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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코미디 마스터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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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11, 2012 17:40에 작성됨.

히비키, 하루카, 유키호, 마코토에 이은 타카네의 공격으로 나는 리타이어 직전이 되어 다시 사무소로 이동했다. 아아. 정말로 심장에 안 좋아. 하지만 다른 녀석들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래. 죽더라도 나머지 녀석들을 다 만나본 다음에 죽겠어!
남자라면 그곳이 사지라는 것을 알면서도 가야할 때가 있다. 그때가 바로 지금이다!

타카네를 먼저 들여보낸 후, 문 앞에 서서 심호흡을 훅, 훅, 훅하고… 이거 임산부들이 하는 거잖아. 크흠. 어쨌든 그럼 들어가 볼까.
사무소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누군가 작은 아이가 내 앞으로 쪼르르 달려왔다.

“수, 수고했어. 오빠.”

내게 오렌지주스를 내미는 녀석은 다름 아닌 이오리였다.

“응. 고마워.”

“100% 오렌지주스라고. 이 이오리쨩이 오빠를 위해 특별히 가져온 거니까.”

냉장고에 쭉 보관해놓고 있었는지 시원했다. 정말 100%라서 그런지 시중에 파는 거랑은 확실히 다른 맛이었다. 맛좋고, 시원하고 오늘 호강하는구만.

“어때?”

“오오. 진짜 맛있네, 이거.”

“그렇지? 니히힛. 이오리쨩의 정성이 들어가 있는데, 맛있는 걸로 정해져 있잖아?”

“네가 직접 만들었어?”

“그, 그건 아니지만. 아까도 말했잖아. 오빠를 위해 직접 가져와서 냉장고에 아무도 못 마시게 보관해놨다고? 그 정도 정성이면 충분하지 않아?”

“그래, 그래. 고마워. 이오리.”

“이오리?”

나와 이오리의 눈이 마주쳤다. 과연 이 녀석이 뭘 바라고 있는 건지, 나는 한참동안 그녀와 아이 컨택트를 하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이오리쨩.”

“니히힛. 그래야지, 오빠. …제대로 이오리쨩이라고 불러주지 않으면, 이오리는 쓸쓸해져버린다구?”

살짝 애틋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이오리. 다짐을 그렇게 했건만, 첫 번째 관문에서 이미 핀치였다. 그렇게 도도했던 이오리가 이런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다니. 이건 이변이다. 이변이야!
유키호 이후로 두 번째로 꼭 끌어안고 싶은 기분이 들었지만 참아야 한다. 지금까지 여러 가지로 위협받아왔지만, 그래도 내 쪽에서 말이 아닌 행동으로 해버리면 어쩐지 내 패배가 되는 기분이 드니까. 이미 진 기분이긴 해도, 그래도 액션을 취하지 않는 건 내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오빠가 곁에 있어줄 테니까 안심해.”

“우웅… 그 약속. 꼭 지켜줘? 샤를이 항상 이오리 곁에 있는 것처럼. 이오리도 항상 오빠 곁에 있을 테니까.”

“이, 이오리쨩…”

이오리는 내 오른팔을 잡더니 내 귀를 자신의 키에 맞추도록 끌어내렸다. 내가 허리를 숙이자, 그녀는 내 귀에 자신의 입을 가져다대더니,

“이오리는… 영원한 오빠의 인형이니까… 이오리를 마음대로 해도 좋 아 요?”

레드 얼럿! 레드 얼럿!
이건 이미 남매의 레벨을 아득히 초월했다!!!
내가 그 자세 그대로 굳어버리자, 이오리는 내게서 한 걸음 물러나더니, 예의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니히힛! 자. 어땠어?”

“주… 죽겠다…”

“그럼 역시 1위는 이 이오리쨩의 손에 들어온 거네?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완벽하게 해낼 수 있으니까! 이 정도 연기쯤은 간단하지.”

“그런 것 같네. 1위인지는 아직 판단 못하겠지만.”

휴. 진짜 위험했다.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라 그대로 소파에 쓰러지듯 앉았다. 뭔가 아까 전의 데자뷔인 것 같지만 상관없어.
하지만 기운을 차리는 것도 잠시, 소파에 앉은 지 20초도 되지 않아 누군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저기. 오빠. 아미랑 놀아줘.”

“마미랑 놀아줘.”

이 녀석들인가. 하지만 아미와 마미는 애초부터 나를 선수오빠라고 불러왔던 터라 그다지 임팩트가 없었다. 이번은 쉬어가는 건가.

“음… 그럼 우리는 다른 호칭으로 불러도 되는 거야?”

“어떤 호칭으로?”

내 말에 아미와 마미는 서로를 마주보며 약간 고민하는가 싶더니,

“아빠-!”

“그건 여러 가지 의미로 아웃이다-!”

누굴 매장 시키려고!
아무리 연기라지만 그건 안 돼! 전력을 다해 거절한다!

“부- 재미없네.”

“그럼 그냥 오빠로 할게?”

나는 잠시나마 금지된 무언가에 발을 들여놓은 기분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발 평범하게 해주라.

“음, 음. 그럼…”

“자. 오빠. 오늘 학교에서 친구들이, 너희는 오빠가 야구선수라서 좋겠다고 했어. 앞으로도 계속 응원한대.”

“우리느은. 오빠가 우리 오빠라서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몰라.”

오오… 역시 애들은 애들이구나. 그래. 이게 정상적인 남매간의 대화지. 이번엔 정말로 편하게 갈 수 있겠구나.

“오빠는, 야구도 잘하고, 친절하고, 항상 우리들에게 웃어주고 하니까.”

“아미. 부끄러워서 말은 제대로 못하지만, 오빠에게 항상 고마움을 느끼고 있어.”

왼쪽에는 아미가, 오른쪽에는 마미가 앉아 내 양팔을 붙잡고 살짝 부끄럽다는 투로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조곤조곤 말하는 게 또 신선하고 좋았다. 그래. 이거야. 이게 남매야. 난 이걸 원했어!

“미안한데 오빠. 오늘 학교에서 배운 것 중에 궁금한 게 있는데, 오빠라면 마미랑 아미에게 가르쳐줄 수 있지?”

“있지?”

“어…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대로 가르쳐줄게.”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미가 내 무릎위에 폴짝 올라탔다. 자연스럽게 얼굴을 마주보게 되어 화들짝 놀라는 차에, 오른쪽에 있던 마미는 내 팔에 아까 전의 마코토 수준으로 끈적하게 들러붙었다. 끈적하게.

아미의 얼굴이 내게 점점 가까워졌다. 그제야 나는 녀석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나 예의 그 표정이었다. 이것들이 날 속였구나!

“오빠. 가르쳐줘.”

“뭐, 뭐, 뭐를.”

“보건체육.”

“으이익?!”

“가르쳐줘, 오빠.”

“아이는 어떻게 생기는지… 마미한테 꼭 가르쳐줘?”

“으아아! 이것들아! 저리가-!”

마미를 먼저 떨쳐낸 다음, 내 무릎 위에 앉아있던 아미의 옆구리를 잡고 소파에 강제로 앉혔다.

“니들은 실격이다.”

“에에-”

“그런 게 어딨어-”

“세상에 어느 여동생이 오빠한테 그러겠냐고.”

“다들 그랬잖아. 아미도, 마미도. 다른 언니들이 어떻게 했는지 대충 알고 있다고?”

“그 누구도 너희정도의 수위는 아니었거든.”

“응~후~후. 혹시 선수오빠. 우리들의 다이너마이트 섹시 작전에 이성을 잃을 뻔했다던가?”

“너희들 같은 애송이들에게 누가 이성을 잃어. 난 로리콘이 아니거든.”

“흐응… 그럼 계속해볼까?”

“시끄러. 너희들 차례는 여기서 끝이다. 더 이상 없어. 앞으로도 계속.”

“부우-”

“시시해-”

쌍둥이들은 투덜거리며 다른 녀석들이 있는 쪽으로 가버렸고, 나는 수명이 3일은 단축된 기분을 느끼며 다시 소파에 몸을 맡겼다. 후… 이제 다섯 명이 남은 건가. 제발 끝날 때까지 내가 살아있었으면 좋겠군.
이라고 생각하던 찰나에, 천장을 보고 있던 시야가 왠 손에 의해 가려져버렸다.

“누구게-!”

쉴 틈이 없네. 목소리로 미루어보아 100% 미키다. 드디어 올 것이 왔는가.

“미키구나.”

“헤에- 대단하네. 역시 오빠라는 느낌?”

“미키의 목소리는 언제 어디서든지 알 수 있으니까.”

“오빠. 미키를 그렇게 신경 써주고 있었던 거네. 미키. 감동한 거야. 에잇!”

소파의 뒤에 서있던 미키는 등받이를 잡고 폴짝 앞으로 뛰어내려 그대로 소파에 앉았다. 이 녀석. 확실히 운동신경은 갖추고 있네.

“미키. 오빠 얼굴 정말 오랜만에 보게 돼서, 여기가 두근두근 거리고 있는 거야.”

이 녀석은 오랜만에 오빠를 만나게 된 컨셉을 잡은 건가.
의외로 정석적인 코스라고 생각했더니, 미키의 손이 내 오른손을 붙잡았다.

“미키의 가슴. 얼마나 두근거리는지 만져볼래?”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내 머릿속에 엄청나게 많은 것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E의86E의86E의86E의86E의86E의86E의86E의86E의86E의86E의86E의86E의86같은 것들이. 하지만 나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그걸 참아냈다.

“아…아니! 굳이 만져보지 않아도 잘 알 것 같아. 미키가 나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줘서 기쁜 거야. 아핫!”

“그래, 그래.”

“하지만… 또 오빠가 가버릴 걸 생각하면… 미키의 마음 한쪽이 쿡-하고 아파져 와서, 미키. 어쩔 줄 모르게 돼.”

“걱정 마. 앞으로는 아무데도 가지 않을게.”

“그럼 약속해.”

미키는 내 앞으로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나는 알겠다고 대답하며 그녀의 새끼손가락에 내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그랬더니 미키는 그 손가락을 풀지 않은 채로 나를 애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 눈에 살짝 눈물까지 맺혀있는 것이 보여 나는 마음속으로 엄청나게 놀랐다.

“오빠… 미키랑 약속한 거야? 꼭 미키랑 함께 있어야 해? 미키… 쓸쓸해지면 죽어버릴지도 모르는 거야…”

완벽하게 허를 찔렀다. 지금까지 많은 녀석들이 그래왔기에, 게다가 미키니까. 당연히 색기로 밀어붙일 줄 알았는데 이런 가련한 컨셉이라니. 미키가 이렇게 나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예상과 역으로 간 덕분에 임팩트는 두 배였다.

“여기까지 하자. 굉장하잖아, 미키! 설마 진짜 우는 거야?”

“으응. 눈물연기 한 번 해보고 싶어서, 미키의 주먹밥을 누가 몰래 먹어치웠다는 생각을 했더니 바로 눈물이 나버린 거야.”

“…그것 참 대단하구나. 정말 대단해. 그런 걸로 눈물을 흘릴 수 있다니. 역시 미키는 여러 가지로 재능이 있는 것 같아.”

“아핫. 칭찬 고마운 거야.”

미키가 가버린 다음,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설마 미키가 회복수였을 줄이야. 물론 미키의 눈물도 여러 가지로 두근거리기는 했다만, 그래도 심장이 턱턱 죄이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 멘트는 이오리와 비슷했는데, 끝은 전혀 다르군.

“오빠-!”

다음은 야요이인가. 설마 야요이가 색기로 들이밀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야요이는 그럴 녀석이 아닐뿐더러 그런 이미지는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오빠. 항상 저희들을 위해 애쓰느라 힘드시죠?”

“아니. 괜찮아.”

“그래도 많이 피곤해보이시는데… 아! 오빠. 소파에 반듯이 앉아보실래요?”

“응? 아. 그래.”

야요이가 말하는 대로 소파에 몸을 곧추세워 제대로 앉았다. 그랬더니 곧 야요이의 작은 손이 내 양 어깨를 안마해주기 시작했다.

“오오, 오오?”

“어때요? 시원하세요?”

“응. 안마 잘하는데? 야요이.”

“에헤헷. 엄마 아빠에게 곧장 해드리곤 했으니까요.”

요즘 확실히 운전이다 스윙이다 해서 어깨가 좀 뭉쳐있었는데, 야요이는 능숙하게 내 어깨를 풀어주었다.

“저. 아이돌을 시작하면서 분명 힘든 점도 많았지만, 오빠가 항상 저희들을 위해 힘내주시는 걸 보고 저도 마음을 다잡게 돼요.”

“그랬구나.”

“네. 그러니까. 저.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항상 웃을 테니까, 오빠도 웃어주세요? 오빠의 웃는 얼굴. 저는 좋아하니까요!”

오오. 이거다. 힘이 솟는다!

“응!”

내 대답에 야요이는 어깨를 주무르던 양손을 쭉 내밀어 뒤에서 내 목을 꼭 껴안았다. 그리고는 오른손을 내 앞으로 살짝 펼쳐 보이며,

“자. 하이터-치!”

야요이의 손바닥에 내 손바닥을 살짝 마주치자, 야요이는 나를 안았던 팔을 풀면서 동시에 내 귓가에,

“야구선수 씨라면 연기가 아니라도 좋으니까요!”

라며 후다닥 도망쳐버렸다.
뭔가 여운이 많이 남는데…
어쨌든 미키와 야요이가 확실히 치유계로구나. 미키는 의외지만 어쨌든. 이제 남은 사람은 미우라 씨와 치하야와 리츠코다. 가장 기대가 되는 사람들만 남은 셈이다.

그리고 그 첫 번째 테이프는 미우라 씨가 끊었다.

“우후훗. 갑자기 오라버니가 생겨버리다니. 왠지 두근두근하네요.”

나도 엄청나게 두근두근한다. 내게 F컵의 여동생이 생기다니! 비록 몇 분이긴 하지만.

“자. 오라버니. 오늘도 수고하셨어요?”

이건 일 나갔다 온 오빠를 맞이하는 컨셉인가. 미우라 씨 다운 조신한 분위기네. 게다가 오라버니라니. 이건 거의 타카네 급의…

“어머, 어머. 오라버니. 얼굴이 많이 피곤해보이시네요. 오늘 일. 힘드셨나요?”

“어… 뭐. 오늘은 조금 그랬어.”

“저런… 아. 그렇지. 우후훗. 오라버니. 오늘은 제가 오라버니를 위해서… 자. 여기 앉으세요.”

일어서 있었던 나는 미우라 씨에게 이끌리듯 소파에 앉게 되었다. 그러자 내게 조금 떨어져 앉아있던 미우라 씨는 싱긋 웃으며 자신의 무릎을 톡톡 쳤다.

“…?”

“오라버니도 차암. 자. 여기에 누우세요. 빨리요.”

그, 그건가. 무, 무, 무, 무릎베개? 무릎베개라는 건가?
내가 우물쭈물 망설이자, 미우라 씨는 직접 내 팔을 잡더니 나를 조심스럽게 쓰러뜨렸다. 내 머리가 닿은 곳은 당연히 미우라 씨의 무릎이었다.
네. 끝났습니다. 이대로 영원히 잠들고 싶네요.

“우후훗. 어때요? 가끔씩 이렇게 쉬는 것도 좋죠?”

“으, 응. 확실히 그렇! 네…”

미우라 씨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말하려 했으나, 그 사이에 있는 거대한 장애물 덕분에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보니 정말 압도적인 볼륨이구나. 새삼 느꼈다.
이대로 한동안 두 사람 다 말없이 있었다. 와. 정말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네. 미우라 씨에게 무릎베개라니. 진짜 모르는척하고 한 번 잠들어볼까 했다가, 벽에 붙은 시계를 보고 시합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느꼈다. 어서 나머지 두 사람을 만난 다음 경기장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되겠군. 아쉽다.

내가 그녀의 무릎에서 일어나자, 미우라 씨는 생긋 웃으며,

“다 쉬셨어요, 오라버니? 그럼 이제부터 밥인가요? 목욕인가요? 아니면…”

“…미우라 씨. 생각해봤더니 일련의 상황. 남매라기보다는 부부 아닌가요?”

“어라…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미안해요. 저. 오빠가 없어서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아니. 물론 이것도 좋았습니다. 정말로요.”

“우후훗.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그럼 전 여기까지입니다.”

이렇게 미우라 씨의 차례까지 끝났다. 아. 오늘 정말 호강하는구나. 지금까지의 시련이 모두 이걸 위해 있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좋구나.
자. 그럼 둘 중에 누가 먼저냐!

라고 생각하자마자 치하야가 거의 로봇 같은 경직된 움직임으로 내게 다가와서는,

“저, 저기… 따, 따라와 주세요!”

라며 밖으로 달려 나갔다. 아무래도 사람이 많은 곳에서 하긴 부끄러운 것 같다. 하긴. 치하야가 이걸 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니. ‘저는 노래만 부르면 충분해요. 연기는 필요 없어요.’라고 거부하는 것까지 생각했었는데.
어쨌든 따라가 보자.

치하야가 향한 곳은 역시나 옥상인 것 같았다. 옥상에 올라갔더니, 치하야의 뒷모습이 보였다. 아- 아- 하면서 목을 가다듬고 있는데, 혹시 노래를 부르려는 건가?

“치하야…?”

내 부름에 치하야는 몸을 빙글 돌려 나를 보았다. 그리고는 몇 번을 말을 하려다 말고 하려다 말고 하더니, 끝내 고개를 숙이고 뺨을 붉히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표현이 서툰 나에게도 항상 친절히 대해준 오빠에게… 뭔가 보답을 해주고 싶었어.”

오오. 갑자기 반말인가. 정말 남매라 이건가. 어떻게 생각하면 치하야야말로 제대로 짚은 건데. 이 녀석 의외로 하잖아.

“하지만… 나.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노래밖에 없으니까. 그러니까… 오빠가 꼭 들어줬으면 해.”

“응. 그래. 들어줄게.”

내 말에 그녀는 살짝 표정을 풀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잠시 눈을 감고 있더니, 잔잔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 사랑에 대하여 - 키사라기 치하야


당신을 만나고 싶다고 계속 소원을 빌어
오늘도 여행을 떠나는 끝없는 푸른 하늘
기쁨과 슬픔, 희망 그리고 좌절
반복하고, 반복하고 무언가를 믿으며

사랑에 대하여 아무 것도 모르지만
언젠가 당신의 온기 안에서
사랑을 말하는 날을 꿈꾸며
나는 내일도 여행을 계속해


지금까지 치하야가 노래를 잘한다는 말은 많이 들어왔다. 하지만 그녀가 직접 노래를 부르는 건 노래라기보다는 사이보그 암호 입력에 가까운 ‘안녕!! 아침밥’뿐이었는데. 드디어 제대로 된 노래를 들었다.
노래를 잘한다. 라는 건 뭐 고음을 잘 소화하고 어쩌구 그렇게 생각해왔는데. 치하야의 이 노래는 조용하고 나긋하면서도, 치하야의 전신에서 나는 노래 하나하나에 모든 것을 쏟고 있다는 것이 확 전해져왔다. 노래에 관해 아는 거라고는 쥐뿔도 없는 내가 그렇게 느낄 정도로.

“어, 어때…?”

“너… 진짜 노래 잘하는구나.”

“아, 아니야. 그 정도는. 아직 갈 길이 멀었는걸.”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던 치하야는, 곧 아까 전과 같이 뺨을 살짝 붉히며,

“그래도. 오빠에게 칭찬 받으니 기쁘네…”

치, 치하야… 이런 반전쇼를 준비했다니!
이 녀석. 노래 말고는 관심 없다더니 대단하잖아!!
나도 모르게 옷의 가슴부분을 꾹 움켜쥐자, 치하야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야구선수 씨…? 갑자기 왜 그러세요?”

“아, 아니… 심장이…”

“에엣??”

“아니. 별 거 아냐. 단지 놀랐을 뿐.”

심호흡을 다시 크게… 하던 중에 갑자기 다들 옥상으로 올라와 나를 더 놀라게 했다.

“다들 뭐해?”

내 질문에 가장 앞에 있던 히비키가 싱긋 웃으며,

“마지막이 리츠코잖아? 리츠코가 부끄럽다면서 다 나가있으라고 하지 뭐야.”

허허… 그 녀석 은근히 부끄러움 많이 탄다니까.
그럼 다른 녀석들의 안락함을 위해 내가 빨리 내려가 봐야겠군.
계단을 한달음에 내려가 사무소 안으로 들어가자, 리츠코가 기다렸다는 듯이 양 손을 어깨에 얹고는,

“오빠. 늦었잖아요. 어디서 뭘 하고 있었던 거에요?”

이거냐… 역시나 이거냐… 너무나도 리츠코답잖아.

“정말. 어디서 옷도 이렇게 구겨놓고선.”

리츠코는 내게 뚜벅뚜벅 다가와 아까 내가 쥐고 있었던 옷의 가슴 부분을 살짝 펴놓았다. 그리고는 날 소파에 앉게 한 후, 미리 타놓았던 커피를 내 앞에 내놓았다. 그런 다음 내 옆에 앉아 아까 내가 수도 없이 그래왔던 것처럼 몸을 소파에 파묻었다. 얼레. 이거 냉커피잖아.

“요즘 슬슬 멤버들에게 지명도가 생긴 이후, 얼마나 바빠졌는지 몰라요.”

“확실히 그래 보이더라. 대회 도우미 아니더라도 여기저기 다니던데. 오늘 다들 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하아… 정말. 덕분에 요즘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안 아픈 곳이 없다구요.”

“…그 나이에 벌써부터 할머니 같은 소리 하지 마.”

“하, 할머니라니! 저. 아직 열아홉 살이에요!”

“하핫. 농담이야. 확실히 힘들긴 하겠네. 혼자 열두 명을 돌봐야 하니까.”

“그래도… 요즘엔 오빠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오빠가 없었으면 저. 벌써 쓰러졌을지도 몰라요?”

“약한 소리 하지 마. 너답지 않잖아.”

“에에- 저도 오빠 앞에선 약해지고 싶은걸요.”

이 녀석. 기습이냐! 예상 못한 타이밍을 노려 기습하는 거냐!
리츠코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내게 좀 더 다가와 앉더니, 곧 내 어깨에 자신의 머리를 기댔다.

“지금까지 765프로를 위해 힘내왔으니까, 지금만큼은, 오빠 앞에서만큼은 어리광부려도 되겠죠?”

“으, 응…”

“후훗… 역시 오빠는 상냥하시네요.”

“힘들었나보구나. 지금까지.”

“네. 정말 힘들었죠. 하지만 덕분에 다들 조금씩 인기를 얻어가고 있는 걸 보면, 이 길을 택한 보람을 느끼게 되요.”

“그런가…”

리츠코의 머리에 어깨를 맡긴 채로 가만히 앉아있는데, 더 이상 리츠코의 말이 들려오지 않았다. 그 대신 들려오는 소리는 쌕쌕 얕게 내쉬는 숨소리였다.

“어이. 정말 자는 거냐.”

슬쩍 리츠코의 얼굴을 보았다. 정말 편안한 표정으로 자고 있었기에 차마 깨울 마음이 들지 않았다. 정말 고생하고 있었던 모양이구만. 여자의 몸으로, 게다가 아직 미성년인데 말이다. 열두 명을 모두 관리하는 건 역시 힘든 일이겠지. 스트레스도 많이 받겠고.
아직 시간은 있으니까. 조금만 더 이렇게 놔두자.

하지만 그 후, 다들 내려오는 바람에 리츠코는 깨어났다. 나는 모두 모인 앞에서 오늘 4강전 경기가 끝난 후에 결과를 발표하기로 했다.



경기 결과는 4대3. 우리 팀의 신승이었다. 나는 이번 경기에서도 멀티 히트와 타점을 기록했다. 비록 홈런을 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아직까진 홈런 1위다. 사회인 야구에서 홈런이 나오기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나는 미키와 이오리와 마코토에게 거의 끌려가다시피 하며 사무소로 향했다. 사무소 안에는 역시나 모든 인원이 모여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 이제 대망의 결과발표인가.”

“빨리빨리 발표하라구. 난 기다리는 거 싫어하니까.”

나는 모두의 기대어린 시선을 앞에 두고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다들 대단했는데, 과연 누굴 1등으로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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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힘들게 썼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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