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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하야 「패턴 1번, 변명하는 인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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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0-17, 2016 16:28에 작성됨.

‘하루카가 나의, 유우의 뭘 안다고 그러는 거야!’
‘더는, 참견 하지마!’

 

 항상 내 곁에 있어준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버린 걸까. 구토감이 맹렬하게 몰려와 게워낼 것 없는 텅 빈 위장을 두드렸다. 다리를 모아 품에 끌어안고 차분히 숨을 내쉰다. 말을 듣지 않고 떨리는 손을 붙잡고 간절한 마음으로 숨을 들이쉰다.

 

‘노래하지 못하게 된 이상, 이 일을 계속 할 생각은 없어요,’

 

 지난 저녁, 하루카와 프로듀서에게 한 말이 떠올라 무심코 웃음이 나왔다. 노래를 불러야만 하는데, 유우를 위해서 노래를 불러야만 하는데. 그러지 않으면 안 되는데.

 

 노래를 못하게 된 이상 일을 계속할 생각은 없다니, 완전히 주제넘었다. 이기적이고 추악하다. 자기가 베푸는 처지라도 된 듯이 생각한다. 이래서야 유우를 죽음으로 몰아간 것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기사도 모두 맞는 말이다.

 

“그렇지, 유우?”

 

 허공에 내고 자그마하게 말했다. 물론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방은 노을빛으로 물들었고 늦가을의 쌀쌀함이 몸을 휘감았다. 어둠이 스미는 상자 더미와 뉘어진 어릴 적의 사진만이 시선에 들어왔다.

 

 바로 세워야 한다.

 

 이런 것이라도 하지 않으면 유우의 이름을 말할 자격조차 없다. 하지만 몇 시간이고 주저앉아있던 신체는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매트리스에 쓰러졌다. 그런데도 따듯함과 포근함을 느끼는 내가 너무 이기적이라, 너무 비참해서, 다리를 끌어안고 덜덜 떠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었다.

 

“유우…….”

 

 더는 노래할 수 없는 비참한 입은 분수를 모르고 그리운 사람의 이름을 내뱉었다.

 

“하루카…….”
“프로듀서…….”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그 순간, 방 안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방금 같이 빛이 들지 않는 어둡고 쌀쌀한 방. 그러나 분명히 방 어딘가에서 포근함이 전해져왔다. 그것에 홀린 듯이, 힘없는 다리를 채찍질하여 방 안에 있어서는 안 될 따듯함의 근원을 찾기 시작했다.

 

“빛?”

 

 옷장의 틈에서 붉은 석양의 빛이 새어 나온다.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 평소였다면 분명 한 번 정도는 고민해봤을 것이다.

 

 따듯하고 부드럽다.

 

 그래, 분명 난방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다. 나는 따스한 빛에 이끌려 일말의 재고도 없이 그대로 옷장 문을 열었다.

 

“…….”
“…….”

 

 옷장 너머에는 원래 있어야 할 벽이 아닌 또 다른 방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문의 바로 맞은편에는 한 소녀가 옷장의 문을 열고 있었다. 그래, 마치 거울이라도 되는 것처럼. 어깨뼈의 끝에 닿는 파란색의 긴 머리. 얇은 셔츠 너머로 느껴지는 슬랜더한 체형. 그리고 당황한 듯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푸른빛의 눈동자. 나는 분명히 이 사람을 알고 있다.

 

 그 건너편에 있던 것은 바로 나, 키사라기 치하야였다.

 

 

 

* * *

 

 

 

 놀람이라는 감정은 생겨나지 않았다. 어딘지 모를 그리움, 그것만이 나를 차분히 감싸 안았다. 단 하나뿐인 동생도, 친구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자기 손으로 밀어내어 사랑할 자격조차 없는 사람인데도, 거울로 비친 것 같은 나의 모습에는 가슴 한구석이 따스해졌다. 자신을 아끼는 취향은 없다. 외모도 신체도, 어느 것 하나 자랑스럽게 생각한 적은 없다. 그렇지만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마음이 움직였다. 하지만 나와는 다른 듯 그녀는 조금씩, 점점 속도를 내어가며 스러져갔다.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이라도 본 듯, 그녀의 청안이 이리저리 거칠게 흔들렸다. 마른 숲에 불이 옮겨붙는 것처럼 그것은 그녀의 온몸으로 빠르게 번져나갔다. 떨리는 손 탓에 들고 있던 외투가 바닥에 떨어졌다. 플라스틱 재질의 단추가 바닥을 굴러 건조한 소리를 냈다. 무릎까지 옮겨진 긴장에 그녀는 그대로 힘을 잃고 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신체가 쓰러지는 큰 소리에서 그녀의 아픔을 짐작할 수 있었다. 고통스러운 생각에 몸이 움찔거렸다.

 

“어째서……?”

 

 그녀는 주저앉아서도 덜덜거리는 것을 멈추지 못했다. 어느새 피부가 새하얗게 질린 그녀는 두 손으로 머리를 붙잡고 잔뜩 겁이 질린 듯 작은 소리로 웅얼거렸다. 동공은 요동치고 두 손으로 꽉 쥔 머리는 엉망이 되어간다.

 

 너는, 키사라기 치하야는 무엇을 그렇게 두려워하는 걸까? 마주치면 죽어버린다는 도플갱어의 미신이라도 믿고 있는 걸까? 바보같이. 내가, 키사라기 치하야가 그렇지 않은 건 내가 제일 잘 알면서도 그런 생각을 하다니. 부끄러워 고개가 저절로 숙어진다.

 

“내가 밀어낸 게 아니잖아, 직접 날 구해준 거잖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밀어내……? 구해……?

 

 숨겨두었던 기억이 머릿속을 빠르게 헤집는다. 끼익 하는 불길하고 소름 끼치는 소리. 검은색으로 길게 스키드 마크를 그어내는 타이어. 나의 눈앞에서 허공으로 튀어 오르는 작고 여린 체구.

 

“그렇지만, 나는, 미안해, 미안해.”

 

 핏방울이 튀어 오르고 주변 사람들이 소리쳤다. 나에게 소중했던, 그 귀여운 몸이 단단한 아스팔트 위로 떨어진다. 무언가 흩뿌려지는 불쾌한 소리. 여기저기서 들려왔던 찢어지는 비명, 웅성거리는 소음. 그리고 그것에 점점 시야가 어두워지고 머리가 지끈거려 눈을 돌린 그곳에는…….

 

“누나에게 속죄해야만 해.”

 

 순간적으로 세상이 멈췄다. 그럴 리가 없다. 하지만, 그렇지만.

 

“유우……?”

 

 더는 들어줄 사람이 없는 이름이 입 밖으로 흘러나온다. 그것이 다시는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마구 구겨 목 안으로 삼켰다. 실수를 변명하기 위해서 고개를 들어 옷장 너머의 나와 눈을 마주했다.

 

 그런데 왜.

 

 그녀의 눈가에 석양의 붉은 빛이 반짝였다. 가볍게 깨문 입술은 눈에 보일 정도로 떨렸고 물결이 퍼지는 것처럼 피부는 빨갛게 물들어간다. 이름 하나를 입에 담았을 뿐인데, 그녀의 떨림은 어느새 멈춰있었다.

 

 너는 왜, 유우라는 이름에 그런 표정을 짓는 걸까?

 

 그녀의 열기가 나에게 전해진 듯, 가벼운 지근거림과 함께 머리가 뜨거워졌다. 아니, 오히려 지금은 그 정도가 딱 좋다. 이 불쾌한 고통이 없다면 눈앞의 환상에 삼켜질 것 같기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저어 그 따듯한 유혹을 털어내려 애썼다.

 

 그러나, 숨길 수 없는 마음이 틈을 비집고 자라난다. 노래, 일 그리고 무거운 죄책감으로 눌러둔 감정이 입술을 비집고 새어 나왔다.

 

“유우, 유우니?”

 

 그럴 리 없는데도, 있을 수 없는 일인데도.

 

“응…….”

 

 또 다른 키사라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가에 아슬아슬하게 맺혀있던 눈물이 뺨을 타고 굴러떨어졌다. 처음으로 흘러내린 방울이 만들어 낸 길로 연이어서 눈물이 방울방울 미끄러진다. 방금까지 한 말에 대한 죄책감일까? 아니면 그리움?

 

“나야 누나.”

 

 울먹이면서도 강한 힘을 가진 목소리. 단어 하나하나가 정확히 꽂혀 들어 가슴이 아려온다.

 

“누나의, 키사라기 치하야의, 하나뿐인 남동생.”
“그 이름을…….”

 

 입에 담지 마? 그 목소리로 증명해줘?
 나의 죄를, 목표를, 전부를 앗아가지 말아줘?
 그것도 아니면 나를 용서해줘?

 

 ……나를 구원해줘.

 

“유우야, 치하야 누나.”

 

 세상이 뿌옇게 변했다. 얼굴을 숨긴 손 위로 뜨거운 방울이 쏟아져 내렸다. 동생의 죽음을 외면한 냉혈한의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그것은 따듯했고 나 스스로를 안심시켜주었다.

 

 아아, 이것이 덧없는 환상이라면 기꺼이 삼켜져도 좋아.

 

 나도 그리고 유우도. 어느 누구도 먼저 움직이지 못하고 감히 말을 꺼낼 수도 없었다. 어째서 유우가 여성복을 입고 있는 것인지. 어떻게 우리가 만나게 될 수 있었던 것인지. 지금은 그 어떤 것도 중요치 않았다. 길게 늘어뜨린 유우의 그림자가 사라질 때까지 우리는 잃어버린 것에 대해 슬퍼했고 있어서는 안 될 기적에 감사했다.

 

 분명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비틀어져 있음을 알 수 있는 불행한 남매는 서로가 불러준 자신의 이름 하나에 구원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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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Acubens입니다. 오랜만에 다시 찾으니 부끄럽네요.

제목에서 느낀 분도 있으실지 모르겠지만 이 글은 HERO님의 패턴 그 1, 쓸모없는 인간에서 아이디어를 빌린 글입니다.

다만, 이제보니 원형은 거의 남아있지 않네요. 어째서 항상 이렇게 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글은 아이돌 마스터 THE ANI@MATION 20화 7분 40초부터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각자의 사정으로 비틀어진 홀로 남은 남매들의 이야기, 남은 내용도 어울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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