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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등성짜리 붙박이별-사기사와 후미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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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0-16, 2016 12:56에 작성됨.

저는 오늘 실연합니다. 

 

 아이돌을 하늘에 반짝이는 별에 비유하고는 하죠? 반짝 반짝 빛나는 소녀들 그런 아이돌을 괜히 스타라고 부르는게 아닙니다. 저도 무대에선 반짝이는 아이돌 중 하나겠죠 하지만 프로듀서 앞에서 저는 6등성 별입니다. 지구로부터 몇광년이 떨어진 곳에서 약한 빛을 비실비실 보내고 있는 눈으로 겨우 볼까 말까한 별들 중 하나겠죠 자신을 눈치 채주었으면 하지만 소극적으로 밖에 행동하지 못하는 저를 프로듀서는 신경이나 쓸까요. 아주 밝게 지구를 향해 빛나는 1등성 별처럼 힘껏 자신들의 마음을 어필하고 있는 아이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그래서 저는 오늘

실연하려 합니다. 

별은 마지막 순간 가장 밝다고 합니다. 일반적 항성이 수소를 핵융합 반응으로 헬륨으로 바꾸어 빛을 발하는데 긴 시간이 지나 별 내부의 수소가 점차 소진되어 어쩌구 저쩌구 사실 자세한 과학적 내용은 몰라요 문과라서 죄송하네요 어찌되었든 결론만 이야기 하자면 별이 마지막 순간 가장 밝게 타오르고 그 후로는 차갑게 식어간다고 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지막 수소를 태워 아주 강한 빛을 몇광년이 걸릴지 모르는 여정에 보내고 자신은 그 빛에 대한 응답을 기다리지 않고 천천히 식어가겠죠. 식어서 점점 빛이 꺼져, 어두워집니다. 그리고는 까만 우주의 블랙홀이란 한 점이 되겠죠 이 넓은 우주에서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구분할 수 조차 없겠죠. 그것과 마찬가지로 오늘 제가 그대에게 제 마음을 전하면 저와 그대의 관계는 끝이 나겠죠 그리고 저는 갈곳을 잃어버리겠죠 이미 제 고백에 대한 결과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고백이 저에게는 가장 마지막 순간 가장 반짝이는 별처럼 일순간 섬광일지는 몰라도 프로듀서에게 저를 한번 돌아 보게 할 마지막 기회아닌 기회가 될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오늘

대답을 받을 수 없는 고백을 전하려 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계속 작은 빛이나마 보낼 수 있을지 몰라요, 가끔씩 아주 가끔씩 여유가 생겨 희미하게 빛나는 별에 관심이 가게되어 천체 망원경으로 저 별은 뭐지? 하면서 찾아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주인공이 아니어도 프로듀서의 곁에 있는것만으로도 행복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프로듀서가 베푸는 의미없는 호의에 기뻐하며 작은 관계나마 이어 나갈수 있겠죠 하지만 그래서는 밤하늘에 많은 6등성 별들중에 하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거에요. 프로듀서에게 제가 어떠한 무엇인가가 되고 싶은건 제가 부리는 욕심입니다.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을때 북극성처럼 프로듀서 가는 길의 지침이 되는것을 바라는건 아닙니다. 데네브,알타이르,베가처럼 여름을 상징하는 대삼각형이 되고 싶은것도 아닙니다. 그저 프로듀서가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을때 가장 먼저 찾게 되는 별 하나가 되고 싶은게 제 마음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오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룰수 없는 소원을 빌어보려 합니다.

언제였을까요 저번 여름 라이브 콘서트를 한 뒤였던가요? 제 차례가 끝나고 프로듀서를 찾으러 돌아다닐때 프로듀서는 공연장 뒤쪽 편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름 부르기 전에 다른 아이 한명이 프로듀서의 곁에 있는걸 눈치챘습니다 다음 무대의 아이돌이었네요 그리고 그 아이는 프로듀서의 입술에 슬며시 입을 맞추고는 부끄러워 하며 무대로 올라갔죠. 저는 그때 보았습니다. 프로듀서가 짓는 미소를, 그 행복해 하는 표정을 저는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제가 받은 충격을 초신성에 비유하면 너무 호들갑스러울까요? 저는 그때 프로듀서 이름을 부를 수 없었습니다. 그저 등을 돌려 돌아오는 제 마음은 중성자별처럼 무거웠습니다. 대기실에 돌아와선 평소처럼 책을 들고 있었지만 몇십분이 지나도록 한페이지 이상을 넘길 수 없었습니다. 그 이후 꽤나 많은 시간을 저는 마음을 혼자서 정리하는 서재처럼 차곡차곡 정리를 해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정리하려해도 정리되지 않고 복잡해져만 갔습니다. 프로듀서를 떠올리려 할때마다 제 마음은 어느 미숙한 공대생이 짠 프로그램 코딩처럼 혼란스러웠고, 젊은 베르테르가 쓰는 메모장처럼 슬픔이 가득찼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제 마음을 깨끗이 지우려고 합니다.

프로듀서가 멀리서 걸어오는게 보입니다. 제 문자를 받고는 오는것이겠죠. 점점 다가옵니다. 프로듀서와 저의 마지막 시간이 다가옵니다. 이제 제가 프로듀서에게 마음을 전하면 더이상은 프로듀서와 아이돌의 관계로도 있을 수 없겠죠. 저와 프로듀서 사이에 사건의 지평선이 있어서 이대로 프로듀서가 영원히 다가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프로듀서께 고백하면 그 이후는 끝밖에 남지 않을테니까요 끝이 다가오네요 프로듀서가 점차 가까워집니다. 이제 전해야겠죠. 어떤 긴 문장도 마침표는 찍힙니다. 어떠한 소설도 마지막에는 完이라는 단어는 붙습니다. 끝없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프로듀서와 저의 이야기는 이제 여기서 엔딩을 보게되겠죠 이것이 제가 읽는 책이라면 잠시 여기서 책갈피를 끼우고 책장을 덮었을것입니다. 그리고는 서고 맨위쪽에 손조차 닿기 힘든 위치에 책을 올려놓고는 잊어버렸겠죠 하지만 이미 이야기의 첫문장을 쓸때부터 정해진 결말일지어도 저는 한장밖에 남지 않은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프로듀서」

「응 후미카 무슨일이야」

「저....」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말을 꺼내야 하는데....프로듀서의 얼굴을 보니 그동안 했던 모든 결심이 무너져 내립니다. 그렇게 오늘을 다짐했는데요...그렇게 오늘 마지막을 준비했는데...아...이대로.....이대로 있으면 우리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을것 같은 환상이 듭니다. 이대로..."아무것도 아니에요 프로듀서..."라고 말하면 프로듀서는 "뭐야 그게 후미카 싱겁네"하면서 웃을겁니다. 그러고 다시 소소했던 일상으로 돌아가는것도 나쁘지 않을까요? 비록 저를 바라봐주는 프로듀서는 아니어도...곁에 있는것만으로도 괜찮지 않을까요. 

아닐겁니다...이대로 저는 6등성짜리 붙박이별에 불과하니까요

마음을 다 잡아야 합니다. 저는 환상의 찌꺼기들을 모두 걷어내고 다시 프로듀서를 바라봅니다. 프로듀서와 저와의 거리감이 느껴집니다. 멀고 멀어서 닿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요 제가 아무리 밝게 빛나려 노력해도 이 사람에게 가장 빛나는 별은 제가 아니겠죠. 시리우스 별이 아무리 반짝이여도 지구에 가장 빛나는 붙박이별은 태양인것처럼 저는 프로듀서의 태양이 될수 없습니다. 그 모든걸 알고서도 저는 말을 전해야겠죠 왜냐면 빛나지 않는 별은 별이 아니기 때문이기에 이대로 어디 한구석에 이름조차 붙혀지지 않은채 조용히 사라져 가는 항성 X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프로듀서...저는....」

눈물이 왈칵 쏟아 집니다. 아무리 각오를 다져도 마지막을 바라보고 있으니 겁이 납니다. 프로듀서가 눈물을 흘리는 저를 조심스레 걱정해줍니다. 언제나 상냥한 사람이네요. 제가 고백을 해도 거절할 방법을 몰라 우왕좌왕할 프로듀서의 모습이 눈에 보입니다. 거절이 어색한 사람이니까요...저는 어쩌면 나쁜짓을 하고 있는것 일지도 모릅니다. 모든걸 알고 있으면서 그 결과조차 알면서도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마음을 숨길 수도 있는데도 자신의 마음을 속이고 싶지 않아 프로듀서에게도, 프로듀서의 그녀에게도 못할짓을 하는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만..오늘만이라도

1등성이 되지 못하는 6등성짜리 붙박이별의 심술을 용서해주세요 

 

「저는 프로듀서가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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