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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코미디 마스터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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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11, 2012 17:39에 작성됨.

“너희들 모두에게 오빠라는 호칭을 들어보고 싶어.”

내 폭탄발언에 모두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사실 안 놀라는 게 더 이상할 것 같긴 하지만.

“선수오빠… 아까 공에 머리 맞더니 역시 이상해진 것 같아.”

“역시 병원에 가보시는 게…”

“에에? 정말??”

다들 나를 불쌍한 표정으로 보기 시작했기에, 나는 한숨을 쉬며 부정했다.

“난 지극히 정상이거든.”

내 말에 이오리는 내게 절대 곱다고는 못할 시선을 보내며,

“그럼 그 말을 한 저의가 뭐야?”

“저의라니. ‘오빠’라는 호칭이 남자들에게 얼마나 큰 로망인줄 아냐. 게다가 아이돌에게 듣는 거라고. 자손만대까지 자랑해도 좋을 일이라고. 너희들은 여자라서 모르겠지만, 남자는 호칭에 엄청 의의를 두는 생물이라고.”

“정말 쓸데없네.”

“쓸데가 없다니… 호칭의 중요함을 모르는 네가 불쌍해.”

“알고 싶지도 않거든!”

“어쨌든. 내 말을 들어봐. 이거 다 너희들에게도 도움 되는 일이니까.”

“대체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건가요.”

다들 시선이 찌릿찌릿했다. 현역 아이돌 열두 명에 전직 아이돌 한 명을 두고 쫄지 않는 내 자신에 스스로도 놀랐지만, 이미 미키와 하루카 앞에서 가슴 이야기를 늘어놨던 시점부터 이미 나는 글렀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당당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을 해봐. 너희들 언젠가 연기를 하게 될 게 분명하고, 그때 누군가의 여동생 포지션을 맡을 수도 있잖아? 너희들 모두 어리기도 하고. 그러니까 그때를 대비한 연기연습이라고 생각하면 좋잖아? 다 너희들을 위한 거라고. 암.”

물론 내 자신의 사리사욕도 들어갔지만.

“그건 확실히…”

“설득력 있긴 하지만…”

“그러니까 한 번 해보는 거야. 나를 너희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오빠상이라고 생각하고, 그에 맞게 한 번 시츄에이션을 만들어보는 거지. 너희들의 역량을 시험해보는 거라고 생각해.”

“취지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근데 그게 왜 하필 너여야 하지?”

“주변에 남자가 나밖에 없잖아. 사장님에게 오빠라고 불러볼래? 그건 여러 가지로 위험하다고 생각하는데.”

나를 미심쩍은 눈으로 보는 것은 여전했지만, 그래도 다들 뭔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분위기가 흘렀다. 좋아. 이대로 밀고 나간다!

“내가 판단해서 가장 좋은 연기를 보여준 사람 한 명에겐, 음… 그래. 해달라는 거 하나 해주지. 선물을 준다거나.”

“저, 정말 선물 하나 사준다는 건가요?”

“그래.”

“우아우아-! 그럼 새로 나온 게임 타이틀이라던가!”

“응.”

“저번에 봐둔 옷이 있는 거야.”

“물론 사주지.”

“다이아 반지.”

“그건 좀…”

“니히힛. 농담이야.”

“이오리 네가 말하면 농담으로 안 들린다니까. 어쨌든, 선물을 사주던 어디에 데려가주던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한해서는 해줄 테니까. 그리고 1등 상품이 중요한 게 아니라 1등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닐까? 내가 1위로 선택한다는 건 적어도 이중에서 가장 연기를 잘한다는 것의 반증이라고?”

다들 웅성대기 시작했다. 뭔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은 것 같은데 이건 거의 성공의 예감이다.

“한 번 도전해보고 싶은 사람은 생각해봐. 심사는 내일부터 할 테니까. 우후후… 아. 그리고 리츠코 너는 강제참여야.”

“에에? 어째서요? 저는 연기할 일도 없는데!”

“혹시 모르니까. 사람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잖아.”

“그, 그래도 저는 그다지…”

“뭐야. 아까는 분명히 최대한 들어준다고 했잖아.”

“…하지만.”

“아. 그래. 리츠코가 참여하면 그거 가르쳐줄게.”

“그거라니 무엇을?”

“뭐겠어? 당연히 마법을…”

“하, 할게욧-!”

“음. 좋아, 좋아.”

“핫. 내가 무슨 말을!”

리츠코는 뒤늦게 정신을 차린 모양이지만, 그때의 나는 아직도 웅성거리는 분위기의 녀석들을 뒤로 하고, 그 자리에서 사라지듯 밖으로 나온 후였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차를 몰기 시작할 때부터 이미 가슴은 두근두근했다. 설마 이렇게 쉽게 설득될 줄은 몰랐는데. 내 오빠에 대한 집념의 승리인가!

아아… 내일이 기다려진다.



다음날 아침.
현역 아이돌에게 오빠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는 기쁨에 밤새 잠까지 설쳤었다. 혹자는 이런 나를 비웃겠지. 하지만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도 많으리라 생각한다.

어쨌든 간에, 씻은 후에 아침 러닝을 위해 맨션 밖으로 나왔다. 제자리에서 스트레칭을 가볍게 하고 막 달리려던 차에, 뒤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컹!”

“뭐, 뭐야!”

데자뷔인가? 순간 혼비백산했던 나는, 그 개가 곧 히비키의 그 이누미인지 뭔지 하는 개인 것을 알아챘다.

“너 또 도망 다니냐?”

내가 내뱉은 말에 이누미는 마치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내 앞에 멈춰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히비키가 달려오며 소리를 치는 모습이 보였다.

“이누미--!! 먼저 가면 어떻게 해!!”

“오. 히비키. 이누미랑 같이 산책?”

“응? 아! 안녕! 야구선… 우갸-! 잠깐만 기다려봐!”

히비키는 눈에 띄게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곧 뒤로 돌아서서 뭔가 중얼중얼 거리기 시작했다. 저 녀석이 대체 뭘 하는 건지 슬슬 궁금해지기 시작할 때,

“흠. 으흠. 좋아. 아. 오빠. 오빠도 아침 운동 중?”

오옷. 갑자기 일격을!
지금부터 개전이라는 건가. 히비키. 빠른데?

“응. 지금 막 나왔는데.”

“흐흥. 그럼 나랑 같이 공원에서 산책이나 하자구.”

“그러지 뭐. 그럼 공원까진?”

“당연히 뛰어가야지!”

나도, 히비키도, 이누미도 공원까지 페이스를 맞춰 달렸다. 가끔은 이렇게 같이 러닝 하는 것도 재미있네. 오빠놀이가 끝난 다음에도 몇 번 같이 다녀보자고 할까.
공원에 도착해 천천히 걸었다. 물론 히비키는 내 옆에 딱 붙어있는 채로 이누미의 목줄을 잡았다.

“오빠. 의외로 잘 달리는 걸. 나. 꽤 놀랐다구.”

“날 누구라고 생각하냐. 운동선수라고, 운동선수. 가끔 빼먹을 때도 있지만 아침 러닝은 항상 하고있어.”

“하지만 저번에 이누미에게 쫒길 때는 금세 리타이어했잖아.”

“그건 정신적으로 너무나 몰려있던 상황이라 그렇지.”

“그건 오빠가 이상한 거라구. 이렇게 귀여운 이누미가 누굴 물려고 덮칠 리가 없잖아? 그치, 이누미?”

이누미는 마치 히비키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짖었다. 그때의 내가 이누미가 이렇게 온순한 줄 알았더라면 놀라지도 않았겠지. 하지만 그땐 이누미도, 히비키도 처음 봤을 때였다.

“잠깐 앉자.”

먼저 벤치에 앉았더니, 히비키가 내 옆에 찰싹 들러붙어 앉았다. 나는 적극적인 히비키의 행동에 놀랐고, 히비키 자신도 너무 붙었다는 걸 인지했는지 살짝 놀란 것 같았다.

“요즘은 그래도 거르지 않고 아침 러닝을 했는데, 널 본 건 처음이네.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서 아침부터 나온 거야?”

“그야 오늘은 별로 덥지 않았으니까.”

히비키의 말대로 분명 오늘은 여름치고는 덥지 않은 날이었다. 날이 흐릿한 게, 잘하면 비가 올지도 모르겠는데. 분명 일기예보에 비가 온다는 말은 없었지만. 이놈의 날씨라는 게 또 모르는 거니까.
하지만 덥지 않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여름치고는’ 덥지 않은 거고, 공원까지 달려왔으니 더운 건 더운 거다. 히비키 역시 더운 걸 느꼈는지 반팔 티의 목 부분을 손으로 펄럭거리다가 그 장면을 보던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히비키는 마치 미키의 소악마스러운 미소를 그대로 재현하며,

“흐흥. 어떻게 된 거야, 오빠?”

“어, 어떻게 되긴. 다 큰 녀석이 남자 앞에서 뭐하는 거야? 무방비하게.”

“오빠야말로 과민반응 아니야? 난 오빠 앞이라면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히비키는 빙긋 웃으며 얼굴을 내게 가까이 들이밀었다. 이거 어째 내가 말리는 분위기인데. 안 돼. 말 꺼낸 사람이 밀리면 이게 무슨 수치냐.
하지만 히비키는 거기서 끝내지 않고, 일부러 목부분을 벌리며 내게 들이댔다.

“오빠에게라면… 보여줄 수도 있다구…? 자, 어때?”

이, 이 히비키는 위험한 히비키다! 안 그래도 어깨가 드러날 정도로 목이 넓은 티인데, 그렇게 벌리면…
나는 최대한 그쪽을 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자 히비키는 내 귓가에 자신의 입을 거의 닿을락말락하게 대고는,

“왜 그래. 오빠. 여동생의 속옷이라구? 오빠라면 이런 것 정도로 동요하면 안 되는 거 아냐? 응?”

시작부터 번뇌의 마천루였다. 무, 물론 좋긴 하지만, 이건 여러 가지로 심장에 안 좋다고. 수명이 줄어든다고!

“조, 좋아. 여기까지 하자.”

“합격이야?”

“물론. 심사위원 만장일치 합격이다.”

“…심사위원이라고 해봤자 오빠. 아니. 야구선수밖에 없다구.”

히비키는 그제야 내게서 떨어져 앉았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정말 의외인데. 히비키 네가 그렇게까지 들이댈 줄은.”

“윽. 이건 순전히 연기라고 생각해서 한 거니까. 다음에 하라고 하면 절대로 못해! 얼마나 부끄러웠는데.”

“그랬던 것치고는 잘하던데?”

“일단 오빠라고 부르는 것에는 별로 거부감이 없으니까. 나. 고향에 오빠가 있기도 하고. 사이는 그다지 안 좋지만.”

“그랬구나… 어쨌든 임팩트는 대단했어. 속옷… 진짜 보여줄 생각이었냐?”

“그, 그, 그럴 리가 없잖아! 지금 입고 있는 건 스포츠용 탑이니까! 어, 어쨌든. 이걸로 1위는 확실하겠지? 내 완벽한 연기력. 잘 봤잖아?”

“현재로서는 1위지.”

“그건 내가 첫 번째니까 그렇게 말하는 거 아냐?”

“다른 애들이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너 정말 잘했어. 두근두근했다고. 두근두근. 남자라면 누구든 빠져들었을 연기였다.”

“흐흥! 그건 당연하지. 자. 더 칭찬해봐. 칭찬해!”

이때의 나는 모르고 있었다.
그저 오빠소리를 듣고 싶어 시작한 일이 어떻게 변질되어버렸는지를.



“오셨군요. 오빠.”

심사를 위해 사무실에 도착했더니. 하루카가 방긋방긋 웃으며 나를 맞이했다.

“아. 하루카.”

“오빠를 위해 준비한 게 있으니까요. 같이 옥상으로 올라가주실래요?”

“응? 아… 그래.”

하루카는 손에 든 무엇인가를 등 뒤에 숨겨놓고는 나를 먼저 사무소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게 했다. 뭔지 궁금했지만, 어차피 올라가면 밝혀질 일이니 군소리 없이 올라가기로 했다.
옥상 위로 올라가자, 하루카는 등 뒤에 숨겼던 것을 내밀었다. 그것은 바로 예쁘게 포장된 쿠키였다.

“오빠를 위해 만들어봤어요. 드셔주실 거죠?”

이럴 수가. 이건 또 생각 못했던 건데.

“으, 응… 잘 먹을게.”

쿠키 하나를 집어 바로 입으로 가져갔다. 밥을 먹은 지 얼마 안 된 시각임에도 하루카의 쿠키는 정말 맛이 있었다.

“오오. 이거 맛있네.”

“정말요? 에헤헤… 오빠가 칭찬해주니 왠지 기쁘네요.”

이 반응이다. 이게 진짜 여동생이다!
내가 원래 눈물이 없는 사람인데 눈물이 다 나려고 하네.
잠시 말없이 서있었더니, 하루카는 살짝 부끄러운 기색을 띠며 쿠키를 집어 내게 내밀었다.

“자. 아- 하세요, 오빠.”

“뭐…라고?”

“빠, 빨리요… 아-”

“그, 그래. 아-”

하루카는 내 벌린 입으로 쿠키를 쏙 넣어주었다. 나는 그것에 감격한 나머지 하루카의 손가락을 깨물 뻔했다. 칠칠치 못하게.

“꺄앗-! 오, 오빠도 차암. 제 손가락까지 먹어버릴 뻔했잖아요.”

나를 살짝 책망하는 눈초리로 보는 하루카가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지만 그래도 아직 많이 남아있으니 이대로 죽는 건 아깝다고 할까. 뭔가 뒤죽박죽이었다.

“와. 하루카 실력 좋은데. 진짜 맛있어. 이것도, 저것도.”

“그, 그럼. 이것도 드셔보실래요?”

하루카의 말에 그녀를 본 나는 그 자리에서 1미터는 점프할 정도로 놀랐다. 얼굴을, 아니. 전신을 빨갛게 물들이고 눈을 꼭 감은 하루카가 쿠키를 자신의 입으로 물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도 약속된 빼빼로도 아닌 보통의 네모난 쿠키였다.

“이, 이건…”

“여, 여, 역시 이건 무리죠. 아무리 오빠라도. 에헤헤…”

“좋아. 여기까지. 아아. 굉장했어, 하루카.”

“후아… 저. 이런 건 역시 서툴러서…”

“아냐. 정말 능숙했는걸. 나중에 좋은 연기를 할 수 있을 거야. 하루카라면.”

“감사합니다…라고 할까. 그래도 정말 부끄럽네요. 에헷…”

이제 겨우 두 명인데 벌써 이 정도의 타격이라니… 나는 이미 돌아갈 수 없는 무언가에 빠져버린 것 같다. 하지만 괜찮아. 열세 명에게 모두 오빠라는 소리를 듣고 장렬하게 산화하고 말리라. 눈앞에 어떤 시련이 닥칠지라도!!

하루카가 준 쿠키를 다 먹고 목이 조금 메는 것을 느끼며 사무소로 이동했다. 소파에 잠시 앉아있는데 주방에서 하루카와 유키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째 하루카가 유키호를 격려하는 것 같은데, 다음 타자는 유키호인 건가.
잠깐 기다려 보기로 했더니, 역시나 유키호가 조심스럽게 내게 다가왔다.

“저. 오, 오빠… 냉차에요오…”

“응. 아. 유키호. 고마워.”

마침 목이 텁텁했는데 잘됐네. 유키호가 타온 차는 달콤하고 맛이 좋았다. 유키호는 그 모습을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유키호. 남자를 어려워하는데 무리하는 거 아닌가. 지금도 바로 내 옆에 앉아있고. 뭐. 어차피 아이돌이 된 이상 연기는 필연적이긴 하지만.

“저번에 오빠가 절 독려해준 이후로, 유키호. 조금 더 힘낼 수 있게 되어서…”

무, 무슨… 이 765프로에서 미키나 쌍둥이 자매를 제외하면 자신을 3인칭으로 지칭하는 녀석은 없었는데. 있어봤자 이오리가 가끔 하던 것이 전부였는데. 뜬금없이 유키호가 저렇게 나오니까 예상외의 파괴력이 있었다.

“다른 남성분들은 아직 어렵지만, 오빠라면 괜찮다고 생각하니까요오…”

“그렇구나. 그거 다행이네.”

“그 날. 오빠가 저에게 힘을 주신 이후로 아이돌의 일.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비록 유키호는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앞으로도 오빠가 있으면 힘낼 수 있어요. 그, 그러니까…”

유키호는 양 주먹을 자기 턱 앞에 모으고는 사슴조차 반해버릴 것 같은 눈망울로 나를 올려보며 말했다.

“오빠. 유키호를 버리지 말아주세요…?”

덜컥했다. 정말 덜컥했어.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유키호를 바로 끌어안아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정도의 파괴력이었다.
내가 진짜 조금만 더 여자에게 약한 성격이었다면 이 자리에서 바로 심장마비로 쓰러졌을 것이다.

“여기까지. 굉장했어, 유키호. 여기가 칸영화제였다면 기립박수가 나왔을 거라고.”

“그, 그 정도는…”

“아니야. 진짜야. 덜컥했다니까. 너 정말 남자를 무서워하는 게 맞는 거야?”

“네. 아직은 많이… 야구선수 씨가 아니었다면 이것도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나라서 다행이야. 정말.”

이제 세 사람인데 벌써 녹초가 된 느낌이었다. 이러다 자칫하면 오늘 있을 4강전 경기에 크나큰 지장이 생길지도 모르겠어. 진짜로.
소파에 눕듯이 쓰러져 있는 와중에 누군가 내가 있는 소파로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자. 이번엔 제 차례라구요?”

목소리를 들어보니 마코토로군. 보이시한 분위기로 어떤 여동생을 연기해낼지 궁금해지는데. 마코토는 내 옆에 서서 크게 심호흡을 했다. 나는 그때까지 쓰러져있느라 마코토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짜잔-! 어때요, 오빠?”

그 말이 꼭 자신을 봐달라는 것 같기에 나는 몸을 일으켜 마코토를 힐끗 보았다. 그리고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튀어 올랐다.

“헤헹. 저. 이런 옷도 의외로 잘 어울리죠?”

라고, 흰색의 원피스를 차려입은 마코토가 말했다. 꽤나 언밸런스한 매력이 있어서 놀라긴 했는데, 자기 입으로 이미 ‘의외로 잘 어울린다.’라고 말하는 것부터 문제인 것 같다만.

“오- 맨날 남자같이 입어서 몰랐는데, 정말 놀랐는데? 진짜 잘 어울려. 귀여워.”

내 말에 마코토는 평소같이 씩 웃지 않고 약간은 조신하게 미소지으며 내 옆에 않았다.

“저도 오빠 앞에서만큼은 제대로 여자아이같이 보이고 싶으니까요.”

“아니야. 마코토는 무슨 옷을 입어도 여자아이 같아.”

내 말에 마코토는 입을 삐죽 내밀며,

“거짓말.”

“정말이야. 마코토는 귀여운 여자아이야.”

“음… 그럼… 쓰다듬어주세요. 착하지- 착하지- 하고.”

“그래.”

머리를 몇 번 쓰다듬고 손을 뗐더니 마코토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하며 내 왼팔에 매달렸다.

“제대로 해주세요오-”

어이진정해마코토지금뭐하는거니그렇게팔을세게끌어안으면가슴이팔에닿는다고게다가너지금얇은원피스입고있잖아침착해침착해침착해!
아, 아니. 침착해야 할 사람은 나인가.
어쨌든, 더 큰일이 나기 전에 마코토를 제대로 쓰다듬어주기로 했다.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더니 마코토는 마치 고양이의 그것과 비슷한 입모양을 하며 헤실헤실 웃기 시작했다.

“오빠의 손은 따뜻하네요.”

“알았으면 이제 슬슬 떨어져.”

“앗. 그건 안돼요. 제대로 오빠는 마코토의 것이라는 흔적을 남겨야 하니까. 그… 곰이 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건 내가 나무라는 거냐.”

“헤헷. 그럴 리가요.”

곰에 비유한 덕분에 충격은 꽤나 늦게 찾아왔다. ‘오빠는 마코토의 것’이라니! 남자라면 꼭 한 번은 들어봐야 하는 그 대사를! 내가 듣게 되다니! 비록 연기라지만!
23년의 인생. 더 이상 아쉽지 않다.
거기에 마코토는 한 술 더 떠서, 팔에 매달린 채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유키호의 그 눈망울보단 덜하지만, 이쪽도 이쪽대로 만만치 않았다.

“제가 이렇게 애교부리는 상대는 세상에서 오빠뿐이니까…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오. 빠?”

어, 어, 어둠속으로 후퇴하라!

“헤헹. 어때요? 야구선수 씨. 저 괜찮았나요?”

“그, 그뤠이이이트-! 훌륭해!”

내 찬사에 마코토는 금세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 허공에 어퍼컷을 했다.

“앗싸-! 이걸로 1위를 노려봐도 되는 건가요?”

“다른 녀석들을 한 번 봐야겠지만, 지금으로선 유력해. 특히 그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 이게 갭모에라는 건가.”

놀란 가슴을 다스리기 위해 심호흡을 하던 중에, 오토나시 씨가 다가와서 타카네를 사무실로 데려와 달라는 부탁을 했다. 잘하면 타카네의 차례를 맞이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역시나 두근거리며 타카네가 있는 장소를 향해 차를 몰았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던 타카네를 태우고 가려던 중에 슬슬 점심시간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점심을 먹고 가자고 했더니 타카네는 흔쾌히 승낙했다.
그렇게 나와 타카네 두 사람은 라면가게로 향했다.

“뭘로 할래? 타카네.”

메뉴판을 주며 묻자, 타카네는 빙긋 웃으며,

“오라버니 좋을 대로 하시옵소서.”

폭탄을 터뜨렸다.
너무나도 위화감이 없어서 나도 한참 후에나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오, 오라버니…”

“네. 소녀. 오라버니가 직접 맞이하러 와주셔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옵니다.”

역시나 타카네라고 할까, 이건 이것대로 엄청난 파괴력…

“항상 소녀를 응원해주시는 오라버니가 곁에 있다면, 소녀. 불초한 몸이지만 오라버니의 성원을 등에 없고 꼭 정상을 향해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하옵니다.”

미친 듯이 성원해주고 싶다! 프로듀서든 뭐든 해주고 싶다!
그러던 와중에 라면이 나왔다. 지금 상태에서 급하게 뭘 먹었다간 그대로 체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에, 최대한 천천히 먹고 있는데, 타카네가 젓가락을 살짝 물고는 도움을 청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게 또 기가 막히게 어울리는 것이었기에, 나는 질문을 안 할래야 안할 수가 없는 기분이 되었다.

“안 먹고 뭐하니? 타카네.”

그러자 타카네는 정말로 난처하다는, 남자라면 누구나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가득들게 하는 표정을 지으며,

“소녀는 오라버니가 호-해주지 않으면 이 뜨거운 라면을 먹지 못한답니다. 자. 호-해주세요?”

의자채로 뒤로 넘어갈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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