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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하야 「패턴 1번, 변명하는 인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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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0-20, 2016 01:45에 작성됨.

 눈물이 멎었다. 의무에 가까운 감정에 고개를 들어 유우를 살펴보았다. 가냘픈 신체의 선과 길게 길러낸 머리. 다리를 가지런히 모아 옆으로 쓰러진 모습에서 여성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너는 왜 이런 길을 택한 걸까?

 

 그리고 나는 왜, 이런 길을 택한 걸까.

 

 깨닫고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방안에는 엷은 어둠에 깔려있었다. 이렇게 기운이 빠진 상태로 계속 쌀쌀하게 있으면 분명 감기에 걸릴 것이다. 실컷 울어버린 것을 자각하니 권태감이 몰려온다. 부어오른 눈은 시야를 가로막았고 몸을 일으키는 것도 제법 버거웠다.

 

“유우, 감기 걸릴 거야.”

 

 나 자신도 놀랄 정도로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유우가 고개를 들어,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올려다보는 그 얼굴이, 눈물로 얼룩진 표정이 너무나 안타까워 견디지 못하고 눈을 돌리고 말았다.

 

“응, 알겠어.”

 

 그대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을 확인하고 도망치듯이 욕실로 향했다. 수도꼭지를 돌려 욕조에 물을 채워두고 밖으로 나와 전기 히터에 전원을 넣었다. 발이 닿는 방마다 형광등을 밝히며 부엌으로 걸음을 옮겼다. 상자 안에 담긴 주전자를 꺼내 가볍게 헹궈 내고 레인지를 조작해 물을 끓였다.

 

“분명 이쯤에…….”

 

 아, 찾았다.

 

 핸드 드립 티백, 대기실에 있던 것에 관심을 보였더니 프로듀서가 억지로 떠넘긴 것이다. 좋아하긴 하지만 식기가 꺼내져 있지 않으니 여태껏 건드려본 적도 없다. 먼지가 얇게 쌓인 겉포장을 괜히 한번 쓸어보았다. 프로듀서의, 하루카의, 사무소 모두의 관심도 이것과 같았을까?

 

 나는 어떤 핑계를 대면서 소중한 마음을 구석으로 밀어 넣었을까?

 

 조그마하게 물이 끓기 시작하는 소리가 들렸다. 벽에 기대어 앉아 유우의 얼굴을 떠올렸다. 조금 전까지의 유우는 어둡고 어두운 검은색의 화면 같아서, 그 마음에는 내 푸른빛의 눈동자만이 비쳤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유우의 모습은 나와 분명히 같았다.

 

 “……어째서?”

 

 그런 것 정도는 직접 묻지 않아도 이미 짐작하고 있다. 아마 옷장 너머의 유우도 나를 보고 알아챘을지도 모른다. 유우도 나도 확실하게 누군가를 추모하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인생을 오롯이 그 한 명에게만 바치고 있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동질감이 느껴졌다.

 

 나, 키사라기 치하야는 동생이 죽어가는 모습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노래해야만 한다. 죄 많은 누나는 이렇게 부끄러워하면서도 살아서 숨 쉬고 있다. 그렇다면 유우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어느새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는 포트를 보고, 종이 티백을 뜯어 컵 위에 걸쳐놓았다. 주전자를 들어 올리자 무게감이 근육을 잡아당긴다. 조금 고민하다가 포트를 내려놓고 다른 잔을 꺼냈다. 티백을 용법에 맞게 놓고 포트를 잡아 살짝 기울인다. 가는 물줄기가 곱게 갈린 원두를 적신다. 커피의 향이 흰색의 김과 함께 컵 밖으로 흘러나온다.

 

 어떤 일이 있었다고 해도 유우를 도와야만 한다. 나의 죄를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서. 또 다른 키사라기를 돕기 위해서. 다른 세상에 살고 있더라도, 나의 사랑스러운 동생을 구원하기 위해서.

 

 깊게 숨을 들이쉰다. 폐부 깊은 곳까지 커피의 독특한 향으로 메워진 것 같았다. 티백을 개수대에 던져두고 나니 두 손에는 커피가 담긴 머그잔이 남았다.

 

* * *

 

 손등으로 부엌의 전등 스위치를 끄고 옷장 앞으로 향했다. 유우는 아까와 같은 자리에 앉아있었다. 어느 정도 정리를 한 것인지 건너편의 방도 밝혀져 있었다. 장의 옷들도 옆으로 밀어두어 전보다는 넓은 시야가 눈으로 들어왔다.

 

 “자.”

 

 머그잔을 건너편으로 밀어준다. 그것을 잡으려는 유우와 한순간 손가락이 맞닿았다. 따듯했을까? 뜨거운 잔에 얼얼해진 손가락은 그것에 확실히 답하지 못했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옷장을 사이에 두고 양편에서 커피를 홀짝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나, 커피 좋아해?”
“응, 좋아해.”
“그렇구나…….”

 

 별것 아닌 대화에 유우는 헤실헤실하며 웃음을 흘렸다. 나도 그에 따라 미소가 지어졌다. 행복이라는 건 생각보다 가까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살짝 뜨거운 컵을 손으로 감싸들었다. 매끄러운 표면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따스한 감촉을 느끼며 다시 잔을 입에 대고 커피 한 모금을 삼킨다.

 

 내가 입을 연다면 분명히 이 행복은 뿔뿔이 흩어지겠지.

 

 그래도 말해야만 한다. 다시 유우에게 시선을 향했다. 입에 커피의 씁쓸함과 산미가 맴돌았다. 끈덕지게 남아있는 향과 울음으로 달라붙은 입은 너무나도 무거워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바다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처럼 답답한 마음에 깊게 숨을 내쉬었다.

 

 유우가 그것에 바로 반응했다. 시선은 나를 향해 고정한 채로 컵을 바닥에 내려놓고 머리를 정리해 어깨 뒤로 넘겼다. 그 행동이 너무도 자연스러워 마음을 짓누르는 무게는 더욱 무거워졌다. 불안을 뒤로하고 유우의 얼굴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다짐한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는 왜 머리를 기르고, 여성복을 입고 있는 거니?”

 

 유우의 몸이 움찔거렸다. 최대한 돌려서 물어볼 셈이었는데, 반응을 보아서는 실패한 모양이었다. 유우의 입이 떨어졌다가 다시 붙기를 반복했다.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가엽기도 하여 한 번 더 유우를 향해 말했다.

 

“너는 지금, 누구니?”
“정말, 누나 앞에서는 거짓말할 생각도 못 하겠네.”

 

 유우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나에게는 아주 익숙한 것, 주변을 둘러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듯이 존재하는 것이었다. 유우가 지어 보인 것은 부드러운, 환하게 빛나는 태양 같은 아이돌의 미소였다.

 

“저는 키사라기 치하야, 765 프로덕션 소속 아이돌입니다.”

 

 조금 더 톤을 올린 목소리로 유우는 말했다. 그것은 확실히 내 목소리와 닮아있었다. 유우가 살아있었다면 나와 이렇게 닮아있었을까? 둘이 함께 외출하면 한눈에 남매라고 서로 닮았다는 소리를 들으며 즐거워할 수 있었을까?

 

 아니,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고개를 젓고 유우에게 시선을 돌렸다. 표정에 날이 서있었는지 유우가 몸을 움츠렸다. 의식적으로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았다.

 

 유우의 표정을 보니 잘 되지 않은 것 같다.

 

“유우.”
“응, 누나.”

 

 어떻게 말을 꺼내는 것이 좋을까? 어떻게 하면 유우, 소중한 네가 상처받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말재주가 없기에 유우에게 편한 말을 골라줄 수 없다. 이미 세상에 없는 유우의 어린 누나의 자리를 대신해주는 것도 아마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쪽으로 와서, 네 이야기를 들려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가 최선이니까. 한 번 숨을 끊었다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난 후에는 내 이야기를 하자.”

 

 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말한 것에 묘하게 기뻤는지 아니면 자신이 이성을 잃고 말한 것이 새삼스레 부끄러워졌는지, 시선을 다시 내 눈까지 끌어 올리지는 않았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누나를 잘 따르는 아이. 눈앞의 유우는 내가 아는 8년 전의 자그마한 남동생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유우는 갑자기 고개를 들어 입을 열었다.

 

“누나.”
“왜 그러니 유우?”
“물소리가 계속 들리는데 괜찮아?”

 

 말을 듣고 나서야 수도를 잠가놓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일부러 물줄기를 가늘게 해놓았지만, 지금이라면 분명 흘러넘치고도 남았을 시간이 지났다.

 

“유우, 조금만 기다려줘.”
“목욕만 끝내고 얘기하자, 알겠지?”

 

 그렇게 말하고는 옷장 문을 닫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다급히 서랍을 열고 갈아입을 옷을 챙겼다. 문 너머에서는 유우의 진심 어린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부끄러움에 얼굴로 피가 몰리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욕실로 향했다.

 

 동생을 아끼고 야무지지만 가끔은 실수도 하는 아이. 지금의 나는 분명 8년 전의 조그마한 여자아이와 같았을 것이다.

 

* * *

 

 욕실에 들어서자 상상했던 그대로의 참사가 눈에 들어왔다. 욕조에는 온수가 가득 받아져 있고 감당하지 못하는 만큼은 외벽을 따라서 흘러내렸다. 배수구와의 거리가 제법 있어서인지 타일 위에는 온기가 느껴지는 물이 얇게 깔려있었다. 발을 들이자 찰박하는 소리와 함께 물 특유의 감촉이 살을 간질였다. 옷을 벗어, 바구니에 잘 개어두었다. 유우가 있다고 생각하니 별것 아닌 일에도 신경을 기울이게 된다.

 

 수도를 잠그고 다른 쪽의 수도꼭지를 비틀었다. 샤워기에서 온수가 쏟아져 나왔다. 따듯한 물을 온몸으로 받으며 손을 뻗어 감각만으로 세면도구를 찾았다. 잡히는 대로 옆에 놓아두고는 샤워기를 옆으로 돌리고 샴푸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대로 용기의 머리 부분을 누르려다 잠시 손을 멈추었다.

 

“아무리 그래도 765 프로덕션이라니.”

 

 오늘은 조금 일찍, 탕에 들어가고 싶은 기분이었다.

 

 몸을 전부 씻어낸 뒤, 욕조의 벽을 붙잡고 팔을 넣어 휘휘 저었다. 물이 밀려 밖으로 넘쳐흘렀다. 타일과 부딪혀 튀어 오르는 물은 분명히 열기를 가졌을 텐데도 신기하게 차갑게 느껴졌다. 한쪽 다리를 들어 넘실거리는 욕조에 넣었다. 이어서 다른 한쪽도, 그리고 천천히 자세를 낮추어 바닥을 짚고 몸을 완전히 물에 담갔다. 따듯한 물이 신체를 포근하게 안아주었다.

 

 물속에 있던 손을 들어 올렸다. 날씨가 제법 쌀쌀해져서일까, 들어 올린 손에서는 김이 피어올랐다. 온기를 가진 물에서 만들어진 물안개는 하늘하늘 피어올라 전등 근처에서 흩어졌다. 안개를 흩트리자 사방의 증기가 빈 곳을 향해 달려들었다. 어느새 비어있던 장소는 물안개가 가득 차있었다.

 

“나도 네 자리를 채워줘도 될까?”

 

 허공에 건넨 말엔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좁은 욕실의 벽만이 말을 간직했다가 다시 내뱉을 뿐이었다. 웃음을 흘리고 몸을 더 내려 정수리 끝까지 물속으로 집어넣었다. 고요한 적막이 전신을 감쌌다. 수도관에서 주기적으로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만이 귀에 들려온다. 이기적이게도, 유우 네가 나와 똑같이 물어온다면 나는 아니라고 하겠지.

 

 나는 네 누나이고 싶어 하면서 말이야.

 

 손으로 바닥을 짚고 머리를 물 밖으로 밀어 올렸다. 거기에 휘말려 올라왔던 물방울들이 수면과 만나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우, 네가 이 마음을 되살려주었는데 나는 이것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 마음은 어디를 향하면 좋을까?

 

 “어긋나있는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하면 좋을까?”

 

 내뱉은 말은 욕실 벽에 울려 바뀌고 새로운 음을 입었다. 조금 무겁게 변한 그 말은 신기하게도 유우의 목소리와 비슷하게 느껴져 나는 다시 귀를 물속으로 담글 수밖에 없었다.

 

 비틀린 나는, 방향을 잃고 헤매는 마음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른 채 깊은 밑바닥으로 기어들어가 조용히 숨을 죽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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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Acubens입니다.

쓰고싶었던 부분만 써서 억지로 이어붙였던 첫 번째와는 다르게 제법 공을 들였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첫 번째 이야기도 비슷한 느낌으로 수정하겠습니다.

 

개인의 신념으로 댓댓글은 자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 댓글은 모두 살펴보고 있습니다. 힘이 되어주네요. 고맙습니다.

남은 이야기도 부디, 함께 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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