌 건 아니었지만 한 번에 30분 이상 잠들지 못한 것 같다. 자다 깨다를 미친 듯이 반복했다. 핸드폰을 열어본다. 메일이 와 있다. 세 통.
 ‘미안한거야.’
 ‘저기, 마코토쨩. 오늘 라디오 녹화 때 할 얘기가 있는데, 괜찮아?’
 ‘마코토, 오늘 일정 말인데, 오후에 인터뷰 취소되었으니까 연습실 사용해도 괜찮을 것 같아.’
 미키와 유키호, 그리고 프로듀서였다. 어떤 메일에도 대답할 기분은 들지 않았다. 조심스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무 생각 없이 거울을 쳐다본다. 하루 잠을 설쳤다고 다크서클이 벌써 생기기 시작한다. 일단 어제 대충 던져둔 옷을 그대로 다시 입었다. 지금은 뭘 고르고 꾸미고 할 기분도 들지 않는다. 아직 주무시는 부모님 쪽을 흘깃 바라본 후, 사무소로 향했다.
 
 사무소는 어제와 달리 조용했다. 블라인드도 올라가있지 않으니 사람이 있을 때의 그 화사한 분위기는 어디로 가고, 완벽한 회색의 공간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고 있으면, 책상도 냉장고도,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회색으로 보였다.
 “아무도 없나...”
 조심스레 중얼거리고 사무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깐 놀라 숨을 삼켰다. 프로듀서와 코토리 씨가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는데. 깨워야 하는 거 아닌가?
 “코토리 씨, 코토리 씨...”
 “으응... 음... 어라, 마코토쨩. 지금 몇 시...?”
 “벌써 9시가 다 되어간다구요. 설마 여기서 주무신 거에요?”
 잠에 취해서 비몽사몽한 표정으로, 코토리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여기서 주무셨다니, 그럴 정도로 일이 많으셨던 걸까. 건너편 책상에서 같이 머리를 박고 잠들어 있던 프로듀서도, 내 목소리 때문인지 몸을 일으켰다. 그는 잠깐 팔을 크게 들어 올려 기지개를 편 뒤, 아직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나를 맞았다.
 “좋은 아침... 마코토, 오전에 스케쥴 있던가?”
 “프로듀서, 저 오늘 유키호랑 라디오인데요.”
 “아, 그렇지 참. 미안해, 이상하게 피곤하네.”
 프로듀서는 큼지막하게 하품을 했다. 옆에서 코토리 씨도 똑같이 하품을 하고 있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정신 차려보니 아침이었단 느낌?”
 “코토리 씨도 요즘 많이 피곤하신가 보네요. 저도 오늘은 이상하게 졸려서...”
 일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프로듀서가 고생하게 된다는 아이러니. 난 프로듀서가 능력있는 사람임을 증명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그걸 증명하는 과정은 프로듀서에게 고난의 길이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럼, 마코토는 라디오 준비 해줄래? 나도 세수라도 좀 하고 바로 준비할게.”
 “네!”
 “아참, 마코토.”
 프로듀서가 뒤돌아가는 나를 불러 세웠다. 아직 졸음이 가시지 않은 눈이었지만, 반짝임이 남아있는 눈이 나를 바라본다.
 “오늘도 열심히 하자.”
 “...네!”
 ...힘내야지. 보란 듯이 힘내야겠다. 내가 잘 해야 프로듀서도 기운이 날 거라는 거. 다시금 마음에 새긴다.

 오늘도 내 자리는 조수석이다. 옆자리에 앉아 운전대를 틀어쥔 프로듀서를 바라보았다. 간단히 세수만 하고 나온 프로듀서의 얼굴은 그리 말끔하지는 않았다. 턱에 살짝 수염이 삐져나와 있다.
 “유키호는 현장으로 직접 오겠다고 하더라.”
 “그런가요?”
 기분은 홀가분해져 있었다. 아침에 힘내라는 말 한마디만으로 이렇게 편해질 줄이야. 나도 꽤나 단순한 모양이다. 프로듀서는 아까 전의 비몽사몽한 표정은 어디가고 콧노래까지 부르며 운전을 하고 있었다.
 “기분이 좋으신가 봐요?”
 “그래 보여? 뭐, 나쁜 기분은 아니지만.”
 “저기, 프로듀서.”
 “응?”
 한번 물어보고 싶었다. 프로듀서는 어른이니까, 어쩌면 답을 내 줄수 있지 않을까. 내 마음의 홀가분함과는 별개로, 그 문제는 답을 얻어야만 하니까. 다만 직접적으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프로듀서는, 남자한테 고백을 받는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에?”
 신호가 바뀌었다. 프로듀서는 조심스레 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세웠다. 신호가 유지되는 동안, 그는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내 입장에서 남자?”
 “...네.”
 신호등 앞에는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좌우로 자신의 갈 길을 향해 쉴새없이 움직이는 사람들. 아마 지금 프로듀서의 뇌 속도 저렇게 바쁘지 않을까. 그는 내 대답 이후로 아무 말이 없었다. 이윽고 신호가 녹색불로 바뀌고, 프로듀서는 다시 엑셀을 밟는다.
 “음... 일단 난 남자를 좋아하는 취미는 없지만.”
 대답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일단 그의 말을 계속 들어볼 수밖에.
 “그 사람이 정말 나를 좋아한다고 하면, 내가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그 감정 자체는 고맙지 않을까?”
 “...그런가요?”
 “누가 되었든, 나를 좋아한다는 감정을 가졌다는 건, 내가 그만큼 그 사람에게 소중하다는 거잖아. 그건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해.”
 “동성인데도, 말이죠?”
 “물론 그걸 받아들이느냐 마느냐는 별개의 문제겠지?”
 운전대를 돌리느라 잠깐 말이 끊어진다. 낡은 밴이 좌회전하면서 날카로운 소리를 내었다. 그와 나의 몸이 한쪽으로 쏠렸다가 원래대로 돌아온다. 잠깐 앞을 주시하던 그는 다시 나를 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성별의 문제가 있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그 사람이 날 좋아해준다고 해도 내가 좋아하지 않으면 의미도 없겠고.”
 “그럼 혹시, 그 사람이 프로듀서가 정말로 아끼는 사람이라면 어때요?”
 내 질문에 프로듀서는 잠깐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다시 운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라디오 방송국 근처에 도착하자, 차가 들어차기 시작했다. 도로에 서서 움직이지 못하기 시작하자, 그는 잠시 운전대에서 손을 떼고 넥타이를 살짝 풀어헤친다.
 “이건 그냥 내 의견이니까, 참고만 해 줄래?”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나와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면 그래도 거절하겠어. 물론 그 사람이 상처입지 않을 말을 찾는 데에는 꽤나 시간이 걸리겠지. 마코토가 이 질문을 왜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마코토가 이런 말을 해야 할 입장이 된 거라면, 다른 건 필요 없어. 자신의 좋고 싫음의 여부만이 모든 조건이라고 생각해. 그게 아니라면 ‘조금 더 좋거나’, ‘조금 덜 좋거나’의 차이겠지.”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 돼요.”
 “...마코토에게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라는 말이야.”
 “...더 좋아하는 사람...”
 프로듀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확실히 프로듀서의 말대로라면, 나는 이 문제를 확실히 해 둘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해결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감사합니다, 프로듀서.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뭐에 도움이 될지는 묻지 않을게. 힘내.”
 궁금함에 한 번쯤 물어볼 법도 한데, 변명거리를 죽어라 생각하고 있던 내가 허무해지는 그의 말이 고마웠다. 역시 프로듀서는 너무 상냥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늘 생각한다.
 “네!”
 걱정은 미뤄두자. 내가 걱정하면 그도 걱정하지 않는가. 힘을 내야 한다. 나 자신을 위해서도.
 
 도착한 라디오 방송국 앞에서 유키호를 만났다. 그 날 계단에서 그렇게 어색하게 헤어진 이후 처음이다. 인사도 할 생각이 없는지, 유키호는 계속해서 쭈뼛거리며 나와 프로듀서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저기, 프로듀서... 저, 잠깐 마코토쨩이랑 할 얘기가 있는데...”
 그러고 보면 아침에 메일로 할 말이 있다고 했었던가. 무슨 얘기를 하려고 프로듀서에게 눈치를 주는지 모르겠다. 나한테만 할 중요한 이야기라도 있는 건가?
 “녹화시간 전엔 돌아와야 한다? 위에서 기다릴 테니까.”
 “네, 프로듀서.”
 유키호가 프로듀서를 올려보내는 동안, 도대체 유키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한참을 생각해 봤지만 떠오르는 것이 없다. 하나 짚이는 게 있다고 하면, 그 날 계단에서 대면했던 일 뿐이고.
 “유키호, 할 얘기가 뭐야?”
 “그, 저기...”
 여전히 쭈뼛거리는 그녀. 말이라도 한 마디 잘못했다간 또 땅이라도 파고 들어갈 분위기였으니, 일단은 그녀의 말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녀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힘없이 고개를 떨군다.
 “그, 마코토쨩은... 날 어떻게 생각해?”
 유키호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였다.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어보면서 이런 반응이라니. 혹시 하면서도 그녀의 의도를 의심하고 있는 나였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극도로 냉정해져 있었다. 미키와 그렇게 얽혔을 때는 당황해서 평정심을 잃고 휘청거렸지만, 지금은 나조차 놀랄 정도로 아무 느낌이 없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방금 전 차 안에서 프로듀서와 했던 대화가 생각난다. 나는 유키호를 미키보다 싫어하는 걸까? 아니, 마음을 다잡은 후 미키를 만난 적이 없으니. 아직은 그렇게 쉽게 말할 수는 없었다.
 “마코토?”
 잠깐 딴 생각을 하느라 대답이 없자 답답했던지, 유키호가 다시 나를 부른다. 고개를 들지 못하고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던 그녀의 눈이, 어느새 나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살짝 등줄기에 전기가 흐른다.
 “아, 미안. 어떻게 생각하냐는 말, 어떤 의미야?”
 등을 타고 흐른 오한의 원인은 아마 사무실에서 에어컨이라도 가동했으리라. 일단 가장 먼저 떠오른 의문부터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질문을 던졌다. 유키호는 나를 바라보던 눈을 다시 내리고 우물쭈물한다.
 “그, 저기... 말 그대로의 의미인데...”
 “사무소 동료, 그리고 아주 친한 친구. 유키호는 내 좋은 친구지.”
 “...친구...”
 유키호는 친구라는 단어를 곱씹어보고 있었다. 안절부절 못하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가만히 서서 내가 한 말만을 곱씹을 뿐이었다. 녹화도 곧 시작인지라, 말이 없는 그녀에게 내가 먼저 말을 걸어 보기로 했다.
 “저기, 유키호. 그걸 물어보려고 했던 거야?”
 “미키는?”
 “뭐?”
 그녀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미키? 이 상황에서 미키 얘기가 왜 나오는 거지? 그러나 그런 의문도 잠시 뿐이었고, 금세 아까 전처럼 차분해졌다. 이상하다. 나도 나 자신이 이해되지 않는다. 왜 이렇게까지 침착한 걸까. 이 상황에서 나쁘진 않겠지만, 마치 감정 없는 기계가 된 기분이라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미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여기서 미키 얘기가 왜 나오는 건지부터 말해 줄래?”
 내가 말해놓고 깜짝 놀랐다. 난 왜 이렇게 차갑게 말하고 있는 걸까.
 “...미키에게서 들었어. 미키와... 뭔가 했다고.”
 유키호의 목소리가 점점 낮아져간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그녀의 눈이 보인 것은 아니었지만, 아마 지금 그녀의 눈은 언젠가 보았던 그 초점 없는 눈이 아닐까. 그 눈을 무서워했던 나지만, 왠지 모르게 지금은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느꼈다. 
 “그건 미키 쪽에서 강제로 했을 뿐이야.”
 조심스레 입술을 떼며 대답을 이어나간다.
 “이미 미키에게 사과도 받았고, 끝난 일이야.”
 유키호가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이 내 눈을 꿰뚫을 듯이 번쩍였다. 얼마 전에 보았던 그 눈이 아닌 또 다른 눈이다.
 “...내가 마코토에게, 그런 일을 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할 거야?”
 “못 하게 할 거야. 미키가 뭘 했는지 알고 있다면, 내가 왜 그러는지도 알 거라고 생각해.”
 심장이 쪼그라들 것 같았다. 대답을 하면서도 그녀의 눈이 나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싫어?”
 “그렇진 않아. 다만 유키호가 말하는 ‘좋아’랑, 내가 말하는 ‘좋아’는 좀 다르지 않을까.”
 유키호의 눈이 다시 땅으로 떨어졌다. 지금 내가 확실히 말해야 한다.
 “나도 유키호가 좋아. 하지만 그것뿐이야. 유키호가 나에게 품고 있는 감정이 어떤 감정인지는 어렴풋이 알 것 같지만, 나는 그 감정을 같이 가져줄 수는 없어. 미안해.”
 “마코토, 유키호! 녹화 곧 시작한다. 빨리 올라와!”
 계단 위에서 프로듀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키호는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유키호, 올라가자.”
 그녀의 손목을 잡고 계단을 향하려는데, 그녀가 갑자기 팔을 당겼다. 계단을 올라가려던 나는 유키호가 있는 쪽으로 몸이 기울어졌다. 그리고 그 기울어진 몸에, 그녀가 가까이 다가왔다.
 “유키...”
 내 말을 막듯 그녀의 입술이 붙어온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그 자세로 그녀는 움직이지 않는다. 입술만이 가까이 다가온, 움직임이 없는 프렌치 키스. 불현듯 미키의 키스가 떠오르려고 해서, 나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 조심스레 밀어냈다. 그녀는 어깨에 얹혀 있는 내 손을 한참 바라보더니, 나를 지나쳐 계단을 향했다.
 “...이걸로 용서해 줄게.”
 “...유키호.”
 그녀는 나와 눈을 맞추지 못하고, 녹음 준비가 끝난 사무실로 향했다. 나는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어라, 미키쨩. 오늘은 스케쥴 없잖아?”
 “아, 코토리. 근처에 쇼핑하러 나왔다가 잠깐 들러본 거야.”
 코토리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회색의 사무실에, 금빛 소녀가 들어왔다. 이제는 그녀의 지정석, 아니 지정 침대나 마찬가지인 붉은 소파에 누워, 그녀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저기, 코토리. 마코토나 유키호는 아직 안 온 거야?”
 “음... 지금 둘이서 라디오 녹화 중일 거야.”
 “헤에...”
 뭔가를 꼼지락거리며 핸드폰을 연신 누르던 미키는, 핸드폰을 접어 넣어버리고 소파에서 이리저리 몸을 뒤척였다. 자기 적당한 자세라도 찾고 있는 것일까. 
 “...슬슬 유키호에게도 확실히 해 두지 않으면 안 되겠네.”
 계속해서 적당한 자세를 찾아 움직이던 그녀의 움직임이 멎고, 그녀는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유키호의 정면돌파! 하지만 마코토에게는 효과가 없는 듯하다...
자게에 써놓고 자버릴 뻔 했네요;; 형식적용 안되는 거 보고 알아서 급히 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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