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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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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0-15, 2016 03:00에 작성됨.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창문을 타고 방 안 가득 채워갔다. 잠이 없는 이는 벽난로에 불을 올린 뒤, 홀로 책상 옆 바닥에 쌓인 낡은 서적들을 한데 모아 정리하기 시작했다. 책이 천장까지 무수히 꽂혀있는 책장에 하나하나 분류해 꽂아두면서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먼지를 걸레로 닦아냈다. 매번 하는 익숙한 일인 듯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한 벽 책장을 깔끔하게 했다. 그녀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책 한 권을 꺼내 들고 내려왔다. 벽지의 패턴과 같은 그림이 그려진 표지의 책. 바로 옆 책상의 책들과 함께 기대앉아 첫 장을 넘기려고 하자,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그녀는 책을 살며시 방석 위에 올려두고 문 건너편 이를 반기러 나갔다.

 

  "벌써 깨셨나요?"
 방문을 열자 찬 바람이 먼저 마중을 나왔다. 고개를 내려보니 한 아이가 몸을 떨고 있었다. 그녀의 어깨에 닿을 만큼 작은 아이였다.
  "응. 추워서 일어났어."
 아이의 입에선 어렴풋이 입김이 나오고 있었다.
  "아, 참. 미안해요. 잠깐 환기를 시킨다는 걸 깜빡했네요."
 그녀가 문 바깥을 향해 살짝 손짓을 하자 복도의 활짝 열린 창문들이 차례로 닫혀나갔다.
  "안으로 들어오세요."
 차가운 아이는 어두컴컴한 복도 끝자락을 바라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삐걱거리는 소리가 잦아들었다. 방 안으로 들어온 아이는 바닥에 있는 모포를 둘러싸 매고 그대로 벽난로 앞에 자리 잡아 앉았다.

 

 그녀는 방석 위의 책을 스리슬쩍 손에 가져와 다시 옆 책장을 이어 청소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그녀가 책장 청소를 마무리 지을 때까지 아무 말 않고 따뜻한 벽난로 앞에 앉아있었다.
  "그 거, 처음 보네."
 아이는 옆 책장의 빈자리에 꽃아 넣으려는 불그스름한 가죽 서적을 보고 물었다.
  "…이거 말인가요?"
 그녀는 살짝 움찔하며 답했다.
  "응. 기억엔 없는 표지라서. 새로 산 거야?"
  "아뇨. 이 책은…."
 갑자기 들려온 문 건너편의 우당탕하는 발걸음소리에 그녀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둘 다 깨버렸네요."

 

 문이 활짝 열리고, 방 안으로 한 아이가 불쑥 들어왔다. 방금 들어온 아이와 같은 생김새. 꽁지머리의 방향만 다른 쌍둥이 아이였다.
  "아흐으, 추워서 이대로 눈사람이 될 것 같아~. 중간에 창문이 닫혀서 또 얼어 죽진 않았지롱."
  "봄에 눈은 거의 오지 않아."
 짧은 꽁지의 아이는 첫 아이의 모포를 쭉 잡아당겨 같이 둘러싸 맸다.
  "아으, 초봄은 아직 춥다구~. 이렇게 감수성이 부족해도 돼?"
  "꼭 필요하지 않은 건 없어도 돼."
 긴 꽁지의 아이는 대꾸를 하면서도 그녀가 들고 있는 책만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두 번째로 온 아이는 장난을 치려다가 그녀와 같은 방향을 쳐다보았다.
  "어라, 타카네. 그 책은 뭐야? 처음 보는 책인데?
 장난기를 잔뜩 내뿜으며 은빛 장발의 이에게 한껏 다가온 아이는 가디건을 붙잡고 질문을 이어나갔다.
  "잠깐잠깐, 맞춰볼게. 소설책? 몰래 쓰던 그림일기? 혹시 우리가 알면 안 되는 무시무시한 거?"
  "아니에요."
 뒤이어 이어진 끝없는 물음에도 그녀가 아니라고 답하자, 아이는 바닥에 쓰러져 좌절했다.
  "오늘 수업을 무사히 끝마치고 오시면 보여드릴게요."
  "으윽, 궁금증을 인질로 잡다니…."
 처음으로 온 아이는 바닥과 한 몸이 된 아이에게 다가와 찬 몸에 모포를 덮어주었다.
  "어쩔 수 없네."
  "그러네. 어쩔 수 없쟝. 마미, 오늘 숙제 좀 보여줘!"
  "또 안 했어?"
  "그치만 지식은 다 마미한테 가버려서 머리가 텅텅 비어버렸다구~. 나로서는 극복할 수 없는 운명인걸?"
 아미는 마미의 허리를 붙잡고 매달렸다. 마미는 한숨을 푹 쉬었다.
  "작문시험 도와줄 테니까~."
  "알겠으니 좀 놔줘. 옷 늘어나."

 

 그녀는 꿈에 빠진 아이들을 침실로 돌려보냈다. 토닥이는 장난이 그치고, 다시금 적막해진 공간에서 그녀는 책장에 꽃아 넣은 붉은 서적을 손에 가져왔다. 사그라지는 벽난로의 불을 자그마한 등불로 옮겨 책상 주변을 밝혀놓았다.
 잠이 없는 이는 책의 가운데 장을 펼쳐 천천히 읽어나갔다. 창의 그림자가 방을 감싸 안아 그이의 시야를 가리고, 정원을 가득 채운 학생들의 소란스러운 대화 소리가 귀를 막고, 아이들이 깨어나 다시금 방문을 두드리면, 그제야 타카네는 과거에서 깨어나 하루의 예정된 일과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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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꽤 오랫동안 갈림길에서 떠나지 못했다. 나뭇가지를 쓰러트려 방향을 정해보기도 하고, 어느 한쪽 길로 발을 내딛다 돌아오기도 했다. 집에서 나올 때 마주 보고 있던 해는 어느덧 머리 위로 올라가 그녀의 콧등을 따스하게 비췄다.
 그제도, 어제도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역시 그도 다른 이들과 똑같은 거짓말쟁이다. 살갑게 대해주는 척, 친절한 척하는 그들과 똑같은 부류.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버린 그녀는 이내 눈을 돌렸다.
 푸른 바닷가가 보이는 방향으로 조금 걸어나가자 아카시나무로 둘러싸인, 옹기종기 모인 작은 시골 마을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바로 정면에 보이는 거대한 성당이 가야 할 목적지. 그녀는 멍하니 절벽 옆으로 나온 길을 따라 터벅터벅 마을로 내려갔다. 꿈이 아닐까 하는, 차라리 꿈이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그 향긋한 냄새와 부드러운 살결은 잊히지 않는다. 신발 사이에 들어간 분홍빛 잎은 여전히 발 아래에 있다. 그이가 쓰다듬은 금빛 머릿결이 바닷가의 시원한 바람에 휘날렸다.

 

 머릿속 추억에 빠진 사이에 도착한 성당의 입구. 문 주변 공터를 서성이는 개를 보곤 자신이 왔다는 것을 들키려나 싶어 살금살금 뒷길로 향했다. 자신만이 알고 있는 장소. 학교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몰래 만들어둔 비밀통로. 자그마한 나무 문짝을 열고 들어가, 먼지와 거미줄을 헤쳐나가며 도착한 곳은 온갖 물건이 마구잡이로 널린 창고였다. 그녀는 갑자기 코가 간질여 한 번 크게 재채기를 하고 나서야 시끌벅적한 옆 교실로 향했다.

 

 조금이나마 열린 교실 뒷문 옆의 벽엔 거울이 하나 걸려있었다. 지난번 그녀가 깨트린 거울이 생각났다. 깨져버린 것이지만, 친구였던 이들은 믿어주지 않는다. 유심히 거울을 지켜보다 아이들이 반사되어 보이자 얼굴이 굳어졌다. 서로 간의 고성과 울상짓는 아이 또한 사라진 화목한 풍경. 분명 자신이 없는 덕분이겠지. 무심코 마음먹은 길은 이제 사라졌다.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곳에 오는 건 아녔다.
 단호히 생각을 접었음에도 왜인지 모를 짜증이 밀려와 문을 쾅 닫았다. 안에서 아이들이 놀란 목소리에 뒷걸음질을 쳤다. 교사의 발걸음이 문 가까이 들리자 몸을 사물함 뒤로 숨겼다. 잠시 후, 문을 열고 나온 교사는 여러 번 복도를 두리번거렸다. 소리의 원인을 찾지 못했는지 어리둥절하며 다시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조금이나마 틈이 난 문 사이로 그의 뒷모습을 보다 복도를 빠져나갔다.

 

  "바람의 요정님이 지나갔나 보네요."
 다시 단상 위에 선 교사가 중얼거렸다.
  "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요?"
  "숙제요…."
 창가 끝자리에 앉아있는 단발의 아이가 한숨을 쉬며 답했다.
  "고마워요. 오늘 내려던 숙제는 됐고."
 교사의 말에 학생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는 단상을 툭툭 쳐 수군거리는 학생들을 진정시켰다.
  "그래요. 저번에 간 고성은 어땠나요?"
 그는 학생들에게 질문했다.
  "엄청 으스스했어요. 꼭 유령이 사는 것 같았다니깐요."
 몇 학생들은 몸을 부스스 떨었다. 그런 아이들에게 한 아이가 소리를 확 질러 깜짝 놀라게 했다. 다시금 소란스러워진 교실. 그는 조용히 칠판에 분필로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목에 힘을 주는 것보다 확실한 효과를 가져왔다. 단번에 교실은 숨소리 하나 나지 않게 됐다.

 

'지금부터 입 연 사람 수만큼 숙제.'

 

  "아, 숨은 쉬어도 돼요."
 이곳저곳에서 숨을 크게 내뱉는 소리가 들려왔다. 교사는 실소를 지었다.
  "지금은 이곳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공간이지만, 선대에는 그곳이 이 나라에서 가장 큰 도서관이자 교사였어요. 저만 해도 그곳에서 수업을 받았답니다."
  "왜 지금은 거기를 안 써요? 낡아 보이긴 해도 무지막지하게 큰 데다가 멋졌는데."
 학생의 물음에 교사는 능숙하게 말을 돌렸다.
  "참, 제가 찾아보시라고 한 벚나무는 찾으셨나요?"
 대부분의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교탁 가까이에 앉아있는 한 아이가 책상 아래에서 무언가 꺼내 교사에게 보여주었다. 아카시아 꽃. 이 마을 어느 곳에서나 주울 수 있는 흔한 꽃이다.
  "아뇨. 이것만 잔뜩 봤어요. 여기 애들보단 좀 작긴 한데 별다를 거 없던데요."
 아이는 꽃을 교탁 위에 올려두었다. 교사는 꽃의 줄기를 잡아 손가락에 맞대어 빙그르르 돌렸다.


  "벚나무의 요정은 아무도 찾을 수 없고, 무엇도 찾을 수 없는. 그곳은 특별한 곳이니까요."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
 교사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은 학생들이 그에게 물었다.

 

  "자자, 수업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고, 오늘도 미키는…… 역시 오지 않았군요."
 교사는 학생들의 물음을 무시하고 비어있는 오른쪽 구석으로 눈길을 옮겼다.. 여기저기 상처가 난 자리의 주인이 오지 않은 날은 일상인 듯, 아이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다음 종례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

 

 


 미키는 갈림길로 되돌아왔다. 조금만 더 기대해보자. 다시금 그 미소를 간절하게 보고 싶은 그녀는 신발 양쪽을 저 멀리 내팽개치고 갈림길 반대쪽 숲속으로 향했다. 바람이 살살 불어 등을 밀어주자 미키는 달려나갔다. 서너 언덕배기를 넘어 도착한 곳은 한껏 샘이 난 심신을 안정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있다!"
 미키는 들판 가득 만개한 꽃을 하나하나 땄다. 등줄기에 흐르는 땀방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옮겼다. 장미 가시에 스쳐 손가락 마디마디에 상처가 나도 묵묵히 줄기를 부러트렸다. 혹시 모를, 받는 이가 다칠 염려에 미키는 간단한 수를 부려 가시만 골라 불태워 버렸다. 어쩌다 실수를 해 꽃밭 사이에 구멍이 뻥 뚫린 자리가 생겨났다. 그렇게 모아놓은 꽃은 팔 한 뼘만큼 수북이 쌓였다.
 미키는 두 손 가득 모인 꽃다발을 조심히 감싸 안아 향기를 맡아보았다. 이상하게도 그이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올라가는 입꼬리를 감추지 않고 꽃밭에서 달려 나왔다. 숨을 헐떡이며 도착한 곳은, 언덕 꼭대기에 홀로 꼿꼿이 서 있는 벚나무 한그루. 이제야 그녀가 왔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하루카, 하루카!"
 나무 뒤편에서 밤색의 머리카락이 휘날리고 있었다. 검푸른 세일러복과 붉은색 리본. 시야를 가득 채우는 그녀의 모습.
  "무슨 일이야 미… 우와앗?!"
 미키는 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버려, 나무 뒤에서 돌아 나온 하루카를 덮쳤다. 한 아름 모은 꽃들은 그녀의 위에 흩뿌려졌다. 잔바람이 불어 둘의 사이에 꽃잎이 휘날렸다.
  "아으으."
 넘어지고 부딪힌 충격에 미키는 눈이 핑핑 돌았다.
  "괜찮아?"
 그녀의 걱정스러운 말에 미키는 자신 밑에 깔린 게 하루카라는 것을 깨닫고 재빨리 자리에서 비켜주었다.
  "어제랑 그제랑 왔었는데 왜 없었던 거… 어라."
 그녀에게 쌓인 궁금증을 풀어내는 도중 미키는 자신 주변에 널브러진 꽃들을 보자마자 표정에서 다 드러날 정도로 마음이 울적해졌다. 좋아하는 이를 만나는 것도 잠시 뒤로 하고 모아놓은 건데. 그녀가 좋아할까 봐 주려고 한 일이 허사가 됐다.
  "잠깐 일이 있었어.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굳게 다물어진 미키의 입은 그녀가 바닥의 꽃을 잡고 살짝 미소를 짓자 금세 풀어졌다. 하루카는 생채기가 잔뜩 나 불그스름해진 미키의 손을 양손으로 감싸주었다. 향긋한 향기와 함께 따스한 기운이 손바닥을 통해 몸을 돌았다.
  "하아아…. 하루카 손 엄청 따뜻한 거야."
 미키는 그녀의 손을 잡은 채로 볼에 갔다 댔다. 그때와 같은 보드라운 살결이 닿자 기분이 점점 풀어졌다. 이대로 계속 있었으면 좋을 텐데. 떨어지지 않고 싶었다.

 

 

  "저기 말야."
 하루카는 오른손으로 땅바닥의 꽃잎이 다 떨어져 나간 줄기 하나를 집어 나지막이 말했다.
  "왜 하루카? 또 어디 가?"
 미키는 하루카의 손을 꽉 붙잡았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미키는 안심이 됐다. 하루카는 꽃줄기를 두 사람 사이에 두고 말했다.
  "여기 이 꽃들도 아프다고 하니까 이다음부턴 보기만 해줄래?"
 하루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미키는 피식하고 웃었다.
  "그거, 엄청 부끄러운 말인 거 알지?"
  "아읏. 이럴 때는 그냥 받아주면 좋겠어…."
  "다음부턴 꼭 그럴게~."
 미키는 배시시 웃었다. 볼이 살짝 붉어진 그녀는 미키의 손을 놓아주었다. 손은 다시금 상처 하나 없이 말끔해졌다.
  "깨끗해졌다."
 신기한 사람이다. 미키가 모르는 마법들을 간단히 부릴 줄 안다. 벚꽃의 따뜻한 향기만이 주변을 맴돌 뿐, 아무런 기운도, 냄새도 느껴지지 않는다. 어느 하나 확실한 대답을 해주지도 않고 뭔지 모를 말만 하는 이상한 사람이다. 그런데도 미키는 그녀가 한없이 좋았다.

 

 

  "맞다, 미키에게 내준 숙제 기억나?"
  "숙제? 음, 숙제가 있었나…?"
 미키는 생각에 빠졌다. 기억 속의 하루카가 무언가 간단한 부탁을 한 것이 흐릿하게 생각났다.
  "그, 이거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었어."
 하루카는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작은 직사각형 형태를 그렸다. 미키는 이제야 생각이 났다.
  "출석증! 근데 그게 숙제인 거야?"
  "아니 아니, 말이 헛나와버렸네. 예전 습관도 참…."
 어색하게 웃고 있는 하루카를 뒤로하고, 미키는 교복 재킷의 주머니에서 꾸깃꾸깃해진 종이 하나를 꺼냈다. 쭉 펴서 보기 쉽게 만든 뒤 하루카의 손에 올려주었다. 앞면엔 학교의 이름과 교사의 출석도장이 큼지막하게 찍혀있었다.

 "자, 여기. 근데 하루카도 출석증 받아?"
 하루카는 이 마을의 사람이 아닐 것이다. 아는 주변 이에게 물어보아도 그녀가 입고 있는 동복을 아는 이는 없었다. 이곳에서 평생을 살아온 옆집 할머니조차 알지 못한다고 했다. 요정은 절대로 아닐 터이고, 그저 옆 마을의 신기한 사람일 것이랴 지레짐작했다.
  "아는 사람이 항상 흘리고 다녔거든. 그때랑 바뀐 게 하나도 없네."
 아는 사람. 하루카에게 아는 사람이란 과연 누굴까. 혹시 미키 자신보다 더 가깝고 친한 사람은 아닐까.
  "아는 사람? 누구?"
  "소개해 주기엔 벚꽃이 너무나도 많이 피어버려서 더는 만나지 못하는 사람."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잠시. 미키는 그녀의 가까운 이가 멀리 떠나버렸다고 받아들였다. 내심 미안해지면서도 이상하게 안도가 됐다.

 

 

  "이쯤에… 어라."
 하루카는 출석증의 앞, 뒷면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햇볕에 비춰보기도 하는 등 이상한 행동을 반복했다.
  "왜 그래?"
  "이거 미키 거 아니야? 오늘 자 것도 아니네…."
 하루카는 출석증 뒷면의 이름을 미키에게 보여주었다. 미키의 바로 옆자리 학생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응. 미키는 받아본 적 없어서 다른 애들이 사물함에 쌓아놓은 거 하나 가져왔어."
  "왜 못 받아봤어?"
  "그야 애들이 기분 나쁘다고 미키를 싫어하는 거 있지."
  "무슨 짓 했어?"
 하루카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미키를 올려다보았다. 미키는 눈이 마주치자 움찔하며 시선을 피했다.
  "몰라. 아무것도 안 했는데 막 피한다? 그래서 미키도 학교 가는 게 싫어."
 미키는 벚나무에 기대앉아 손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빗었다.
  "다들 싫어…."

 

 

 그런 그녀를 안쓰럽게 내려다보고 있던 하루카는 미키가 가져온 꽃의 줄기를 꼬았다. 그것과 바닥에 널브러진 아카시아 꽃을 서로 엮어 어여쁜 화관을 만든다. 그녀는 하늘로 손을 뻗어 나뭇가지를 부러트려 손에 가져왔다. 이어 뭐라 중얼거리는가 싶더니 미키에게 화관을 씌어주었다.
  "자, 내일은 이거 쓰고 학교에 가봐. 애들이 싫어하지 않을 테니까."
  "미키는 하루카면 충분한 거야."
 미키는 화관을 머리에서 내려 양손에 꽉 잡았다. 옆 꽃잎이 살짝 부스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다음 숙제입니다."
 하루카는 조곤조곤하게 말했다.
  "앗, 숙제가 아니라…… 미키, 듣고 있어?"
  "응."
  "내일 학교는 꼭 가줘. 알겠지?"
 하루카는 주저앉아 화관에 벚꽃 가지를 꽃아 넣고는 미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숙제… 해오면 하루카는 뭘 해줄 거야?"
 미키는 뾰로통한 얼굴로 고개를 올려다보았다.

 

 

  "매일 학교에 가면, 여기 매일 놀러 와도 돼."
  "정말?"
  "응. 정말로. 언제나 기다리고 있을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변의 꽃잎이 휘날린다. 한바탕 눈을 뜨기 어려울 만큼의 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후, 그녀가 서 있던 높은 언덕은 노을빛의 들판으로 변해있었다. 미키는 바로 앞의 말라 비틀어진 나무 하나를 멍하니 바라보다 화관을 조심스레 머리에 썼다.


  "이게 있으니까… 더는 꿈이 아닌 거지? 그렇지 하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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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무리히메 세계관의 이야기입니다.

광고는 하루치하같지만 떡밥들은 하루미키라는 느낌이 팍팍 들어서 좋습니다.

처음 구상할 때는 중간에 그림도 넣어보려고 했으나...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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